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74)
아기 요정은 악당-74화(74/200)
공작의 제안에 체샤는 눈을 깜빡였다.
체샤도 이런 걸 만들 줄 알았다.
만들 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요정의 힘을 쓸 때마다 반짝반짝 난리도 아니었다.
뭐, 공작이야 체샤가 요정인 걸 모르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 나한테 마법을 가르치고 싶은 건가?’
체샤는 공작의 추적 마법을 깨트린 적이 있었다.
별말이 없길래 적당히 넘어간 줄 알았더니.
‘마법 재능이 있는 걸로 오해했구나.’
어쩐지 처음 신전에서 만났을 때부터 눈을 찡긋대고 난리였다.
마법사라는 놈들은 이상하게 제자를 두고 가르치는 일을 즐겼다.
제자의 성취가 그들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도 있고, 워낙 수가 적다 보니 자신이 쌓아 올린 학문을 계승시켜 명맥을 이어 가기 위함도 있었다.
하지만 체샤가 여태 보아 온 바로는…….
그냥 마법사들 자체가 떠벌거리는 걸 좋아했다.
뭔가 직업 특성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조용한 마법사는 흑마법사뿐이었다.
‘거긴 떠벌거렸다가 흑마법 쓰는 거 걸리면 죽으니까.’
아무튼 체샤는 마법 재능이 없는 요정이었다.
이브로이엘 공작의 소망을 이뤄 주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는지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체샤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공작이 눈을 부릅떴다.
“왜……?”
반짝이는 그녀 나름의 필살기였던 모양이었다.
충격받은 공작이 구질구질하게 달라붙었다.
“아니, 이거 별론가? 잠시만 기다려 봐. 내 더 근사한 걸!”
장소도 잊고 갑자기 대형 마법진을 그리려 드는 그녀를 키에른이 제지했다.
“각하.”
“…아니, 나는 그냥…….”
마력을 거둬들인 이브로이엘 공작이 시무룩하게 체샤를 키에른에게 돌려주었다.
그녀는 못내 아쉬운 얼굴로 체샤를 보다가 말했다.
“다음에 좀 더 긴 이야기를 나눠 보자꾸나. 내가 찾아가마.”
쩝, 하고 입맛 다신 공작이 손가락으로 제 뒤편을 가리켰다.
“백작은 잠깐 시간 좀 내주게. 소개해 줄 사람이 있네.”
키에른은 옆에 서 있던 이슈엘에게 체샤를 건네주곤, 순순히 그녀를 따라갔다.
이슈엘은 능숙하게 체샤를 추슬러 안고, 그새 비뚤어진 장식을 조금 고쳐 주었다.
“제가 지닌 힘이 하찮은 잔재주에 불과함을 알게 하시고.”
체샤는 요정 여왕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유심히 보았다.
꽃을 풍성하게 엮어 만든 화관 아래, 그녀의 구불구불한 금빛 머리카락이 탐스럽게 늘어졌다.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장식한 작은 꽃과 보석이 샹들리에 불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커다란 눈망울과 분홍빛 뺨, 붉은 입술이 몹시 아름다웠다.
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꽃잎이 흩날리는 환상 마법 속에서 노래하는 그녀는 꿈의 한 장면처럼 몽환적이었다.
그러나 체샤는 아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역시 인간이 요정 여왕 역할을 하기는 조금 힘들지.’
정말 아름답지만, 요정 여왕이라 칭하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요정들의 여왕은 말 그대로 여왕이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빚어진 존재이니, 그 어떤 요정보다도 고귀하고 신비로워야 했다.
물론 체샤도 요정 여왕을 만나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몸에 새겨진 본능처럼, 요정 여왕이면 이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런 거 말고 다시 어른으로 자라나는 법이나 생각나면 좋을 텐데.’
체샤가 복잡한 마음을 품는 동안, 노래는 어느새 끝으로 향해 갔다.
“당신의 종으로서 가장 귀한 것을 바치니.”
아찔할 정도로 높은 음에 다다른 목소리가 복잡한 기교를 부리며 아리아를 독창했다.
천상의 악기와 같은 목소리가 펼쳐 내는 노래에 몇몇 이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 냈다.
가수가 무릎을 꿇으며 자신의 머리에 얹은 화관을 벗었다.
“신성의 영광이여, 영원불멸하기를.”
그녀는 화관을 든 손을 하늘로 치켜올렸다.
눈부신 빛이 쏟아지며, 그녀의 화관은 성스러운 하얀 빛에 휘감겨 사라졌다.
