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17)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17화(117/252)
제117화
제17편 쉴 틈이 없어!(1)
“밀라비아에서 온 헤랏산이라고 합니다.”
풋풋한 미소를 띤 헤랏산은 루이드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연예인을 눈앞에 둔 10대 소녀 같았다.
그녀의 짧은 붉은 머리가 바람에 살랑거렸다.
곱슬기가 있는 머리카락은 보송보송하고 동그래서 마치 민들레 홀씨가 날리기 전 같았다.
루이드가 내려다보자, 다글다글한 주근깨 위에 있는 그녀의 녹색 눈이 반짝거렸다.
“정말이지 뵙고 싶었답니다. 전 밀라비아 왕궁에서 루이드 포커드 님을 초대하기 위해 리벤톨 가문을 대표하여 보낸 사신입니다.”
리벤톨 가문. 루이드는 그 이름이 익숙했다.
밀라비아 왕국에 관하여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 왕궁에서 밀라비아의 사절 루빈 루시빌 백작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루이드를 밀라비아에 꼭 초대하고 싶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었는데, 그중에는 밀라비아에게 가장 강력한 가문 몇의 이름 또한 있었다.
‘리벤톨이라면 왕족 가문 중 하나다.’
밀라비아가 이그라 왕국을 상대하는 일에 꽤 공을 들이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괴한의 습격을 받는 일이 있었는데도 또다시 이그라에 사신을 보내다니.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맹목적이라고 해야 할지.’
헤랏산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앵두같이 작은 입으로 쉬지 않고 이곳까지 오게 된 여정을 늘어놓았다.
그 모습에서 루이드는 루시빌 백작을 떠올렸다. 물론 그와는 달리 헤랏산의 머리숱은 무척이나 풍성했지만.
“밀라비아의 모든 국민이 루이드 포커드 백작님을 뵙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래서 백작님을 모셔오기 위한 이번 여정에 직접 지원했답니다. 밀라비아는…….”
그녀의 열띤 연설에 루이드는 놀란 티를 내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
“먼 밀라비아에서 이곳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한데, 저는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는데요?”
보통은 에벨리에서 그러했듯이, 사신단이나 사절단을 보내기 전에 서신을 먼저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나 이렇게 친교적인 초대를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아아, 그것이…….”
헤랏산은 부끄러운 듯 잠깐 머뭇거리다가 결심한 듯 두 주먹의 불끈 쥐고 외쳤다.
“에벨리가 선수를 쳤다는 소리에 급히 꾸려진 사신단이라…….”
“네? 그걸 그렇게 소상히 내게 고해도 되나요?”
그녀는 조금의 포장도 없이 다짜고짜 내지른 것이다. 일반적인 사신이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쩐지 어수룩한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루이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까지 속내가 훤히 보이는 사람은 오래간만이었다.
그녀는 좋게 말해서 굉장히 순수하고 솔직했다. 사절로 부적합할 정도로 말이다.
루이드는 이런 풋내기를 보낸 점에 관하여 밀라비아를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그녀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따발총처럼 쏴댄 말들이 그저 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헤랏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가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 그러니까……. 제가 좀 어수룩했죠?”
“크게 문제 될 건 없으니, 일단 들어가시지요.”
루이드가 손짓하자 헤랏산은 냉큼 그의 뒤를 따랐다.
‘약간 강아지 같은 타입이네.’
루이드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헤랏산을 보았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샤라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클리아베이든이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 딸램이……. 라이벌이 너무 많구나…….”
* * *
집무실.
루이드는 실로 오랜만에 그리슨빌 성에 있는 자신의 책상에 앉았다.
원래라면 밀라비아의 사신을 알현실에서 정식으로 맞이하였어야 했으나, 루이드가 도착하기 전부터 머물고 있었으니 그 단계를 생략했다.
헤랏산은 책상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앉아 루이드가 내어준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루이드는 책상 위에 있는 보고서의 존재를 대충 확인하고 헤랏산에게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많이 기다리셨군요.”
“아닙니다! 루이드 포커드 백작님을 밀라비아로 모셔갈 수만 있다면 10년이라도 기다릴 수 있죠! 핫핫핫.”
헤랏산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밀라비아로 떠날 수는 없습니다.”
“엑!”
헤랏산이 빽 소리를 질렀다.
“하, 하지만…….”
“밀라비아에서는 미리 서신을 주지도 않았음은 물론이고, 서신을 주셨다고 해도 그리슨빌은 그리슨빌만의 일정이 있는 법.”
