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82)
아기 요정은 악당-82화(82/200)
검을 뽑은 카르하를 보며 이타르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싸우자는 건가?”
카르하는 말없이 검을 휘둘렀다.
눈으로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궤적을 그린 끝에.
서걱, 쇠창살이 부드러운 파운드케이크처럼 썰렸다.
알아서 문을 만든 카르하가 감옥 밖으로 나오는 사이.
상식 밖으로 전개되는 상황에 멍하니 있던 테오가 서둘러 뛰어와 소리쳤다.
“아무리 왕족이라 하더라도 제국민을 납치해 가실 순 없습니다!”
“납치라니!”
이타르는 몹시 억울해했다.
“나는 아가를 호강시켜 줄 거야. 생각해 봐. 일개 귀족 가문의 영애로 사는 게 좋을지, 왕실의 공주로 사는 게 좋을지.”
카르하가 짧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붉은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금방이라도 누구 한 명 죽어 나갈 상황 속에서.
체샤는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쩌도 공주 하고 시포요!”
“음?”
“뭐어?”
“예?”
각기 다른 반응을 쏟아 내는 남자들 앞에서 체샤는 또박또박 말했다.
“공주님 시켜 주새요.”
카르하가 치켜들었던 검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당황한 소년의 얼굴을 흘긋 확인한 체샤는 다시 이타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타르는 기분 좋게 웃었다.
“좋아, 공주님으로 귀하게 모셔 주마. 아가야, 너도 스카야 왕국이 마음에 들 거다. 바다는 본 적이 있으려나.”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상황이 즐거운 듯했다.
기뻐하는 이타르의 경계가 풀어진 틈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공주 할 테니까, 집 보내 주새요. 아부디한테 인사도 해야 하구. 짐도 싸야 대요.”
“물론 그래야지. 아가의 집안에는 내가 넉넉한 보답을 치를 거야.”
이타르는 싱긋 웃었다.
체샤도 그를 따라 방긋 웃어 보였다.
이타르는 이미 체샤를 제 것으로 삼은 듯이 굴었다.
친밀하게 뺨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말했다.
“아가야, 집까지 바래다줄게. 마차를 준비시켜 둘 테니 천천히 나와도 좋다.”
오라버니랑 함께 나오라며, 이타르는 체샤를 내려 주었다.
그리고 아랫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 먼저 나갔다.
테오와 카르하, 체샤만이 감옥에 남았다.
카르하가 충격받은 목소리로 물었다.
“공주… 하고 싶었어……?”
체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남자에게 파닥파닥 손짓했다.
테오와 카르하가 얼결에 허리를 숙였다.
체샤는 작게 속삭였다.
“우리 지금 또망가요……!”
이타르 몰래 튀자는 말이었다.
공주는 무슨.
당연히 스카야 왕국에 따라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한 이유는 이타르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꺾이지 않으면 부러뜨리는 자였다.
만약 카르하가 달려들었다면, 이곳에서 피를 보고 체샤를 강제로 끌고 갔을 것이다.
테오도, 치안대원들도, 그리고 카르하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게 되었으리라.
그래서 이렇게 거짓말하고 도망가는 쪽을 택한 것이다.
뒷수습할 방법도 대충은 생각해 놨다.
체샤의 ‘또망가요’ 발언에 카르하는 큰 감동을 받았다.
“아기가 우리 버리는 줄 알았어. 공주 하고 싶어서…….”
짧은 소감을 중얼거린 후, 카르하는 재빠르게 체샤를 안아 들었다.
“치안대장. 여기 뒷문 있죠?”
“어, 예. 있습니다. 치안소 기밀 사항이긴 한데,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테오도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벽을 손으로 짚었다.
벽돌 몇 개를 툭툭 안으로 밀자, 나무문이 스윽 나타났다.
“환상 마법을 걸어 둔 겁니다.”
테오가 문을 밀며 설명했다.
‘곰돌이는 네메아 후작가 도련님 맞구나.’
일개 치안소에 비싼 마법을 걸어 둘 이유가 없었다.
혹시나 만일의 사태가 생기면, 귀한 도련님더러 잽싸게 도망치라고 이런 마법을 걸어 둔 것이리라.
덕분에 알차게 잘 써먹게 되었다.
치안소 뒤쪽 골목으로 나온 세 사람은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분노에 찬 고함이 들려왔다.
소심한 테오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가 카르하한테 한 소리를 들었다.
“한눈팔지 말고 뛰어요!”
“죄송합니다…….”
테오와 카르하는 나란히 달리며 체샤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합니까? 스카야 왕태자가 추적을 시작할 텐데, 계속 도망 다닐 수는 없습니다.”
