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81)
아기 요정은 악당-81화(81/200)
신성 제국 힐데르드와 팔렌 대제국은 서로 가까이에 위치했다.
하여 소성인 기도회에 참석하려는 이들이 현재 팔렌의 제도에 많이 들어와 있었다.
힐데르드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겸사겸사 팔렌을 관광하는 것이었다.
소성인 기도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은 수도 광장에서 어렵지 않게 외지인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소성인 기도회에 왕족과 귀족이 대거 참여하게 된 것은 비단 ‘요정 여왕의 왕관’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만한 수의 귀한 신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게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교류를 목적으로라도 참석하길 원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소성인 기도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는 일도 쉽지 않았다.
키에른은 체샤를 참석시키기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냈다고 들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백작가 기둥뿌리 하나는 뽑았다고 했다.
그래 봤자 바실리안가는 뒷세계의 주인이기도 하니, 가볍게 농담하고 넘길 수준의 금액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고로 외국의 왕족이 수도에서 노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용병을 호위로 쓰는 일도 종종 있는 일이었다.
길에서 용병과 시비가 붙는 것도 흔하진 않지만 없는 일은 아니었다.
이 모든 게 합쳐진 경우가 드물 뿐.
정말 골치 아픈 일이었다.
소성인 기도회에 참가하는 왕족이라면 권력이든 재력이든 둘 중 하나는 갖췄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같은 기도회 참가자이니, 우승을 위해 물밑에서 정치 싸움 중일 키에른도 건드리기 까다로운 상대일 터였다.
소성인 기도회의 우승에는 참가자들의 지지도 영향을 미친다고 들었으니 말이다.
체샤는 카르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오라버니…. 잘 가요…. 그동안 함께라서 쩨샤 행보케써요…….”
“야, 야! 보내지 마!”
카르하는 쇠창살에 매달려서 우는 시늉을 했다.
불쌍한 척하는 꼴을 보니 마음이 또 약해져서, 뭐라고 변명하는지 들어 보기로 했다.
“왜 그래쏘요.”
카르하도 상대가 귀한 신분인 걸 뻔히 알아보았을 터였다.
게다가 외국인이라면 옷차림이나 말씨 등에서 분명 티가 났을 테니, 알아서 눈치껏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시비를 걸려서 철창에 갇힌 이유가 궁금했다.
한심하게 생각하는 티가 느껴졌는지, 카르하가 불쌍한 고양이 같은 얼굴을 하며 체샤에게 칭얼거렸다.
“아니, 들어 봐. 나 진짜 억울하다니까? 가만히 있었는데 걔네가 들이박았어.”
“마차두 아니고 왜 드리박아요.”
“그게 아마도.”
카르하가 머뭇거리다가 슬쩍 허리춤을 내보였다.
나란하게 매달린 두 자루의 검을 보여 주며 말했다.
“내 검이 탐났나 봐.”
“…?”
“무기점에 있었거든. 손잡이 가죽 좀 교체하려고.”
카르하가 수도에 올 때마다 들르는 단골 무기점이었다.
늘 그곳에서 검 관리를 받곤 했다.
그런데 소성인 기도회에 참석하는 왕족의 형제가 카르하와 같은 시간에 무기점을 방문했던 것이다.
남자는 카운터에 올려놓은 카르하의 검을 보고 감탄하더니, 제게 검을 팔라고 했다.
당연히 카르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랬더니 왕족을 호위하던 용병들이 갑자기 냅다 시비를 걸어 댔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뭐어…. 이렇게 됐지.”
카르하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그가 에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체샤는 카르하와 같이 히유 하고 한숨 쉬었다.
“어디 왕족이애요?”
그래도 적당히 소왕국이면 키에른이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물었던 체샤는 돌아온 대답에 쩍 하고 돌이 되었다.
“스카야라고…. 거기 왕태자인데. 소성인 기도회에 참석하는 공주랑 같이 왔나 봐.”
해양 왕국 스카야.
본래 해적이었던 놈들이 섬을 차지하고 나라를 세워, 현재에 이르러선 당당하게 잘나가는 해양 국가로 인정받는 근본 없는 놈들의 왕국.
그리고 그곳의 왕태자는…….
“요녀님! 제발 저랑 결혼해 주십시오!”
요녀 리체시아한테 만날천날 결혼하자고 졸라대던 청혼 중독자였다.
“…….”
체샤의 얼굴이 몹시 심각해졌다.
