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25)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25화(125/252)
제125화
제25편 형제 전쟁(2)
그리슨빌 성의 복도.
“루이드 님!”
헤이란이 다급하게 루이드를 불러세웠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슨빌을 수호하는 건 무리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
루이드의 물음에 헤이란은 오히려 말을 잃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모든 면에서 그랬으니까.
이 전쟁이 승산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정신 나간 발언이리라 헤이란은 생각했다.
아데리오의 10만 대군은 일개 성주가 혼자서 막아낼 만한 규모가 아니었다.
이미 킬베리움과 센티미온에 원조를 요청한 상태고 다른 주변 영지에도 서신을 보냈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병력 차이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말입니다.”
“음, 정확하게는 계란으로 바위 버티기지. 하하하.”
“지금 농담이 나오십니까?”
발끈한 헤이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 생각에는 그리슨빌을 포기하고 물러나야 합니다. 킬베리움까지라도 물러서야 합니다. 이그라 왕국 군이 원조를 보내줄 때까지…….”
“어이, 헤이란. 진정해.”
루이드의 눈에는 헤이란이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이그라에 충성을 맹세한 귀족으로 어떻게 영지를 포기하고 도망가겠어? 심지어 아직 전투는 일어나지도 않았잖아.”
“그건…….”
싸움 앞에서 패닉하는 것도, 꼬리를 감추고 도망치자는 것도 헤이란답지 않았다.
그의 실력은 늘 인정할 만한 수준이었고, 또 눈치가 빨라 루이드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도 없었다.
지금껏 보아온 전투에서 언제나 용맹하게 싸웠다. 국가 간의 전쟁만큼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지금 헤이란의 모습은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 보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금방이라도 이곳을 박차고 달아나 버릴 것처럼 겁에 질린 모습.
‘물론 떠돌이 용병 출신이라, 처음부터 우직한 충성을 기대한 것은 아니야.’
그래도 루이드는 헤이란을 기사로 임명하고 성주 대리인을 시킬 정도로 그를 신뢰하고 있었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은 충성심과 성실함을 보여주었던 헤이란이었다.
‘사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전쟁은 승산이 거의 없긴 한데.’
일반적으로, 어떤 면으로 보나 개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헤이란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루이드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아무 대비도 하지 않는다면, 분명 네 말대로 우리는 개죽음 당하고 말겠지.”
“…….”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
“물론 아닙니다만…….”
헤이란의 얼굴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았다.
‘전쟁에 트라우마라도 있는 걸까? 그렇지만, 영지 전 때는 아무런 일도……. 아니면 아데리오 왕국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루이드는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필요하다면 헤이란이 먼저 입을 열리라 생각했다.
그 정도로 헤이란과 지낸 세월이 짧지 않았다. 루이드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헤이란의 어깨를 쥐었다.
“특별팀을 꾸려 유격전을 벌일 거다.”
“예?”
“이런 때를 대비하기 위해 훈련해 온 것 아니겠어? 내 특별…….”
루이드는 적당한 호칭을 떠올렸다.
“내 특별 수호단 말이야.”
마음에 드는 호칭이었다. 수호단. 오직 루이드만을 위한 수호단.
“유격전이라면…….”
“어쩌면 놈들은 이곳까지 오지 못할 수도 있단 말이야.”
루이드는 헤이란을 다독이며 미소 지었다.
* * *
“저기 좀 보십시오! 이곳에서부터 이그라의 땅입니다.”
“하, 저 비옥한 토지를 보라지.”
아데리오 병사들이 술렁였다.
그들이 몇 해 동안 보지 못한 푸른 들판이 보였다.
“이렇게나 풍요롭게 지내고 있으면서……!”
“형제의 나라네 뭐니 하며 우리에게 기댈 때는 언제고……!!”
병사들의 분노가 순식간에 들끓었다.
“모두 조용, 조용!”
시델이 외쳤다. 그러면서도 그의 깊은 눈은 푸른 들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밀을 나누어 달라는 요청에 그렇게 과격한 반응이 있을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싱그럽고 푸른 들을 보며 그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그라는 풍족하다.
대륙을 뒤덮은 가뭄에도 마치 신의 보호를 받은 것처럼 이곳만은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시델의 머릿속에서도 분노를 묶어놓았던 무엇인가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이 푸르고 비옥한 땅을 보며, 희망에 젖었을 동생 클리오멘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잘 익은 밀밭처럼 반짝이던 그의 머리카락을 떠올린 순간, 시델은 더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자, 아데리오의 장병들이여! 우리를 배신한 형제에게 매를 들어라!”
시델의 외침에 아데리오의 10만 군사가 언덕을 내려갔다.
그들의 발소리에 땅이 울리고 함성은 하늘을 찢을 듯 울려퍼졌다.
