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barian of Seoul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0)
서울역 바바리안-121화(120/122)
121화 후회
박준필이 즉각 인수인계를 했다.
“이거 뒷수습도 못하고 가서 미안하네.”
“맡겨주십시오!”
부사령관 김준용이 깍듯이 경례했다.
강철두도 대충 작별을 고했다.
“후후, 다녀오지.”
“네, 잘 다녀오십시오.”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최준섭은 바로 수긍했고, 이은영은 질척거렸다.
“후후, 협상가의 일이다. 너는 빠져라.”
“제가 가야 대장을 지키죠.”
친위대의 역할이 그거다.
하지만 철두는 허락하지 않았다.
“돌아가서 성을 지켜라.”
“……알겠어요.”
이치상으로 생각해도 그렇다.
아이언헤드 성에서 무력으로 순위를 매기면 강철두 다음이 이은영이다. 철두가 호위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니 둘이 나뉘는 게 맞다.
“쳇, 대장은 성 걱정 안 돼요?”
“후후, 진태를 믿는다.”
아오, 또 할 말 없네.
“잘 다녀오세요.”
“그러지.”
철두를 지켜보던 박준필이 시의적절하게 끼어들었다.
“가세나.”
“후후, 그러지.”
철두와 박준필은 포탈을 넘었다.
파팟.
포탈을 넘고 보니 장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충성!”
“그래, 충성.”
“모시겠습니다.”
철두는 그쯤 작별인사를 했다.
“내일 보자고.”
“그러세나. 이 시간에 맞춰서 파주에서 봅세.”
다시 포탈을 타려면 지구 시간으로 1일이 지나야 한다.
박준필은 곧장 장교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서울로 향했고, 강철두는 근처에 보이는 아이언헤드 건물로 향했다.
“후후, 좋아 보이는군.”
정부에서 4층짜리 건물 하나를 불허해 주었는데 IH 그룹이 단독으로 쓰고 있었다.
철두가 막 몇 발자국 걸을 때였다.
츠츠츳.
손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푸른 슬라임이 문신에 스며들어버렸다. 은은한 빛마저 점점 줄어들더니.
<활동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전령이 비활성화됩니다.>
“음?”
철두가 손등을 툭툭 쳐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지구에서는 자는군.”
아마 전령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의 에너지가 노바에는 있고, 지구에는 없는 모양이다.
아무렴 어떤가.
지구에서는 사냥할 일도 없다.
꼬물거리며 주화나 아이템을 줍는 게 녀석의 일이니, 지구에서는 딱히 쓸모가 없다.
“헙!”
“회장님 오십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자신을 알아보는 부하 직원들의 안내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꽤 많은 인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개중에 안면이 있는 이가 부리나케 달려와 넙죽 고개를 숙였는데, 사호인 변우진이였다.
“헉, 대장님!”
“그래, 사람이 많아졌군.”
“네, 전부 노비스 전직을 마친 이들로, 지구와 노바 간을 오갈 전령들입니다.”
철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건장한 녀석들은 영지군 삼아도 되겠다.
“가족들은?”
“이주 준비를 거의 마쳤습니다.”
“좋아.”
시켜놓은 것은 다 했다.
“잘하고 있어.”
“헉, 감사합니다!”
“가자.”
“어디로 모실까요?”
“집으로 가야지.”
“헙…….”
“왜?”
“골든빌 말씀이십니까?”
“그럼 집이 또 어딨어?”
“……처분했지 말입니다.”
“음? 내 집을 팔아?”
철두의 말에 변우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호, 호텔에서 주무시면 안 되겠습니까?”
“음?”
철두가 턱을 쓰다듬었다.
“좋다. 가자. 내일 아침까지 파주에 가야 하니 근처로 가자.”
포탈 사용 가능 시간인 24시간이 지나면 곧장 신서울로 가야 한다.
다급한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차 준비시키겠습니다.”
곧 차가 준비되고 파주로 향했다.
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종두에게서 전화가 왔다.
– 회장님!
“누가 회장님이냐.”
– 사, 사장님.
“우냐?”
– 면목 없습니다.
철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시킨 일은 죄다 잘 처리한 서종두다.
용병대의 가족들 신원 파악도 끝냈고, 노바로의 이주 의사도 전부 조사했다.
앞으로 이주하고 싶은 이들을 노비스로 만들어 노바로 건너오게 도와줄 것이고, 아닌 이들은 인편으로 포탈을 오가는 전령에 편지라도 주고받을 터다.
“뭐가 문제냐?”
– 당했습니다. 넘겨받은 기업들의 재무 상태가 심각합니다.
