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69)
아기 요정은 악당-69화(69/200)
오만했던 가출 아기는 겸손해졌다.
‘나 찾으러 오면 얌전히 집에 가야지.’
지금 심정으론 가족들과 눈물의 재회도 찍어 줄 수 있었다.
“히유웅.”
체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키에른에게 요녀라는 사실이 들키면 죽겠지만.
‘일단 살고 봐야지.’
몸을 어른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 전까진, 연약한 아기인 체샤는 바실리안 백작가에 숨어 있기로 결심했다.
겸사겸사 이렇게 된 것, 소성인 기도회도 참석해 버릴 생각이었다.
‘어차피 신성 제국에 들어가야 했으니까.’
하지만 걱정이었다.
당장이야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틀어막았다지만, 언제까지 아기로 살 것인가.
심지어 성장하지도 않는 아기라니.
1년만 지나도 의심을 사기 시작할 터였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요정인지라 어디 물어볼 곳도 없었다.
‘아니, 있긴 한데…….’
인간을 피해 도망친 요정들이 힘을 모아, 거대한 환역을 만들어 숨었다는 전설의 요정 왕국이었다.
그러나 체샤는 찾아갈 방법을 몰랐고, 그쪽에서도 어긋난 힘을 가진 체샤에게 접촉해 오지 않았다.
가끔 요정이 사냥당하는 일이 있는 걸로 보아, 아마 인간과 혼혈인 요정은 그들도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듯했다.
‘일단 이건 천천히 생각해 보는 걸로 하자.’
하타가 다시 물약을 만들어 와 보겠다고 사라졌지만, 아마 소용없을 것이었다.
마음 정리를 마친 체샤는 키에른이 찾아올 날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었다.
바실리안 백작가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가 저택 앞에 멈췄다.
체샤를 안고 창밖을 내다보던 하일론이 낮게 중얼거렸다.
“끈질기군.”
“…….”
일주일 후에 만나기로 약속해 놓곤, 키에른에게 어디로 오라는 말도 안 해 줬던 것이다.
안 알려 준 놈도 기가 막히지만, 알아서 찾아온 놈도 만만치 않았다.
체샤는 속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잠깐 방에 있거라.”
수도의 온갖 가게에서 쓸어 온 인형, 장난감, 동화책, 기타 아기용품 등으로 가득한 방에 체샤를 내려 두곤, 하일론은 불청객을 맞이하러 내려갔다.
‘내가 빠질 순 없지!’
오늘 둘이서 요정 실험에 관한 정보를 나눌 테니, 무조건 엿들어야 했다.
체샤는 비장한 표정으로 이마에 나비를 찰싹 붙였다.
모습을 감춘 체샤는 살금살금 응접실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기척을 숨기고 이동하느라 조금 늦었는지, 키에른은 이미 하일론에게 정보 일부를 넘긴 상태였다.
소파에 앉은 하일론이 무표정하게 종이를 한 장씩 넘겨 보고 있었다.
흘긋 쳐다보니 체샤가 검은 숲에서 보았던 내용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키에른은 우아하게 홍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그새 조금 야윈 듯, 턱선이 전보다 날카로웠다.
얼마간 종이를 읽어 가던 하일론이 시선을 들어올려 키에른을 보았다.
“이 모든 정보가 진실이라 하더라도.”
하일론은 이단을 심문하듯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작이 요정 실험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는 듯한데.”
키에른은 처음부터 묵직하게 때려 박았다.
“제 부인이 요정입니다.”
“…!”
이건 천하의 하일론도 놀랄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그에게 일어나는 동요를 놓치지 않고, 키에른이 말을 이어 갔다.
“그녀는 처음에 자신이 요정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기억을 잃고 검은 숲에 버려져 있었으니까요. 저도 당연히 몰랐고요.”
요정의 육체는 인간과 흡사하다.
힘을 사용하여 특수성을 드러내기 전까진 인간과 요정을 구분할 방법은 없었다.
굳이 구분되는 특징이라고 꼽자면, 아름다운 외모 정도이리라.
그러니 기억을 잃은 요정도,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한 키에른도 진실을 몰랐던 것이다.
“허면 요정이라는 사실은 어찌 알게 되었습니까.”
하일론의 질문에 키에른이 싱긋 웃었다.
“부인은 제 눈앞에서 소멸했습니다.”