* * *
“로자릭 남작의 영토가 아데리오군에 당했다는군.”
어두운 선술집에 모여 앉은 장사꾼들이 수런거렸다.
“얼른 이곳을 떠나야겠습니다.”
“그래, 군대는 우리보다 훨씬 느릴 테니까.”
“하아, 아데리오군이 로자릭 남작의 시체를 무자비하게 훼손했다지요? 성의 어린아이와 여자까지 모두 죽이고 말입니다.”
“그래, 로자릭 남작령에서 여기로 도착하자마자 지체하지도 않고 바로 떠난 킬론 상단의 상인이 그러더군. 하마터면 자기도 전쟁에 휩쓸릴 뻔 했다고. 정말 끔찍한 일이야.”
“참 이상한 일이군. 그 아데리오가 갑자기 침략 전쟁을 벌이다니. 크라우스 제국도 아니고 말이야! 이그라와 형제 국가 아닌가? 그들이 그럴 줄은 몰랐어!”
“이그라 바깥의 상황에 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완전히 바싹 마르고, 땅을 적시는 건 오로지 인간의 피뿐이라지요. 사실 이렇게 된 것은 뻔한 일이었어요.”
“그래 맞아, 오히려 꽤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하네.”
“이제 이 나라 이그라는 늑대 앞에 선 양일 뿐이야.”
“차라리 밀라비아로 떠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곳은 말랐어도 이그라 왕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다시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더군.”
그들은 독한 술을 마시며 한탄했다.
모두 로자릭 남작의 영토에서 미리 도망치거나 다른 영지로 이동하고 있는 장사꾼들이었다.
“우리도 떠나야 하지 않겠어?”
“어디로 어떻게 떠난단 말인가. 우리 집에는 말도 수레도 없네. 걷지 못하는 아이도 둘이나 있고.”
장사꾼들의 테이블과 약간 떨어진 곳에 앉은 농민들이 불안한 눈으로 말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앉아서 죽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큰일이야. 곧 우리 영지까지 들이닥치겠어.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이대로 쭉 북쪽으로 움직이면 그리슨빌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무엇인가 바뀔지도 몰라.”
“그리슨빌이라면 포커드의 삼남인 백작이 다스리는 곳이지?”
“그는 혈계 능력자라고 하더군.”
“물론 소문을 들어 알고는 있지만……. 혈계 능력자 하나 있다고 해서 10만 대군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귀족들 사이에서 아무리 루이드의 소문이 자자하다고 하더라도, 외진 영지의 농민들에게까지는 아니었다.
이그라의 최남단이자 국경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대에 위치한 할리우피스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들은 불안하고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걱정을 쏟아냈다.
이웃하는 영지가 격파당한 소식을 듣고 할리우피스의 델 자작은 방랑 기사들과 용병까지 모두 끌어모아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겁에 질린 농민들과 장사꾼들이 영지를 이탈하느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나마도 떠날 수 있는 자들은 형편이 나았고, 떠날 수 없는 자들은 자리에서 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헤이란을 시켜 이곳을 원조할 병사들을 보내긴 했는데 말이야.”
두건을 덮어쓴 루이드가 잔에 담긴 맥주를 홀짝였다.
델 자작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리슨빌의 병사들을 보냈지만, 루이드는 그와는 별개로 이곳에 도착한 참이었다.
“켁.”
끔찍한 맛에 혀를 내두르며 잔을 내려놓은 루이드는 질색하며 잔을 밀어냈다.
“이상하네. 우리 맛 좋은 술 비법을 다 훔쳐갔을 줄 알았는데.”
“여기가 촌구석이라 그렇죠. 안 마실 거면 이리 줘요.”
아샤라가 루이드가 내려놓은 잔을 빼앗았다.
“난 킬베리움이 제일 촌구석인 줄 알았다고.”
루이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론 성도가 아닌 작은 마을에 들린 것이긴 했지만, 루이드가 직접 다스리는 그리슨빌의 작은 마을에 비해서도 낙후된 곳이었다.
평민들의 행색도 루이드 각성 이전의 킬베리움을 연상시켰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정보를 나눠 줘도 한계는 있군.’
그나마 가뭄을 이기기 위해 왕국 차원에서 전파한 수로 기술 덕분에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이 건사할 수 있었던 정도였다.
“그나저나 소문대로라면 아데리오 군의 만행이 너무 끔찍하네요.”
아샤라가 진저리쳤다. 루이드 역시 그녀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핏빛으로 변해버린 강과 시내.
불타오른 성과 마을, 마치 게걸스러운 황충이 쓸고 간 듯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영지.
전쟁이란 것이 원래 다 그랬다.
