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22)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22화(122/252)
제122화
제22편 쉴 틈이 없어!(6)
엠마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헤랏산이 딛는 바닥에서부터 빛이 바스러졌다.
어쩌면 불꽃 같기도 했다.
부싯돌을 튕겨서 일으키는 불꽃.
그때쯤 루이드도 그 사실을 깨달았다.
카아아아앙!!!
검과 검이 부딪히는 순간, 화악! 하고 불길이 치솟았다.
* * *
헤랏산은 밀라비아의 최고 왕족이었다. 게다가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게다가 그녀는, 혈계 능력자였다.
아주 어린 시절. 그 능력이 개화했다.
‘대단해! 헤랏산 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분명 밀라비아를 이끌 대단한 분이 될 거예요.’
‘혈계 능력자라니, 정말 귀한 인재잖아요?’
모두가 어린 헤랏산을 칭송했다. 3살밖에 되지 않은 그녀조차 이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알았다.
하지만 헤랏산은 능력을 포기해야 했다.
‘더러워, 혈계 능력자 따위.’
‘그만둘 수 없겠니? 그런 저주스러운 힘을 사용하는 것 말이야. 그건 네가 존재라는 증거야! 더럽고 야만적인 존재 말이야!’
헤랏산의 어머니인 론시아는 그녀의 능력을 거부했다.
과거, 론시아의 여동생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이 혈계 능력자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사고였고, 헤랏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별개의 사건이었다.
론시아가 10대 때 일어난 일이니, 헤랏산이 태어나기도 몇십 년 전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상처 입었던 론시아는 혈계 능력자라면 누구에게나 날을 세웠다.
자신의 어린 딸이라면 더더욱 용납이 되지 않았다.
론시아는 매일매일 헤랏산에게 빌었다.
제발 그 능력을 없애라고.
가능할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걸 깨달은 론시아는 더는 헤랏산을 만나주지 않았다. 고작 3살밖에 되지 않은 자식을 방기했다.
그리고 한없이 어머니를 사랑했던 헤랏산은, 정말로 그 능력을 봉인했다.
‘어째서 신께서 헤랏산 님의 능력을 앗아간 걸까요?’
‘어쩌면 착각이었을지도.’
‘어쩌면 저주를 받은 것일지도 몰라.’
주변에서는 수근거렸다. 그리고는 곧 헤랏산을 잊어갔다.
헤랏산은 뛰어난, 탁월한 왕위 계승자의 위치에서 순식간에 곤두박칠쳤다.
저주받은 아이, 은혜를 빼앗긴 아이.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해야 했다. 어머니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론시아의 사랑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늘 헤랏산에게 냉담했다.
능력이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그녀를 의심했다.
‘어머니, 정말이에요. 저 더는 능력을 사용할 수 없어요. 진짜예요.’
작은 손이 론시아의 손을 잡았을 때, 조각처럼 아름다운 손은 헤랏산의 손을 차갑게 내쳤다.
‘더러워.’
어린 헤랏산은 모든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았다.
계속 혈계 능력자가 아닌 것처럼 굴었다.
어머니에게 닿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자신을 증명했다.
자신은 밝고, 무해하고, 더럽지 않은 아이라고.
괜찮은 아이라고.
하지만 론시아는 그녀가 성년을 맞을 때까지 인정해주지 않았다.
‘나, 이그라에 가고 싶어!’
헤랏산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 차키아 리벤톨에게 부탁했다.
그녀가 이그라의 귀족, 루이드 D 포커드 백작의 영지에 사신으로 가도록 지시받았기 때문이었다.
차키아 리벤톨은 놀랐다.
헤랏산은 한 번도 자신이 먼저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주변 눈치를 봤고,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썼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사는 사람처럼.
‘정말? 이그라에 가고 싶어?’
‘응! 가고 싶어. 정말……. 하지만 비밀이어야 해. 포커드 백작은……. 혈계 능력자잖아?’
‘어차피 나 대신 네가 가려면 비밀이어야 해. 나인 척해야 한다고.’
‘안될까?’
차키아는 헤랏산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비록 그녀는 왕궁을 벗어나 본 적 없고, 바깥세상에 관해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말하는 그 입을, 다물릴 수가 없었다.
‘내 자격 증명을 겸한 임무야. 그래서 혼자 가기로 되어 있어. 그래도 다녀올 수 있겠어?’
‘응! 할 수 있어. 나 바깥에 대해서 공부 많이 해갈게. 그럼 할 수 있어.’
일이 잘못된다면, 차키아 역시 큰 벌을 받을 일이었다.
왕위 계승을 위한 자격 증명을 겸한 임무였다. 그걸 양보할 수 있을 정도로 차키아는 헤랏산을 위하는 친구였다.
‘중간에서 내가 연락을 받을 테니. 자주 보고해야 해. 일이 틀어지면 정말 큰 낭패를 보게 될 거야.’
‘물론이야, 고마워 차키아. 정말이야. 정말. 난 한 번도…….’
‘알아. 그러니까 나도 널 도와주는 거야.’
그렇게 헤랏산은 리벤톨 가문의 이름을 입어 이그라로 향했다.
이그라에 근접할 때까지는 차키아가 비밀스럽게 동행했고, 그 후로는 서신을 주고받으며.
그리고 도착한 이그라의 그리슨빌.
포커드가 다스리는 땅은.
‘혈계 능력자가 잔뜩 있어.’
헤랏산은 자신 외의 혈계 능력자를 본 것이 처음이었다.
밀라비아의 왕실에서는 일부러 피해다녔다.
혹여나 잠재운 능력이 다시 깨어나지는 않을지.
또 어머니가 증오하는 족속과 닿기라도 하면, 자신도 오염되는 것은 아닐지.
