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63)
아기 요정은 악당-63화(63/200)
신전이 터지는 소리를 듣자마자, 체샤는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완전히 상극인 두 남자였다.
그런 둘이서 차 마시면서 하하 호호 대화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뭔 일이 생겨도 생기겠거니 했지만.
‘신전을 터트려 버리네.’
하여간 키에른도, 하일론도 똑같았다.
성격은 정반대인데, 한번 눈 돌아 버리면 끝장을 본다는 점은 왜 똑 닮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도대체가 ‘적당히’라는 말을 모르는 놈들 때문에 체샤만 고생이었다.
“…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슈엘이 벨제온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벨제온과 쌍둥이는 우선 휴전하는 걸로 암묵적인 합의를 맺었다.
그리고 체샤를 데리고 키에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힘이 격동하는 곳을 찾아가, 신전 건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건물이 다 부서져서 몰래 올라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일론과 대치 중인 키에른이 보였다.
다행히 그는 이브로이엘 공작 뒤에 얌전히 숨어 있었다.
검도 없는 비무장 상태였다.
흑마법을 쓸 게 아닌 이상, 성검을 사용하는 하일론에게 맞서기엔 부족했다.
이브로이엘 공작은 과연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녀는 능숙하게 마법을 다루며 하일론을 상대했다.
‘하지만 결국 패배할 거야.’
이건 가진 힘의 총량을 측정하는 게 아니었다.
전투였다.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아니, 설혹 더 강하다고 하더라도.
전투에 능숙한 이가 얼마든지 강자를 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브로이엘 공작이 전쟁 영웅이었던 시절은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몸에서 피비린내 가실 일이 없는 하일론과는 비교 불가였다.
특히 하일론이 성유물인 단죄의 사슬을 꺼내 든다면 더더욱 말이다.
‘요정…….’
죽은 백작 부인이 요정이었다니.
카르하가 얼결에 내뱉은 진실에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혼란스럽지만 가야 할 길은 명백했다.
어쩌면 키에른이야말로 체샤가 찾아 헤매던 진실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에게 들어야 할 것이 많았다.
‘살려야 해.’
체샤는 굳게 결심했다.
그리고 저를 안은 카르하의 가슴팍을 콩콩 두드렸다.
카르하가 바닥에 내려 주자, 체샤는 소년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던져 주새요.”
“…어?”
체샤는 싸움이 벌어지는 한복판을 가리켰다.
“쩌기로!”
“뭐?”
“안 돼!”
“미쳤어?”
카르하, 벨제온, 이슈엘이 각기 소리를 내질렀다.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체샤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했다.
“쩌 때문에 싸우는 거 시러요…….”
자신이 나서서 말려 보겠다고 열심히 의견을 내세웠다.
바실리안의 삼 형제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체샤가 바실리안가에 돌아가든, 돌아가지 않든.
우선 이 싸움을 멈춰야 한다는 건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다.
“빠리요!”
체샤는 망설이는 소년들을 닦달했다.
체샤를 뭘 어떻게 집어던지든 간에.
저기 있는 세 사람이라면 너끈히 받아 낼 자들이었다.
그들은 분명히 체샤를 받기 위해서 싸움을 멈출 것이다.
그럼에도 셋 다 선뜻 나서지 못했다.
체샤는 답답함에 건물 끝으로 도도도 뛰어갔다.
상황이 어찌 흘러가는지 다시 확인해 보려던 때였다.
“우……?!”
콰직, 균열이 가득하던 건물이 발아래서 무너졌다.
“안 돼!”
체샤가 파편과 떨어지는 순간, 커다란 바람이 몸을 휘감았다.
이슈엘이 마법을 쓴 것이다.
어딘가 어설픈 모양새의 마법진을 그려 낸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금빛이 뒤섞인 바람은 체샤의 몸을 두둥실 하고 띄우는 데에 성공했으나…….
“…!”
체샤를 건물로 다시 실어 오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휘릭 날려 버렸다.
체샤는 바람을 타고 휙 날아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끄아아앙!”
어찌 되었건 목표를 이루는 데는 성공했다.
체샤는 커다랗게 비명을 질렀다.
모두가 저를 주목해 주길 바라며 외친 소리였다.
효과는 성공적이었다.
키에른도, 하일론도, 이브로이엘 공작도.
모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체샤를 쳐다보았다.
거기까진 아주 좋았는데.
‘악! 저 미친 흑마법사가!’
사방으로 펼쳐지는 단죄의 사슬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치솟아 올랐다.
떨어지는 체샤를 받기 위해 키에른이 흑마법을 쓴 것이다.