“그, 그건…….”
헤랏산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웅얼거렸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그녀가 들고 있는 찻잔과 받침이 서로 부딪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미 에벨리에 다녀와 영지를 관리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한지가 오랩니다. 한동안은 영지 일에 집중해야 하니 양해해주십시오.”
“……백작님의 말을 들어보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으세요.”
헤랏산의 침울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루이드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짜증을 내거나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밀라비아를 향한 엄청난 호의 표시일 정도.
그 사실을 헤랏산만이 모르는 듯했다.
“대신, 먼 밀라비아에서 이곳까지 나를 위해 와 주신 사신 헤랏산 그대는. 원한다면 내가 밀라비아로 떠날 수 있을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도 좋습니다.”
“헛! 정말인가요?!”
루이드의 말에 쭈그러들었던 헤랏산의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며 선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그리슨빌은 생각보다 지내기 편한 도시랍니다. 게다가 구경할 것도 꽤 있고요. 아예 작정하고 한적함을 즐기셔도 좋겠지요. 어떻습니까? 10년이나 걸리지는 않을 테고요.”
루이드가 부드럽게 미소 짓자 헤랏산의 얼굴에서 그늘이 완전히 사라졌다.
“저는 그렇게 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런 제안을 해 주시다니.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헤랏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루이드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의견이 맞으니 다행입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지원할 테니, 편하게 지내시고 밀라비아로 떠날 때 길을 안내해주시면 더 좋겠지요.”
“물론입니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서 온 것이니까요.”
헤랏산의 얼굴은 흥분으로 잔뜩 달아올라 있었다.
“그럼 아샤라. 밀라비아의 사신에게 그리슨빌의 안내를 맡아주겠어?”
루이드는 문 쪽에 서 있던 아샤라에게 말했다.
“앗, 제가요?”
“음, 피곤하다면…….”
루이드가 말한 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아샤라가 잘할 것 같아서 맡긴 것이지, 에벨리에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은 아샤라가 거부한다면 당연히 다른 자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게다가 아버지와의 만남 이후로 드디어 한적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 아닌가.
“아니에요. 사신 분 안내를 도와드리면서, 이쪽도 함께 이곳에 관해 알려주면 좋을 것 같네요. 클.베.씨.요”
아샤라가 클리아베이든을 가리켰다.
위습의 불꽃이 설렌다는 듯 이글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쉬지도 못하게 한다고 길길이 날뛰었을 텐데. 이제 한국에 떨어트려 놔도 일을 잘하겠어.’
아샤라의 성장(?)에 뿌듯해하며 루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엣헤엠! 자아, 이게 무엇이냐 하면. 에벨리에서만 나는 마법의 수정이다!”
아르헬이 상자가 잔뜩 쌓여 있는 수레 앞에서 으쓱거렸다.
“오오오오!”
“마법의 수정! 그것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겁니까?”
앞에는 아직 루이드를 맞이하러 왔던 영지민들이 가득 있었다.
그들에게 아르헬은 에벨리에서 받은 선물과 관광을 하며 사 온 여러 가지 특이한 물건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
“……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게 있으면 아마 7 클래스 마법사가 되는 건 식은 죽 먹기일걸.”
“오오오오!!”
“그럼 이제 아르헬 아가씨께선 대마법사가 되실 수 있겠군요!”
“멋집니다!”
영지민들이 환호하자, 아르헬은 신이 나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정말 귀여우시네요.”
헤랏산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르헬을 보며 방긋 웃었다.
“루이드 백작님의 여동생이시라죠?”
“잘 아시네요.”
“후후후, 루이드 님에 대해서라면 아주 열심히 조사했으니까요.”
헤랏산을 보며 아샤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쯤 밀라비아의 다른 영애들은 내가 부러워서 죽고 싶을 지경일 거예요.”
아샤라는 뭐라고 더 물어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깊게 물으면 물을수록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둘 사이에서 클리아베이든은 눈치를 보았다.
* * *
루이드는 여전히 집무실 책상에 앉아있었다.
달칵. 루이드는 클리아베이든에게서 받은 팬던트를 올려놓았다.
스으으. 잠깐 흐려졌던 화살표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화살표는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방향에 놈들이……. 하지만 그전에.’
일주일 사이에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그리슨빌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의 양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
7년의 가뭄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포션 제조 관련으로도 에벨리의 관리관이 한 명 머물게 되었고, 또 고무 제품과 밀폐용기 사업에 관하여서도 루이드의 의견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사서에게 명할 일도 있었다.
