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88)
아기 요정은 악당-88화(88/200)
체샤에게 다짐해 보이는 카르하는 즐거워 보였다.
그가 프리지아의 꽃내음을 맡으며 웃었다.
“꽃은 어디서 난 거야.”
“쭈웠어요.”
“그래?”
프리지아로 체샤와 장난치던 카르하가 커다랗게 하품했다.
“아…. 너무 피곤하다.”
붕대를 둘둘 감은 그는 발라당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그러더니 몸을 옆으로 빙글 돌려서 체샤와 마주 보았다.
카르하가 씩 웃으며 제 옆을 손바닥으로 팡팡 내려쳤다.
“아기, 이리 와 봐. 오라버니랑 같이 자자.”
체샤는 눈을 동글하게 떴다.
카르하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놀란 티를 내니, 카르하는 약간 머쓱해하며 중얼거렸다.
“키에른이랑 벨제온은 틈날 때마다 아기 안고 자던데.”
그래서 자기도 궁금했다는 것이다.
키에른이야 원래 체샤의 침실을 닳도록 드나들었고.
벨제온도 가출 사건 이후로 은근히 체샤랑 같이 자는 일이 종종 있었다.
때문에 체샤는 요즘 혼자 자는 일이 거의 드물었다.
“쪼아요.”
이런 상황인데 카르하랑 같이 잠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오늘 힘든 일을 겪은 카르하였다.
내심 혼자 내버려 두고 싶지 않기도 했던 참이었다.
체샤는 카르하와 마주 보고 누웠다.
카르하는 체샤를 품에 끌어안았다.
약초 냄새랑 연고 냄새가 나서, 체샤는 그가 조금 더 불쌍해졌다.
카르하는 체샤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서 킁킁거렸다.
“아기는 포근하고, 말랑하고, 그리고 항상… 꽃 냄새가 나.”
그래서 좋아, 하면서 카르하가 느릿하게 말했다.
이미 반쯤 잠에 취한 목소리였다.
카르하는 졸린 눈을 하고서도, 계속해서 속삭임을 이어 갔다.
지금 꼭 말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이.
샘솟는 애정을 쏟아 내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것처럼 속삭였다.
“어쩌다 바실리안에 너 같은 아기가 왔을까. 처음에 키에른이 동생 구해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땐 관심도 없었는데.”
작고 약한 것들은 바실리안을 두려워했다.
어떤 아기를 데려 오든 바실리안의 이름에는 어울리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너는…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들었어. 아기, 기억나? 창문에서 우리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체샤도 기억했다.
바실리안의 삼 형제가 귀환하여 처음 마주했던 순간.
그때 체샤는 심장에 화살을 맞는 기분을 느꼈다.
그건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어머니 말이야. 배 속에 넷째 있었다고 했거든. 아마 태어났으면 너랑 닮았을 것 같아.”
말해 놓고 아차 싶었는지, 카르하는 얼른 덧붙였다.
“그냥 그렇다는 거야. 지금은 아기가 우리…….”
배시시 웃음이 번졌다.
“가족이잖아…….”
눈이 스르륵 감겼다.
눈꺼풀을 들어올리려는 듯 움찔거렸으나, 무거운 돌을 매단 것처럼 꼼짝하질 못했다.
카르하가 눈을 감은 채로 웅얼거렸다.
“그치, 아기야…….”
마지막 중얼거림을 끝으로, 카르하는 완전히 잠들어 버렸다.
새근새근 숨을 마시고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체샤는 가만히 잠든 소년을 바라보았다.
가족.
그 말이 유난하게 귀에 박혀서 떨어지질 않았다.
체샤는 괜히 입 속으로 짧은 단어를 반복해서 되뇌어 보았다.
의미 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바보짓임을 알면서도, 체샤는 그것을 오래도록 꼭꼭 씹으며 배어 나오는 단물을 맛보았다.
그러다가 카르하를 따라 꼬르륵 잠에 빠졌다.
기분 좋은 숙면이었다.
***
철썩!
커다란 손이 거침없이 뺨을 후려갈겼다.
있는 힘껏 쳐올린 손길에 얼굴이 홱 젖혀지고, 몇 걸음이나 몸이 뒤로 밀렸다.
그러나 테오는 곧장 자세를 바로 했다.
다시 후작 앞으로 다가와 서서 고개를 숙였다.
“네놈은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냐!”
네메아 후작이 우렁하게 호통쳤다.
후작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지글지글 끓었다.
“고작 치안대장 일 하나 해내질 못해선……!”
