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23)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23화(123/252)
제123화
제23편 쉴 틈이 없어!(7)
“예?”
너무 황당한 발언에 루이드는 오히려 웃음이 터졌다.
물론 일국의 사절 앞에서 경거망동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기에 간신히 웃는 얼굴로 참아내고 있었다.
루이드 뒤쪽에서는 동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슨…….”
“사실 나는 리벤톨 가문에서 보낸 사신이 아니에요.”
헤랏산은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에엑! 뭐라고요! 그럼 밀라비아에서 사신을 보낸 적이 없다는……? 그, 그럼 당신은 누구……!”
아샤라가 거의 비명을 지르듯 물었다.
“아니, 아니요. 밀라비아에서 온 것은 맞아요. 그러니까…….”
“아뇨. 일단. 그, 그렇게 안겨있는 건 그만두죠?! 지금 정체도 모르는데……!”
아샤라가 헤랏산을 잡아끌어 일으켰다. 헤랏산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녀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순순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더니, 자세를 다잡아 예를 갖춰 인사했다.
“너무 늦게 정식으로 인사드리는군요. 저는 밀라비아 왕가의 헤랏산 밀라비아입니다.”
헤랏산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밀라비아 왕국의 이름을 부여받은 왕족. 그것은 왕위 계승권이 있는 가장 숭고한 혈족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놀란 일행을 향해 헤랏산은 천천히 입을 열었고, 곧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 * *
헤랏산의 이야기가 끝나자 장내에는 침묵만 감돌았다.
헤랏산은 자신의 깊은 과거부터 자신의 본래 모습과 이곳에 오게 된 경위, 올 수 있었던 이유를 다 털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뭐가 ‘그렇군요’ 에요.”
아샤라가 루이드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이거 괜찮은 거냐고요.”
“솔직히 말해서 내 입장에서는 상관없는 이야기잖아.”
“그, 그야…….”
어이없는 일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루이드 탓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상황.
‘아닌가, 헤랏산을 각성시킨 점에서 내 탓도 있나? 하지만 그건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테니.’
루이드의 표정을 살피며 헤랏산은 입을 열었다.
“전 혈계 능력을 각성하고도 전혀 사용할 수 없었어요. 그건 내 선택이었죠.”
그렇게 말하는 헤랏산의 목소리에서는 진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새 모든 걸 잊었어요. 나 자신과 내 능력 모두요. 잊는 게 좋을 거라고. 잊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곳에 와서 깨달았어요. 그렇지 않다는 걸. 나에게 있는 특별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젠 능력을 사용할 거예요.”
그녀는 아주 중요한 결단을 내린 것처럼 말했다.
물론 지금 헤랏산의 인생에서 다시 없을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밀라비아를 침공하자니. 그건 안 되죠.”
“어라. 왜, 왜죠?”
헤랏산은 벙찐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니에게 복수하고 싶나요? 밀라비아의 왕이 되어서 그들을 억압하고 싶나요?”
“……아, 음. 아뇨? 하, 하지만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정 왕위를 차지하고 싶다면, 정당한 방법으로 천천히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가면 될 겁니다. 헤랏산은 고귀한 혈통을 타고났고, 이제 능력도 되찾았으니까요. 틀렸나요?”
“아, 아니요…….”
헤랏산은 멋쩍은 얼굴을 했다.
‘너무 어려서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린 거야. 하지만 그녀와 이야기해 보면 알 수 있지.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겐, 증오가 없어.’
루이드는 헤랏산이 불쌍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아무리 부모에게라도 그런 일을 당하면 감정의 골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보처럼 착한 헤랏산은 그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어머니를 사랑할 것이다.
부모란 자식에게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니까.
루이드는 잠깐 상념에 잠겼다가 짓궂은 얼굴로 헤랏산을 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결혼은 또 무슨 소립니까.”
“그, 그건. 전 백작님을 사모하니까요!”
“뭐, 뭐어!”
숨을 들이켠 것은 조금 떨어져 이야기를 듣던 루이드의 동료들이었다.
