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75)
아기 요정은 악당-75화(75/200)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체샤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이 새끼 뭐지?’
분명히 일부러 와서 쏟았다.
연회장에 오면 시비 거는 놈들이 있으리란 사실은 충분히 예상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바실리안 백작가는 모난 돌이니.
충분히 공격받기 좋은 위치였다.
일전에 루딘 백작이 그랬듯이, 헛짓거리하는 놈이 하나 이상은 튀어나오리라 여겼다.
하지만 이건…….
이슈엘의 옷이 망가지는 건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애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체샤는 당장 도끼로 목 잘라도 시원찮을 놈을 노려보았다.
하타가 만든 모자를 쓴 소년은 벨제온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고위 귀족 가문의 영식임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소년은 이슈엘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옷 배상해 줄게. 뭐 그런 걸로 노려보냐?”
“…….”
이슈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짧게 헛웃음 치고선,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의 손에서 금빛 마력이 휘리릭 피어올랐다.
“꺄악!”
날카로운 비명이 터졌다.
과일주스 잔이 쌓여 있던 탁자가 금빛 마력에 휘감겨 허공을 날아간 탓이었다.
탁자는 정확히 소년의 머리 위에 멈췄고.
“뭐, 뭐야, 으악……!”
소년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뒤집혔다.
유리잔들이 와르르 소년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찐득한 과일주스를 흠뻑 뒤집어쓴 소년이 울음을 터뜨렸다.
“이, 이, 무례한……!”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꺽꺽거리던 소년은 시뻘겋게 주스 범벅이 된 채로 울면서 도망갔다.
이슈엘은 도망가는 소년을 내버려 두었다.
그냥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뒤돌아서서 체샤의 상태를 확인했다.
“…동생, 괜찮아?”
당연히 괜찮았다.
하지만 체샤를 막아선 이슈엘은 괜찮지 않았다.
이슈엘의 옷은 붉은색 과일주스로 얼룩덜룩해졌다.
다른 바실리안 남자들은 옷에 검은 천을 사용했는데, 하필이면 이슈엘의 옷에는 밝은색 천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얼룩이 더 눈에 띄었다.
체샤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슈엘이 살짝 주변을 살피곤 말했다.
“일단 다른 곳으로 가자.”
소란이 일어난 탓에 이쪽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이슈엘은 체샤가 자신의 젖은 옷에 닿지 않도록, 바닥에 내려 주고 나란히 걸었다.
사람이 드문 곳을 찾아내 새로운 장의자에 체샤를 앉혔다.
체샤에게 어디 주스 튄 곳이 없는지, 샅샅이 살펴본 이슈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작은 어깨가 바르르 떨렸다.
참으려고 애쓰는 듯했으나, 결국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미안…….”
이슈엘이 얼른 뒤돌아섰다.
체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참 하늘을 쳐다보던 소년이 다시 돌아선 건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 자국을 말끔하게 닦아 낸 이슈엘이 살짝 미소했다.
“너 카르하한테 데려다주고, 오라버니는 먼저 돌아가야겠다.”
이슈엘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남들 앞에선 항상 완벽한 모습만 보이고 싶어.”
손수건을 움켜쥔 그의 손가락이 가늘게 경련하고 있었다.
이슈엘은 초라하고 형편없어진 제 옷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특히 이런 모습은 절대로…….”
소년은 씁쓸하게 웃었다.
오래된 과거의 어느 날, 수풀에 숨어 볼품없는 꼴을 자각했던 때처럼.
“동생 옷이 안 망가져서 다행이란 건 진심이야. 네가 오늘 제일 예쁘길 바랐는걸.”
“가디 마요.”
체샤는 얼른 이슈엘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다 같이 첫 사교계 데뷔인데, 혼자 집에 돌아간다니.
이슈엘이 오늘을 얼마나 기대하며 정성껏 준비해 왔는지 아는 체샤로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말이었다.
“쩌랑 가치 있어요.”
“하지만 옷이 이래선…. 너 바래다주러 연회장 들어가는 것도 부끄러운걸.”
당장이라도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이슈엘을 보고 있노라니 심장이 따끔거렸다.
초조해하던 체샤의 눈에 문득 뭔가가 들어왔다.
“가만히 이써요!”