노래가 끝났다.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손바닥이 닳도록 박수를 보내는 이들 중에선, 감동받아 눈물까지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 속에서 체샤는 혼자 분리된 기분이었다.
치미는 역겨움에 속이 울렁거렸다.
화관을 바치는 가수를 보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요정 여왕이 성왕에게 왕관을 바쳤다는 수백 년 전.
신성 제국은 그때 이미 요정들을 가지고 불사의 비밀을 찾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요정들의 여왕은 정말로 신을 찬양하여 왕관을 바쳤을까?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입장에서 쓰이는 법이었다.
진실과는 사뭇 다른 기록이 남겨지는 일 또한 충분히 가능했다.
만약 여왕이 신을 찬양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손으로 왕관을 바친 것이 아니라면…….
저도 모르게 해 버린 끔찍한 상상에 체샤는 구역감마저 느꼈다.
작게 떨리는 손으로 이슈엘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체샤?”
“속 안 조아요…….”
이슈엘이 화들짝 놀라서 카르하에게 속닥였다.
“어쩌지? 동생이 속 안 좋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봐.”
의지할 형님을 찾아봤지만, 벨제온은 다른 가문의 영식들과 낮은 목소리로 대화 중이었다.
이슈엘은 추욱 늘어진 체샤를 안고 빠르게 말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여기 있어.”
카르하는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나서려 했다.
“같이 가자.”
“넌 여기 있으라고! 괜히 덜렁대다가 옷 망가뜨리면 죽여 버릴 거야.”
“응…….”
하지만 이슈엘의 박력 넘치는 협박에 얌전히 고개만 끄덕여야 했다.
이슈엘은 체샤를 데리고 테라스로 향했다.
하지만 빈 테라스가 없었다.
몇 군데를 돌아다니던 이슈엘은 포기하고 정원으로 나섰다.
“후에에…….”
바깥 공기를 맞으니 숨통이 트였다.
체샤는 열심히 꽃향기와 풀내음을 들이마셨다.
이브로이엘 공작이 정원 가득 생화를 꽉꽉 채워 놓은지라, 꽃향기가 진동해서 금방 기분이 상쾌해졌다.
정원에는 연회장의 소란을 피해 산책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그들은 정원 한쪽에 놓인 샴페인 잔들을 하나씩 들고 홀짝이며, 연회장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음악을 감상했다.
야외 탁자에는 샴페인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술 이외에도, 과일주스나 가벼운 간식들도 같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슈엘은 탁자 근처의 장의자에 체샤를 내려 주고, 저도 나란히 앉았다.
“이제 갠차나요!”
금방 회복한 체샤는 기운차게 외쳤다.
“그래도 조금만 앉아 있다가 가자. 금방 다시 들어가면 또 어지러울 수도 있으니까.”
이슈엘은 발끝을 꼼지락거리다가 불쑥 말했다.
“다들 우리만 쳐다보는 거 봤어? 어느 의상실에서 옷을 주문했는지 몇 번이나 물어보더라니까.”
자신이 이뤄 낸 성취가 기뻐서, 이슈엘의 뺨이 발그스름히 달아올라 있었다.
“아, 연회 끝날 때까지 제발 카르하가 옷이나 장신구를 안 망가뜨려야 할 텐데.”
걔는 너무 덜렁거린다며, 평소에도 검술 훈련할 때의 반만큼만 민첩하면 좋겠다며 흉을 보았다.
카르하가 옷을 험하게 입는 편인지라, 이미 연회장 오기 전부터 단단히 경고를 해 뒀는데도 불안한 모양이었다.
“모처럼 무척 마음에 든단 말이야. 머리 장식도 예쁘고…….”
이슈엘의 백금색 머리카락은 레이스 장식을 넣은 화려한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하타가 만든 리본을 좋아 하는 걸 보니 체샤도 뿌듯했다.
이슈엘은 손가락으로 체샤의 뺨을 콕콕 찌르며 속삭였다.
“동생도 너무 예쁘고.”
둘이서 마주 보고 방긋방긋 웃던 때였다.
갑자기 훌쩍 다가오는 기척에 체샤가 놀라서 옆을 돌아보았다.
곧바로 이슈엘이 벌떡 일어나며 체샤를 막아섰다.
촥!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어어.”
달콤한 과일주스 냄새가 번졌다.
이슈엘의 옷에 붉은 얼룩이 빠르게 번져 나갔다.
빈 술잔을 든 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미안, 실수.”
하타의 모자를 쓴 소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