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85)
아기 요정은 악당-85화(85/200)
하일론에게 입을 맞춘 일은 여태까지 몇 번 있었다.
전부 그를 괴롭혀 주고 싶다는 장난기가 치솟아 저지른 행동이었다.
반항하는 하일론을 묶어 놓고 입술을 들이박은 게 대부분이었으니.
그는 키스를 당할 때마다 새파란 불꽃처럼 타오르는 눈을 하고 분노했다.
얼음 같던 눈이 불꽃으로 변하여 체샤를 응시하는 광경은 몇 번이나 겪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게 재밌어서 가끔 키스했다.
자주는 아니고, 정말 가끔.
그런데 지금은 왜 입을 맞췄는지 알 수 없었다.
정말이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조금 화났나 싶어서 달래 주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러고 나니 이미 발돋움을 하였고, 그와 입술이 맞닿아 있었다.
“…!”
말캉하게 맞닿는 여린 살갗의 감촉이 느껴졌다.
하일론의 눈이 커졌다.
눈동자에 박힌 검은 동공이 확장되는 모습이 모두 생생하게 보였다.
혼탁한 감정들로 뿌옇게 흐려졌던 푸른 눈동자는 엉망으로 흔들렸다.
쪽, 민망한 소리를 내며 입술이 떨어졌다.
그러나 얼굴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일론도, 체샤도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서로를 응시했다.
달게 열 오른 숨이었다.
체샤는 뒤늦게 부끄러워졌다.
이런 분위기로 입 맞추는 건 처음인 탓이었다.
황급히 고개를 뒤로 빼내며 말했다.
“아, 나는 그냥…….”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가 사슬로 묶인 팔을 거칠게 당겼다.
몸이 끌려가 너른 품에 안겼다.
커다란 손이 단단히 허리를 틀어쥐었다.
거센 악력과 함께 다시금 입술과 입술이 닿았다.
순간 모든 걸 잊었다.
체샤는 자유로운 한쪽 손으로 하일론의 목덜미를 끌어당겼다.
키스는 꽤 오래도록 이어졌다.
아니, 아주 짧았던 것 같기도 했다.
단단한 치아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마치 저 또한 표식을 남기겠다는 듯이.
따끔한 감각에 꺼졌던 정신이 다시 반짝 켜졌다.
체샤는 그를 밀어냈다.
“…….”
환역의 꽃이 숨 막힐 정도로 짙은 향기를 퍼트렸다.
언제나 망가진 음악만을 들려주던 고장 난 오르골이 이상하게 매끄러운 곡을 연주했다.
시끄럽게 행진하던 장난감 병정과 제멋대로 떠다니던 체스 말들은 전부 고요히 바닥에 정렬되었다.
솜이 삐져나왔던 인형은 말짱해졌고, 바닥에 처박혀 기분 나쁜 붉은 액체를 꿀럭꿀럭 흘리던 케이크는 예쁜 삼단 케이크가 되어 반짝거렸다.
엉망진창으로 굴러가던 환역이 조용해졌다.
평화로워진 환역을 유유하게 헤집는 건 빛을 흩뿌리는 나비들뿐이었다.
체샤는 조금 부어오른 입술을 말아 물며 하일론을 바라보았다.
희고 깨끗하여 서늘하기만 하던 눈매가 불그스름해져 있었다.
혈색이 오른 뺨.
체샤와 마찬가지로 붉게 부은 입술.
신성 기사의 정결한 제복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푸른 눈동자는…….
“나를 첫 번째로 둬, 리체시아.”
더 이상 고요하지 못했다.
언제나 잔잔하던 호수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가 되어 격동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해일처럼 거대한 감정으로 휘몰아쳤다.
팔뚝에 묶인 단죄의 사슬이 주인의 감정에 반응하여 잘게 떨렸다.
그러나 체샤는 그것이 사슬의 떨림인지.
아니면 자신의 떨림인지 알 수 없었다.
“네가 느끼는 모든 감정의 첫 번째는 나여야 한다.”
저를 가장 처음으로 놓으라는 요구는 당당했다.
응당 자신이 가져야 할 권리를 주장하듯이.
“수많은 이들과 입을 맞췄어도 나를 가장 특별히 여기고.”
그의 손이 제복의 옷깃을 거칠게 뜯어냈다.
투둑 소리가 나며 은색 단추가 어디론가 튀어 나갔다.
흰색 제복 아래에 가려졌던 살결이 드러났다.
신에게 바치길 맹세한 육체 위에 찍힌 요녀의 문양이 보였다.
문양은 새빨갛게 빛을 내고 있었다.
문양의 주인을 알아보았다는 듯, 붉고 요사한 빛을 내며 달아올랐다.