체샤는 이슈엘을 놓아주고 도도도 뛰어갔다.
“동생? 어디 가?”
이슈엘을 놔두고 체샤가 달려간 곳은 꽃으로 장식된 조각상이었다.
연회에 아낌없이 돈을 퍼부은 덕분에, 곳곳에 생화가 가득했다.
꽃으로 여기저기를 장식해 두었는데, 조각상도 마찬가지였다.
요정처럼 보이도록 꽃으로 잔뜩 둘러놓은 것이다.
체샤는 낑차 발돋움해선 조각상의 발에 놓인 꽃을 집어 들었다.
몇 송이를 모아선, 이슈엘에게 착 하고 내밀었다.
“이거로 가리면 되자나요!”
“어……?”
“더 가꼬 오개요!”
이슈엘이 꽃을 들고 얼떨떨해하는 사이, 체샤는 얼른 수풀 속으로 폴짝 뛰어들어 숨었다.
그리고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곳에 다다르자마자 힘을 끌어올렸다.
반짝이는 빛과 함께 나비와 꽃이 생겨났다.
체샤는 정성껏 꽃을 만들어 냈다.
이브로이엘 공작이 얼마나 거금을 주고 비싼 꽃을 사들였는진 모르겠지만.
그 어떤 꽃도 요정이 피워 낸 꽃에 비할 수 없었다.
싱그러운 생명력으로 가득 찬 꽃은 탐스러웠고, 또한 깜짝 놀랄 만큼 화사한 향기를 내뿜었다.
이슈엘의 옷에 어울릴 만한 꽃을 퐁퐁퐁 잔뜩 만들어 내서 한가득 품에 안았다.
“쪼아!”
이만하면 아주 흡족했다.
체샤는 꽃을 안고 귀환했다.
다시 돌아가니, 소년은 체샤가 처음 건넸던 꽃을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꽃을 가득 안은 체샤는 얼른 이슈엘에게 종종종 다가갔다.
그런데 너무 욕심 부렸는지, 꽃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체샤는 그만 돌부리에 발이 걸려 버렸다.
“아이코!”
바닥에 그대로 엎어지는 줄 알았는데, 허공에서 멈췄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금빛 선이 체샤를 붙든 것이다.
재빠르게 마력을 일으킨 이슈엘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리고 체샤의 몸을 완전히 일으켜 주며 나무랐다.
“다칠 뻔했잖아.”
혼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체샤는 바쁘게 품 안의 꽃을 내밀었다.
“선물이애요.”
한눈에 보기에도 특별한 꽃들이었다.
이슈엘은 놀란 눈을 하고서 꽃을 받아 들었다.
꽃을 만지작거리다가, 마법을 이용해 옷 위에 꽃송이를 하나씩 붙이며 얼룩을 군데군데 가렸다.
입은 옷이 일반적인 남성복과 다르게 화려한 편인지라, 생화로 장식하자 그럴듯하게 어울렸다.
아니, 오히려 붉은 얼룩과 생화, 이슈엘의 미모가 어우러지며 뭔가 예술적인 분위기마저 나는 듯했다.
체샤는 방긋 웃으며 짝짝 박수를 보냈다.
마음 같아선 멋진 명언 한마디라도 착 날려 주고 싶었지만.
현재 본인의 육체적 나이를 고려하여 간단하게 말했다.
“이제 가치 잇는 거조?”
“…….”
이슈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왜 이러지?’
체샤는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했다.
입술을 다물고 오래도록 침묵하던 이슈엘은 갑자기 불쑥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너는 진짜 이상해.”
기껏 열심히 꽃도 만들어 왔더니 돌아오는 말이 이런 거라니!
체샤는 배신감에 차서 이슈엘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슈엘의 표정이 묘했다.
“너 때문에 나도 이상해졌어. 마법까지 배우고…….”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체샤를 뚫어지게 보는 중이었다.
마치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존재를 보듯이.
바실리안 특유의 적안에 박힌 까만 동공은 잔뜩 좁아져 있었다.
중얼거리던 이슈엘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느릿하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큰일이다.”
제 마음을 완전히 인식한 소년이 미소 지었다.
갓 피어난 꽃처럼 어여쁜 미소를 지으며, 이슈엘은 선언했다.
“이제 나, 진짜로 동생 없으면 못 살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