철두가 피식 웃었다.
“문제없군.”
– 네?
“종두.”
– 네, 형님.
“근본을 잊지 마라.”
– ……근본 말씀이십니까?
“후후, 그래. 잘하고 있다.”
– ……감사합니다.
“너도 대충 정리되면 얼른 노바로 와라. 언제까지 조무래기만 할 거냐?”
– ……알겠습니다.
“그래, 조만간 노바에서 보지.”
-네, 사장님.
철두는 전화를 끊었고, 창밖을 보았다.
마침 휴게소를 지나쳤다.
‘핫도그 까비.’
철두는 무심히 말했다.
“다음 휴게소에 들르자.”
“네, 알겠습니다.”
철두는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핫바와 핫도그 호두과자를 먹었다. 감자도 몇 개 먹다가 의문이 들었다.
“무구마 말고 감자는 어째서 없지?”
노바의 구황작물은 무구마가 있다.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 고구마 같은 녀석인데, 정말 맛이 없었기에 허기진 게 아니면 딱히 먹을 게 못 된다.
감자처럼 이리 맛난 게 있으면 좋을 터인데.
노바가 다 좋지만, 음식만큼은 지구의 다양성을 따라갈 수가 없다.
“후후, 최대한 즐기고 가주지.”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고작 하루.
일곱 끼 정도밖에 못 먹겠군.
서둘러야겠다.
“맛집으로 가자.”
“예?”
“맛난 데로 나를 데려가라.”
“메뉴는 어떤 거로 하시겠습니까?”
“뭘 고르나, 그냥 순서대로 가자.”
“헙, 넵!”
철두가 알뜰하게 맛집 투어를 하며 파주에 올라왔을 땐 이미 해가 진 저녁이었다.
룸서비스로 안주를 몇 개 시켜먹고는 욕조에 몸을 담갔다.
“후후후후.”
이것이 호캉스란 것인가?
나쁘지 않군.
아니, 오히려 집보다 더 좋다.
골든빌 204호. 행복했다.
“돌아가면 목욕탕도 만들어달라고 해야겠어.”
진태라면 만들어주지 않을까?
성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결투장에도 한번 들러보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에 든 것은 하나다.
“발할라.”
신서울 인근에 나타났다는 외계종족이 과연 누굴까?
같은 고향 행성의 이들은 아닐까?
바바리안이라면…….
동족을 만나면 무얼 해야 하지.
드디어 나도 동족이 생기는 건가?
더 이상 지구인들 사이의 유일한 외계인이 되지 않아도 되는 건가?
부족은 아직도 나를 쫓고 있을까?
아니, 이거 바바리안을 만나도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겠는데?
설마 재수 없게 요정족이나 제국인을 만나는 건 아니겠지.
“후우.”
철두는 답지 않게 머릿속이 복잡했다.
꽈앙!
두꺼운 손을 들어 제 머리를 쳤다.
눈앞이 핑 돈다.
“후후후, 쓸데없는 짓을 했군.”
생각 같은 건 닥치면 해도 된다.
만나보면 알 터인데, 지레짐작으로 걱정하다니.
지구에 오래 있다 보니 멍청해졌군.
“후우!”
촤아아악.
철두는 욕조에서 나와 대충 물기를 닦고 옷을 입었다. 남들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철두는 지구에서나 노바에서나 같은 옷을 입었다.
나와 보니 변우진이 소파에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주무시겠습니까?”
“술이라도 한잔하자. 안주도.”
“안주는 어떤 걸로……. 다 시키겠습니다.”
“후후, 사호 제법이군.”
눈치가 많이 늘었어.
철두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룸서비스를 기다리는데, 말끔한 인상의 웨이터와 함께 희끗희끗한 머리의 중년인이 함께 모습을 보였다.
그의 뒤로는 딱 봐도 한 덩치 하는 양복쟁이 다섯이 함께였다.
“…….”
“…….”
철두와 중년인의 시선이 얽혔다.
의아해하는 철두의 얼굴과 여유로운 웃음을 짓는 중년인의 얼굴이 대비되었다.
“후후후.”
“기분 나쁘게 웃는군.”
철두의 말에 중년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이거, 내적 친밀감을 다지려고 해봤더니만 내로남불이 심한 친구였군.
“나는 이기택일세.”
“나는 강철두다.”
“같이 한잔하겠나?”
“싫다.”
“헛.”
단번에 거절당할 줄은 몰랐기에 이기택이 헛바람을 삼켰고, 뒤에 있던 양복쟁이 하나가 발끈했다.
“감히!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이기택 아니냐?”
