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barian of Seoul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1)
서울역 바바리안-122화(121/122)
122화 결정
– 신서울 부사령관일세.
“하하하, 안다. 알아.”
– ……아무튼 곧 사람이 도착할 걸세.
띵동.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군복 입은 장교 둘이 호텔 초인종을 눌렀다.
“너는 돌아가라. 나 혼자 가지.”
굳이 번거롭게 변우진까지 데려갈 이유가 없었기에, 철두는 혼자서 군인들을 따라나섰다.
부르르릉.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장벽의 모습에 철두는 감탄했다. 경이로운 공사 속도다.
“여기는 올 때마다 달라지는군.”
“정부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고 있지요.”
장교는 제 일처럼 자부심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하긴, 오다가 본 굴착기만 수십 대에, 레미콘 차 수백 대가 줄지어 여기저기 오가는 모습도 보았다.
자원을 퍼부으면 못할 것도 없다.
“굉장히 빠르군.”
“국민들이 불안해하니까요.”
고블린의 출현으로 사람들이 대거 피난 가버렸다. 서울은 인근에 괴물이 출몰하니 불안감이 커졌고, 장벽의 건설로 이어졌다.
“후후, 저게 어딜 봐서 고블린을 막기 위한 장벽이냐?”
“……아는 사람들 눈엔 그렇지요.”
철두를 데리러 온 군 장교가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장벽은 누가 봐도 내부의 괴물이 아니라,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모양새였다.
장벽 위도 내부로는 오픈되어 있어도 외부로는 군데군데 총안구를 제외하고는 벙커처럼 막혀 있다.
더욱이 내부에 여러 시설 공사들이 한참인 것을 보면, 정부에서는 장벽 바깥보다 장벽 안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게 확실했다.
“좀비는 아직인가?”
“헛, 그, 후우, 아닙니다.”
장교는 깜짝 놀랐다가 상대가 상대이니 그러려니 했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자군.’
대놓고 저리 기밀을 발설하니 말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견된 바는 없습니다.”
“비공식은 있다는 소린가?”
“…….”
쓸데없이 예리하게 물어오네.
장교는 침묵으로 회피했고, 철두는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좀비가 창궐하든 말든 그의 본진은 노바다.
“다 왔습니다.”
차가 멈춘 건 기존에 포탈 주변을 아우르던 장벽 안이다. 이렇게 두고 보니 포탈을 중심으로 내성벽과 외성벽이 생긴 모양새다.
내성 안에도 변화가 컸는데, 넓은 주차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높은 건물들이 여기저기 지어지고 있었다.
포탈 근처의 건물로 안내되어 들어가 보니 반가운 얼굴의 박준필과 나이든 중년인들이 여럿 있었다.
“자네 왔는가?”
“후후, 왜 불렀나?”
철두의 격의 없는 말에 좌중이 깜짝 놀랐다.
설마하니 20살 갓 성년이 된 강철두와 오십이 넘은 박준필이 저리 허물없는 사이일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박준필은 철두에게 어깨동무하곤 한쪽으로 끌어갔다. 목소리를 낮추곤 당부의 말을 전했다.
“자네가 장난이 많은 건 알지만, 오늘은 조금 자중해주게.”
“왜?”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님인데, 너무 예의 없는 것도 좋지 않아.”
“오, 대통령.”
대한민국의 부족장!
철두의 초롱거리는 눈빛을 보며 더 걱정스러워진 박준필이 말을 보탰다.
“이 친구 체면을 좀 생각해주게. 날 위해서라도 조금 예의를 차려주게.”
“후후, 알겠다. 장난치지 않겠다.”
철두의 약속을 받아내곤 박준필이 중앙의 테이블로 다가가 소개했다.
“아이언헤드 용병대장이자, 아이언헤드성의 영주 강철두입니다.”
“소문의 주인공을 만나니 영광일세.”
철두는 대통령이 내미는 손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
“후후, 반갑습니다.”
“하하하, 듣던 것과 다르군요.”
김승태 대통령은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내 이번 기회가 될 때 용병대장을 한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리 무례를 무릅쓰고 초청했습니다.”
얼굴 한번 보자고 부른 건가?