특히 아샤라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부끄럼도 없이, 정말로 사람을 금방 좋아하는군. 이 여자는.’
루이드는 웃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우리가 만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죠? 저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루이드의 질문에 헤랏산은 미간을 찌푸리고 기억을 더듬듯 눈을 굴렸다.
“백작님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여기서 직접 본 모습은 정말 소문처럼 멋있었는걸요. 현명하고 강하고…….”
“그럼 결혼에 대해서는 얼마나 오래 고민해 보았습니까? 그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에요.”
“최근에 생각한 일이긴 하지만…….”
“거기에 제일 중요한 저의 의견은?”
루이드는 최대한 다정한 얼굴로 물었다.
헤랏산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마치 전쟁에라도 나간 것처럼 장엄하던 그녀의 얼굴은 금방 소녀의 것으로 돌아왔다.
“죄, 죄송해요.”
“됐습니다, 괜찮아요. 확실하게 말해두자면, 저는 지금은 헤랏산님과 혼인할 수 없습니다. 제겐 포커드의 땅을 다스릴 의무가 있으니까요. 지금 제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랍니다.”
루이드는 목소리를 낮춰 헤랏산에게 속삭였다.
그녀의 과거 탓에 모든 것이 서툰 헤랏산이니까.
세계에 관해서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사람에게 모질게 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재각성시켜 버렸으니까. 어쩐지 책임감이 든다고.’
루이드는 길들이는 자 스킬이 한쪽에만 우호도를 높이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처럼 이상한 건 잊어버리고, 각성한 능력을 어떻게 잘 살려볼지 생각해 보자고요.”
루이드가 방긋 웃으며 헤랏산에게 손을 내밀었다. 헤랏산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루이드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금은, 지금은, 지금은. 그럼 다음번에 언젠가는 된다는…….’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 * *
“루이드 포커드가 하고 다니는 일을 보았나?”
어두운 실내에 음습한 목소리가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두건을 깊게 눌러써 누구인지 얼굴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들이었다. 두건을 쓴 괴한들.
루이드가 쫓고 있는 자들.
그들은 좁고 어두운 방 안에서 흐린 초 하나만을 켠 채 중얼거렸다.
여러 개의 그림자가 중앙에서부터 갈라져 벽까지 길게 이어졌다.
“우리조차 접근하기 어려운 에벨리의 마황을 제대로 꼬드겼다지?”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비죽거렸다.
“덕분에 마황의 힘을 흡수하려던 우리의 계획이 수포로 들어갔다.”
“어쩐지 루이드 포커드가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낮은 목소리가 으르렁거렸다.
그는 화가 잔뜩 난 것 같았다.
“온갖 기행을 벌여도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확실히. 이번 일은 나도 신경 쓰이는군.”
차가운 목소리가 건조하게 말했다.
“그것뿐이냐?”
“…….”
“놈이 심상치 않아. 놈은 ‘그 능력’을 사용하는 놈이란 말이다.”
낮은 목소리의 말에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맞장구를 쳤다.
“내 생각에는 놈이 더욱 강해지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최대한 놈과 부딪히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겁이 나나 보군.”
“……나는 그저 ‘녀석’이 자극받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뿐이야.”
차가운 목소리의 말에 다른 목소리들도 조용해졌다. 그들은 ‘녀석’을 극도로 조심하는 것 같았다.
“루이드 포커드를 만난 이후로……. 어쩐지 ‘녀석’이 눈을 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차가운 목소리의 말에 정적이 흘렀다.
“그럴 리가 없어.”
“벌써 오래전에…….”
“그놈은 사라지지도 않는군.”
“사라질 수가 없겠지. 신의 힘을 나눠 받은 놈인데.”
“어서 제거해야겠어. 루이드 포커드 그놈을.”
“우리가 나설 필요가 없지 않아.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뒤에서 조종할 것이다.”
낮은 목소리가 훨씬 위험한 톤으로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실내의 사방이 키득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래, 맞다.”
