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70)
아기 요정은 악당-70화(70/200)
실험으로 인해 미쳐 가던 엄마가 기어코 정신을 놓을 만큼 끔찍한 일을 겪고, 체샤를 가진 채 실험실을 탈출했다고 말이다.
미친 요정의 최후는 끔찍했다.
체샤가 들었던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전부 구역질 나는 것들뿐이었다.
미쳐 버린 요정의 힘은 자연을 역행했다.
그녀의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이 생명력을 잃었다.
꽃은 시들고, 풀은 메마르고, 땅은 검게 썩었다.
깨끗한 호수는 악취가 진동하는 구정물로 변하고, 동물들은 흉포해져 인간을 공격했다.
미친 요정을 붙잡으려 달려든 노예 사냥꾼들은 전부 그녀 발밑에 깔린 시체가 되었다.
엄마는 계속해서 어딘가로 향하며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체샤가 유일하게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자장가였다.
“…….”
체샤는 바닥에 찰파닥 주저앉았다.
왠지 모르게 힘이 빠져서, 그냥 앉아 있고 싶었다.
가만히 앉아서 숨만 들이마시고 내뱉던 때였다.
가까이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체샤는 얼른 바닥에서 일어나 도도도 안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방금까지 독서에 빠져 있던 것처럼, 교양 있는 아기의 모습을 연출했다.
소파에 앉아서 동화책을 들고 적당히 심각한 표정을 잡았을 즈음.
똑똑, 노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느리게 열린 문 너머로 훤칠한 장신의 두 남자가 보였다.
하일론과 키에른이었다.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키에른과 달리, 하일론은 망설임 없이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보란 듯이 체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놀고 있었나?”
“네…….”
체샤는 거꾸로 들었던 동화책을 슬쩍 덮어서 내려놓으며 살며시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바실리안 백작가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백작저 터뜨리고 신전도 무너뜨리고 난리 법석을 부려 놓곤, 이제 와서 덥석 돌아가긴 조금 그랬다.
심각한 고뇌와 갈등을 겪었으나, 끝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체샤의 계획이었다.
2살 아기가 할 법한 고뇌와 갈등이어야 하니, 너무 깊지 않고 단순하게끔 생각해 뒀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체샤가 요모조모 준비해 뒀던 여러 대사들은.
키에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어쩐지 쏙 들어가 버렸다.
“…체샤.”
여전히 문 앞에 선 키에른은 미소 지었다.
긴장한 티를 감추려는 미소였다.
“잘 지냈어요?”
종전까지 교묘한 언행으로 하일론을 밀어붙이던 독사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잘게 흔들리는 붉은 눈동자에는 초조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의외였다.
하일론에게 그러했듯이, 다소 뻔뻔스러우면서도 약간 불쌍한 척하며 체샤를 꾀어낼 줄 알았는데…….
키에른은 가면 아래의 얼굴을 내보이고 있었다.
예상 밖의 태도에 놀라서 대답을 하지 못하니, 키에른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금세 다시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웃는 얼굴을 하려 애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아빠가 보고 싶었을까?”
억지로 웃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키에른은 횡설수설 이상한 말을 해 댔다.
“아, 보고 싶지 않았으면, 그러면 어떡하지…….”
뱀의 혀를 잃어버린 키에른을 보며 하일론도 조금 당황한 듯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입에 칼날 물고 싸워 대던 이가 맞는지, 믿기지 않아 하는 기색이었다.
보다 못한 체샤는 결국 준비해 둔 대사를 전부 집어넣고 키에른을 달랬다.
“보고 시포쏘요.”
“…정말?”
키에른은 머뭇머뭇 한 발짝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거기서 더 움직이질 못했다.
그가 여전히 음울함이 뚝뚝 흘러내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억지로 거짓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체샤.”
체샤는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 키에른에게 다가가선, 그에게 양손을 뻗었다.
“…….”
키에른은 약간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체샤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한참을 주저한 끝에 가만히 체샤를 안아 들었다.
잘못 만지면 부서지기라도 한다는 듯,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온기가 맞닿는 순간, 키에른이 살며시 숨을 내쉬었다.
체샤는 살짝 미안해졌다.
그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단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전까지는 어째 아슬아슬하지만 잘 버티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 때문에 뭔가 좀 더 망가진 느낌이었다.
그 탓에 체샤한테 약간 집착하는 경향이 생긴 것도 같고 말이다.