쓰잘데기 없는 용건에 비해, 깍듯하군.
대한민국의 부족장으로서 잘 어울렸다.
“나도 영광입니다.”
“하하, 그래요.”
철두의 말에 박준필의 눈알이 휘둥그레 떠졌다.
‘철두가 빈말을?’
저런 말도 할 줄 알았던가?
강철두와 김승태 대통령의 대화는 꽤 화기애애했고, 박준필이 이쯤 끼어들어야 하나 고민할 때 먼저 선수 친 인물이 있었다.
“대통령님. 지금은 외계 무리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외교부 장관의 말에 김승태 대통령의 얼굴에 가득하던 미소가 씁쓸해졌다.
“그래요. 그래야지요.”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한다.
저들은 사절로 출발한 김근수 휘하 10인을 억류해 인질로 잡아두고 있으며, 현재까지 아무런 요구사항도 없는 상태다.
침묵하는 적을 대면한 상황.
많은 이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 쉽게 결정하질 못했다. 복잡한 심경에 강철두를 초청한 것도 대통령이다.
새삼 이 자리가 쉽지 않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할 것 같아서.
“…….”
대통령은 장고를 거듭했고, 회의실에 모인 십여 명의 사람들은 모두 초조한 얼굴이었다.
“아이언헤드 영주님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저요? 으음.”
철두는 턱을 쓰다듬었다.
“김근수가 중합니까?”
“어허, 이봐요. 말을 가려 하세요. 김근수 대령이 당신 친굽니까?”
국방부 장관이 욱하고 나섰고, 철두는 씩 웃었다.
“대머리에게 물은 거 아니다.”
“뭐? 뭐! 이 새끼가!”
반짝반짝 국방부 장관이 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박준필이 서둘러 그를 말렸다.
“아이고, 장관님. 참으십시오.”
“박 중장! 저 새끼 저거 말본새 봐. 저 어린노무 새끼가!”
“후후후.”
철두의 웃음은 사람을 열 받게 하는 묘한 힘이 있어, 국방부 장관은 반짝반짝한 머리를 붉게 물들였다.
“저, 시발놈이!”
“어허! 자중하세요!”
대통령의 호통에 국방부 장관이 끓는 주전자 같은 얼굴을 하곤 앉았고, 철두가 묘하게 미소지었다.
박준필이 그 모습에 이마를 짚으며 제발 자중해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김근수 대령이 중요하냐고 물었습니까? 중요하지요. 허나 대한민국 국민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저들이 사절로 간 우리 국민을 인질로 잡았다는 겁니다.”
대강의 사정은 철두도 이제 파악했다.
“나라면 가서 보고 판단합니다.”
“보고요?”
“후후, 인질을 잡아뒀으면 할 말이 있겠죠. 중요한 건 그놈들의 머리요.”
철두가 자신의 머리를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대통령이 탄식했다!
“저들의 진짜 의중을 알아야 한단 소리구려.”
대통령의 말에 국방부 장관이 버럭하고 나섰다.
“진짜 의중이고 뭐고가 없습니다! 이건 명백한 도발입니다. 지금은 힘을 보여야 합니다.”
여태 잠자코 있던 외교부 장관이 나서서 핏대를 세웠다.
“어허, 어찌 그리 싸울 생각만 합니까? 평화로 해결할 수 있다면 마땅히 그래야지요.”
“어허, 이리 답답해서야.”
철두가 오기 전부터 강경파와 온건파가 싸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결정을 앞둔 대통령이 심란한 마음에 내일 떠나기로 예정된 협상단의 박준필과 강철두를 부른 것이다.
“조용하세요!”
김승태 대통령은 곧 결정을 내렸다.
“예정대로 2차 협상단을 파견하겠소. 용병대장이 저들의 생각을 잘 좀 관찰해 주시오.”
“……?”
철두는 고개를 갸웃했다.
문제 있는 놈의 머리를 따는 일에 왜 생각이 필요한가?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박준필이 나서자, 김승태 대통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박 중장과 용병대장은 그만 나가서 쉬세요. 중책을 맡겨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마땅히 제가 해야지요.”
“……?”