사람을 죽이고 상대가 가진 것을 빼앗고, 자신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을 학살하는 것이다.
인권이나 도덕을 바라는 게 욕심인 세계지만, 아데리오군의 행위들은 루이드조차 마음의 동요가 일도록 만들었다.
‘로자릭 남작이 죽을 때까지 천천히 가죽을 벗겼다지.’
아데리오는 대륙 극단에 있는 야만족들과 달랐다. 그들은 이그라와 비슷한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고, 교류 역시 활발하던 국가.
‘심상치 않아. 강렬한 증오를 가지지 않고서는 할만한 행동이 아니야. 아무리 이런 야만적인 시대라고는 해도, 이곳에서도 결코 보편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테이블에 둘러앉은 엠마와 솔라 역시 아무런 말은 없었지만, 아데리오의 행위에 경멸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르헬과 데모니어스를 두고 와서 다행이에요.”
아샤라가 맥주를 쭉 들이켰다.
“아무래도 아직 어린애들이니까, 되도록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달까.”
루이드는 턱을 문지르다가 일어났다.
“아무래도 더는 지체하면 안 되겠어. 마침 근방까지 왔다니 서두르자.”
날이 어두웠지만, 루이드는 발길을 재촉했다.
더는 이그라의 무고한 백성들이 전쟁의 희생양이 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중요한 건 치고 빠지는 거다. 모두 명심하도록 해. 절대로 방심해서도 안 돼. 난 너희 중 그 누구도 잃을 생각이 없으니까.”
루이드는 주점을 나서며 아샤라와 엠마, 솔라를 돌아보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샤라는 내가 지킬 겁니다.”
아샤라의 오른쪽 어깨 옆에 도깨비불을 닮은 빛이 솟아올랐다.
위습의 형상으로 있는 마황 클리아베이든.
“참나, 지금은 간단한 마법조차 제대로 못 하면서 무슨.”
아샤라는 민망해하며 클리아베이든을 가방에 쑤셔 넣었지만, 루이드는 그 덕분에 든든했다.
담담한 척하고 있지만, 사실 10만 대군을 무너뜨리기 위해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일이란 살 떨리게 두려운 일이었으니까.
동료의 목숨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가자, 놈들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우쳐 줘야지.”
루이드는 말에 올라탔다.
* * *
“형님.”
마레오가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형인 시델의 막사 안에는 술 냄새가 가득했다.
마레오는 눈을 찌푸렸다.
“너무 많이 드신 것 아닙니까?”
그의 타박에 시델은 코웃음을 쳤다. 마레오는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이그라의 성을 하나씩 강탈할 때마다 큰형 시델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매일 술을 들이키고 잔혹한 형벌을 집행했다.
귀족들을 잡아 이그라와 협상하는 일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여 나갔다.
마레오 역시 이그라에 대한 분노를 가진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시델이 너무 흥분하는 것은 전쟁에서 유리할 수 있는 다른 수들을 놓치는 꼴이 될 터였다.
게다가 이건 아데리오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전쟁을 이끄는 사람은 형인 시델. 마레오가 아무리 형제라고는 하나 크게 왈가왈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리 알아본 바로는 하루 이틀만 더 가면 할리우피스라는 곳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곳을 점령하면 새로 물자들을 보충할 수 있을 겁니다. 부족한 군량밀도요.”
“어딜 가든 곡식이 넘쳐나서 좋구나.”
시델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은 괴로움이 담긴 웃음이었다.
전쟁과 분노와 증오가 시델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놈의 병사들은 먹여도 먹여도 배고프다고 야단이니.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어.”
10만이라는 대군을 이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기본적으로 병사들이 먹을 음식과 물. 음식이 없으면 아데리오 군은 더는 전진할 수 없었다.
무려 10만의 입이다.
그러니 굶주린 메뚜기 떼처럼 이그라의 영지를 초토화시키며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티끌 같은 생명조차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우는 황충 무리처럼.
전진하지 않으면 길에서 아사하는 것은 아데리오군이 되리라.
시델은 절벽 끝에 선 사람처럼 아찔한 기분이었다. 그는 독한 술을 쭉 들이켰다.
어찌 되었든, 이대로 이그라의 왕도까지 밀어붙이는 일이 불가능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대로만 하면 된다. 이대로만……. 금방 끝날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전쟁 따위는. 우리 아데리오의 분노를 보여주며. 더욱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다.’
시델은 주문처럼 생각을 되뇌었다.
그것은 이 전쟁에서 아데리오가 이기든 지든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기 위해 술과 함께 필요한 주문이었다.
중얼거리는 시델을 보며 마레오가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바깥에서 날카로운 굉음이 울렸다.
꽈과광!!!
그리고 새된 고함이 들렸다.
“불, 불이다! 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