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18)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18화(118/252)
제118화
제18편 쉴 틈이 없어!(2)
“정말 멋진 영지예요.”
헤랏산이 불어오는 바람을 음미하며 아샤라를 향해 말했다.
“역시 소문대로군요. 전 대륙을 휩쓴 그 끔찍하고 끈질긴 가뭄이, 이곳에서만은 흔적도 느낄 수 없네요.”
“포커드 백작님께서 능력이 개화한 뒤 가장 먼저 하신 일이지요.”
아샤라는 존경을 담은 목소리로 동조했다.
클리아베이든 역시 그리슨빌의 넓은 농지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에벨리 역시 거대 마법을 사용해 자체적으로 곡식을 길렀지만, 가뭄을 대비해서 만든 것이 아니었었기에 수확률이 늘 부족했던 것.
“평범한 혈계 능력자가 해낸 일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아요.”
“루이드 님은 평범한 혈계 능력자가 아니니까요.”
아샤라는 굳은 의지를 담아 말했다.
아마 루이드 포커드를 아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말할 것이다.
혈계 능력자들이 대단한 것이야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듯 세계의 수준을 끌어올린 자들은 몇 없었다.
세계의 벽을 깨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다음 계단으로 발을 내딛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루이드 포커드가 수로를 만들어 농사를 수월하게 하고 영지민의 위생 등 삶의 질을 상승시킨 것은 불을 뿜어 성을 부수고, 물을 조종해 강을 범람시키고, 강한 힘을 이용해 전쟁에서 이기는 일차원적인 것과 차원이 달랐다.
“사시사철 늘 푸른 농지만이 아니에요. 수로 뿐도 아니죠.”
헤랏산은 벅찬 얼굴로 두 팔을 뻗으며 말했다.
“백성들의 표정만 보아도 난 알 수 있어요. 그들은 밀라비아의 백성들과 전혀 달라요. 삶의 방식도, 생각도 전혀 다르죠!”
그녀는 꿈을 꾸듯 심취했다.
“이그라의 백성들이 부러워요. 이그라의 왕족들이 부러워요. 루이드 포커드 백작님 같은 인재를 얻었다니. 그것도 순전히 운으로 말이에요.”
아샤라는 약간 황당해하는 얼굴로 헤랏산을 보았다. 사실 아샤라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하는 바였다.
만약 루이드 포커드가 크라우스 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겠는가?
제국은 루이드 포커드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제국을 위해서.
그건 아마 대륙의 다른 국가에겐 재앙이 될지도 몰랐다.
만약에 에벨리의 마법사로 태어났다면?
루이드 포커드의 명석한 두뇌라면, 게다가 마나 친화력이 있었다면?
아샤라는 그가 에벨리를 뒤흔들 엄청난 마법사가 됐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됐다면, 어쩌면 리얼 코어 따위는 필요 없었을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클리아베이든이 굳이 희생하지 않아도…….
어쨌든, 아샤라는 헤랏산의 말에 동의했지만. 그녀의 스스럼없는 솔직함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뭐, 맞는 말이긴 하죠.”
“가능하다면 납치 같은 걸 하고 싶을 정도예요.”
“뭐라고요?”
아샤라는 뜨악한 얼굴을 했지만, 헤랏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해맑은 얼굴이었다.
“하하하,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세요. 포커드 백작님처럼 강한 분을 납치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물론,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범죄라도 불사하겠다는 말이잖아? 라는 생각에 아샤라는 질색했다.
‘뭔가 위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여자야…….’
아샤라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한 뒤 한 걸음 물러났다.
“자, 그럼 대충 성은 다 둘러보았으니 돌아가 볼까요? 식사도 하셔야 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또 둘러보도록 하죠.”
“좋아요. 친절하게 안내해줘서 고마워요. 아샤라.”
헤랏산이 맑은 얼굴로 훌쩍 뒤돌았다.
“그런데 말이에요. 아니겠지만,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네?”
“포커드 백작님과 무슨 사인가요?”
“네에? 무슨 사이라뇨. ……당연히 동료죠.”
아샤라는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헤에……. 동료라. 그런가요?”
헤랏산은 묘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듣던 대로 백작님은 신분을 따지시는 분이 아니더군요. 동료라는 자들은 평민들이 가득하고. ……철저하게 실력주의시라죠. 그런 깨어있는 점 덕분에 이런 빛나는 성과를 이루신 것도 있겠지만.”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그런 식이면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 분수를 잊는 수가 있잖아요?”
순간 아샤라는 모멸감을 느꼈다.
