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71)
아기 요정은 악당-71화(71/200)
체샤를 안은 키에른은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처럼 당당하게 귀환했다.
“아기!”
호텔에서 초조히 기다리던 카르하는 그가 체샤와 함께 돌아오자, 급하게 일어나다가 넘어질 뻔했다.
쪼르르 달려온 카르하는 앞에 멈춰 서서 큼큼 헛기침하더니, 제법 점잖게 말했다.
“돌아와 줘서 고마워. 앞으로 더 잘해 줄게.”
미리 준비해서 연습한 환영사인 듯했다.
쑥스러워하며 인사하는 소년은 귀여웠으나…….
“…?”
체샤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카르하의 차림새를 살펴보았다.
분명 호텔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어째 약간… 무장한 느낌이었다.
체샤의 시선에 카르하가 얼른 걸치고 있던 경갑옷을 벗어 던졌다.
“이거 그냥 심심해서 입고 있던 거야.”
“체샤가 오해하겠구나, 카르하.”
키에른은 허리춤의 검도 풀라고 눈짓하며 부드럽게 타일렀다.
“거절하면 강제로 데려오기라고 하려던 것처럼 오해하면 어쩌니. 다음부터 주의하렴.”
“예에.”
“…….”
‘오해가 아니라 사실인 거 같은데.’
오늘 체샤가 거절했으면 수도 저택이 하나 더 부서졌을지도 몰랐다.
진실을 깨달은 체샤는 속으로 허허 웃었다.
그런데 벨제온과 이슈엘이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피니, 키에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벨제온은 벌을 받는 중이고…. 이슈엘은 공작 각하를 뵈러 갔단다. 이브로이엘 공작에게 수업을 듣기로 했거든.”
첫 번째 말이 충격적이어서 두 번째 말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베쩨온 오라버니…. 벌바다요……?”
저지른 짓이 있으니 크게 혼나리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벌까지 받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체샤가 너무 놀라서 얼굴마저 하얗게 질리니, 키에른이 손을 내저었다.
“별거 아냐. 그냥 뒷세계에서 일 조금 하고 있어요. 평소에 하던 건데, 쌍둥이 몫까지 일하는 정도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래. 아기 너는 모르겠지만, 우리 벨제온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카르하가 부루퉁하게 삐죽댔다.
“그리고 벨제온이랑 이슈엘, 둘 다 최근에 밖에서 살았지만…. 오늘 밤에는 돌아와.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볼 수 있어.”
말하는 분위기가 엄숙하길래 한동안 못 볼 줄 알았더니.
당장 오늘 밤에 본다 하니 의아했다.
궁금해하는 체샤를 눈치챈 키에른이 낮게 웃었다.
“왜냐하면…….”
그가 완전히 잊고 있었던 사실을 끄집어냈다.
“내일 연회에 참석해야 하니까요.”
***
이브로이엘 공작가에서 주최한 연회에 참석하여, 바실리안의 첫 사교계 데뷔를 하기로 결정했었으나.
그간 워낙 사건 사고가 많았던지라, 정말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가출할 때 이미 연회까지 별로 시간이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고 며칠을 날렸으니, 돌아오자마자 연회에 가게 된 것이다.
다행히 부지런한 하타는 그새 모자와 머리 장신구를 다 만들어서 보내 두었다.
미야도 약속한 대로, 내일 아침 일찍이 완성된 의상을 들고 찾아올 예정이라 했다.
밤에는 녹초가 되어 돌아온 벨제온과 이슈엘을 만날 수 있었다.
둘 다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잔뜩 지친 채였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시체처럼 귀가했다.
하지만 다 죽어 가던 소년들은 체샤가 있는 걸 확인하곤 단박에 얼굴이 환해졌다.
“막내.”
벨제온이 간지러운 호칭으로 부르며 저를 꼭 안았을 때는, 체샤도 조금 부끄러우면서 기뻤다.
이슈엘은 진심으로 활짝 웃으며 체샤를 맞이해 주었다.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 동생.”
당부도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앞으론 가출하지 말자. 알았지?”
체샤는 이슈엘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연회 날 아침.
꼭두새벽부터 미야가 호텔로 쳐들어왔다.
“저 왔습니다냥!”
미야의 말투에 체샤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고양이 귀는 떼고 왔다.
하긴, 고양이 귀까지 붙이고 왔으면 호텔 로비에서 직원들에게 붙잡혀 들어오지 못했을 터였다.
어쩌면 수도 치안대에 끌려갔을지도…….