“그러게. 아기, 우리 어디 가냐.”
호텔로 돌아가 봤자, 사태를 해결해 줄 키에른이 없을 테니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바실리안을 찾아 제일 먼저 뒤져 볼 장소이기도 했다.
네메아 후작가는… 아직 테오의 가문 내 위치를 알지 못해 애매했다.
‘스카야 왕족과 싸워 줄 정도는 아닐 수도 있으니까. 심지어 곰돌이가 아닌, 곰돌이 친구의 문제고.’
이브로이엘 공작을 찾아가는 것도 조금 그랬다.
그녀가 키에른의 소중한 사람이란 걸 알기에, 너무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체샤는 악랄한 생각을 하나 떠올렸다.
이타르 놈의 눈에서 눈물을 줄줄 뽑아 줄 만한 생각이었다.
“숨어 잇을 곳, 이써요!”
체샤는 음흉하게 웃으며 장소를 말했다.
***
해적의 핏줄을 이은 스카야 왕족들은 호전적이고 욕심이 많았다.
약탈자의 본성을 숨기지 않아서, 원하는 게 있으면 가져야 직성이 풀렸다.
이타르 또한 훌륭한 스카야 왕족이었다.
그는 원하는 모든 걸 가졌다.
내어 주지 않으면 빼앗고 강탈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가지지 못한 것이 요녀 리체시아였다.
뒷세계에 놀러 왔다가 우연히 리체시아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신이 내린 듯한 이상형의 그녀를 보자마자, 이타르는 대뜸 청혼부터 했다.
“내 부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도끼에 썰려 죽을 뻔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거기서 정신 차리고 도망갔을 터였다.
하지만 그때 간신히 살아 나간 뒤로, 이타르는 아예 리체시아한테 푹 빠져 버렸다.
이타르가 한동안 뒷세계에 부지런히 들락날락거리며 요녀에게 청혼해 댄 이야기는 뒷세계 주민들이라면 전부 알고 있었다.
집요하게 들러붙어서 리체시아를 쫓아다니던 짓을 그만두게 된 건.
웬 이단 심문관이 끼어든 탓이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이단 심문관이 아무 죄 없는 이타르를 이단이란 명목으로 잡아간 것이다.
그는 이타르에게 갖가지 죄목을 붙여선, 이단 심문실에 넣었다 뺐다 하며 취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리체시아가 요녀이니, 그녀와 연관되었다고 이단으로 간주하는 듯했다.
이타르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저 요녀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쫓아다닌 것뿐입니다!”
그러자 어째서인지 취조는 더욱 격해졌다.
그가 스카야 왕족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팔다리 하나씩은 떼어 냈겠다 싶을 정도로 살벌한 심문이었다.
이타르는 심문을 받아 가면서도 꿋꿋하게 요녀를 쫓아다녔으나.
결국 신성 제국과 척지고 싶지 않은 스카야 왕실에서 이타르를 강제로 끌고 갔다.
억지로 끌려간 이타르는 리체시아를 그리워하며, 그때부터 열심히 요녀와 관련한 물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가볍게 리체시아의 현상 수배지부터 시작해서, 그녀가 만들었다는 꽃, 착용했던 장신구, 쓰고 버린 손수건 등등.
요녀와 관련된 온갖 물건을 다 모아 대며 애타는 마음을 키워 왔다.
그러다 소성인 기도회를 핑계로 다시 팔렌 제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근래 요녀가 보이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왕실에서도 제국 방문을 허락해 준 것이었다.
하지만 요녀 닮은 아기를 만나서 꽂혀 버리는 건,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찾아! 그 아가를 갖기 전까진, 수도에서 떠나지 않을 거다!”
머리끝까지 분노한 이타르가 길길이 날뛰었다.
감히 내게 거짓말을 하고 도망치다니!
하지만 그런 행동마저도 리체시아를 닮아 있어서 더욱 탐이 났다.
바실리안 백작가는 듣도 보도 못한 가문이었다.
한미한 가문인 듯하니, 찾아내기만 하면 그가 요녀를 쏙 빼닮은 아기를 차지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터였다.
다행히 이타르가 고용한 실력 좋은 용병들은 금세 아기를 찾아냈다.
“찾았습니다!”
이타르는 희열 가득한 목소리로 캐물었다.
“어디! 어디에 있지?”
“그게, 수도에서 제일 비싼 고급 저택에 있습니다.”
“…뭐?”
이타르의 되물음에 용병 또한 의아하단 듯이 눈을 끔뻑거렸다.
“알아봤는데 바실리안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입니다. 저택의 주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가끔씩 그곳에.”
잠깐 머뭇거린 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신성 기사가 드나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