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93)
아기 요정은 악당-93화(93/200)
필요 이상으로 감정적이었다.
미쳐 가는 요정의 감정이 영향을 미친 탓이었다.
묻어 두었던 과거의 기억까지 떠오르며, 완전히 정신이 나가 버리기 직전.
검은 어둠이 체샤를 덮어 주었다.
끝을 모르고 치솟던 분노가 서느런 어둠에 눌려 기세를 늦췄다.
키에른이 만들어 준 어둠과 고요.
그리고 그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
안온한 감각이 뾰족하게 날 선 감정을 서서히 뭉뚝하게 만들어 갔다.
너른 품에 안긴 채, 체샤는 키에른과 하일론이 서로 물어뜯으며 노예 사냥꾼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양극단에 자리한 남자들은 상대를 혐오하면서도 힘을 합쳤다.
전부 체샤를 지켜 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 안쪽이 마구 저릿해졌다.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채워졌다.
열다섯의 봄에 요정의 힘을 발현하고, 노예 사냥꾼들을 피해 도망 다녔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처절히 발버둥 쳤다.
열여섯의 겨울에는 환역을 다루는 법을 깨달았다.
완전히 힘을 각성하자마자, 가장 먼저 노예 사냥꾼들을 처리했다.
그때 기분이 어떠했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체샤는 즐거웠다.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노예 사냥꾼들에게 지긋지긋하게 시달렸다.
고아원 친구들과 원장님을 위한 복수 따윈 꿈꾸지도 못했다.
피식자에서 포식자로 탈바꿈하는 순간이 어찌나 짜릿했던지.
흙바닥을 비참하게 꿈틀대며 기어 다니던 애벌레는 화려한 나비가 되었고, 목숨을 구걸하며 쫓겨 다니던 도망자는 잔혹한 살육자가 되었다.
체샤는 그간의 괴로움을 잊을 만큼 충분하게 복수했다.
모든 걸 끝낸 후에는 온통 피에 젖은 채, 시체의 산 앞에서 혼자 미친 듯이 웃었다.
웃고, 웃고, 또 웃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비명 지르고 오열하며 모든 감정을 털어 냈다.
피 묻은 손으로 눈물 젖은 얼굴을 닦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어떤 일에 크게 동요한 적이 없었다.
성년이 되고 나서도 비슷했다.
굳이 차이점을 꼽자면.
수년간 엄마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동안 요녀라는 이름을 얻었고, 하타라는 개를 키우게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미쳐 가는 요정 때문에 마음이 나약해진 탓일까.
제 앞에서 노예 사냥꾼들을 죽이는 키에른과 하일론에게 자꾸 격한 감정이 들었다.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정말로 그냥…….
체샤는 울고 싶었다.
‘부끄러워.’
어린아이도 아니고, 요정한테 감정 동화돼서 옛날 기억 조금 떠올렸다고 이러다니.
고작 이따위 일에 약한 구석을 드러내려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하지만 약점을 내보여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쉽지 않았다.
눈시울이 뜨끈해지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밀려 올라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있는 힘껏 키에른의 옷자락을 말아 쥐었다.
작은 손으로나마 최선을 다해 움켜쥐고선 숨을 색색 몰아쉬었다.
떨리는 몸을 추스르려 키에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숨쉬기만 반복했다.
얼마간 그러고 있으니, 조심스럽게 얼굴을 감싸는 손길이 느껴졌다.
커다란 손은 부드럽게 체샤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손길을 뿌리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생각만 하고, 손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키에른과 하일론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반대의 색채를 띤 눈동자에 똑같은 빛이 감돌았다.
체샤를 향한 걱정과 애정이었다.
‘고개 들지 말걸.’
체샤는 곧장 후회했다.
왜냐하면, 눈이 마주치니까, 정말로…….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야가 어룽어룽해지더니 눈앞이 흐려졌다.
기어코 눈물이 툭 떨어졌다.
“…….”
환역에 정적이 찾아왔다.
키에른과 하일론은 그대로 굳어졌다.
두 남자는 태엽이 풀린 인형처럼 뚝 멈춰서 체샤만 쳐다보았다.
당황한 시선들 속에서 체샤는 혼자 히끅히끅 울었다.
울음을 그치려 애썼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다.
둑이 터진 것처럼 마구마구 쏟아졌다.
얼굴이 발개지도록 우는 체샤의 모습에 얼어붙었던 키에른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체샤, 왜, 왜 울어요? 아빠가 너무 무섭게 했나?”
어찌나 놀랐는지 그는 중간에 말까지 더듬거렸다.
하일론도 긴장한 눈치가 역력했다.
