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28)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28화(128/252)
제128화
제3편 형제 전쟁(5)
“뭐라고?”
시델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루, 루이드 포커드 백작이 사령관님을 뵙기를…….”
콰아앙!
시델은 또다시 탁자를 내리쳤다. 그에 반해 마레오는 호기심이 인 얼굴이었다.
“루이드 포커드가? 왜?”
“자세한 것은 사령관님을 만나서 이야기할 것이나, 거래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래라.”
“예, 오늘 밤 강기슭에서 대면하시기를 요청했습니다. 서로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고요.”
“그렇군. 오늘 밤이라.”
마레오가 턱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굴리는 동안 시델은 소식을 전해온 병사를 노려보았다.
“톰 헹먼이라고 했나. 그대가 직접 루이드 포커드와 대화했나?”
“아, 네, 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사로잡혔으나, 사령관님께 말을 전하라며…….”
“그렇군. 그들에게 목숨을 구걸해 살아남았군.”
“예?”
스릉. 시델이 검을 뽑아 들었다.
“형님!”
서걱!
시델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마레오가 말리지도 못할 만큼 빠른 움직임이었다.
촤아악!
정찰병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하지만 시델이 너무 취한 탓인지 목이 날아가지는 않고, 한쪽 어깨가 거의 절단되어 너덜거렸다.
“이자를 옮겨라!”
마레오가 소리치자 바깥에 있던 병사들이 톰 헹먼을 옮겼다.
“형님 무슨 짓입니까!”
“이놈이고 저놈이고 할 것 없이, 이그라의 눈치를 보며 설설 기고 있구나. 마레오! 정신 차려라. 이놈들은 저들끼리 호의호식하면서 부탁하기 위해 선물을 들고 찾아간 우리 형제를 비참하게 죽인 놈들이다!”
“……아무리 그래도. 형님,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그들과 이야기해서 나쁠 것이 없습니다. 거래라고 하니, 혹 이그라에서 곡식을 내어준다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 형제를 죽인 놈들의 곡식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빌어먹자는 것인가?”
“형님. 지금 루이드 포커드의 야습으로 병사들의 사기가 말도 안 되게 떨어졌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그에게 당했죠.”
마레오는 시델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할리우피스의 전쟁이 시간을 끌게 된다면, 우리 아데리오 병사들은 칼에 맞아 죽는 것이 아니라 들에서 굶어 죽게 될 겁니다.”
“굶어 죽기 전에 밀어붙인다. 어쨌든 죽을 목숨. 아데리오를 위해 모두 바치리라.”
콰앙!!
이번에 탁자를 내려친 것은 마레오였다.
탁자는 반으로 갈라져 버렸고, 마레오의 눈에서는 불이 튀었다.
죽지 않기 위해 출정한 전쟁이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이미 죽은 형제의 복수가 있었지만. 마레오는 아직 살아있는 아데리오의 병사들, 백성들도 중요했다.
전쟁을 진행하면서, 루이드 포커드에게 당하면서. 복수에만 물들어 있던 마레오의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그에 반해 형인 시델은 이성을 잃고 무너져 버렸다.
마레오는 이대로 병사들을 사지에 몰아넣을 생각이 없었다.
“형님. 백성들을 생각하던 자상하고 너그러운 형님의 모습은 어디로 갔습니까. 이렇게 다혈질에 생각이 짧은 저도 할 수 있는 생각들을. 현명하신 큰형님께서 어찌 잊으셨단 말입니까.”
마레오가 테이블을 두쪽으로 갈라놓는 것을 보고 시델은 잠시 정신이 번쩍 뜨였다.
동생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 출정과는 너무도 달라졌다.
이그라의 왕도를 점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눈앞의 할리우피스에서 전쟁하는 것마저 검은 안개가 낀 것처럼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마레오, 네 말이 맞다.”
시델은 아픈 머리를 손으로 쥐며 끙끙거렸다.
“오늘 밤. 루이드 포커드 백작을 만나러 가겠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들이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거래를 제안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아버지도 이해하실 겁니다.”
“그래. 그리고 곡식을 빌릴 수 있도록 협상을 하고…….”