멀쩡하게 받아 줄 놈들이 여기에 둘이나 있는데, 어째서!
체샤는 이제 진심으로 끄아앙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키에른 때문에 되는 일이 없었다.
‘기껏 흑마법사인 거 감춰 주겠답시고 나섰더니!’
짧은 혓바닥이나마 부지런히 움직여 키에른 욕을 잔뜩 쏟아 내려 했다.
하지만 정작 붉은 눈과 시선이 맞닿은 순간.
체샤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절박한 눈으로 체샤를 바라보았다.
뻗어 오는 손은 필사적이었다.
아마 힘도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체샤를 바닥에 떨어트릴까 봐, 이토록 불안해하고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체샤는 저도 모르게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늘에서 떨어져 키에른의 품에 안기기까지.
모든 과정이 느릿하게 느껴졌다.
사슬과 그림자가 사방에서 그물처럼 펼쳐지고, 보랏빛 마법진이 빛을 흩뿌렸다.
거대한 힘들이 뒤엉키는 가운데.
체샤는 키에른에게 낙하했다.
유성처럼 떨어지는 작은 몸을 받아 든 그가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
“하아, 체샤…….”
누군가 잔뜩 옥죄던 목을 놓아줘서 겨우 공기를 들이마시듯 헐떡였다.
두근, 두근, 두근.
키에른의 심장이 맥동하는 감각을 느끼며 체샤는 뒤늦게 중얼거렸다.
“머쵸이…….”
“응?”
멍청이라고 말했지만, 발음을 신경 쓰지 않고 대충 내뱉어 버렸더니 정말 못 알아들을 소리가 나왔다.
물론 체샤는 다시 고쳐 말해 줄 생각이 없었다.
다만 속으로 못다 한 욕설을 부지런히 늘어놓았다.
“하하.”
세레아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녀는 만들었던 마법진을 흩어 내며 한 마디로 간단히 소감을 표했다.
“젠장.”
참았던 욕설을 뱉어 버린 것만으론 부족했던지, 그녀는 아아악 하고 소리도 내질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저놈더러 싸우라고 할걸! 괜히 기운만 뺐어.”
세레아는 양손을 번쩍 하늘로 치켜올리며 커다랗게 외쳤다.
“잡혀가라, 잡혀가. 아주 이단 심문실에 처박혀서 평생 썩어 문드러져라!”
그녀가 저주하거나 말거나.
수많은 이들의 시선 속에서 키에른은 체샤에게 다정히 물었다.
“아빠 보러 왔어요?”
그는 기뻐 보였다.
심지어 얼굴마저 살짝 상기된 채였다.
체샤한테 이미 푹 빠져서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놀래라…. 왜 이렇게 위험한 짓 했어요. 누가 체샤를 하늘에서 떨어트렸지?”
조곤조곤 묻는 말에 체샤는 맥이 빠졌다.
흑마법사인 걸 다 들키게 됐는데.
바실리안 가문이 멸문에 휘말리게 되었건만, 그런 건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그의 모습에 기가 막혔다.
“역시 흑마법사였습니까.”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에른은 그제야 하일론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쪽은 이단 심문관이었군요.”
그는 설핏 미소 지었다.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 대에 엄청난 이단 심문관이 탄생했다고. 누구도 다루지 못했던 성유물을 자유로이 쓴다던데.”
키에른이 사방을 촘촘하게 뒤덮은 사슬을 보며 감탄했다.
“확실히…. 대단한 성유물입니다.”
기묘할 정도로 태연한 모습에 이상함을 감지한 하일론이 설핏 미간을 좁히는 찰나.
경쾌한 딱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는 기이하리만큼 선명했다.
붉은 눈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일렁였다.
여기저기서 검을 뽑는 소리가 났다.
몰려왔던 신성 기사들이 성검을 뽑았다.
그리고 제 목에 검날을 가져다 댔다.
검이 없는 사제들은 제 손으로 자기 목을 움켜쥐었다.
숨이 막혀 죽을 때까지 있는 힘껏 조르겠다는 듯이.
대규모 정신 조종이었다.
수십 명에게, 그것도 신성력을 지닌 이들에게 한 번에 정신 조종을 걸어 버린 것이다.
키에른이 드러낸 힘의 일부에 하일론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단죄의 사슬이 옅게 요동쳤다.
잘그락잘그락 사슬 소리가 서서히 강해졌다.
“오해 마십시오. 기사와 사제들에게 해를 가할 생각은 없으니. 그냥 간단히 대화할 환경을 마련한 것뿐입니다.”
키에른은 미소를 지으며 하일론을 달랬다.
“이러지 않으면, 제 말을 들으려는 시늉조차 하시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