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58)
아기 요정은 악당-58화(58/200)
체샤는 순간 심장이 툭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의 말은 하나도 틀린 구석이 없었다.
다만 의외로운 점이 있다면.
키에른이 이렇게까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뒷세계의 마스터가 얼마나 냉정하고 잔인한 면모로 악명 높은지 알기 때문에 더더욱.
체샤 앞에서 말랑한 아빠인 척 굴었던 모습은 전부 필요에 따른 연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키에른은…….
정말로 상처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상처받았다’는 표현이 가능한 것인가?
혼란스러운 마음에 가뜩이나 할 말 없던 말문이 더더욱 막혔다.
체샤는 입술을 달싹였다.
키에른은 답을 듣지 못할 혼잣말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아빠가 뭘 잘못했지…. 체샤가 왜…….”
체샤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무 잘못 업써요!”
키에른의 눈이 커졌다.
흔들리는 붉은 눈을 보며 체샤는 재차 말했다.
“아무것두…….”
조금이라도 그가 진정하기를 바라고 던진 말이었다.
그러나 체샤의 말을 들은 순간.
표정 없던 그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키에른이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에서 놓친 지팡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대리석 바닥 위를 굴렀다.
체샤는 그림자의 움직임이 더욱 기묘하게 변해 감을 눈치챘다.
이제는 바람에 등불이 흔들려서 그림자가 일렁인다고 둘러대기 어려울 만큼.
신전을 환하게 밝히던 등불 빛이 미묘하게 줄어들었다.
대낮처럼 훤하던 신전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어둠으로 잠겨 들었다.
숨쉬기가 어려운지, 키에른이 숨을 짧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내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으면…….”
키에른에게서 엉망으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왜 나를 버렸어?”
잘그락, 희미한 쇠사슬 소리가 들렸다.
하일론이 단죄의 사슬을 불러내고, 신성 기사들이 막 검을 뽑아 들려는 순간.
“백작님!”
소년의 외침이 바짝 응축되어 있던 공기를 터뜨렸다.
낡은 로브의 후드를 젖혀 얼굴을 드러낸 소년은 출입문 앞에서 헐떡였다.
부릅뜬 눈으로 키에른을 바라본 소년은 빠르게 달려왔다.
그리고 키에른의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
퍽!
인정사정없는 주먹질에 키에른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기이하게 어둑해지던 신전이 다시금 환히 밝아졌다.
“…하아, 하아.”
키에른부터 때려 놓고, 벨제온은 숨을 몰아쉬었다.
어찌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한동안 호흡을 고르느라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떨리는 눈으로 체샤부터 확인했다.
보송보송한 모습으로 하일론에게 안겨 있는 체샤를 확인하고는 안도했으나.
곧 키에른의 상태를 보곤 얼굴이 어두워졌다.
“…벨제온.”
키에른은 조금 제정신을 차린 듯했다.
그러나 눈빛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키에른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습관적으로 짓는 기계적인 미소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정말로 뜬금없이,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툭 뱉었다.
“비가 그치질 않아.”
키에른이 살짝 부어오른 입술을 핥으며 속삭였다.
“계속… 비가 내리는데.”
무슨 소리인지 조금도 짐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벨제온은 곧장 의미를 알아들은 듯했다.
“백작님.”
벨제온이 낮고 빠르게 말했다.
“정신 차리십시오. 지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러십니까.”
그가 한 대 더 치고픈 표정으로 키에른을 노려보았다.
키에른은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숨을 골랐다.
그때 이브로이엘 공작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분위기가 영 심각하군.”
그녀는 키에른의 등짝을 내려쳤다.
큼직한 손으로 키에른을 퍽퍽 소리 나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거, 우리 대녀는 집에 가고픈 생각이 아직 없는 듯한데?”
“…….”
공작이 등짝을 내려칠 때마다, 아직 어두운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신전 안이 조금씩 더 밝아졌다.
키에른의 얼굴 위로 짜증이 맴돌며, 방금까지 위태롭던 느낌이 한결 가셨다.
‘으아아…….’
체샤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진짜 위험했다.’
하일론의 사슬 소리를 들었다.
저기서 한 발짝만 더 나아갔으면, 키에른은 곧장 단죄의 사슬에 묶여 이단 심문실로 끌려갔을 것이다.
조용히 안 끝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앞뒤 없이 달려들 줄은 몰랐다.
‘근데 내가 왜 키에른을 걱정하고 있지.’
솔직히 말해서 단죄당하면 체샤로서는 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쫓길 걱정 하지 않고, 그냥 요녀로 되돌아가 버리면 끝이니까.