“우리는 언제나 어둠의 뒤에서 모두를 조종하지.”
“우리는 인형을 부리는 술사들처럼. 안개 뒤에서 무대를 꾸미는 거다.”
목소리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배우를 정하는 것은 우리, 이야기를 정하는 것은 우리. 모든 것은 우리 뜻대로 될지니.”
“루이드 포커드를 죽여라.”
“루이드 포커드의 목을 가져와라!”
불길한 주술을 완성하듯이 노래와 외침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일순간에 촛불이 훅! 하고 꺼졌다.
* * *
“엣취취!!”
“응? 또 그러네요. 날이 이렇게 따듯한데요.”
아샤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루이드는 코를 훌쩍였다.
그들이 있는 곳은 여전히 훈련장이었다. 주위로는 루이드의 동료인 모든 혈계 능력자들과 정령 술사. 그리고 두 마리의 드래곤이 있었다.
또 헤랏산 역시 훈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훈련을 너무 열심히 했나 봐. 나 요즘 책도 잘 안 읽고 훈련만 죽어라 하잖아?”
“하, 참나. 그렇게 치면 전 어떻고요? 전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 줄여가며 헤랏산 님의 연구와 훈련을 돕고 있다고요?”
“음, 할 말 없다. 넌 이미 훌륭한 한국인이다.”
“뭐요? 한, 뭐라고요?”
루이드는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린 다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만 보아도 벌써 계절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벌써 석 달이 흘렀다.
그동안 루이드가 하려던 영지 일들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영지민들의 지문 등록과 주민등록 번호의 처리는 모두 끝났다.
그들에게 자신의 고유 번호를 외우게 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앞으로 등록증을 만들어 배부할 생각이었다.
은행을 열 준비도 끝났다.
애초에 은행을 열어도 영지민들은 생소한 시설에 사용이 적을 터.
영지민들의 교육과 함께 차근차근해 나가면 될 일이었다.
또 루이드는 새로운 범죄자 수용소를 건설했다.
이곳의 감옥은 사실 장기간 사람을 구류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니었다.
루이드 전생의 교도소에 있는 독방보다 못했다.
화장실이 따로 없는 것은 물론이고 몸을 누일 곳도 제대로 없었다. 오물과 뒤섞여 쉴 수도 없는 불결한 곳.
태형이라도 당한 뒤 이런 곳에 갇힌다면 일주일을 버티기 힘든 것이다.
사실 이런 감옥에 들어올 일은 잘 없었다.
이곳에서는 지은 죄를 그대로 갚아내야 했으니까.
그러니까 대체로 감옥에 갇히는 경우는 성의 주인이 협박하기 위해서라던가, 아니면 겉으로는 인자하지만, 실상은 잔혹하고 끈질기게 대상을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감옥을 루이드의 전생, 현대의 교도소와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건물을 올린 것이다.
건물을 짓는 일은 이제 루이드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법에 관한 것에 밝은 사람이 필요해.’
성주가 되기 위해 법을 공부한 루이드지만, 사실 이 세계의 법이 한 건 별것이 없었다.
항상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강한 자가 곧 법.
‘흠, 하지만 어렵겠지. 이런 세상에서 내 전생처럼 인권을 챙긴다는 게……. 하지만 흉내라도 내 보자.’
애초에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먹고 진행하면, 반드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루이드였다.
서서히 평민들의 입지를 상승시키는 일은 이미 오래전 진행되고 있었다.
‘일단 영지 일에 신경 쓸 것은 대충 이 정도 해결했고, 진행만 시키면 될 일이야.’
시작과 큰 틀을 루이드가 만들었으니 앞으로는 가신들이 해나가는 모양을 관리 감독하며 지켜봐 볼 생각이었다.
이제는 행정 능력 스킬의 레벨도 올랐다.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업무적인 서류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 공간적 제약도 벗어난 것.
그러니까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영지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앗! 핫!”
요란한 기합 소리에 루이드가 뒤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