헤랏산이 악의를 가지고 그런 말을 했을까? 아샤라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녀는 아주 본능적으로 타고나기를 신분이 낮은 자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귀족이나 왕족이라는 것들은 원래 이런 존재들이었다.
아샤라 역시 그녀가 밀라비아의 왕족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은 예상할 수 있었지만.
어째서일까, 이것은 아주 당연한 일인데도 기분이 나빴다.
물론 에벨리 바깥의 사람들보다는 훨씬 신분제에서 자유로운 아샤라였다.
하지만 이전에는 귀족들의 무례함을 그저 넘길 수 있었는데.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기분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분수를 잊은 것인가?
아니, 루이드 포커드에게 너무나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아샤라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 날 비웃는 건가요? 아무리 포커드 백작님의 동료라고 하지만, 밀라비아의 왕족에게 무례하군요. 당신, 평민이죠?”
“허, 무지한 자들이 두려움이 없다고는 하나. 아샤라는……!”
클리아베이든이 불꽃을 일렁이며 발끈하자 아샤라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정확히는 인간의 입과 같지 않았지만.
“읍, 으브븝!”
“……?”
헤랏산은 그저 커다란 눈만 깜빡거렸다.
“제가 거슬리게 했다면 죄송하지만. 헤랏산 님을 비웃은 건 절대로 아니랍니다. 하지만 헤랏산 님께 드릴 말씀은 있어요. 루이드 님께서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은 지금 이 대륙 어느 곳에도 없는 새로운 세계예요.”
아샤라의 말에 헤랏산의 눈이 조금 더 커졌다.
“이미 낡아버린 옛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이 세계는, 세계의 법칙은. 루이드 님에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분은 모든 걸 바꿀 수 있어요.”
아샤라의 눈이 빛났다.
“그분을 존경한다면, 그분이 만들어낼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다면. 함께하고 싶다면. 그런 낡은 시선으로는 따르기 힘들 거예요.”
그리고 아샤라는 뒤를 돌아 먼저 성으로 향했다.
헤랏산은 잠깐 멍하니 있다가 화끈,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여, 역시……! 역시 당신 그냥 동료가 아니죠?! 뭔가 있죠?!”
그녀는 후다닥 아샤라의 뒤를 따라갔다.
아샤라와 헤랏산이 그리슨빌의 내성 가까이까지 왔을 때, 헤랏산은 거의 아샤라의 로브에 매달린 채였다.
“내가 미안해요. 그런데 진짜 당신 백작과 아무 사이도 아닌 것 맞아요?”
“아이참, 인제 그만 해요!”
“미안하다니까요! 내가 좀 철이 없어요!”
“후우, 알겠다니까요? 사과는 받아들일게요.”
“그러니까 순순히 둘의 사이를…… 응?”
“어라?”
두 사람이 들어선 그리슨빌 내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아샤라가 한쪽에 서 있는 엠마를 찾아내고는 물었다.
“재판이에요.”
“재판?”
* * *
아샤라와 헤랏산이 내성에 도착하기 전.
아직 루이드의 집무실.
앞에 선 헤이란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살인 사건입니다. 심지어 대낮에 시가지에서 일어난 사건이지요.”
“그런데?”
루이드가 그리 묻는 이유는 있었다. 그렇게 대담하게 일어난 범죄를 굳이 자신에게까지 와서 묻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이그라에서는 각 영지마다 다르기는 해도, 대부분은 저지른 죄와 비슷한 무게의 형벌에 처한다.
누군가의 재물을 탐했다면, 탐한 만큼의 재물을 도로 토해내야 했고.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시가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범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범인을 밝혀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범인이 쌍둥이입니다.”
“허어.”
헤이란이 설명하는 사건의 정황은 이러했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쌍둥이 형제 필레모와 갈레모 중 하나였다.
그들은 함께 그리슨빌 성 시가지에서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늘 함께 다녔다고 한다.
두 사람은 부모도 자주 헷갈릴 정도로 얼굴과 목소리가 비슷한 쌍둥이였는데, 심지어 둘은 말투와 버릇까지도 닮았다고 했다.
시가지에서 벌어진 사건은 분명 쌍둥이 중 한 사람이 저지른 일.
하지만 범인은 곧장 도주했다. 얼굴은 확실하게 보았으니 후에 둘을 찾았지만, 그 둘 중 누구인지 밝혀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다 있나.”
루이드는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현재 두 쌍둥이 모두 잡아들였으나 두 사람 다 범행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여 집행이 되지 않고 있고, 두 사람 중에 범인을 판별하기가 어려워 난항입니다.”