수도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스카야 왕태자가 바실리안 백작가와 다투다가, 신성 기사단에게 이단으로 잡혀갔다.
그건 일개 치안대장이 막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네메아 후작은 전부 테오의 잘못이라 여겼다.
테오가 치안대장으로서 어떻게든 중재해 내야 했다며 분노했다.
“죄송합니다, 후작 각하.”
테오는 차마 아버지와 눈조차 마주하지 못하고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것 말고는 테오에게 허락된 말이 없었기에.
뺨을 서너 대 더 휘갈긴 후에야, 후작의 분노는 가라앉았다.
그는 못마땅하단 듯이 혀를 차며 소파에 앉았다.
“치안대장 당분간 때려치워. 바실리안 백작가의 소성인 기도회 호위로 따라가라.”
“…!”
“가면서 바실리안 놈들이랑 친분 쌓아 두고, 정기적으로 보고 올리도록.”
테오는 입술을 달싹였다.
치안대장 일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대원들하고도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업무를 팽개치고 바실리안 백작가의 호위가 되라니.
그것도 말이 보고이지, 실상은 감시하라는 뜻이지 않은가.
테오는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아버지께서 조금이나마 덜 화를 내실지 알 수 없었다.
소파에 앉은 네메아 후작은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그 구렁이 같은 놈이 뭐 어떻게 황제와 공작을 구워삶았는지….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질 않으니!”
바실리안 백작이 수상하다고, 신성 제국 쪽에서도 그를 주시하는 듯하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다른 일에는 명석하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이들이 바실리안과 관련한 문제에선 멍청이가 되었다.
황제도, 이브로이엘 공작도 덮어 놓고 바실리안 편만 들어 댔다.
네메아 후작으로선 미쳐 버릴 노릇이었다.
“나라도 그놈을 경계해야겠어.”
후작의 분노를 지켜보던 테오는 그냥 말을 꺼내길 포기했다.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을 터였다.
늘 하던대로 그냥 조용하게 순종했다.
“준비하겠습니다.”
“나가 봐.”
“예.”
돌아서는 테오의 등에 못마땅하게 쯧쯧 혀 차는 소리가 떨어졌다.
테오는 듣지 못한 척 조용히 방을 나섰다.
복도를 느릿느릿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기다리는 이가 보였다.
“…테오.”
짧은 흑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테오처럼 건장한 근육질 체형의 여자였다.
그녀는 네메아 후작가의 후계자이자 장녀, 시오넬 네메아였다.
시오넬은 이도 저도 아닌 테오와 달리, 네메아의 암사자, 소후작 등으로 불리며 탄탄하게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황실 기사단장의 직위를 받아 이미 수도 정계에 자리매김도 했다.
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멋진 사람을 보며 테오는 희미하게 웃었다.
“누님.”
시오넬이 퉁퉁 부은 테오의 뺨을 보았다.
테오는 손으로 슬며시 뺨을 가렸다.
“제가 치안대장 일에 미숙해서 화를 내셨습니다.”
“…그래.”
아버지를 감싸는 말에 시오넬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저 테오를 제 방으로 데려가 얼음찜질을 해 주었다.
“바실리안 백작가 호위로 갈 거냐?”
“예. 그래도 다들 좋은 분이라서 호위 일이 즐거울 것 같아요. 다만 제가 폐를 끼치게 될까 봐 걱정입니다.”
테오가 잘각잘각 얼음이 담긴 주머니를 뺨에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저는… 멍청한 구석이 있으니까요.”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테오.”
시오넬이 매서운 눈을 하고서 테오를 나무랐다.
“너는 멍청한 게 아니라, 선한 거다.”
“…….”
“그리고 네 선한 성품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값지고 귀한 것이지.”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요.
테오는 속에서 올라온 말을 삼켰다.
다들 반짝반짝한 사람들을 좋아했다.
아버지의 말처럼, 저같이 멍청한 놈은 그냥 등쳐 먹기 쉬운 존재일 뿐이었다.
“걱정이구나. 바실리안이라니…….”
시오넬은 곰처럼 우직한 테오를 보며 한숨 쉬었다.
“아무래도 백작이 워낙 달변이니.”
고상하게 돌려 표현했으나 백작을 욕하는 말이었다.
그녀는 뱀의 혀를 가진 백작에게 테오가 발라 먹힐까 걱정하고 있었다.
예전 동부에 잠시 들렀을 때의 일도 있고 말이다.
시오넬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를 것 같았다.
테오는 자신이 만났던 소년과 아기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근데요, 누님. 바실리안 백작이 새로 들인 막내딸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