“어서 와, 사장.”
이슈엘이 부드러운 얼굴로 미야를 맞이했다.
눈빛이 또랑또랑한 이슈엘 뒤로, 그의 닦달을 못 이기고 아침 일찍부터 끌려 나온 바실리안가의 사람들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카르하는 소파 구석에서 아예 엎어져 자고 있었고, 벨제온은 팔짱을 낀 채로 앉아서 조는 중이었다.
키에른 또한 체샤를 무릎에 앉혀 두고 연신 하품을 했다.
이슈엘을 제외하고 다들 비실거리는 가운데, 바리바리 의상을 싸 들고 온 미야는 자신감 넘치게 외쳤다.
“최고의 의상이 완성되었습니다냥!”
그녀의 외침에 이슈엘은 짝짝짝 박수를 쳐주었다.
의상을 확인한 후에는 사람이 더욱 너그러워졌다.
미야가 고양이 귀에 꼬리까지 달고 왔어도 방싯방싯 웃어 줬을 분위기였다.
“그래, 이거야…. 내가 원한 게 이거라고……!”
이슈엘은 광기마저 느껴지는 눈으로 의상을 확인해 댔다.
그 옆에서 미야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자신의 역작을 설명해 댔다.
이슈엘하고 둘이서 레이스가 어쩌구, 프릴이 저쩌구, 하며 알아듣기도 어려운 대화를 빠르게 주고받았다.
그 광경을 구경하던 키에른이 애매한 어조로 한 마디 했다.
“대단하군.”
무엇이 대단한지 모호한 말이었다.
미야의 독특한 말투와 행동도.
그리고 그녀가 수선해 온 의상들도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이슈엘과 미야가 하나씩 꺼내서 마네킹에 입혀 보는 의상들은 처음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같은 의상이라고 알려 주지 않으면 몰라볼 정도로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전의 어딘가 흔한 분위기가 싹 사라지고,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으로 재탄생했다.
다른 무엇보다 바실리안가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어울릴 것 같았다.
이슈엘은 벌써 제 의상을 입어 보러 사라졌다.
미야가 키에른의 옷을 들고 비척비척 다가왔다.
키에른이 스윽 눈을 들어올렸다.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달달 떨면서 물었다.
“이, 이, 입어 봐 주시겠사와요……?”
키에른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미야의 고양이 말투가 단박에 고쳐졌다.
긴장한 탓인지 어미가 이상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맹수 만난 듯이 떠는 미야를 보고, 키에른이 설핏 웃으며 옷을 받아 들었다.
“아빠 옷 입고 올게요.”
체샤의 이마에 쪽 하고 뽀뽀한 키에른이 다른 방으로 사라졌다.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던 체샤는 눈을 깜빡였다.
어느새 미야가 제 앞에 고개를 들이민 것이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
무슨 술 취한 아저씨 같은 대사를 하며 흐흐흣, 후후훗, 히히힛 웃는 미야는 무서웠다.
체샤는 본능적인 거부감에 몸을 슬며시 뒤로 물렸다.
그럴수록 미야는 불타올랐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서 괴상한 어조로 말했다.
“옷 갈아입으실까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거절하지 마세요……?”
그녀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체샤를 덥석 집어 들었다.
“끄에!”
그리곤 비명 지르는 체샤를 달랑 들고 호다닥 옆방으로 뛰어 들어가선 본격적으로 인형 놀이를 시작했다.
“아웅! 허엉! 흐어엉, 귀여워어억!”
온갖 방정을 다 떨면서 동동거리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넋이 빠진 체샤가 멍하니 있는 사이, 어느새 드레스로 갈아입혀져 있었다.
하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레이스 보닛의 리본을 묶으며, 미야는 혼잣말을 연신 중얼거렸다.
“이건 미쳤다. 나 미야, 일생일대의 역작을 탄생시켰다. 연회를 찢어 놓으셨다.”
“…….”
고양이 수인 흉내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더 이상해질 구석이 있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체샤의 옷 입히기를 끝낸 미야는 손으로 가슴께를 부여잡으며 크윽, 소리를 냈다.
그녀가 체샤를 조심스레 애지중지 들고 방 밖으로 나갔다.
이미 옷을 다 갈아입고 기다리던 바실리안가의 남자들이 일제히 체샤를 쳐다보았다.
미야가 몹시 우쭐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떠실까요, 다들? 의상 마음에 드시죠?”
하지만 붉은 눈동자들은 죄다 체샤를 보느라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키에른이 다소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