“예.”
마레오는 안도했다. 그의 형은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으니까.
“형님.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그래. 직접적인 대화는 나와 루이드 포커드 백작 단둘이 나누게 될 것이니, 뒤에서 나를 지켜다오.”
훨씬 안정된 시델의 눈을 보며 마레오는 다시금 형제애가 끓어올랐다.
이번 밤을 제대로 넘기면 아데리오에게도 희망이 보이리라는 기대를 품은 채, 해는 저물고 있었다.
* * *
강기슭을 따라 차갑고 축축한 바람이 흘렀다.
루이드는 검에 물든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데리오 군이 이 강을 건너면, 곧장 전면전이다.
‘적은 타격이 아닌데, 아직까지도 무리한 진군을 하는 이유가 있겠지. 영 꺼림칙하단 말이야. 바보들이 아닌 이상에야…….’
그들이 강을 건너 전면전이 일어나기 전에, 루이드는 자신의 꺼림칙함을 해결해볼 생각이었다.
“참으로 너그럽고 상냥하고 어찌 보면 나약하기까지 한 선택 아닌가!”
클리아베이든이 빛을 뿜어내며 루이드 근처를 알짱거렸다.
“또 뭡니까.”
“아니, 그렇지 않나요? 나한테 에벨리의 마법사 부대를 다 이끌고 대륙을 점령하라던 그 루이드 포커드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온유한 방법을 쓰는 겁니까?”
위습의 형상이라 그의 표정이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루이드는 그가 아주 장난기 넘쳐흐르는 얼굴일 거라 예상했다.
“말이 그런 거죠. 무슨……. 사람을 다 죽일 이유가 있겠어요.”
“하지만 아데리오의 10만 대군을 단 4명의 혈계 능력자 전사들로 물리친다면, 그 얼마나 영웅적인 서사인가요?”
“하아. 어차피 이제 더는 안 통할 수입니다. 그들의 마법 방벽이 점점 더 짙어졌으니까요.”
확실히 여러 번 반복된 야습 때문에 아데리오 군의 경계는 더욱 심해졌다.
마음먹으면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몰아붙일 수 있었지만, 루이드는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야습이 없는 날에도 잔뜩 긴장하고 경계를 서면 아데리오 군은 더욱 힘이 빠질 테니까.
사상자를 줄이면서도 아데리오 군의 힘을 확실하게 뺄 좋은 방도였다.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겼다가 늘이는 것처럼 그들을 조련한 것이다.
“루이드 님. 저기 오네요.”
아샤라가 턱짓하는 쪽에서 아데리오 군의 사령관과 기사 몇 명이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루이드 쪽으로 다가오다가 일정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얌전히 있어요.”
루이드는 클리아베이든에게 툭 던지고는 횃불을 들고 자신의 애마, 화이트의 배를 살짝 찼다.
아데리오 쪽에서도 한 사람이 다가왔다.
‘저자가 사령관인 시델 아르델이겠군.’
루이드는 그가 충분히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안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령관. 저는 루이드 D 포커드 백작입니다.”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소. 포커드 백작. 그대의 군대가 꽤 대단하더군. 나는 아데리오 군의 사령관이자 아데리오의 왕자, 시델 아르델이오.”
시델은 자신과 아데리오 군이 큰 타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수치스러워 하지 않고 말했다.
그때서야 루이드는 시델의 얼굴을 정확하게 볼 수 있었는데, 그는 긍지 있고 굳센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지금까지 내가 상상해오던 아데리오 인의 얼굴이야.’
의리로 맺어진 형제의 나라.
루이드는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사령관께서 군대를 물러, 돌아가기를 청하는 바입니다.”
“……내가 듣기로는 거래를 하자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제가 예상하기로는 아데리오 군이 이그라를 침공하는 이유가 가뭄으로 부족한 식량 때문인 듯합니다.”
루이드가 그렇게 말했을 때, 시델을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술에 취해 있었더라면 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느냐고 성을 내었겠지만, 다행히 시델은 이 만남을 위해 술이 깬 후 움직였다.
“애초에 음식 때문에 형제의 우애가 끊어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맨정신인 시델은 깨달았다.