요녀가 남겨 놓은 표식을 보란 듯이 내보이며, 하일론이 속삭였다.
“어떤 놈들에게 표식을 찍었든 나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라.”
망가진 것들로 가득했던 환역은 온전해졌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고결하던 이단 심문관은 되레 망가져 버렸다.
신의 눈길이 닿지 않는 요정의 환역 속에서, 하일론은 순결하지 못한 자신의 어두움을 드러냈다.
요녀라 불리는 체샤마저도 놀랄 만큼 진득하고 어두운 감정이었다.
“너는 나를 망가뜨린 책임을 져야 하니…….”
순간 팔뚝을 얽어맨 사슬이 조여들었다.
희미한 통증을 느낄 때까지 단단히 조여드는 동안, 하일론은 여전히 체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멋대로 관계를 끝내게 두진 않을 거다.”
관계 끝낼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뭔가 갈수록 오해만 쌓여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체샤는 굳이 그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건 아기의 몸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말해야 했다.
어설프게 사실을 알렸다간, 더 복잡해지기 딱 좋은 상황이었으니.
대신 조용히 속삭였다.
“사냥감의 표식…. 너한테 했던 것처럼 새겨 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고통 하나하나를 신경에 새겨 넣듯,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문양을 그려 넣은 건…….
체샤도 하일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하일론이 자신의 말에 반응하기 전에,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다시 도끼를 불러내었다.
그리고 도끼를 휘둘러 사슬을 끊어 냈다.
팔을 구속했던 단죄의 사슬을 잘라 내고, 훌쩍 뒤로 물러났다.
여태 이타르를 물고 있던 꽃이 웩 하고 그를 토해 냈다.
기절한 이타르가 철퍽, 체스판 위로 떨어졌다.
체샤는 꽃 더미 위에 사뿐히 올라서며 말했다.
“저 새끼 이단으로 잡아넣고, 정신 교육 끝나기 전에는 심문실에서 꺼내 주지 마.”
할 일이 끝났다.
여기서 더 머뭇거리며 시간 끌어 봤자, 숨겨야 할 게 많은 체샤만 불리할 뿐이었다.
체샤는 도끼를 치켜들었다.
환역을 부술 생각이었다.
“리체시아!”
단죄의 사슬이 체샤를 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체샤는 하일론에게 생긋 웃어 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도끼를 휘둘렀다.
환역이 무너졌다.
한바탕 꿈과 같은 환상의 끝이었다.
***
“흐앙!”
체샤는 바닥에 콩 하고 엉덩이를 찧었다.
“아이궁…….”
제대로 찧었는지 엉덩이가 얼얼했다.
손으로 살살 문지르면서 일어섰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갔다.
의자를 끌어다 창가에 세워 두고, 창턱 위에 올라섰다.
신성 기사단과 용병이라는 괴상한 조합이 저택 앞에 모인 모습이 보였다.
조용한 고급 저택 거리에 갑자기 몰려든 무장한 사내들이라니.
정말 눈에 띄어도 너무 띄었다.
신성 기사와 용병들은 저들끼리 술렁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꽃잎과 나비가 흩어지며 허공에서 하일론과 이타르가 나타났다.
길바닥에 퍽 하고 떨어지는 이타르의 못난 꼴에 체샤는 킥킥 웃었다.
신성 기사들이 하일론에게 몰려들었다.
갑자기 요녀의 환역에 끌려들어 갔으니 깜짝 놀랐으리라.
하일론은 그들에게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이타르와 그가 고용했던 용병들이 죄다 신성 기사들에게 포박당했다.
몇몇은 반항을 시도하려 했으나, 그래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타르가 기절한 상태라서 더욱 맥없이 체포되었다.
키득거리며 구경하는데, 하일론이 고개를 돌렸다.
“…….”
정확히 시선이 마주쳤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쳐다본다는 점은 명백했다.
지은 죄 많은 체샤가 뒤로 슬쩍 몸을 빼려는 찰나.
새하얀 사슬이 차르륵 뻗어져 나왔다.
“끄에엑!”
체샤는 사슬에 휘감겨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하일론의 품에 안착했다.
‘으악, 놀래라!’
심장이 콩캉콩캉 마구 뛰었다.
놀라서 기절하기 직전인 아기를 붙든 하일론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너는 잘 붙잡히는군.”
“…….”
환역에서 사슬로 리체시아 못 잡았다고, 대신 체샤를 잡아 본 모양이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때였다.
저택의 문이 열렸다.
“거기 아저씨. 우리 집 아기 그만 괴롭히시고.”
제집처럼 안에서 걸어 나온 카르하가 비딱하게 말했다.
“들어와서 차 한잔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