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16)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16화(116/252)
제116화
제16편 검의 비밀(4)
“그건 말이죠. 내가 어릴 때 만난 남자에 관한 이야기였답니다.”
클리아베이든의 불꽃이 천천히 점멸했다.
“사실 나만 아는 이야기라고 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500년쯤 전의 이야기니까요. 내 말이 맞을 겁니다.”
“이 검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입니까?”
루이드는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내 평생 들어온 이야기와 접한 지식으로는 그것만큼의 교집합을 찾기 어려워서요. 그러니까, 아주 작은 확률이지만 다른 이야기에 비해 관련이 높다는 거죠.”
그는 금고를 다시 잠그고는 조금 밝은 쪽으로 빠져나왔다. 그러면서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아주 특별한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옛 기억을 거슬러 겨우 기억해낼 정도의 일이었죠.”
주위로 빼곡하게 들어선 금서들조차 클리아베이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 그의 목소리 외에는 완전한 적막이 감돌았다.
“당신처럼 금속을 다루는 혈계 능력을 지닌 남자를 만났습니다.”
“금속을 다룬다고요?”
“네, 맞아요. 500년쯤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금속이 귀했으니, 내가 보기에 그는 정말 신비로운 사람이었지요. 땅에서 금속을 뽑아내 검과 농기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었지요.”
“…….”
루이드는 놀랐다. 그의 이야기 속 남자는 정말로 자신의 초상 능력과 빼닮은 혈계 능력을 지닌 자였기 때문이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마정석도 제어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아아, 맞아. 맞아. 그래서 루이드 D 포커드 그대를 보았을 때, 그 남자가 떠올랐었던 겁니다.”
“하지만 아주 놀랄 것도 아니에요. 루이드 님의 능력이야 아주 특별한 것이긴 하지만. 불이나 번개를 다루거나 하는 혈계 능력들이 겹치는 건 흔한 일이거든요.”
아샤라가 거들자 클리아베이든이 불꽃을 일렁이며 동조했다.
“그렇죠, 그렇죠. 그래서 그 남자 자체만으로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남자가 하던 말이 걸려서요.”
“그게 뭡니까?”
루이드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쩐지 클리아베이든의 입에서 나올 말이 자신을 겨냥한 화살인 것처럼 불안감을 느끼며.
“자신의 능력을 쓸모없게 만들고 싶다더군요.”
“……!”
“정말 괴상한 남자죠?”
루이드는 깜짝 놀라 입을 살짝 벌렸다.
혹시 그 남자가 괴한의 검을 이루고 있던 물질을 만들어낸 것일까?
금속을 다루는 자신의 능력을 무용지물로 만들기 위해?
하지만 완벽하게 아귀가 맞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물질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이 세상에는 금속과 마정석이 가득하니까.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쓸모없게 만든다는 걸까?
“그는 인간이었나요?”
루이드의 물음에 클리아베이든은 긍정했다.
“그런 것 같았어요. 물론 그때의 나는 마법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평범한 인간이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 스승도 별다른 말이 없었으니 아마 일반적인 인간 혈계 능력자였을 겁니다.”
클리아베이든은 그 당시에 혈계 능력자가 얼마나 적었는지, 마법의 위상은 또 얼마나 더 드높았는지 늘어놓았다.
용과 거인이 다스리는 야만의 시대였으며, 인간은 지금보다 훨씬 더 하찮은 미물이었다는 이야기까지.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자꾸만 클리아베이든 자신의 무용담으로 이야기가 새어 나갔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남자와는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는 거죠? 정보가 별로 없다고요.”
루이드가 다시 논점으로 대화를 끌어왔다.
“응, 맞아요. 그 후로 그 남자는 몇 번 더 마을 사람들을 도와준 뒤 사라졌습니다.”
“원래 여행자였나요?”
“그런 것 같았어요. 어디서든 오래 머무는 사람 같지 않았어요. 외롭고, 뭔가 어두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죠.”
“흠.”
“뭐, 사실 큰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어서 굳이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겁니다. 그가 어떤 방법을 시도했는지, 성공은 했는지 그 이후로 알아보려 했지만, 건진 것이 없었거든요. 게다가 난 그 물질로 이루어진 물건도 발견한 적이 없고.”
“마황이 찾는데도 찾을 수 없었습니까?”
