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77)
아기 요정은 악당-77화(77/200)
키에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체샤는 잊지 않고 다른 것도 일러바쳤다.
“모자 빼서 간 거두 쩌놈이애요.”
다른 가문에게 옷을 준 게 분명하다며 이슈엘이 길길이 날뛰었던 일은 키에른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그가 체샤에게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물었다.
“죽일까?”
“안 대요.”
죽이면 좋겠지만, 바실리안의 사회적 위치가 있지 않은가.
공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면 곤란했다.
이미 루딘 백작을 보내 버린 전적도 있으니 말이다.
“적당한 거루 해 주새요.”
“흐음…….”
정말 어렵다는 듯, 키에른이 고심에 찬 신음을 흘리던 때였다.
부녀의 속닥거림을 뻔히 듣고 있던 밀턴 후작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자네 지금 뭐 하는가?”
후작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내게 잘 보이려 마련한 자리 아니었나. 지금 그딴 식으로 굴어선 안 될 텐데.”
“아, 물론 그러려고 했습니다.”
키에른이 난처하단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자식 교육 잘못한 분한테 잘 보이기는 조금 곤란해서. 없던 일로 하시죠?”
“뭣?”
밀턴 후작이 버럭 소리 질렀다.
그에 맞춰 기다렸다는 듯 그의 아들도 꽥꽥거렸다.
“저놈들이에요! 저한테 주스를 쏟은 놈들이요!”
이슈엘이 비뚠 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
“말은 똑바로 하죠. 그쪽이 먼저 쏟았는데.”
“난 실수였고! 네놈은 마법까지 썼잖아!”
“저도 실수인데요.”
악을 쓰는 소년에게 이슈엘이 키에른과 똑 닮은 어조로 빈정거리며 속을 긁었다.
“아직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력이 미숙하거든요. 종종 실수를 해서.”
“아악! 저 건방진 놈!”
후작의 아들은 목에 핏대를 시퍼렇게 세워 가며 바락바락 고함질렀다.
여태 자신에게 굽실거리던 사람들만 있었지, 이런 식으로 오만하게 대하는 경우는 없었기에 더욱 난동을 부리는 듯했다.
후작 부인이 소년을 끌어안고 달래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귀 따가운 소리를 질러 대는 소년을 지켜보던 키에른이 괴상한 말을 했다.
“우렁찬 종달새로군.”
“…네?”
“우리 아기 새가 시끄럽겠어.”
“…….”
어디서 저런 이상한 말을 배워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정신 공격을 받은 체샤는 삽시간에 피곤해진 얼굴로 종알거렸다.
“그거 하디 마새요…….”
“종달새? 아니면 아기 새?”
“둘 다요…….”
질색하는 체샤를 보며 키에른이 키득거렸다.
장난스런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밀턴 후작이 씩씩거리며 달려들었다.
“사과하게, 백작!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없던 일로 하겠네.”
“제가 무얼 사과해야 합니까? 듣자 하니 서로 실수한 일 같은데.”
“백작! 자네 아이들 말을 믿는 건가? 아직 사리 분별도 못할 어린애들을?”
“그리 따진다면, 후작님의 아들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자네의 그 아이는 고아원에서 데려온 입양아이지 않은가. 무슨 핏줄이 섞였을 줄 알고 그 애의 말을 덥석 믿는 건지…….”
몹시 어리석다는 듯, 밀턴 후작은 쯧쯧 혀를 차기까지 했다.
여태껏 장난처럼 후작의 말을 받아치던 키에른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밀턴 후작을 빤히 바라보았다.
새빨간 눈동자는 오래 마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희미한 웃음기 어린 눈에서 체샤는 눈치챘다.
키에른은 지금 자신이 쥔 밀턴 후작의 약점들 중에서, 무엇을 꺼내어 괴롭혀 줄지 고민 중이었다.
요요한 적안에 후작이 꿀꺽, 마른침을 삼킨 찰나.
다물려 있던 입술이 우아하게 열렸다.
“아드님께선…….”
키에른의 목소리가 낮게 내리깔렸다.
“밀턴 후작님과는 닮은 구석이 없군요.”
“…!”
“오히려, 으음…. 후작님의 비서인 케일러 남작과 아드님이 좀 더 닮은 듯합니다?”
순식간에 방 안이 싸늘해졌다.
밀턴 후작이 분노에 차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그따위 근거 없는 말로, 나를, 내 가문을 모욕하면……!”
그러나 키에른의 미소는 점점 더 깊어질 뿐이었다.
키에른은 재밌어 죽겠다는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글쎄요. 후작께선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툭 하고 등을 떠미는 듯한 말이었다.
밀턴 후작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반박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던 후작은 그만 참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제 부인을 바라보았다.
세 번의 결혼 끝에, 유일하게 자식을 안겨 준 어린 부인을.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려 있었다.
***
키에른은 말 몇 마디로 밀턴 후작을 끝내 버렸다.
밀턴 후작은 더 이상 바실리안 백작가에 사과를 요구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발칵 뒤집어졌기 때문이었다.
