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8)
아기 요정은 악당-8화(8/200)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미쳤나?’
그다음으로 든 생각은 그거였다.
‘아니, 물론 미친놈이긴 한데.’
그래도 이건 정말로 미친 짓이었다.
금지된 힘을 다루는 흑마법사들 사이에서도 금기시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생사는 신의 영역.
제아무리 고귀한 황족이라 하여도, 죽음은 길바닥의 거지와 똑같이 맞이해야 하니.
죽음을 건드리는 짓은 신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행위였다.
하여 간악한 흑마법사조차도 시도하지 않는 마법이었다.
심지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들었건만…….
‘대체 누굴 살리려고?’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바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죽은 백작 부인이었다.
현 바실리안 백작, 키에른이 검은 숲에서 우연하게 만난 평민 여자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는 유명했다.
사실상 말이 평민 여자일 뿐이었다.
노예인지, 아니면 뒷세계 주민인지.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신분 불명의 존재.
그럼에도 바실리안 백작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하기 위해, 직접 황제를 찾아가 말단 작위를 받아내 여자를 귀족으로 만들었을 정도였다.
힘든 노력 끝에 결혼했고, 아들을 셋이나 낳을 정도로 부부 사이도 좋았는데.
어느 날 백작 부인이 돌연히 사망해 버렸다.
그녀의 죽음을 두고 무수한 소문이 들끓었다.
넷째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출산하다 아기와 함께 죽어 버렸다.
사실 강제로 결혼한 것이고 백작에게서 도망치려다 죽은 것이다.
시체를 찾지 못해 텅 빈 관으로 장례식을 치렀다는 등.
온갖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 기승을 부렸으나,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건 없었다.
바실리안 백작가는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그저 조용히 침묵할 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원래도 대외 활동이 드물었던 백작은 부인의 죽음 이후 완전히 성에 틀어박혔다.
그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아기를 입양한답시고 튀어나온 것이다.
“난 백작이 저지르려는 역겨운 짓에 동조하고 싶지 않아.”
벨제온은 느릿하게 입술을 움직여 선언했다.
“그리고 그 짓거리에 희생될 제물을 만들고 싶지도 않고.”
“저도 아기를 제물로 바칠 생각은 없는데요, 형님.”
“하지만 지금처럼 백작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간다면, 결국에는…….”
이슈엘과 언쟁하던 벨제온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러더니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방 안의 그림자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꿈틀거리던 그림자는 살아 움직이듯 치솟았다.
그림자만큼 새까만 머리카락을 지닌 남자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날 빼놓고 재밌는 이야기하는 중?”
웃음기 어린 목소리와 함께 짙은 피비린내가 사방에 번졌다.
검붉게 얼룩진 사냥복을 입은 키에른이었다.
싱긋 웃은 그가 성큼성큼 체샤에게 다가왔다.
곧바로 체샤를 안아 들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뻗어낸 하얀 손에서 핏물이 뚝 떨어진 탓이었다.
추락한 핏방울이 카펫에 흉한 얼룩을 남겼다.
“아…. 미안.”
키에른이 멈칫 사과하는 사이, 이슈엘은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며 손수건을 던졌다.
허공에서 손수건을 낚아챈 키에른은 핏물을 닦으며 습관적으로 미소했다.
시선은 여전히 체샤에게 고정한 채였다.
“놀랐어요, 체샤? 검은 숲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왔더니.”
피 따위야 체샤도 지겹도록 보아 온 것이니 딱히 놀라진 않았다.
다만 키에른의 상태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
멀쩡한 척 말하고 있지만, 뭔가 나사 하나 빠진 느낌이었다.
묘하게 멍한 눈빛의 키에른이 체샤를 보며 웃었다.
“내 딸.”
키에른은 체샤를 덥석 붙들곤 허공으로 번쩍 들어올렸다.
“체샤.”
그리곤 분홍색 눈동자를 열렬히 들여다보며, 몇 번이나 체샤의 이름을 불렀다.
“체샤, 체샤, 체샤…….”
이슈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으나 키에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상태가 아니었다.
약간 맛이 간 듯한 그는 온 정신을 체샤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아빠가 어떻게 체샤를 제물로 쓰겠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딱 하나만 해 주면 모든 걸 다 주겠다고 했잖아요?”
하는 말이 횡설수설했다.
명료하게 원하는 바를 밝히던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체샤는 물끄러미 키에른을 보았다.
음흉한 검은 능구렁이 같던 남자가 정신 못 차리는 틈을 타서 질문을 던졌다.
“그게 몬데요?”
본래 불리한 질문은 항상 슬쩍 넘어가 버리던 키에른이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솔직했다.
그가 체샤를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아빠에게 요정 여왕의 왕관을 가져다줘.”
“…!”
체샤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꽁 하고 얼어 버린 체샤에게 키에른이 화사하게 웃었다.
“함께 신성 제국으로 가자, 체샤.”
***
망했다.