헤이란은 곤란한 얼굴을 했다.
확실히 곤란한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 범인이 특정되지 않는다면, 가장 확률이 높은 자가 범인이 된다.
사건과 크게 연관이 없더라도 정황상 확실하지 않아도 말이다.
마치 러시안룰렛과 같달까? 참으로 미개한 방식이지만, 높은 수준의 수사법이 없는 곳이니 일반적인 일이었다.
헌데 이번에는 범인이 특정되어 있다.
쌍둥이 중 하나는 반드시 범인이다.
그런데 둘 중 누구인지를 판가름할 수 없으니, 오히려 범인을 정할 수 없고.
이대로라면 그 누구도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쌍둥이가 성주님께 재판을 요청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은 아니라고 호소하며 정당한 판결을 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성주인 루이드조차도 좋은 해답을 내놓지 못하면, 이 살인 사건은 범인 처벌이 흐지부지하게 될 수도 있었다.
어이없지만,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루이드가 지금껏 열심히 애써 왔지만, 아직까지 무척이나 미개한 곳인 것.
“살해 도구는?”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하는 동안 범인이 떨어트린 것을 수거했습니다.”
루이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아, 이거 전생의 대한민국이었다면 너무나 쉬운 사건일 텐데.’
이곳엔 CCTV도 없고, 과학수사대도 없다.
마법사를 쓴다면 비슷한 수사가 가능하겠지만, 그런 정밀한 마법을 사용하려면 아주 수준 높은 마법사가 필요했다.
‘마황 정도라면 이 일을 밝혀내는 게 식은 죽 먹기겠지. 하지만 지금은 위습의 모습이라……. 마법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했고.’
그때 루이드의 머릿속이 반짝였다.
“아, 좋다. 좋은 생각이 났으니. 재판을 열어 누가 범인인지 판단하겠다.”
“정말입니까?!”
헤이란의 얼굴에 드디어 화색이 돌았다.
그리하여.
쌍둥이 중 살인범을 가리는 재판이 열리는 순간, 영지를 둘러보러 나갔던 아샤라와 헤랏산이 도착한 것이다.
“재판이라니요?”
“살인 사건이 있었어요.”
“헉! 살인 사건.”
헤랏산은 얼굴을 찌푸렸다.
“범인을 색출해 내는 일에 어려움이 있어서, 루이드 님이 직접 재판을 열게 되신 거예요.”
엠마는 재판이 열리게 된 정황을 아샤라에게 소상히 고했다.
이야기만 듣고도 아샤라는 이번 사건이 꽤나 복잡하고 귀찮은 일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살해 도구가 수거되었다지만, 물건에서 기억을 읽는 마법은 7 클래스 마법사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었다.
“이런 궂은일까지 마다하지 않으시다니!”
헤랏산은 두 뺨을 감싸고 황홀한 눈으로 루이드가 앉아 있는 성 앞마당 광장의 재판석을 올려다보았다.
영지에서 분란이나 범죄가 있어 재판을 열고 처리하는 것은 성주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아샤라는 헤랏산에게 괜히 말을 보태지 않았다.
“필레모와 갈레모는 들어라.”
루이드의 음성이 넓게 울리자 재판을 구경하러 온 자들의 웅성거림이 멈췄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 인간의 도리를 버리고 죄악을 저지른 범인은 자백하라.”
“성주님! 억울합니다! 저는 절대로 그런 무시무시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아무리 제가 늘 짐승을 잡는 일을 하더라도, 사람을 해해서는 안되는 줄 압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제대로 모르겠으나……. 어쨌든 저는 아닙니다!”
쌍둥이인 필레모와 갈레모는 똑같은 얼굴로,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몸짓으로 루이드에게 호소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범인을 알아낼 수 없다면, 내 불쌍한 쌍둥이가 저지른 범죄를 덮을 수 있을 것이다.’
‘이대로 범인을 알아낼 수 없다면, 우리 중 누구도 벌을 받지 않게 되겠지!’
그들은 애써 공정한 판결을 원한다며 사건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쌍둥이는 루이드와 모인 관중들 앞에서 자신들의 알리바이를 늘어놓았다.
두 사람 모두 평소에 자신들이 하는 일과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전에 성으로 고기를 배달한 것은 누구인가?”
“접니다!”
“아닙니다! 접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었던 알리바이에 관하여서 자신이 했다고 고하고 있었다.
둘 중 하나는 분명 거짓말을 하는 상황. 하지만 그것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
루이드는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씨익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