“그에 관하여 찾아본 것은 내가 마황이 되기 전의 일이기는 합니다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전혀요. 금속을 제어하는 혈계 능력자에 관한 것은 당신을 만나기까지 정말 단 하나도 없었어요. 이상할 정도로요.”
클리아베이든은 루이드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흐음, 맞아. 이상할 정도였어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곧 마황의 자리에 올라가게 됐고 바빠서 줄곧 잊어버렸죠.”
게다가 그의 말대로 그 남자가 보통 인간이라면 몇백 년 이상을 사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금보다도 훨씬 금속이 없었던 시대에 빛을 발하지 못한 혈계 능력자가 평범하게 살다 명을 다한 것일 수도 있었다.
‘굳이 자신의 능력을 못 쓰게 하려고 한 이유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어쨌든 클리아베이든의 말대로 그의 이야기로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우리의 실력을 키우면서 괴한들의 정체를 밝히는 일에 집중해야겠군요.”
루이드는 클리아베이든과 아샤라와 함께 다시 검은 상아탑의 1층으로 내려왔다.
“자, 이제 동료들에게 돌아가 볼까.”
* * *
“루이드!”
아르헬이 펄쩍 뛰어올라 루이드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는 볼에 바람을 잔뜩 불어 넣고 루이드를 노려봤다가, 일부러 몸에 힘을 뺐다.
“어이쿠.”
루이드가 꽉 잡아채자, 아르헬은 루이드에게 안긴 채로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되었다.
“이렇게까지 오래 날 방치하면 어떡해! 확 폭주해버린다?!”
“뭐라고? 이제 다 컸다며, 폭주 같은 거 안 한다며?”
“치이! 루이드 하기 나름이지.”
“뭐어? 요게.”
루이드는 아르헬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주었다.
“별일 없었지?”
멜리옌에게 묻자 약간 피곤한 얼굴의 그녀가 미소 지었다.
“별일 없었죠. 이 넓은 상아탑을 죄다 둘러보겠다면서 셋이 마구 쏘다닌 걸 빼면요.”
멜리옌이 가리킨 곳에는 아르헬과 데모니어스뿐 아니라, 눈이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요한이 있었다.
“진짜 최곱니다, 공자, 아니 백작님! 이곳에 헤이란 경도 오실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요한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자랑거리가 늘어서 다행이구나. 그런데 엠마는?”
동료들을 둘러보던 루이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훈련하겠다며 장소를 안내받았어요.”
“훈련이라고?”
루이드는 깜짝 놀라 혀를 찼다. 물론 대견한 일이기는 했다.
괴한의 정체를 쫓으려면 앞으로 열심히 훈련해서 정진해야 했다. 하지만 루이드는 놀 때는 확실히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좀 놀면서 하기도 해야지, 사람이. 여기까지 왔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구경하기 힘든 에벨리 아닌가.
물론 루이드는 이제 오고 싶을 때마다 방문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녀가 얼마나 열심인지 아시잖아요. 그나저나 그건 뭔가요?”
멜리옌은 루이드 옆에 떠 있는 작은 불꽃의 형상을 가진 광원을 보며 물었다.
“아아, 이건…….”
“‘이건’이라니.”
클리아베이든은 루이드의 말을 가로채더니 멜리옌에게 다가갔다.
“본인의 이름은 클베. 위대한 위습의 의지를 이어받은 자.”
루이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클베? 위습의 의지?’
반면에 멜리옌은 아주 감탄한 얼굴이었다.
“위습!”
위습이란 고도의 경지에 오른 영혼이 변화되어 땅에 실체화한 모습이라고들 한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정의가 그러했다. 게다가 진짜 위습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경우는 아주 희귀했다.
드래곤보다 더 희귀한 존재라고나 할까.
해서 어떤 이들은 전설 속에나 남아있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믿었다.
그러나 멜리옌은 꽤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녀가 정령술사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위습은 정령의 일종이라고도 불렸기 때문.
이렇듯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위습은 마주치기 어려운 존재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절대로 정령은 아니지만……. 게다가 보편적인 위습도 아니고. 그는 마법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위습이 된 상태니까.’
루이드의 찡그린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멜리옌은 밝게 물었다.
“클베. 그는 우리의 새로운 동료인가요?”
“……음, 어……. 그렇다고 볼 수 있겠는데?”
