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90)
아기 요정은 악당-90화(90/200)
키에른이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었을 텐데도 하일론은 반응이 없었다.
굳이 이런 것까지 일일이 반응해 주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체샤는 그와 함께 온 신성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부관인 다렌도 같이 왔군. 그리고 나머지 셋은 제1계위 신성 기사단 소속 기사들인 것 같고.’
신성 기사들을 확인한 체샤는 스윽 시선을 돌려서 바실리안 가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흑마법사에 검사 둘, 마법사 하나.’
그리고 검술로 유명한 네메아 후작가의 곰돌이.
‘곰돌이도 실력이 제법 있어 보였지.’
체샤의 품에 얌전히 안겨서 아기 강아지 흉내를 내는 하타도 결코 약자는 아니었다.
수인으로서 충분히 제 몫 이상의 전투를 치러 낼 수 있었다.
달랑 아기 하나 호위하는 데 쓰기에는 지나치게 호화로운 구성이었다.
아마 소성인 기도회에 참석하는 어느 누구도 이만한 호위를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붙이지 못했으리라.
일단 이단 심문관이 호위 기사로 온 것부터가 사기였다.
하지만 체샤는 초호화 호위가 전혀 달갑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최소한 신성 기사들만이라도 뚝 떼 놓고 싶었다.
바실리안 가문과 신성 기사 조합이라니.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문제가 팡팡 터질 느낌이지 않은가.
실제로 키에른은 하일론이 숨 쉬는 꼴만 봐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이것도 소성인 기도회에서 치를 시험의 일종일까.’
신성 기사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본다는 식으로 말이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소성인 기도회는 열흘간 이어지는 기도회였다.
본래 일반적인 기도회는 한 달 정도 기간을 가졌다.
하지만 소성인 기도회는 어린 아기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도회이니, 기간을 대폭 줄인 것이다.
열흘 동안 아이들은 신성 제국의 대신전에서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시험을 받게 된다.
물론 아기들의 기도회이니, 그냥 가벼운 시험이라 했다.
다만 5살 이하 아기들이 모여서 바글거리며 평화롭게 열흘간 기도하는 동안.
함께 따라온 어른들이 지옥의 시간을 보내게 될 예정이었다.
소성인 기도회의 우승자는 성왕과 추기경, 이단 심문관, 그리고 주교급 신성 사제와 신성 기사단장들의 토론으로 정해진다.
추기경과 이단 심문관이 각기 열셋이고.
주교급 신성 사제와 신성 기사단장이 각기 서른여섯이니.
거기에 성왕을 더하여 도합 아흔아홉 명의 대인원이었다.
성유물이었던 요정 여왕의 왕관이 하사품으로 내걸린 기도회였다.
신성 제국에서도 이만한 고위급 인사를 한자리에 대규모로 모아 토론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 토론에서 우승자가 결정되니, 각기 고위급 인사에게 줄을 대려는 물밑 싸움이 기도회 시작 전부터 치열했다.
키에른도 그 때문에 생전 하지 않던 사교계 데뷔에 연회 참석까지 해 가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녔던 것이었다.
이단 심문관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하일론이 죽으라고 하면 죽을 놈들이었다.
성왕보다도 하일론의 명령을 우선시하는 자들이니, 알아서 하일론이 원하는 쪽으로 말하고 행동하리라.
신성 기사들 쪽도 비슷할 터였다.
‘문제는 성왕, 그리고 추기경과 신성 사제들인가.’
추기경과 신성 사제들은 대부분 하일론에게 호의적이긴 했다.
미래의 성왕 선출을 위해서는 하일론의 지지가 필수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소성인 기도회의 우승자를 뽑는 일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이런 것까지 굳이 하일론의 뜻을 따르려 하진 않을 터였다.
그들에게 이미 여러 방향으로 줄을 댄 자들이 많을 테니 말이다.
재수 없으면 소성인 기도회가 신성 사제와 신성 기사 간의 알력 다툼으로 번질 가능성도 충분했다.
웬만하면 그리 되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겠지만…….
‘성유물 걸려 있는데 싸움이 안 나면 그거대로 이상하겠지.’
그래도 체샤는 무조건 우승하고 싶었다.
키에른이 우울해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라도, 웬만하면 요정 여왕의 왕관을 받고 싶었다.
속으로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이슈엘과 함께 마차에 올랐다.
햇빛 받으면 피부 망가진다고 싫어하는 이슈엘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전부 말을 탔다.
팔렌 제국에서 신성 제국 힐데르드까지는 말을 타고 하루 꼬박 달리는 거리였다.
다만 아기가 탄 마차를 끌고 가는데 그렇게 질주할 수는 없었다.