완전 폭삭 망했다.
체샤는 작은 주먹으로 쿠션을 힘껏 내려쳤다.
마음 같아서는 쾅 소리가 나길 바랐으나, 현실은 폭 하고 솜뭉치에 주먹이 파묻힐 뿐이었다.
하지만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속이 터질 거 같아서 열심히 쿠션을 때렸다.
“차라리 사람을 쭈기라고 해!”
사람 죽이라고 했으면 너끈하게 해냈을 터였다.
애지중지 길러 온 식인 꽃과 아끼는 도끼로 아주 잘근잘근 다져 줬으리라.
“긍데 흑마법사 쭈제에! 신성 쩨국은 왜!”
흑마법사면서 힐데르드 신성 제국의 성유물은 왜 탐을 내는지 모를 일이었다.
‘요정 여왕의 왕관’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으로 엮은 화관이었다.
요정들의 여왕이 신을 찬양하며 성왕에게 바쳤다는 전설이 깃든 화관으로서, 신성 제국의 성유물이었다.
그러나 이단의 존재가 만들어낸 물건인지라, 성유물로 보관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보수적인 신성 사제들은 화관을 당장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래도록 화관을 놓고 싸워 대다가, 결국 성유물에서 제외하기로 최근 결론이 내려졌다.
다만 귀한 물건이니, 무턱대고 없애기보다는 보기 좋은 방식을 택해 신성 제국에서 내보내기로 했다.
그게 바로 ‘소성인 기도회’였다.
아직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모아, 가장 신실함을 증명하는 아이에게 상으로 화관을 주겠다고 내건 것이다.
신의 이름을 드높이면서, 미래의 지도자가 될 귀한 신분의 아이들에게 미리 교리를 가르쳐 놓겠다는 속셈이었다.
굳이 아이를 대상으로 한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평범한 인간은 화관을 만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오직 다섯 살 아래의 순수한 아이.
신의 인정을 받은 성왕.
그리고 요정들만이 화관을 만질 수 있었다.
체샤도 소성인 기도회가 열린다는 소문을 들었다.
뒷세계의 주민들이 요정 여왕의 왕관이 나온다며, 체샤에게 너도나도 이야기를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를 낳아 준 엄마는 미쳐 버린 요정이니까!’
당연히 요정 여왕 같은 거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일 터였다.
그러니 고작 화관 하나 갖겠다고 신성 기사와 사제들이 득시글거리는 힐데르드에 찾아갈 이유가 없었다.
나 잡아드십쇼, 하고 제 발로 사자 주둥이에 걸어 들어가는 꼴이니 말이다.
그런데 키에른 때문에 사자 주둥이에 처박히게 생겼다.
“아기들이 모여서 하는 기도회가 있는데, 체샤가 거기서 일등을 해야 해요.”
넋이 나간 반응을 걱정으로 읽어낸 키에른은 체샤를 살살 어르고 달랬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무조건 체샤가 일등 하도록, 아빠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그는 샐샐 웃으며 체샤를 들고 빙글빙글 돌기까지 했다.
보다 못한 이슈엘이 체샤를 빼앗아 안았다.
벨제온이 강제로 키에른을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제정신으로 돌려놓겠다.”
그리고 혼자 침실에 남겨진 체샤는 쿠션을 때리는 중이었다.
한참 성질부린 끝에 후웅,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보고 나발이고 그냥 도망쳐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기도회에 참석하는 요녀라니, 너무 웃기지 않은가.
신전에서 기도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자 헛구역질이 났다.
“진짜 시러어…….”
질색하며 고개를 붕붕 내저은 체샤는 단단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무조껀 탈쭈다.”
굳게 결심하고서, 힘을 조금 끌어올려서 나비 한 마리를 만들어냈다.
“하따 불러와.”
명령을 받은 나비가 얼마간 날갯짓하다가 스르르 사라졌다.
충직한 수하는 늦어도 며칠 안에 뱀의 성을 찾아오리라.
하타가 해독제를 가져다주면, 그걸 먹고 몸을 원상태로 되돌린 다음 성을 떠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해야 하는 일은 하고 말이다.
체샤의 발치에서 꽃이 피어났다.
꽃 덤불이 자그마한 몸을 타고 올랐다.
꽃에 완전히 몸이 가려졌을 때.
체샤는 말끔히 사라졌다.
침실에 있던 체샤가 다시 나타난 곳은 음침한 뱀의 성에서도 가장 어두운 곳.
지하 감옥이었다.
뒷세계에서 구르며 깨달은 진리가 있었다.
은혜는 모른 척해도, 원한은 반드시 되갚아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른 마음으로 용서 따위를 결심하는 순간.
약자의 냄새를 맡은 놈들이 개떼처럼 몰려와 물어뜯는 게 법칙이었다.
‘납치까지 당했는데 그냥 넘어갈 순 없지.’
그런고로 체샤는 모건과 외눈 사내의 팔이라도 하나씩 뜯어 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