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61)
아기 요정은 악당-61화(61/200)
기묘한 모임이었다.
60살이지만 겉모습은 30대 같은 제국의 공작, 세레아 프론 이브로이엘.
신성 제국 힐데르드의 제1계위 신성 기사, 하일론.
그리고 뒷세계의 주인이자 뛰어난 흑마법사이지만, 힘없는 백작인 척하는 키에른 바실리안까지.
각자 숨기는 게 많은 이들이 모여서 한밤중의 티타임을 가지게 되었다.
신전의 주교 또한 대화에 끼고 싶은 눈치였으나, 세레아가 단칼에 잘라냈다.
대주교는 퍽이나 궁금했던지, 자신이 손수 차까지 우려 와 차려 주고 갔다.
어찌나 미적거리며 나가던지, 세레아는 그만 그의 엉덩이를 걷어찰 뻔했다.
아무리 공작이라도 주교의 엉덩이를 걷어찼으면 곤란했을 테니, 주교가 아슬아슬하게 사라져 준 건 다행인 일이었다.
따끈따끈한 꽃차가 담긴 찻주전자와 찻잔이 놓였다.
하지만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다.
차에는 입도 안 댈 분위기라서, 세레아는 그냥 찻주전자를 집어다 제 찻잔에만 차를 따랐다.
쪼르륵.
찻잔에 담기는 찻물이 옅은 녹색을 띠었다.
맑은 색과 향기를 확인한 세레아는 살짝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찻물을 한 모금 삼키며 눈앞의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
침묵 속에서 서로를 응시하는 두 남자는 왜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서 휘두르지 않는지 의아할 정도로 살벌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세레아는 뜨끈한 찻물로 목을 축이며 아까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백작 부인이 죽은 이후.
키에른은 정신이 많이 약해졌다.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지닌 힘을 통제하고 억눌러야 하는 흑마법사에게는 치명적인 상해였다.
그러나 그녀의 제자는 타고난 성정이 냉정하여, 자신이 입은 상해를 한 꺼풀 덮어 가릴 수 있었다.
스스로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한계를 정확히 파악하여 힘을 사용한 것이다.
말이 쉽지, 개념도 불분명한 ‘힘’을 그토록 정교하게 다룬다는 것부터가 이미 괴물의 영역이었다.
세레아가 혀를 내두를 만큼 독한 모습이었으나.
‘아까는…….’
세레아는 극도로 불안정하던 키에른의 모습을 떠올렸다.
백작 부인이 죽은 이후, 훌륭하게 가면을 덮어쓰고 살아오던 키에른이 밑바닥을 내보일 뻔한 순간이었다.
벨제온이 때맞춰 와 주지 않았다면, 세레아가 키에른을 후려쳤을 것이었다.
그대로 두었다간 신성 사제와 신성 기사가 득시글거리는 신전에서, 키에른은 진짜로 흑마법을 써 버렸을 테니까.
징그러울 정도로 머리 잘 굴리는 놈이 멍청하게 구는 꼴에 기가 막혔다.
‘입양아한테 벌써 그렇게 마음을 줘 버린 건가.’
떠난다는 말에 발작이 온 거겠지만…….
그것 말고도 저 신성 기사한테 아이가 의지하는 기색을 내비쳐서 눈이 뒤집힌 듯했다.
‘하여간 질투심만 많아선.’
예전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은 백작 부인이 연회장에서 누군가한테 조금만 오래 웃어 주고 말을 받아 주면, 음침하게 뒷조사해 대던 성정이 어딜 가지 않았다.
속으로 혀를 끌끌 차던 세레아는 호로록, 차를 마시며 눈동자를 옮겼다.
키에른이야 그렇다 치고, 진짜 문제는.
‘바로 이 남자란 말이지.’
제1계위 신성 기사단 소속의 신성 기사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남자.
깨끗한 은발과 푸른 눈을 가진 하일론은 신성 기사의 이상향과 같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키에른과는 분위기가 정반대여서, 나란히 두고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할 정도였다.
평화로운 팔렌 대제국의 수도에 뜬금없이 제1계위나 되는 높은 직급의 신성 기사가 등장한 이유는 간단했다.
소성인 기도회의 호위 기사를 맡기 위해서였다.
제국의 다른 귀족가도 소성인 기도회에 참가했고, 그들 또한 높은 계위의 신성 기사가 호위를 맡았다고 듣기는 했는데.