“…….”
그는 어떤 슬픔도 없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죽기 직전에 요정의 힘을 사용해 환역을 보여 주더군요. 그리고 소멸하는 걸 지켜보았는데.”
키에른이 미소 지었다.
그의 입매가 매끄러운 곡선을 그렸다.
“그 모습이 평범한 인간의 죽음과는 다르니….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평온한 어조 아래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광기가 깔려 있었다.
순간 하일론조차도 침묵할 만큼 선뜩한 광기였다.
얌전히 구석에 박혀서 엿듣던 체샤는 헛웃음을 삼켰다.
‘거짓말.’
교묘하게 진실과 거짓을 뒤섞은 말이었다.
요정이 환역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소모된다.
죽기 직전의 요정이 환역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했다.
여왕 정도 되는 힘을 가지지 않은 이상에야 말이다.
일전에 카르하가 했던 이야기로 미뤄 짐작하건대.
아마 백작 부인은 환역을 만들어 키에른의 눈을 속이고, 죽기 직전에 도망쳤을 것이다.
그리고 홀로 조용한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왜 도망친 거지? 죽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건가.’
체샤가 추측해보는 사이,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저는 제 부인을 검은 숲에 내버린 자들을 찾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단 심문관께선 신성 제국의 불의를 눈감을 분이 아니지요. 서로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으니까.”
죽은 자를 되살리려 한다는 말은 혀 밑에 살짝 감추고, 키에른은 샐쭉 웃었다.
“함께 손을 잡자, 이 말입니다.”
하일론은 들고 있던 종이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흑마법으로 새긴 글자가 신성력으로 정화되며 사라졌다.
“제가 흑마법사와 손을 잡아서 이득 볼 일이 무엇 있습니까.”
백지를 키에른에게 돌려주며, 하일론은 지그시 그와 눈을 마주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백작을 이단 심문실로 끌고 가면, 자연히 모든 정보를 얻게 될 텐데.”
하일론의 말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괜히 간 보지 말고, 가진 패가 있으면 지금 다 까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키에른은 하일론이 요구하는 바를 넘치도록 충족해 주었다.
“너무하십니다.”
짐짓 서운하단 듯이 눈썹 사이를 모으며, 키에른이 너스레를 떨었다.
“일전에 제 영역에 들어왔을 때, 제가 고이 보내 드리지 않았습니까.”
“…….”
하일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키에른은 눈웃음을 지으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거만한 태도는 그에게 맞춤옷처럼 잘 어울렸다.
“고귀하신 이단 심문관께서 뒷세계에 침입한 일을…….”
키에른이 붉은 눈을 요사하게 빛내며 말했다.
“그곳의 주인으로서 묻어 주었지요.”
“…하.”
하일론이 헛웃음을 흘렸다.
바실리안 백작이 뒷세계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모양이었다.
한 대 얻어맞았다는 반응에 키에른은 기분 좋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림자가 치솟으며 빈 종이를 꿀꺽 집어삼켰다.
이단 심문관의 눈앞에서 흑마법을 써 댄 키에른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이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 보실 생각이 드십니까?”
***
키에른과 하일론은 일시적인 동맹을 맺게 되었다.
상극 중의 상극인 존재들이 맺은, 지극히 불안정한 동맹이었다.
하지만 두 남자가 한 배를 타게 된 덕분에 체샤는 편해졌다.
특히 하일론의 도움을 받으면, 신성 제국 내부에서 움직일 수 있는 폭이 훨씬 커질 테니 더욱 유리했다.
둘의 대화가 끝나기 전에 다시 방으로 되돌아온 체샤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죽은 백작 부인…….
키에른은 체샤에게서 종종 그녀를 보았다.
‘왜 하필이면 내가 죽은 백작 부인을 닮았을까.’
그녀가 체샤의 엄마일 가능성은 없었다.
리체시아는 백작 부인과 키에른이 만나기도 전에 태어났다.
시간대가 완전히 맞지 않았다.
‘그리고 백작 부인은 아마도 미치기 전에 죽었겠지.’
그녀의 죽음은 고결했으리라.
체샤의 엄마와는 다르게 말이다.
‘내 아버지도 키에른 같은 사람일 리가 없고.’
체샤는 자신이 원치 않은 관계에서 생겨났다고 추측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