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86)
아기 요정은 악당-86화(86/200)
와압.
카르하가 스콘을 한 입 베어 먹었다.
얼마간 우물우물 씹어서 삼키더니, 맛이 괜찮았는지 체샤 앞으로 내밀었다.
왐냠.
체샤는 카르하가 내미는 스콘의 귀퉁이를 자연스럽게 뜯어 먹었다.
둥그스름한 스콘에 커다랗게 베어 먹은 잇자국과 작게 먹은 잇자국이 하나씩 생겨났다.
“어때?”
“마시써요!”
“크림 발라서 줄까?”
“쨈두요.”
“어.”
카르하는 스콘에다가 사과잼과 클로티드 크림을 덤벙덤벙 발라서 다시 체샤에게 내밀었다.
체샤는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카르하가 챙겨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그는 체샤의 입술에 부스러기라도 한 톨 묻으면 곧장 냅킨으로 톡톡 털어 주기까지 했다.
덕분에 정말로 체샤는 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일부러 그러는 거겠지.’
물론 평소에도 카르하는 체샤를 살뜰하게 챙겨 주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의 경쟁 심리도 작용하는 듯했다.
체샤는 작은 입으로 열심히 스콘을 뜯어 먹으며 흘금,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고고한 자세로 차를 마시는 하일론이 앉아 있었다.
환역에서 뜯어냈던 제복은 어느새 말끔하게 정리한 채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꽃잎 한 장 들어갈 틈 없이 완벽한 옷차림이었다.
눈을 내리깔고 차를 마시던 그가 살짝 시선을 들었다.
체샤와 눈이 마주치자, 얼음 같던 얼굴에 설핏 미소가 번졌다.
하일론의 미소를 본 카르하는 뿔난 망아지처럼 굴었다.
“웃지 마시죠?”
금방이라도 물어뜯으러 튀어 나갈 듯한 태도였다.
하일론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무심히 대꾸했다.
“타인에게 웃음을 거두길 강제할 권리는 팔렌 대제국의 태양 황제도 가지지 못했을 텐데.”
네가 뭔데 명령하느냐는 뜻이었다.
카르하가 더욱 열받은 얼굴로 외쳤다.
“남의 집 아기 보고 자꾸 웃으니까 그러죠!”
“왜 그러십니까, 카르하 님. 아가씨가 귀여우니 웃으시는 거겠죠.”
바실리안 백작가와 신성 제국 이단 심문관 사이에 있었던 복잡한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하는 테오는 혼자 순박하게 굴었다.
테오가 그의 손에는 몹시 작은 찻잔을 들고 활짝 웃었다.
“저도 아가씨랑 눈이 마주치면 웃음이 납니다. 너무 귀엽지 않습니까.”
“…….”
카르하가 잠시 손으로 눈 위를 덮었다.
테오가 저럴 때마다, 카르하는 전투력을 잃어버렸다.
카르하는 가뜩이나 삐죽한 눈매가 사선 모양이 되도록 치켜올리며, 무릎 위에 앉혀 놓은 체샤를 꼭 끌어안았다.
“도와주신 건 감사한데요.”
“너를 도운 게 아니다.”
하일론이 딱 잘라 선을 그었다.
“아이의 호위 기사로서 소임을 다했을 뿐.”
그놈의 임시직 호위 기사는 언제까지 써먹을는지.
‘리체시아와 연관이 있다고 확신했으니, 앞으로도 나한테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 들 거고.’
소성인 기도회가 끝나고 나면 무슨 핑계를 대며 제게 들러붙을지 궁금했다.
카르하가 하일론을 노려보았다.
오늘따라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애가 조금 뾰족뾰족한 것 같았다.
둥글둥글한 곰돌이, 테오가 분위기를 중재하기 위해 나섰다.
그는 다른 화젯거리를 꺼내 들었다.
“바실리안 가문에서 신성 기사분과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제1계위 신성 기사단 소속이시라니 대단합니다.”
테오는 동경 어린 눈으로 하일론을 바라보았다.
“저도 어릴 땐 신성 기사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제복이 멋지니까요. 성왕께 성유물을 하사받는 상상도 했었는데.”
