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66)
아기 요정은 악당-66화(66/200)
이해되지 않을 만큼 강렬한 감정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요녀와 이단 심문관은 아무 관계도 아니었다.
그녀와 하일론은 그저 애매하기만 했다.
친구, 연인, 적, 경쟁자…….
그 무엇도 어울리는 이름이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여겼다.
그녀가 타인에게 어떤 감정을 품든, 하일론을 향한 감정보다는 옅으리라고.
하지만 오만한 생각이었다.
리체시아는 하일론의 착각을 부서뜨리고 홀연히 사라졌다.
누구의 피를 이었는지도 모를 아이만을 남겨 둔 채 말이다.
하일론은 궁금했다.
대체 어떤 남자이기에 리체시아의 마음을 얻은 것인지.
저와 했던 키스가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였다면, 그 입술로 다른 남자와 입을 맞출 때는 리체시아가 어떻게 반응했을지.
쇄골 위의 꽃문양에 뜨거운 열기가 감돌았다.
신에게 바친 육체로서 순결을 지켜야 할 신성 기사를 비웃듯이 화끈거렸다.
살갗의 통증을 느끼며, 하일론은 그녀를 생각했다.
“또 나를 잡으러 왔어, 이단 심문관?”
리체시아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스쳤다.
다른 남자를 부를 땐 어떤 식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는?
무의미한 생각들이 끊어지질 않고 자꾸만 이어졌다.
하일론은 피가 역류하는 듯한 감각에 이를 맞물었다.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이란 건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음습할 정도로 요녀에게 집착하고 있단 사실도.
하지만…….
하일론은 그녀의 사냥감이었다.
쇄골에 새겨진 사냥감의 표식이 그것을 증명했다.
요녀는 이제 사냥을 관두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으나, 그리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그만둔다는 것인가.
그녀 혼자 일방적으로 끝내게 두지 않으리라.
끊어졌다 하더라도 억지로 관계를 이을 작정이었다.
리체시아는 제 몸에 표식을 남긴 책임을 져야 했다.
신성 제국의 이단 심문관은 요녀에 의해 망가졌으니.
하일론은 조소를 삼켰다.
리체시아를 붙잡기 위해 어린 아기까지 끌어들인 자신을 비웃었다.
그 아이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갓 피어난 꽃처럼 귀여울 뿐.
아이를 볼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호감이 샘솟았다.
다른 남자의 아이라는 사실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온통 리체시아만이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잘해 주고 있었다.
눈앞에서 움직이는 모습만 보아도 제법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문득문득 입매 끝이 설핏 올라갈 정도로 말이다.
분명 처음에는 리체시아를 꾀어낼 미끼로서 붙잡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하일론은 아이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
바실리안 백작에게 내어 주기 싫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말간 분홍색 눈을 생각하던 하일론은 긴 침묵을 깨고 입술을 열었다.
“성왕께는 일주일간 휴가라고 전하도록.”
“…하아. 알겠습니다.”
다렌이 여전히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로 끙끙거리며 대답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일론은 아이를 생각했다.
리체시아는 붙잡지 못했지만.
앞으로 주어진 일주일 동안 아이의 마음은 붙잡아 볼 생각이었다.
바실리안 백작가로 돌아가고 싶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
벨제온은 짧고 굵은 가출을 끝내고 바실리안가로 돌아갔다.
그를 찾는 이들이 워낙 많기도 하고, 벨제온의 주된 가출 목적이었던 체샤가 안전지대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키에른이 하일론에게 정보를 가져다주는 날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체샤는 바실리안가의 남자들과 짧은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정말로 짧은 이별일지.
아니면 영원한 작별이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복잡하다, 복잡해…….’
키에른이 뒷세계의 마스터만 아니었어도 조금 더 쉽게 결정을 내렸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도대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체샤는 몰래 하타에게 나비를 보냈다.
물약 재료를 구하러 간 그에게 일단은 돌아오지 말고, 키에른과 만나기로 한 일주일 안에 어른으로 변하는 물약을 완성해 달라고 연락을 담았다.
그리고 체샤의 임시 보호자가 된 하일론과 함께 야밤에 길을 나섰다.
하일론은 부관인 다렌에게 간단한 뒷수습 명령을 내려놓고 체샤를 데리고 삯마차에 올랐다.
시간도 이렇게 늦었는데 어디로 갈지 궁금했다.
‘수도와 가까운 지역의 다른 신전으로 가려나?’
그러려면 동이 트기 전에는 도착하기 어려울 듯했다.
고생 좀 하겠거니 각오를 했건만.