대답을 해 주고 싶은데, 울음이 멎질 않아서 힘들었다.
체샤는 고개만 도리도리 내저었다.
그러자 두 남자는 더욱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전전긍긍하는 이들을 위해 작은 손으로 눈물에 흠뻑 젖은 얼굴을 닦아 냈다.
피가 묻지 않은 깨끗한 손이었다.
하얀 손바닥에 묻어나는 건 오직 맑은 눈물뿐이었다.
피와 지저분한 오물 따위가 뒤섞이지 않은…….
“무서운 고 아니애요.”
“그럼?”
곧바로 되묻는 키에른에게 한참 후에나 대답을 돌려주었다.
“나두 몰라요…….”
진실이었다.
체샤도 자신이 왜 우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울음을 삼키려 노력한 끝에, 간신히 필요한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아빠는 갠차나요?”
“무엇이?”
“나… 이상하니까.”
말하고 나니 또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요정의 힘을 써 버렸다.
어떻게 부정해 볼 수도 없을 만큼 명백하게.
가뜩이나 수상했던 체샤였다.
아기 시늉을 내고 있지만, 또래의 아기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키에른도 그래서 의심을 품고 있었을 터였다.
그가 자신을 예의 주시해왔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번이야말로 내쳐지는 걸까.’
저를 위해 나서고 감싸 주는 모습을 전부 보았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누가 자신을 위해 준다는 게 믿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여기서 키에른이 저를 요정이라 내치는 게 훨씬 자연스레 느껴졌다.
체샤는 진짜 바실리안이 아니니까.
혈연처럼 조건 없는 애정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계속 뚝뚝 눈물을 흘리며 키에른을 올려다보았다.
키에른이 잠시 침묵했다.
그가 말을 고르는 짧은 순간이 천년과 같았다.
찰나이나 영원 같은 기다림 끝에 키에른의 입술이 열렸다.
“…아빠는 체샤가 어떤 존재여도 좋아요.”
엄지가 눈 밑을 지그시 눌러 왔다.
이내 힘주어 눈물을 닦아 냈다.
새빨간 눈동자가 격렬하게 일렁였다.
그가 한 차례 더 낮아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체샤도 똑같이 아빠를 좋아해 줄 거니까. 내가 어떤 존재라도.”
그것은 불꽃으로 달궈진 낙인이었다.
똑같이 무한한 애정을 달라 요구하는 탐욕스러운 거래이기도 했다.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에 고통스러울 만큼 뜨끈한 감각이 돌았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을 화인이 찍히기 직전.
하일론이 단죄의 사슬로 체샤를 빼앗았다.
순식간에 빈손이 된 키에른이 무표정하게 하일론을 쳐다보았다.
그는 하일론을 향해 그림자를 드리우며 질문했다.
“내 아이를 이단으로 심문할 겁니까.”
“그럴 리가.”
짧게 받아친 하일론은 사슬을 움직여 체샤를 품에 안으며 대꾸했다.
“요정이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토록 힘을 빠르게 발현할 줄은 몰랐을 뿐.”
“…….”
“요녀 리체시아의 딸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키에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여태 헛소리로 취급했던 것이 진실에 가깝단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일론은 그에게 냉정히 잘라 말했다.
“아이한테 정신 나간 소리 그만 지껄이고, 환역을 끝낼 방법이나 찾아보십시오.”
“요정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면 끝이라 하셨는데. 노예 사냥꾼을 죽여도 미동이 없으니 이번엔 신성 기사라도 죽여봐야 합니까?”
하일론과 키에른이 서로를 노려보며 2차전을 시작하려는 차였다.
이젠 눈물을 거의 그친 체샤가 웅얼거렸다.
“아찍 화가 나서 구래요…….”
체샤는 훌쩍이며 환역을 응시했다.
만약 요정의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이곳은 분명 아름다웠을 터였다.
현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이상적인 평화를 품은 환상의 공간이었으리라.
요정이 피워 낸 꽃은 현실 세계의 무엇보다도 어여쁘니 말이다.
미쳐 가는 요정을 진정시킬 방법은 당연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체샤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시도해 보기로 했다.
“쩨가 해 보깨요.”
눈을 감고서 천천히 힘을 일으켰다.
양손을 모아 쥐었다가, 반짝 눈을 뜨며 펼쳤다.
펼쳐진 손에서 빛의 나비가 무수히 퍼지며, 환역 가득히 피어난 꽃들이 일제히 꽃잎으로 변했다.
수천 송이의 꽃에서 흩날리는 꽃잎은 어두운 세상을 뒤덮어 나갔다.
그리고 꽃잎이 닿는 곳마다.
검은 땅이 사라지고 싱그러운 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