철두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서자 김승태 대통령은 한숨을 쉬었다.
“국방부 장관.”
“네.”
여전히 씩씩거리는 그를 보며 명령했다.
“노바 군에 알려, 혹여 2차 협상단까지 사로잡힌다면…… 전쟁 준비를 하라 이르세요.”
“알겠습니다! 적들이 누구를 건드렸는지 똑똑히 보이겠습니다.”
본디 협상도 대등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다.
한쪽이 기울면 일방적이며 굴욕적인 수용만 있을 뿐이다.
“다들 나가보세요.”
지구에서의 1일이 노바에서 5일이다.
겨우 4시간 남짓의 시간마다 올라오는 보고서는 노바에서의 하루가 담겨 있었고, 시간 단위로 저쪽의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다.
지구 종말이니, 좀비 바이러스니 하는 와중에 최후의 도피처로 삼은 노바 행성의 정착에도 먹구름이 끼이는 형세다.
어디 하나 쉬운 게 없다.
회의실의 모든 사람들이 나갔으나 딱 한 명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직접 보니 어떻던가요?”
회의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중년 사내.
경찰청장은 천천히 입을 뗐다.
“멍청하다는 말은 확실히 틀린 소리더군요.”
“으음.”
“범죄자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 정서적 비틀림이 생기는 경우지요.”
경찰청장의 말에 대통령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범죄자에 가깝다는 겁니까?”
“하하, 아닙니다. 그저 무언가 계기가 되어 억눌렸던 싸……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고 봐야지요.”
경찰청장은 싸가지를 대체할 말을 찾으려다가 말았다.
강철두의 경우는 특이하다.
애초에 그가 멍청하다는 소문은 믿지도 않은 총장이다.
‘운동선수 중에, 그것도 엘리트 중에 멍청한 놈은 없지.’
뇌는 몸을 제어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운동지능이 낮은 이가 저토록 훌륭한 성적의 엘리트 운동선수가 될 수는 없다.
‘상식이 부족하다면 모를까. 멍청한 건 말이 안 되지.’
강철두의 기록을 전부 보았다.
그를 이해해보려 애써봤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를 직접 관찰해보았다.
그는 충분히 절제할 수 있으며, 때에 따라 말을 가려 할 줄도 알았다.
예의가 없다는 평가도 틀렸다.
그는 대통령 앞에서 지나치게 당당하긴 했으나 예의 없지는 않았다.
‘예의가 없는 게 아니라, 예의를 안 차리는 거다.’
무인도에서 옷을 벗든 입든 상관없는 것과 같을까?
힘을 얻고 그랬을까?
노바에 들고부터?
흥미로운 케이스지만 흔하기도 하다.
자존심과 자존감이 넘쳐 오만으로 변하며, 주변을 무시하는 경우는 많으니까.
“어쨌든 강철두는 범죄자들과 다릅니다. 그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트리거로 인해 성격이 변한 게 아니다.
내재된 폭력성, 이기심, 반사회적인 이로 변해버린 것이 아니다.
“그냥 통제하지 않을 뿐이지요.”
“……사람에 따라서요?”
“네에.”
확실히 국방부 장관 앞에서 대머리라고 놀린 건 인상 깊었다.
싸가지력이 높은 녀석이다.
“알겠습니다. 이만 가보세요.”
“네, 대통령님.”
막 문을 나서려던 경찰청장이 뒤돌았다.
“대통령님.”
“더 할 말이 있습니까?”
“시대가 변했습니다.”
“…….”
“범죄자면 어떻고, 폭력성이 있으면 어떻습니까? 그는 통제력이 있으며, 폭력도 이롭게 쓰이면 전쟁영웅이 되는 법입니다.”
“……귀담아듣겠습니다.”
“네, 그럼.”
경찰청장까지 밖으로 나서고, 김승태 대통령은 무거운 숨을 뱉었다.
“후우…….”
무겁구나.
이 자리가.
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다.
“이미 도망친 건가?”
당장 결정하기 무서워 2차 협상단의 결과를 보고 결정하자고 하였다.
그때가 되면…….
나는 결정할 수 있는가?
“후우.”
무겁고 탁한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