루베우스의 창이 갖고 싶었다며, 테오가 수줍게 말했다.
무난하게 집주인 칭찬을 꺼내 드는 처신은 나름 훌륭했다.
그 칭찬이 집주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 문제였을 뿐.
하일론은 성유물을 하사받고 신성 제국에 종속되었다.
말이 종속이지, 목줄 채워진 개와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그의 등에 남은 흉터를 떠올리며 흘긋 살피니, 역시나 눈빛이 살짝 가라앉아 있었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지만,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눈치 없는 테오만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실례가 아니라면, 나중에 대련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카르하 님은 혹시 신성 기사님하고 대련을 해 보셨는지…….”
“안 해 봤어요. 안 친해요.”
카르하가 분위기 풀어 보려는 테오의 노력을 열심히 방해하던 때였다.
침묵하던 하일론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훈련이 필요하긴 하겠더군.”
뜬금없이 떨어진 말에 테오도, 체샤도, 그리고 카르하도 일순 멈칫했다.
하일론은 무표정한 얼굴로 카르하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너는 약하다, 카르하 바실리안.”
그가 질문했다.
“언제까지 계속 도망치기만 할 거지?”
***
카르하의 쌍둥이 형제는 그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랐다.
같은 거라곤 빨간 눈동자 색깔뿐.
쌍둥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외모도, 취향도 정반대였다.
그래도 단 한 번도 이슈엘을 이해하지 못한 적은 없었다.
이슈엘이 어떤 마음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빛만 봐도 대충 파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카르하는 항상 이슈엘이 원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그건 쌍둥이로서 연결되어 느끼는 직감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이슈엘은…….
카르하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자기는 고상한 일만 할 거라면서, 죽어도 배우기 싫다고 난리 쳤던 마법을 갑자기 적극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을 때가 제일 절정이었다.
카르하는 제 쌍둥이 동생이 미쳐 버린 줄 알았다.
너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이슈엘은 짤막히 대꾸했다.
“절박해서.”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마법사의 길을 착실히 걸어가는 이슈엘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바실리안 가문에 새로운 동생이 들어온 후.
키에른도, 벨제온도, 이슈엘도…….
각자의 뚜렷한 목적을 위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혼자만 뒤에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일단 카르하도 예전보다 더 열심히 검술 훈련을 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자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술은 카르하의 도피처였다.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의 동요를 느낄 때면 검을 휘둘렀다.
검은 숲에 쳐들어가 마물을 죄다 죽이고, 뒷세계에서 처형인이 되어 날뛰었다.
그러면 요동치던 마음도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덕분에 카르하는 매사에 심드렁한 소년이 될 수 있었다.
나름대로 고요한 인생이었다.
카르하의 인생에 아기가 끼어들기 전까진 말이다.
아기를 만난 뒤로 이상하게 자꾸 아쉬운 마음이 생겼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되었다.
‘내가 더 강하면 좋았을 텐데.’
카르하는 넘치도록 강했고, 누구에게도 패배감을 느껴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아기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자꾸만 한계에 부닥쳤다.
눈앞에서 번번이 무력하게 당하는 일들이 생겼다.
때로는 권력의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었으나.
가끔은 카르하의 힘이 부족하여 벌어지는 일도 분명하게 있었다.
신성 제국의 이단 심문관과 키에른이 전투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순간은 아직도 불쾌하게 뇌리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카르하는 더욱 검술에 매진했다.
그러나 평소라면 검 몇 번 휘두르고 떨쳐 냈을 감정들이 갈수록 기승을 부렸다.
자꾸만 시꺼멓게 카르하를 괴롭혔다.
단순히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 아니었다.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불만족이 카르하를 조금씩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카르하는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비록 상대가 왕족이어서 그랬다 하더라도.
어린 동생에게 의지하여 도망치고, 그가 혐오하는 이단 심문관의 보호 아래에 숨는 일은 몹시 기분 나쁜 일이었다.
검을 휘둘러도 해소되지 않을 분노였다.
이럴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카르하는 해결 방법을 알 수 없어서 괴로웠다.
“언제까지 계속 도망치기만 할 거지?”
이단 심문관의 질문에 심장이 찔리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