루이드의 떨떠름한 대답에 클리아베이든이 눈을 흘겼다.
“뭐어. 어쨌든, 대충 일은 마무리됐고. 이제 처리할 건 하나 남았네.”
“처리할 것?”
모두의 시선이 루이드에게 쏠렸다.
“관광. 난 아직 못했으니까. 엠마도 좀 불러와.”
루이드가 씩 웃었다.
* * *
즈즈즈. 우우웅.
텔레포트 게이트가 신성한 푸른빛을 내며 진동했다.
“오오오!”
“드디어!”
“백작님께서 돌아오신다!”
“대단해, 떠나신 지 일주일밖에 안 되지 않았어? 에벨리는 엄청나게 먼 곳이라고 하던데.”
“참나, 이 사람. 텔레포트 게이트잖아. 텔.레.포.트. 마법이라고!”
그리슨빌 성의 마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기대감이 잔뜩 서린 눈으로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츠츠츠. 게이트 중앙의 아치 기둥 안에 푸른 마나가 일렁거리고, 마치 호수의 수면처럼 반짝이는 마나 속에서 사람의 발이 튀어나왔다.
“앗, 다들 기다리고 있었구나.”
루이드는 손을 들어 자신을 마중 나온 영지민과 가신들, 성의 사용인들을 향해 인사했다.
“와아아! 백작님!”
“와아아아! 백작님, 어서 오세요!”
“헉, 저것 좀 봐!”
모여든 영지민들이 루이드 뒤를 따라 나오는 존재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아르헬이나 데모니어스, 아샤라, 멜리옌과 엠마와 요한뿐이 아니었다.
바퀴가 달린 아주 커다란 새장에 든 공작새.
“세상에 저게 뭐람!”
그리슨빌의 영지민들에게 공작새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짐승이었다. 하지만 루이드가 데려온 공작새는 보통의 공작새를 아는 귀족이나 왕족이 있었어도 놀랄 특별한 것이었다.
“헉, 저건 에벨리의 공작새 아닙니까?”
마침 환송회에 참여했던 포션 공장의 마법사 중 하나가 눈을 번쩍 떴다.
“에벨리의 공작새? 그게 뭡니까?”
다른 마법사들이 놀란 마법사에게 물었다.
“저게 보이지 않아?”
“무슨…….”
“저 깃털 사이에 반짝이는 마정석 말이야.”
“마정석!”
마법사들은 깜짝 놀라 눈을 비볐다.
확실히, 온갖 색으로 반짝이는 깃털에는 화려한 색 이외에도 영롱한 빛을 내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깃털에 마치 모래알처럼 붙어 있는 마정석들.
“저건 에벨리에서 국빈급 인사에게만 바치는 특별한 공작새야. 깃털에서 마정석 가루를 추출할 수 있다고!”
“세상에…….”
“대단해! 백작님이 대단하시다는 걸 알긴 했지만!”
“그 에벨리에서 저런 귀한 짐승을 받아오시다니. 아마 크라우스 제국의 황제도 받지 못했을걸.”
마법사들은 잔뜩 들떠 저들끼리 숙덕댔다.
확실히. 루이드가 받아온 공작새는 대륙에 선물 받은 이가 몇 사람 되지 않을 정도로 귀한 것이었다.
“장인으로서 받은 만큼 사위에게 돌려줘야지.”
루이드의 귓가에 대고 클리아베이든이 속삭였다.
“……사위가 아니래도요.”
“핫핫핫. 요즘 젊은이들은 부끄러움도 많단 말이야.”
“……에휴.”
루이드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헤이란을 보았다.
“헤이란. 내가 없는 동안 그리슨빌을 잘 지켜주어 고맙다.”
“제 의무 아닙니까.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그간 별일은 없었지?”
그렇게 물으면서도, 루이드는 헤이란의 안색이 썩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챘다.
“그것이…….”
헤이란이 무엇이라 덧붙이기 전에 뒤에서부터 누군가가 민중을 헤집고 앞으로 나아왔다.
“루이드 D 포커드 백작님! 드디어 만나 뵙는군요! 얼마나 기다렸던지!”
이국적인 복색의 여인.
‘저 옷차림은 아마도…….’
짧은 머리의 여인은 주근깨가 가득한 앳된 얼굴을 찡그리듯 웃으며 상체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밀라비아에서 온 헤랏산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