이거, 지금이라도 그냥 다른 바실리안 애들한테 알아서 하라고 하고.
‘빠르게 발을 빼야 할 것 같은데?’
불길한 예감에 스멀스멀 젖어 가던 때였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치안대원들과 테오가 뭐라고 소리치는 게 들렸다.
커다란 인기척이 빠르게 가까워지더니,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어둑하던 감옥 구역에 바깥의 빛이 훤히 쏟아졌다.
“여기 있다고?”
다소 유쾌함이 깃든 목소리에는 짓궂은 악의가 언뜻 내비쳤다.
체샤는 아오, 하고 속으로 욕을 삼켰다.
그리고 얼른 양손으로 모자를 푹 눌러썼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안녕, 소년아. 나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하여 직접 왔…, 응?”
모자 쓰고 쇠창살에 납작하게 붙어 있던 체샤는 움찔했다.
“…아가?”
치안소 감옥과 아기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긴 했다.
체샤는 꿋꿋하게 모른 척 뒤돌지 않고 버텼다.
그 사이 카르하가 다리를 펴고 일어나며 비딱하게 대꾸했다.
“제 이름은 카르하 바실리안인데요. 소년이 아니라.”
“아하하, 그래. 반성은 좀 했나?”
“…….”
카르하는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꾹 참고 말했다.
“…예.”
부루퉁한 대답에 남자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짐짓 너그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끼는 검인 줄은 몰랐어. 그래도 내게 넘기는 것이 어떠냐? 값은 잘 치러 줄 테니.”
“어머니 유품인데요.”
말 한마디로 남자를 닥치게 만든 카르하는 과연 바실리안의 핏줄이었다.
남자는 조금 당황하는 듯하더니,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여기 아가는 동생인가. 오라버니를 만나러 치안소까지 오다니 대단한걸.”
체샤에게 불행이 닥쳐오고 있었다.
“아가야, 안녕?”
남자가 체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샥.
체샤는 쇠창살에 붙은 채 민첩하게 그의 손을 피하고.
“응?”
샤샥.
또 피하고.
“으응?”
샤샤샥.
“…으으응?”
계속 피했다!
지켜보던 카르하가 눈을 깜빡였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싶을 터였다.
문득 카르하와 뱀의 성 지하 감옥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하지만 체샤는 그때보다 더 필사적이었다.
열심히 피해 다니니 남자는 포기하는 듯했다.
그가 물러나기에, 휴우, 안도하던 찰나.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손이 양쪽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체샤의 몸은 삽시간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모자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고, 귓가에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잡았다.”
덜컹!
카르하가 주먹으로 쇠창살을 내려쳤다.
“지금 뭔 짓거리세요? 아기 건드리지 마!”
하지만 남자는 카르하의 외침을 무시했다.
그가 싱글거리며 체샤의 몸을 돌려 안았다.
“아가 얼굴이나 한번 볼까…….”
그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체샤는 자포자기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남보랏빛 머리카락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잘 그을린 피부와 탄탄한 근육질의 체격.
금방이라도 먹잇감을 사냥해 올 듯한, 고양잇과 맹수와 닮은 남자.
스카야의 왕태자, 이타르 스카야.
“…미친.”
그가 상스러운 말을 툭 뱉었다.
왕족의 입에서 나온다고는 믿기지 않는 단어를 뱉은 이타르가 재차 탄성을 내질렀다.
“미친, 요녀님……!”
이럴 줄 알았다.
체샤는 그에게 달랑달랑 들린 채 추욱 늘어졌다.
요녀에 미쳐 있는 이타르였다.
그의 눈에 리체시아 축소판인 체샤가 걸리면 어찌 되겠는가.
분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지려 달려들 터였다.
실제로 체샤를 부둥켜안고 감격하는 이타르는 이미 맛이 간 눈빛이었다.
“소년아. 검은 필요 없다. 어머니의 유품을 빼앗으려 해서 미안하다.”
그리고 기어코 체샤가 예상한 대로 행동해 버렸다.
“대신 아가를 내 왕국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
감옥 안이 조용해졌다.
이타르를 만류하러 막 들어왔던 테오가 입을 떡 벌렸다.
카르하도 잠깐 멍하니 이타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한숨을 푹 쉬며 테오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치안대장.”
“…예?”
“저 그냥 왕족 모독죄 말고.”
스르릉, 두 자루의 검이 뽑혀 나왔다.
번뜩이는 검날과 함께, 카르하가 비죽 웃었다.
“왕족 살해죄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