하지만 체샤는 방금 진심으로 키에른을 걱정했다.
정이 들어서 그렇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강한 감정이었다.
체샤가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헤매는 사이.
이브로이엘 공작은 능숙하게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생각해 보았는데 말이지. 우선은 어른들끼리 대화를 조금 해 봄이 어떨까 하네만? 나랑 바실리안 백작, 그리고…….”
그녀가 하일론을 응시하며 웃었다.
“내 대녀의 호위 기사까지, 셋이서.”
하일론은 으레 사람들이 하는 함께해서 영광이라든가, 기쁘다든가 같은 겉치레 말을 하지 않았다.
팔렌 대제국의 공작이 대화를 청하는데도 그냥 무뚝뚝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공작 각하께서 원하시면 그리하겠습니다.”
“하하하, 늘 생각하는 거지만 참으로 건방져.”
이브로이엘 공작은 씩 웃으며 물었다.
“소속이 어디지?”
“힐데르드 신성 제국, 제1계위 신성 기사단 소속입니다.”
“흐응…. 그래, 그래. 근거 없는 건방짐은 아니다, 이거로군.”
그녀는 키에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아직 완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한 그의 어깨를 꽉 움켜쥐며, 하일론에게 웃어 보였다.
“그래서 어찌, 차 한잔하겠나? 야밤에 뜬금없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서서 이야기하는 것보단 낫겠지.”
나이 들어서 오래 서 있기가 힘들다며, 그녀가 너스레를 떨었다.
체샤는 이브로이엘 공작의 실제 나이가 육십이 넘는다는 말을 떠올렸다.
하일론도 그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는지, 태도가 아주 약간 공손해졌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소란이 한 차례 정리되는 사이, 벨제온이 다가와 손을 뻗었다.
“제 동생.”
그의 호칭에 체샤는 조금 눈을 크게 떴다.
처음으로 명확하게 체샤를 동생이라 호칭한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돌려주십시오.”
하일론은 천천히 품속의 체샤를 내어 주었다.
벨제온은 조심스럽게 체샤를 받아 안았다.
소년에게 안기는 순간.
콩닥콩닥.
격하게 심장 뛰는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겉으론 무표정을 유지 중인 벨제온이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와닿는 순간이었다.
벨제온은 말없이 체샤를 끌어안았다.
체샤의 온기를 느끼며 평정심을 되찾은 후, 입술을 뗐다.
“아직 동생이 어린지라. 한창 자야 할 시간이니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냐.”
이브로이엘 공작은 입꼬리를 옆으로 길게 찢으며 씩 웃었다.
그녀는 음흉한 얼굴로 벨제온에게 당부했다.
“도망가지 말고 방에 잘 붙어 있거라, 벨제온.”
“유념하겠습니다, 각하.”
냉담한 대꾸에 끌끌 웃는 이브로이엘 공작을 뒤로하고.
벨제온은 체샤를 안은 채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멀어지는 시야에 키에른이 들어왔다.
이제는 완전히 평상심을 되찾은 듯했으나, 그는 얼굴이 살짝 창백해진 채였다.
“체샤가 아빠를 떠난 거였어요?”
키에른이 했던 말이 이상하게 자꾸 귀에 맴돌았다.
괜히 키에른과 눈이 마주치기 전에, 체샤는 얼른 시선을 돌려 버렸다.
탁.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선 벨제온은 문에 등을 기댔다.
그 상태로 가만히 얼마간 서 있었다.
그러다가 체샤를 안은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벨제온이 체샤를 꽉 안았다.
그의 몸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무슨…. 젠장, 비가 온다고, 헛소리를…….”
체샤는 입술을 벌렸다.
벨제온이 욕하는 걸 처음 본 탓이었다.
그러나 벨제온은 제가 욕을 했다는 자각도 없는 듯했다.
숨을 헐떡이며 체샤의 작은 몸에 얼굴을 묻고 있기만 했다.
‘얘도 제정신이 아닌 거 같은데.’
하여간 바실리안가 남자들은 겉으론 멀쩡한 척, 잘난 척해도 속은 다 썩어 문드러진 놈들이었다.
체샤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작은 손짓에 벨제온은 움찔 떨었다.
그러나 이내 가만히 작은 손길에 기대며, 몸을 늘어뜨렸다.
둘이서 얼마간 그러고 있던 때였다.
덜걱덜걱.
갑자기 창문이 덜컹거렸다.
그러더니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활짝 열렸다.
밤바람을 타고 작은 소년 둘이 잽싸게 쏙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형님! 동생……!”
“우리 왔어요.”
이슈엘과 카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