쉬엄쉬엄 가면서 하루는 여관에서 숙박하고, 다음 날 오후쯤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불안한 마음으로 마차 창밖을 내다보았다.
키에른과 하일론이 말을 나란히 하여 달리며, 서로에게 무어라 툭툭 한마디씩 던지는 게 보였다.
키에른이 비죽 웃으며 던진 말에 하일론이 미미하게 눈매를 찌푸렸다.
벌써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히유.”
체샤는 그냥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두기로 했다.
***
팔렌 제국에서 신성 제국으로 이어지는 숲길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다들 다니는 큰길을 내버려 두고 굳이 한적한 길을 택한 이유는 너무 눈에 띄는 행렬인 탓이었다.
하나같이 화려한 미모의 소유자에 제복 입은 신성 기사까지 끼어 있으니,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단 심문관인 하일론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봤자 좋을 게 없었다.
최대한 조용한 길로 돌아가자고 제안했고, 키에른도 그 정도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적한 숲길은 고즈넉했다.
가볍게 말을 타고 달리기 좋은 곳이었다.
아마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옆 사람만 없었다면 말이다.
“요녀랑 헤어졌습니까?”
이자와 같이 있으면 분명히 헛소리를 듣게 되리라고 익히 짐작한 바였다.
무슨 말을 하든 무시하려 했으나.
바실리안 백작은 사람을 열받게 만드는 재주가 탁월했다.
“요녀가 요새 보이지 않는 게 혹시 기사님 때문입니까? 헤어지고 나서 일방적으로 쫓아다녀서?”
하일론은 눈매를 찌푸렸다.
그리고 흘긋 마차 쪽을 바라보았다.
거리도 있고, 창문도 닫혀 있으니 제가 하는 말이 들리진 않을 듯했다.
하일론은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협력을 원하면 입 닥치는 법부터 아셔야겠습니다.”
“우와, 신성 기사가 욕도 합니까?”
키에른은 샐쭉 얄밉게 웃었다.
이토록 건방지게 구는 이유가 있었다.
눈치 빠른 뱀은 이미 하일론이 원하는 바가 자신과 같다는 것을 파악했다.
키에른이 설사 여기서 신성 모독을 저지르더라도.
하일론은 그를 이단 심문실에 처넣지 못했다.
아이가 소성인 기도회에서 우승하도록 만들고 싶기 때문이었다.
딱 한 번.
요정 여왕의 왕관을 본 적이 있었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으로 엮은 화관은 아름다웠다.
멍하니 화관을 바라보며 싱그러운 꽃향기를 맡는 순간, 하일론은 리체시아를 떠올렸다.
그녀에게 화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성유물을 빼돌릴 수 없으니, 결코 불가능한 일임을 알면서도.
그런데 기회가 온 것이다.
리체시아는 아니더라도, 그녀를 쏙 빼닮은 아이에게 화관을 씌워 보고 싶었다.
리체시아의 딸이니 아이도 언젠간 요정의 힘을 발현할 것이다.
요정의 것이었으니, 요정에게 돌려주는 게 옳으리라.
화관을 쓴 아이를 상상하며 입술을 열었다.
“신성 사제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밀어주는 아이가 따로 있으니,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성왕께서 체샤한테 왕관 줘라, 하고 명령하시면 안 됩니까? 당신 정도면 성왕하고 친할 거 아닙니까.”
“…….”
하일론이 싱글거리는 키에른을 노려보던 때였다.
두 남자는 동시에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접근하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둘이 아닌, 수십의 인기척이었다.
키에른이 쯧 하고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노예 사냥꾼입니다.”
노예 사냥꾼들이 돈 될 만한 것이면 영혼도 내건다고 하지만.
척 봐도 대규모로 이동 중인, 그것도 신성 기사까지 포함된 마차 행렬을 건드릴 이유는 없었다.
그들의 사냥감이 이쪽으로 도망쳐 온 것이었다.
대체 어떤 사냥감이기에 신성 기사가 있는 걸 뻔히 보면서도 쫓아오는 것일까.
심지어 아직 사냥감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일론과 키에른은 사냥감을 찾기 위해 감각을 열었다.
그때였다.
허공에서 검은 꽃잎과 나비가 확 흩날렸다.
흩어지는 꽃잎과 나비 사이로 깡마른 체구의 여자가 나타났다.
두 남자의 눈이 일제히 커졌다.
키에른이 당혹스럽게 중얼거렸다.
“요정……?”
그때 마차 창문이 부서질 듯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아이의 분홍색 눈동자는 엉망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체샤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다들 피해요!”
그러나 체샤의 말에 반응하기도 전에, 시야가 뒤바뀌었다.
요정의 환역이 펼쳐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