후작이 부인을 윽박지르고, 부인은 울며불며 부정하고, 아들이 간간이 소리 지르며 꽥꽥대는 난장판을 뒤로하고.
키에른은 체샤와 이슈엘을 데리고 느긋하게 방을 떠났다.
체샤를 안고 복도를 걸으며, 키에른이 차나 한잔 마시자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내일 조간신문 1면에 밀턴 후작의 스캔들이 실리면 어떨까. 수도 사람들 전부가 후작가의 진실을 알게 되면 재밌겠지.”
“네, 아버지.”
이슈엘이 방긋방긋 웃으며 답했다.
“형님이랑 의논해서 바로 준비할게요. 후작가가 두 번 다시 사교계에 고개를 들이밀지 못할 수준으로요.”
아버지와 아들의 손발이 이렇게 착착 잘 맞을 수가 없었다.
사람 하나 매장하는 일을 순조로이 처리하는 과정에 그저 감탄만 나왔다.
‘역시 이 정도는 되어야 뒷세계 마스터를 하는구나.’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귀족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게 수치스러움이었다.
밀턴 후작의 사적인 비밀을 틀어쥐고 있다가 뿌려 버리고.
그런 다음에는 밀턴 후작이 정신 승리조차 못 하도록 대문짝만하게 그의 치부를 공개해 버리는 수법이 악랄했다.
벨제온의 일처리 방식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바로 여기 있었다.
역시나 핏줄은 못 속였다.
“끝나면 카르하 챙겨서 연회도 좀 구경하고. 체샤는 내가 챙길 테니.”
“네에.”
이슈엘은 깍듯하게 인사하곤 곧바로 마법을 써서 사라졌다.
단거리이긴 하지만 이동 마법을 쓰는 게 꽤나 능숙했다.
짧은 사이에 정말 실력이 빠르게 성장한 듯했다.
복도에 둘만 남게 되자, 키에른이 체샤의 뺨을 깨무는 시늉을 했다.
“이슈엘한테 꽃은 체샤가 달아 줬어?”
“네!”
그가 뺨을 깨무는 대신 쪽 하고 뽀뽀하며 말했다.
“체샤가 바실리안이라서 다행이지. 우리는 짓밟는 생각밖에 하질 못하거든.”
오늘 같은 일이 있으면, 이슈엘을 괴롭힌 놈에게 복수는 해 줬을 터였다.
하지만 그의 기분을 달래 연회장에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진 못했을 것이라며, 체샤의 똑똑함을 칭찬했다.
그가 찬양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체샤는 제법 우쭐한 기분이 되었다.
그런 체샤를 보며 웃던 키에른이 아아, 하며 눈매를 축 늘어뜨렸다.
“갑자기 일하기 싫네…….”
그러더니 뜬금없는 파업 선언을 했다.
“체샤랑 공작저 구경이나 좀 할까.”
기껏 연회장까지 왔는데, 일 안 하고 게으름을 부리다니.
본래 같으면 그의 등을 떠밀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키에른은 마음에 흡족하게 밀턴 후작을 처리해 준 공이 있었다.
하여 체샤는 그와 같이 놀아 주기로 결심했다.
“공작가의 상징이 일각수인 건 알고 있지? 그래서 곳곳에 이렇게 일각수 문양이나 조각상이 놓여 있는데, 저기 있는 조각상은 뿔이 황금이야.”
이브로이엘 공작저를 구경시켜 주는 키에른은 저택 곳곳을 잘 알고 있었다.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양 익숙하게 굴었다.
“아 참, 보다가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요. 그냥 가져가면 되니까.”
“…….”
너무 자기 집같이 굴어서 문제지만 말이다.
체샤는 신기한 물건이 있어도 흥미를 내비치지 않도록 주의했다.
키에른이 홀랑 집어 가자고 할까 봐 걱정이었다.
얼마간 구경하고 있자니, 문득 이브로이엘 공작과 키에른은 대체 무슨 사이인지 궁금해졌다.
집 내부까지 이토록 속속들이 알 정도면, 그저 손님으로만 들락거린 관계는 아닌 듯했다.
집 나간 애 찾는다고 마법도 써 주고, 체샤를 대녀로 삼으며 입양아인 신분도 가려 주고.
오늘 밀턴 후작도 비극으로 끝나긴 했지만, 어쨌든 연줄을 대라며 공작이 자리를 마련해 줬다.
그녀가 이토록 키에른을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한 친분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아빠눈 어뜨케 다 알아요?”
무난하게 뭉뚱그려서 묻자, 키에른이 이국적인 생김새의 화병을 살피며 답했다.
“으응, 아빠가 공작 각하께 마법을 배웠어요. 공작저는 자주 왔으니까.”
“그래서 친한 고애요?”
“음…. 사제 관계라 친한 것도 있고…. 서로 한 번씩 인생에서 구원자 노릇 해줘서 친한 것도 있고. 공작 각하께서 아빠를 살려 줬거든.”
키에른이 화병에서 꽃을 하나 꺼내어 향을 맡으며 웃었다.
“흑마법사가 될 수 있도록 아빠를 도와준 게 공작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