‘같이 있는 동안에는 잘 돌봐 줘야겠다.’
바실리안 백작가에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에는 온갖 핑계와 이유들이 쌓여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을 떠나서, 어쨌든 체샤 또한…….
바실리안가의 남자들이 아주 조금 그립긴 했다.
많이는 말고, 진짜 조금 말이다.
떨어져 있는 일주일 동안, 보이지 않는 가시처럼 그들이 자꾸 거슬렸다.
“아빠.”
체샤의 호칭에 키에른이 숨을 멈췄다.
“쩨샤…. 바실리안 해두 되까요?”
“제발 해 줘.”
숨도 쉬지 않고 곧바로 대답한 그가 재차 속삭였다.
“바실리안 해 주세요, 응?”
“아라쏘요!”
체샤의 대답을 들은 키에른이 무너지듯 얼굴을 기대어 왔다.
그는 잠시 체샤에게 얼굴을 묻고 있다가, 나직이 간청했다.
“체샤는… 이제 떠나지 마.”
그의 말에서 오래된 상처가 느껴졌다.
흉터조차 되지 못하고, 여전히 건드릴 때마다 피를 흘리는 상처였다.
그가 체샤에게 얼굴을 기대 왔다.
“아빠가 부탁할게요.”
“…….”
제가 너무 무겁게 굴었다는 사실을 눈치 빠르게 인지한 키에른이 방긋 웃었다.
그는 얼른 무거운 분위기를 걷어 내며, 장난스럽게 칭얼거렸다.
“체샤 없으면 아빠가 잠도 못 자고, 식사도 못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줄줄 늘어놓으며, 체샤의 뺨에 애교스럽게 쪽쪽 뽀뽀해 댔다.
체샤는 징징거리는 키에른을 의젓하게 달래 주었다.
이래서야 누가 아기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제 집에 갈까?”
키에른이 생긋생긋 웃으며 체샤를 안고 떠나려던 때였다.
차르륵, 뻗어져 나온 새하얀 사슬이 키에른의 허리를 휘감았다.
“누구 마음대로 데려가겠다는 겁니까.”
가만히 지켜보던 하일론이 단죄의 사슬까지 꺼내서 키에른을 붙잡은 것이다.
키에른은 눈매를 찡그리며 신경질적으로 받아쳤다.
“아이의 뜻에 맡기겠다 하신 건 그쪽입니다.”
“그건 백작이 흑마법사임을 몰랐을 때 이야기고.”
하일론은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꿨다.
“아이 정서와 교육에 좋지 않을 게 뻔한데, 보내 줄 수 없습니다.”
“…하아.”
키에른이 체샤를 안지 않은 손으로 성마르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다 불쑥 체샤에게 속삭였다.
“쩨샤. 기사님 이렇게 질척거리면 꼴 보기 싫다고 말해 버려요.”
물론 하일론에게도 다 들리는 속삭임이었다.
하일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택을 부숴 먹기 전에, 체샤는 재빠르게 중재에 나섰다.
“쩌는 집에 가고 시포요. 하디만…….”
하일론이 순순히 놔주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하여 이미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해 뒀다.
“기사님두 보고 시플 고애요.”
이번에는 키에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가느스름한 눈을 하고서 쳐다보는 두 남자 사이에 끼인 체샤는 당당히 선언했다.
“그로니까 집에 가더라두, 기사님 보러 올래요!”
그리고 배시시 웃으며 하일론에게 말했다.
“기사님두 쩨샤 보러 놀러 오새요.”
“…….”
하일론이 잠시 시선을 피했다.
중재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여기서 싫다고 하면 체샤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 같아서였다.
키에른도 마뜩잖은 표정이었으나, 나름대로 체샤의 중재를 받아들였다.
“내 딸도 원하는 일이니…. 가끔 보러 오십시오. 와서 애가 타락했는지, 아니면 멀쩡한지 확인하면 될 거 아닙니까.”
‘가끔’을 무척 강조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일론이 가만히 체샤를 바라보았다.
단죄의 사슬을 거둬들인 그가 천천히 다가와 체샤의 손을 감싸 쥐었다.
마치 기사의 맹세라도 바치듯, 진중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주 보러 가겠다.”
그리고 체샤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키에른이 진짜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확 그림자를 끌어올렸다.
검은 그림자에 완전히 시야가 뒤덮이기 전.
체샤는 키에른 몰래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하일론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체샤는 이단 심문관의 저택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