‘일단 중간중간 스킬을 통해서 확인하기는 했지만…….’
루이드는 초상 능력의 시스템 창을 띄워, 미리 확인했던 내용과 보고서의 내용을 비교하여 확인했다. 그리고 영지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띠링. 루이드의 머릿속으로 익숙한 알림음이 울렸다.
“어라.”
[스킬 행정 능력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킬 행정 능력 보통 발동 중.]“오오. 이거 엄청나게 초기에 얻은 스킬인데, 드디어 레벨이 올랐구나.”
루이드는 반가운 마음으로 스킬을 확인했다.
“자아, 뭐가 바뀌었으려나. 호오.”
행정 능력 스킬은 루이드가 어디에 있든 포커드 소유의 영지가 보유한 행정 서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음? 이 화살표 모양은 뭐지? 마치 SNS 창에서 보내기…… 표시 같은…….”
루이드가 시스템 창에 떠오른 화살표를 클릭하자 작은 팝업창이 하나 더 떴다.
“이건 마치, 메일 보내기랑 비슷해 보이네.”
루이드가 보기에 익숙한 아이콘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작은 창.
“아마도 이건 파일 첨부. 아마도 이건…….”
잠깐 시스템 창을 만지작거리던 루이드는 씩 웃으며 창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에 거리낌이라곤 전혀 없었다.
“자아, 받는 이. 그리슨빌 도서관 사서. 받을 내용은…….”
루이드는 사서에게 보낼 지시 사항이 적힌 종이를 집었다.
그리고는 시스템 창 위에 올려놓았다.
스으으. 루이드가 쓴 지시 사항 종이는 시스템 창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우우웅. 하지만 완전히 빨려 들어간 것이 아니고 지시 사항의 원본은 다시 루이드의 손으로 돌아왔다.
“좋았어, 역시 내 생각대로야.”
시스템 창에는 지시 사항이 첨부되었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진짜 메일이나 쪽지 보내기 기능이랑 비슷한 거잖아?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발송 버튼을 누르면, 내 지시 사항이 사서한테 전달된단 말이지! 대박!”
루이드는 발송 버튼을 누르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거라면 시스템이 발동하는 한, 난 어디서든 업무를 볼 수 있는 거 아냐? 진짜 대박인데, 업무 한정이긴 하지만. 이 세상에서 나만 쓸 수 있는 인터넷 같은 거 아니냐고!”
이 세상에서 혼자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와……. 진짜, 업무 한정이라는 것만 빼면 진짜 최곤데……. 일반 스마트폰같은 기능이 있으면……. 웹소설 어플이라도 깔아서…….”
루이드는 아쉬운 마음으로 시스템창을 보았다.
[전송 완료.]“호오. 전송 완료까지 확실하게. 정말 잘 전송 됐는지 확인해야겠지?”
루이드는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사서어~.”
“앗, 백작님!”
동그란 안경을 쓰고, 가지런한 일자 앞머리에 뒷머리는 길게 땋은 여성이 루이드를 반겼다.
“오랜만이시네요.”
“내가 보낸 지시 사항 받았어?”
“지시 사항이요?”
그녀는 모르는 눈치였다.
‘응? 시스템이 안 먹힌다고?’
루이드가 사서의 어깨로 흘긋 그녀의 업무 책상을 보았다.
“아, 저기 있네.”
루이드는 활짝 웃었다.
분명 자신이 작성했던 지시 사항이 적인 업무서가 그녀의 책상 위에 있었던 것.
“어라? 언제……?”
사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시 사항을 확인했다.
“장 신의 책을 따로 모아두라고요? 백작님께서 몇 번이나 읽은 그 책 말이죠?”
“맞아.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부탁할게.”
“물론이에요.”
사서는 방긋 웃으며 루이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햐, 좋은데.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이 5분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 가까워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박 스킬이다.’
이렇게 되면 일일이 성안을 오가지 않아도 된다.
모두에게 보고서를 써 놓으라고 하고, 루이드는 자기 방에 앉아서 모두 확인한 뒤 지시까지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업무를 완전히 자동화시킬 수 있는 것.
‘좋아, 좋아. 이거면 더 짧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일을……. 가만, 이거 그냥 일거리가 늘어나는 건가? 굳이 이렇게까지…….’
루이드가 인상을 찡그리는 순간, 도서관 밖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벌컥.
“백작님!”
루이드를 찾은 것은 헤이란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성주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