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68)
아기 요정은 악당-68화(68/200)
쏜살같이 거울 앞으로 달려간 체샤는 비명을 질렀다.
“끄아앙!”
거울 속에 비친 조그만 아기를 확인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있는 힘껏 잡아 뜯었다.
그러나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체샤는 아기였다.
“와, 미띠겟네…. 또라 부리겟네……!”
체샤는 삐후흑 울음을 터뜨렸다.
“이게 모냐구!”
하타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끙끙거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하타가 완벽하게 만들었는데, 왜, 어째서…….”
하타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물약 병을 몇 개 더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물약을 마셨다.
체샤가 보는 앞에서 하타는 뾰로롱 아기로 변했다.
“쩌는 아기도 되궁.”
다시 꼴깍 물약을 마시더니.
“원래 모습으로도 다시 잘 돌아오는데.”
뿅 하고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하타는 빈 물약 병을 쥔 채로 황망히 중얼거렸다.
“왜 리체시아 님한테만 약효가 안 통하는 거죠?!”
하타가 옆에서 같이 끄아아 하고 비명 질렀다.
체샤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쵸…….”
진심으로 울고 싶었다.
하지만 아기의 짧은 팔다리로는 체샤의 절망감조차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고 간신히 생각을 이었다.
“하따 잘못 아닐 고야.”
하타가 물약을 만들면서 실수했을 리는 없다.
체샤의 강아지는 무척 재주가 좋으니까.
실제로 지금 하타한테는 멀쩡하게 작용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내 몸이 이상한 고 가타……..”
이유는 모르겠으나, 체샤한테만 물약이 안 통하는 듯했다.
이대로 영원히 어른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걸까?
계속 애새끼 노릇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요녀 리체시아가 나약한 꼬맹이로 변했다고 하면, 좋아서 거품 물고 달려들 놈들이 눈앞에 좌라락 흘러갔다.
체샤가 아무리 날고 기는 요녀라고 해도.
아기 몸으로는 힘을 쓰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약해진 요녀는 맛 좋은 먹잇감이 되어 갈가리 찢겨 나갈 것이다.
‘하타도 챙기기 어려워.’
요녀의 악명으로 보호받던 하타도 당연히 같이 죽게 될 것이고 말이다.
환역을 사용하면 어른 모습을 흉내 낼 수 있지만, 하루 종일 환역에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환역을 한번 펼치면 어마어마한 힘이 소모되기에, 계속 유지하는 일이 불가능하기도 했다.
머릿속에서 빠르게 생각이 흘러갔다.
수십 가지의 상황을 가정하고 추론하길 반복한 끝에.
체샤에게 남는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계속해서 요정 실험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서.
신성 제국에 합법적으로 잠입할 수 있고.
그 누구보다 강력한 아군에게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
그건 바로…….
체샤 바실리안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
늙은 사제는 평범했다.
그는 길거리를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음 지었다.
조그만 공을 요리조리 차며 뛰어놀던 아이들이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공은 사제의 발치에 데굴데굴 굴러왔다.
“사제님! 공 좀 던져 주세요!”
노사제는 읏챠, 허리를 굽혔다.
그는 공을 주워 훌쩍 던져 주었다.
늙은이의 힘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공은 힘차게 뻗어 나갔다.
“와아!”
아이들은 즐겁게 감탄하며 날아온 공을 붙들었다.
“감사합니다!”
공을 받은 아이들은 와와 시끄럽게 함성을 질러 가며 저만치 달려 나갔다.
그리곤 다시 신나게 공놀이를 시작했다.
미소 짓던 노사제는 공을 던지느라 젖혀진 소맷자락을 보곤 혀를 끌끌 찼다.
장갑과 소맷자락 사이로 언뜻 드러난 의수 때문이었다.
백색 광물로 만든 의수는 성스러운 기운이 희미하게 감돌았다.
마치 신성 기사들의 성검처럼.
소매를 다시 아래로 끌어내린 노사제는 먼 하늘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날이 좋구나.”
언뜻 혼잣말처럼 흘러갈 중얼거림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길의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은빛 머리카락이 눈부신 남자는 신성 기사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남자는 노사제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서늘한 목소리가 인사를 올렸다.