하일론이 체샤를 데려간 곳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이었다.
수도의 고급 저택들이 몰려 있는 거리로 마차를 타고 가더니, 유독 비싸 보이는 저택 하나에 불쑥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일론도 키에른처럼 남의 집을 무단 침입하는 건가 싶어서 기겁했다.
그리고 하일론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저택이란 걸 알았을 때는 놀라서 뒤집어질 뻔했다.
‘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저택을!’
이라고 경악했다가 금세 다시 고쳐 생각했다.
‘돈 많겠지…….’
신성 제국에 열셋밖에 없는 이단 심문관들의 수장이었다.
그의 앞으로 떨어지는 봉급과 품위 유지비만 해도 어마어마할 터였다.
그리고 이단으로 판정된 자들의 재산을 몰수하면, 그 절반은 이단 심문관에게 내어 준다고 들었다.
개처럼 부려 먹는 만큼 보상은 확실하게 주는 것이다.
어쨌든 하일론은 아주 유능한 이단 심문관이었고, 굵직한 인물들을 몇 번이나 잡아들여 단죄했으니.
당연히 부유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무튼 하일론의 저택에서 머무르는 나날은 나쁘지 않았다.
맛있는 거도 많고, 사용인들도 조금 귀찮지만 잘해 주는 편이고.
다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하일론이 집 밖을 안 나간다는 것이었다.
처음 체샤를 저택으로 데려왔을 때, 그가 말했다.
“바실리안 백작은 위험하다.”
그자가 지금은 순순히 돌아갔으나,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최대한 곁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하일론이 제게 한 차례 비슷한 말을 했던지라,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거의 하루 종일 그와 붙어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밤에는 침대에서 잠도 같이 자야 했다!
‘으엑.’
살다 살다 하일론하고 침대에서 나란히 잠드는 일이 생기다니.
정말이지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하일론 옆에서 잠이 올까 싶었지만, 의외로 밤잠을 설치는 일 없이 번번이 깜빡 잠들어 버리곤 했다.
오늘도 체샤는 그와 함께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기용 잠옷을 입은 체샤를 옆에 반듯하게 누이고, 하일론은 저 또한 가만히 몸을 눕혔다.
“…….”
체샤는 하일론 몰래 반짝 눈을 떴다.
잠시 천장을 쳐다보다가, 눈동자를 굴려 옆을 힐끔 보았다.
어둠에 잠긴 남자를 구경했다.
‘인형 같다.’
체샤는 촘촘하게 내리깔린 은색 속눈썹과 하얀 피부를 감상하며 생각했다.
누가 신성 기사 아니랄까 봐, 잠옷도 목 끝까지 올라오는 답답한 걸 착용해서 더욱 인형 같은 느낌이었다.
침대에 고양이처럼 늘어지듯 뒹굴며 잠드는 키에른과 다르게 하일론은 취침 자세마저도 반듯했는데, 잠든 그대로 눈만 감았다가 뜨곤 했다.
한참 신나게 구경하던 때였다.
닫혀 있던 눈꺼풀이 스윽 열렸다.
그의 눈매에는 어떤 잠기운도 서려 있지 않았다.
다만 조금 의외인 건, 곧장 일어나 앉을 줄 알았건만.
그저 몸만 옆으로 돌려서 체샤를 바라보았다는 것이었다.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왜 잠들지 않지.”
평소에도 낮은 저음이 살짝 더 아래로 내리깔렸다.
갈라진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체샤는 동글동글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종알거렸다.
“잠이 안 와요.”
하일론이 설핏 눈매를 찌푸렸다.
머릿속으로 잠투정하는 아기를 달래는 법을 고민하는 듯했다.
그가 느리게 손을 뻗어 와 체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길을 받고 있던 체샤는 문득 장난기가 샘솟았다.
‘좀 괴롭혀 줄까?’
심심하면 하일론을 괴롭히고 놀았는데, 최근 그러질 않았더니 속이 근질거렸다.
하일론이 무표정을 깨고, 생동감 넘치는 반응을 해 줄 때마다 체샤는 즐거웠다.
‘연약한 아기이니 몸으로 놀아 주기는 힘들고.’
말로 그를 괴롭혀 주기로 결심했다.
생각해 보니 재밌는 기회이지 않은가.
어차피 단단히 오해를 받아 버린 상황이었다.
당분간 해소되지도 않을 테니, 기왕 이렇게 된 것 하일론을 괴롭혀주리라.
“궁금한 고 있는대요…….”
체샤는 시침을 뚝 떼고서 모르는 척 물었다.
“어무니하고 무슨 사이여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