세레아는 미간 사이를 좁히며 하일론을 응시했다.
정신없는 상황이 한차례 지나가고, 차분한 마음으로 살피면 살필수록 이상한 놈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거, 그냥 신성 기사 아닌 것 같은데.’
힘 있는 자들은 서로를 알아보기 마련이었다.
가진 힘이 강대하니 기운을 갈무리하더라도 어느 정도 새어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끔씩 소름 끼치는 놈들이 꼭 한둘씩 있었는데.
바로 자신의 기운을 빈틈없이 정리하는 놈들이었다.
기운을 정리하면 맞서는 이는 상대가 강하다는 사실만 인식할 수 있을 뿐.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귀찮으면서도 까다로운 작업인지라, 세레아는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강함을 풀풀 드러내 놓고 다니곤 했다.
비단 세레아뿐만이 아니라, 절대다수의 강자들이 모두 그러했다.
강함을 드러내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니 말이다.
세레아는 결벽증적으로 기운을 정리해 대는 사람을 여태까지 딱 두 명 보았는데, 그 하나가 키에른이었고…….
다른 하나가 바로 눈앞의 이 ‘자칭 신성 기사’였다.
제1계위 소속 신성 기사라는 지위는 분명 엄청난 실력자라는 보증이었다.
기운을 갈무리할 만큼 강한 자가 소속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오랫동안 살아오며 쌓아 온 연륜과 직감이 외치고 있었다.
‘저 새끼 수상해.’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비단 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일론은 여태 세레아가 만나 봤던 신성 기사들하고는 분위기가 달랐다.
물론 일단 외모부터가 일반 기사들하고 확 차이가 났지만, 그건 부차적인 부분이었다.
하일론에게는 피 냄새가 났다.
오랫동안 손에 피를 묻혀, 영혼에 깃든 피비린내였다.
그리고 저 차가운 푸른 눈도 그러했다.
일견 냉정하게 보이는 푸른 눈동자는 사실 차가운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눈이었다.
[약한 자를 동정하고 선행을 베풀 것.]신성 기사들이 신과 성왕 앞에서 맹세하는 서약의 가장 첫 번째 줄이었다.
만물에 무심하여 동정심을 알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신성 기사가 되었는지, 세레아로서는 의아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남자는 신성 기사에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비와 동정이 불필요한 다른 일에 훨씬 잘 어울렸다.
가령 예를 들면.
‘이단 심문관이라거나.’
세레아는 찻잔에 남은 찻물을 단번에 들이켰다.
그렇지 않으면 상스러운 욕설을 터뜨릴 것 같아서였다.
저놈이 이단 심문관이라고 가정하면, 모든 상황이 매끄럽게 연결되었다.
눈치가 무서운 놈들이니 언젠간 키에른이 흑마법사라는 꼬리가 밟히리라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막상 진실로 그때가 찾아오니 두려웠다.
세레아는 제 늘그막의 기쁨이었던 제자가 이단 심문관에게 처형당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흑마법이라는 잘못된 길을 걷긴 했지만, 그래도…….
“스승님, 키에른입니다.”
소년 시절의 키에른이 뇌리에서 아른거렸다.
여전히 제게는 어리게만 느껴지는 제자를 구해 주고 싶었다.
세레아가 제 앞의 두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방법을 골몰하던 때였다.
아주 갑작스럽게, 아무런 예고 없이 키에른이 불쑥 말문을 열었다.
“하일론 경.”
흐트러짐 없이 곧은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던 하일론과 다르게, 소파 등받이에 널브러지듯 몸을 기대고 있던 키에른이 스으윽 상체를 일으켰다.
“내 딸이 경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싫다고 했습니까?”
이 심각한 상황에서 고작 물어본다는 게 저따위 유치한 질문이라니.
세레아는 키에른의 주둥이를 때려 주고픈 욕구를 누르기 위해 애써야 했다.
그러나 하일론도 키에른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아무 말도.”
짧은 대꾸에 키에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붉게 침잠하는 눈을 바라보며, 하일론은 다시금 차갑게 말해 주었다.
“아이는 당신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워하는 기색도 없었으니.”
“…….”
“백작에게서 도망친 것인데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시선이 맞부딪쳤다.
서로를 노려보는 가운데, 하일론이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신전은 약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세레아는 빈 찻잔을 움켜쥔 채 하일론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하일론은 기어코 키에른을 제대로 긁어놓았다.
“하여 앞으로 계속 신전에서 아이를 키울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