그런 알 수 없고 부정확한 두려움 속에서 헤랏산은 자신을 꽁꽁 숨기며 살았다.
하지만 밀라비아의 왕궁을 벗어났기 때문일까?
평생을 숨 막히게 하던 어미의 품을 벗어났기 때문일까?
그리슨빌에 도착한 헤랏산은 무엇이든 겪어보고 싶은 마음이 솟아났다. 새로운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루이드 포커드 백작의 모습은 헤랏산이 마음속 깊이 꿈꿔왔던, 사실은 강하게 원하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멋있다. 갖고 싶어.’
하지만 헤랏산은 서툴러서 그저 끙끙대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무슨 말만 하면, 포커드 백작의 마법사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헤랏산은 자신의 처지 때문에,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처럼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찮겠어요?”
이그라의 그리슨빌, 그곳의 성주 루이드 포커드 백작이 내민 검을 받아들었을 때.
헤랏산의 심장이 뛰었다.
마치 처음 뛰는 심장처럼, 크고 강하게 뛰었다. 새로 태어난 것처럼. 그리고 루이드 포커드와 검을 부딪칠수록 헤랏산은 어지럼증을 느꼈다.
이 울렁거림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헤랏산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아주 익숙한 기운이, 잊어버렸던 기운이.
그리웠던 기운이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헤랏산은 힘을 제어할 수 없었다.
그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모른 척, 없는 척, 심장 속에 처박아 두었던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카아앙!
몇 번째인지 모를 검을 부딪치는 순간. 헤랏산의 몸에서부터 불길이 치솟았다.
태어나는 신생아의 힘찬 울음처럼. 울부짖는 불길이 솟아올랐다.
화아아악!!!
불길 가운데서 헤랏산은 구원과도 같은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아아, 나는 줄곧 이러고 싶었구나. 나는…….’
헤랏산은 혼절했다.
* * *
화아아악!!
훈련장 중앙에서 미친 듯이 솟아오른 불길.
“루이드 님!!”
“꺅!”
“허억!”
루이드와 헤랏산의 대련을 지켜보던 일행들이 깜짝 놀라 굳어버렸다.
헤랏산의 몸에서부터 폭발하듯 피어오른 불길이 순식간에 그녀와 루이드를 삼켜버렸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엠마였다.
엠마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라?’
그리고 곧 엠마는 이상함을 느꼈다.
‘전혀 뜨겁지 않잖아?’
분명 불길 한가운데에 있는데도,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뜨거운 열풍이 불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태연하게 눈을 깜빡일 수 있었다.
엠마가 놀라는 사이, 누군가 엠마의 팔을 잡아끌었다.
휙!
루이드가 엠마 안아 들고 불길을 빠져나온 것.
“루, 루이드 님!”
“어라, 엠마도 괜찮구나.”
“놀랐어요. 큰일 난 줄 알고…….”
“아아, 나도 놀랐어. 헤랏산 님이 혈계 능력자였을 줄은……. 보니까 지금 각성한 것 같은데.”
“지금 각성했다고요?”
놀라는 엠마를 땅에 내려준 루이드가 뒤돌아 불길을 확인했다.
루이드는 헤랏산의 변화를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헤랏산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는 순간. 시스템이 알람을 띄워주었기 때문이었다.
[스킬 길들이는 자 발동.] [당신은 잠들었던 능력을 깨웠습니다.] [당신에게 큰 경험치가 따릅니다.]루이드는 헤랏산의 능력에 궁금한 것 천지였다.
‘잠들었던 이란 건 무슨 뜻일까. 그저 첫 각성이라면, 이런 어휘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의 푸른 눈에 붉은 불길이 일렁이며 비쳐 보였다.
‘게다가 불길이 전혀 뜨겁지 않다니. 어떤 능력인지는 확인해봐야겠군.’
루이드가 다시 불길로 다가가려 하자, 마치 용오름처럼 솟구치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어이쿠.”
루이드가 달려가 쓰러지는 헤랏산을 부축했다.
“으으…….”
“헤랏산 님. 정신이 듭니까?”
“백작……님.”
“엇.”
헤랏산이 루이드를 와락 끌어안았다.
“헉……!!”
“저, 저런!”
아샤라와 아르헬의 얼굴이 충격으로 얼룩졌다.
“……아무도 저를 판단할 사람이 없다고 했죠.”
헤랏산의 목소리는 불꽃에서 나왔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축축했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이게 뭔지, 맞는 건지. 어떤 건지, 어떻게 될지. 어떡해야 하는 건지.”
“…….”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이걸 원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헤랏산은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자신을 끌어안은 작고 마른 팔이 애처롭게 떨리고 있어서였을까.
루이드는 그녀의 이야기를 전혀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마음이 시큰거렸다.
“그리고 내 심장이 말하고 있어요. 이건 모두 백작님 덕분이라고. 백작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영원히 껍데기 안에서 살았을 거라고. 말하고 있어요.”
헤랏산은 마치 신이라도 들린 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힘이 깨어남으로 나는 이전보다 훨씬 명확하게 알 수 있어요. 모든 걸요. 마치, 지금까지는 한쪽 눈으로만 살아왔던 것 같아요. 분명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이건, 이건 나쁘지 않은 거죠?”
그녀의 동그란 눈은 간절해 보였다. 루이드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하는 말 대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린 혈계 능력자의 각성을 축하고 싶을 뿐이었다.
“두, 두 분 괜찮아요?”
동료들이 몰려들었다.
루이드는 자신을 끌어안은 헤랏산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실신할 것처럼 보이던 헤랏산이 미간을 찡그리고 한껏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와 결혼하고 밀라비아를 점령해요, 백작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