“첫 번째 이단 심문관 하일론. 신의 이름 아래 성왕 전하를 뵙습니다.”
늙은 사제는 신성 제국의 성왕, 시아노르 힐데르드였다.
하일론은 성왕의 얼굴을 무덤덤히 바라보았다.
어느 누구도 제 앞의 늙은 사제를 성왕이라 생각지 못할 터였다.
강대한 힘을 가진 자는 노화에서 벗어나기 때문이었다.
신성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신성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성왕이 이런 늙은 할아버지일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리라.
실제로 예전에는 성왕 또한 나이에 맞지 않는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의 사건으로 인해.
성왕 시아노르는 자신이 가진 신성력 대부분과 양쪽 팔을 잃어버렸다.
현재 그는 축성받은 광물로 만든 의수를 착용하고 있었다.
의수는 비정상적인 힘을 쓸 수 있게 해 주었으나 그게 전부였다.
예전처럼 끝없는 신성력을 이용한 기적을 펼치진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신성 제국의 성왕이었고.
“나의 기사를 만나기에 좋은 날이지.”
하일론을 소유한 주인이었다.
“오랜만이구나, 하일론.”
시아노르는 하일론을 내려다보았다.
주름진 눈매는 언제나 그렇듯 실눈으로 웃는 모양이었다.
하일론은 그에게 나직이 물었다.
“저를 ‘교육’하러 찾아오신 겁니까.”
시아노르는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하일론을 살폈다.
“언제부터 네가 그런 걸 신경 썼느냐?”
“일주일의 휴식을 청하였습니다. 지금은 제게 안식을 허락해 주십시오.”
“…….”
단호한 반응에 시아노르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이내 시아노르는 다시 인자한 얼굴을 되찾았다.
“교육은 무슨. 생전 그런 요청이 없던 아이가 갑자기 휴가도 내고…. 걱정이 되어 찾아온 게다.”
걱정이라.
걱정을 하긴 했을 터였다.
하일론이 아닌, 자신의 안위를 말이다.
“신전 일은 잘 해결됐다. 이브로이엘 공작과 바실리안 백작이 직접 서신을 보내왔으니.”
오해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며 정중히 사죄하고, 신전 재건을 위한 기부금도 바쳐 왔다는 것이다.
“다렌에게 보고를 들었다. 수사 때문에 아이를 미끼로 삼았다고 하던데, 그래도 아직 이단이라는 확증이 없지 않느냐. 아이는 그만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거라.”
하일론은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시아노르가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일론은 냉랭한 표정으로 침묵을 이어 갔다.
무례한 행위였지만 성왕은 하일론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는 하일론의 침묵을 개의치 않고, 오히려 즐겁게 웃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예전에도 그랬지. 싫은 일이 생기면 항상 입을 꾹 다물어 버렸어. 솔직하게 말하느니 벌받는 걸 선택하는데, 어찌나 고집스러운지.”
시아노르만이 추억이라 여기는 과거였다.
그에게 교육당하고 체벌받았던 기억이 머릿속에 붉게 번져 나갔다.
하일론은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성왕을 향한 반항심을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었다.
“너는 내가 만들어 낸 가장 뛰어난 검이다, 하일론.”
그의 손이 머리에 닿았다.
타인의 접촉을 싫어하는 하일론은 벌레와 같은 감촉을 참기 위해 인내했다.
장갑 아래에 감춰진 의수가 하일론에게 반응하여 은은한 빛을 흩뿌렸다.
소매를 걷어 신성한 빛을 확인한 시아노르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모든 걸 바쳐서 만들어 냈으니…….”
얼마간 어루만지던 시아노르의 손이 떨어졌다.
그는 빛을 잃어버린 의수를 못내 안타까운 눈으로 보다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매를 내려 다시금 의수를 감추며 말했다.
“나는 너를 믿는다, 하일론. 네가 원하는 대로 하거라.”
“감사합니다.”
“소성인 기도회에 참석하는 아이더냐?”
“…예.”
“눈여겨봐 둬야겠구나.”
다정한 말을 건네는 성왕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여전히 하일론이 제 손아귀에 잘 붙잡혀있음을 확인한 덕분이었다.
아직 진실을 알지 못하기에 만끽하는 행복이었다.
성왕의 검이 주인을 베어 내려 한다는 진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