“허, 어린놈의 새끼가. 예의 없이! 이기택이 네 친구냐?”
“내 친구는 진태, 준필이 뿐이다.”
“이이, 뭐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양복쟁이가 부들부들 떨었으나 이기택은 노회한 정치인답게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김 실장, 그쯤 하면 되었네.”
“하지만, 의원님.”
“어허, 물러나래도.”
“쳇. 너 조심해!”
김 실장이라 불린 녀석의 삿대질이 묘하게 신경을 거슬렸다.
이기택은 근처의 의자에 앉고는 잔을 들었다.
“한잔 따라 주겠나?”
“……? 예의 없는 놈이군.”
앉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하하하하, 참 재밌는 친구야.”
이기택은 호탕하게 웃고는 말했다.
“내 알아본 것보다 더 뾰족한 친구로구만 그래. 좋아. 본론만 이야기하지.”
“싫다.”
“어허, 들어만 보게. 듣는 데 돈이 드나?”
시간이 든다.
이것으로 인해 7끼를 못 먹을 수도 있고, 그사이 7번의 간식 시간 중 한번이 날아갈 수도 있다.
“굳이?”
“아주 파격적인 제안이 될 걸세.”
“좋아. 말해봐.”
“대가부터 말하지. 우리 당에 입당시켜 주겠네. 다음 선거 비례 1번은 자네 차지가 될 게야. 스무 살에 최연소로 의사당에 입성할 걸세.”
후루루루룩.
이야기를 들으며 룸서비스로 온 술을 한잔 마시곤 대꾸했다.
“싫다.”
“허, 싫어? 어째서?”
“싫은데 이유가 무엇이 필요하나?”
정확히는 남의 손에 의해 미래가 정해지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다. 물론 상대가 납득할 만한 언어로 풀어내 줄 배려 따위는 없다.
“싫으니 가라.”
“허, 젊은이. 후회할 텐데?”
“후회?”
철두가 웃었다.
“후후후.”
그래, 딱 한 번 후회한 적이 있다.
그때를 떠올리니 이거 괜히 기분이 나쁘군.
하지만 할아버지와의 약조가 있으니 한 번은 참아야겠지.
“사호. 쫓아내라.”
“네! 나가시죠.”
변우진의 완력에도 경호원들은 이기택의 앞을 막아서며 저지했다.
“어허, 감히.”
“오지 마.”
“어허, 밀지 마!”
변우진이 용을 썼으나 경호원 다섯을 감당하지는 못했다.
“쯧.”
지구에 오래 있으면 저 꼴이 난다.
스탯석도 몇 개 먹은 녀석이, 성장이 정체되어 저리 쩔쩔매지 않는가?
종두도 얼른 노바로 돌아와 열심히 수련해서 조무래기는 면해야 할 터인데.
“나와봐라.”
철두는 변우진을 지나쳐 막아서는 경호원의 따귀를 쳤다.
퍼억!
굉장히 섬세하고 미세한 컨트롤로 인해, 경호원은 고개가 홱 돌아가고 저만치 멀리 날아갔으나, 목뼈가 돌아가 절명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퍽, 뻑, 뻑!
김 실장이라 불린 놈과 이기택만이 깜짝 놀라 굳어있다.
“문제 있나?”
“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넌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어?”
어는 무슨.
뻐억!
김 실장이 미세 컨트롤 배려왕 약소 싸다구에 날아가 기절했다.
홀로 남은 이기택을 보며 물었다.
“문제 있나?”
“히익! 아, 아닐세.”
후다닥.
이기택이 서둘러 도망쳤다.
“문제없군. 후후.”
할배, 나 많이 참았다.
저놈들은 한 번 참아줬는데 또 덤비면 이제 끝이다. 사호가 쓰러진 경호원들을 밖으로 끌어내고 문을 닫았다.
뚜루루루.
때마침 변우진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변우진은 급히 철두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형님, 받아보셔야겠습니다.”
“종두냐?”
“아닙니다. 박준필 중장님입니다.”
“음? 준필이?”
– 철두!
“출발은 내일인데 이 밤중에 무슨 일인가?”
– 잠깐 볼 수 있겠는가?
박준필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다급했다.
“왜?”
– 김근수 대령이 외계 무리에 납치당했네.
“허.”
철두가 탄식했다.
– 사태가 심상찮네. 대책 회의 중이네만, 자네의 의견이 필요하네. 호텔로 사람을 보내겠네.
“알겠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친구가 이리 찾는데 가야지.
“그전에 하나만 묻지.”
– 말해보게.
“김근수가 누구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