루이드 포커드는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다. 이 전쟁이 벌어진 이유가 정말로 가뭄 때문이라고만 믿고 있는 말투였다.
평소의 모습으로 많이 돌아온 시델은 침착하게 물었다.
“물론 이 사건의 발단은 7년이나 계속되는 지독한 가뭄 탓이 맞소. 아데리오는 비쩍 말랐고, 갈라졌고, 위태롭지. 하지만 이 전쟁은 비단 곡식 문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 다른 이유가 더 있습니까? 부끄럽지만, 아데리오가 이그라를 침공할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미심쩍던 시델의 표정은 허무함과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그대들이 모를 리가 없다. 이그라의 국왕이 협조를 요청하러 온 내 동생, 아데리오의 삼남을 무참히 살해하였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뭐라고요?”
시델의 이야기를 들은 루이드는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화이트의 등에서 떨어질 뻔했다.
‘아데리오의 왕자를 죽였다고? 전하께서? 그럴 리가 없다. 정말 그랬다면, 왕국의 귀족들이 아무도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루이드가 그리슨빌과 다른 영지를 위하여 주변의 영주들에게 협력을 요청했을 때에도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는 이그라의 국왕, 카이린 역시 그랬다.
루이드가 특별팀을 꾸려 아데리오 군에게 야습으로 타격을 주러 떠나기 전, 카이린의 서신이 그리슨빌에 도착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일이었다.
카이린은 아데리오의 배신행위를 용서할 수 없으며, 이그라에 충성의 맹세를 한 포커드 백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 주겠노라고 친히 편지를 보냈다.
‘카이린 전하가 내게 이런 엄청난 일을 숨길 이유도 없고……. 아니, 애초에 그런 짓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야.’
몇 차례나 카이린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루이드였다.
그런 비열한 짓을 저지르는 국왕이라면, 절대로 충성의 맹세 같은 건 하지 않았을 터였다.
처음부터 카이린의 품성을 면밀히 따진 루이드였다. 기술을 알려준 것도, 국왕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귀족파들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은 것도 모두 그 때문.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해? 나의 동생이, 아데리오의 왕자가 시체로 돌아왔는데. 무슨 오해란 말인가.”
시델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으나, 루이드는 침착하게 말했다.
사실은 시델이 급격하게 흥분하지 않은 이유는 모두 루이드의 스킬 덕분이었다.
우리는 모두 친구, 맞아! 스킬!
스킬의 도움 덕분에 시델은 많이 약해진 멘탈로도 쉽게 흥분하지 않고, 루이드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살해당하신 왕자님이, 정확히 이그라의 왕도에 도착했다는 서신을 보내셨습니까?”
“……그건.”
원래 사절단은 본국으로 꾸준히 보고를 해야 했다. 들리는 마을마다 편지를 쓰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보고를 올리는 것이 인지상정.
물론 이 시대에는 통신과 교통이 모두 형편없는 수준이어서, 본국에 서신이 도착하는 것은 아주 오래 걸릴지라도 말이었다.
“그리고 살해자가 이그라 왕국 사람이라는 증거는요?”
“…….”
시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그라의 왕도로 떠났다는 정황. 그리고 동생의 시체와 함께 돌아온 깃발에 적힌 붉은 글씨.
구걸자. 라고 쓰인 대륙어.
사실 시델이 처음부터 이 전쟁을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이유도 이것이었다.
정황상 분명 이그라 왕국에게 살해당한 왕자였지만.
정확한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정확한 증거 자체가 희귀한 곳, 당연히 모두 그저 이그라 왕국에서 국왕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나마 현명한 시델만이 이 사실이 불편하고 이상하게 느껴진 것.
“있습니까……?”
루이드는 시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재차 물었다.
“없소. 우리에게 돌아온 건, 내 형제의 시체와 대륙 공통어로 구걸자라고 쓴 아데리오의 깃발뿐.”
시델의 말에 루이드의 눈에서는 빛이 돌았다.
“이상하군.”
“그래요, 뭔가 정말 이상하다고요. 아데리오나 이그라 모두 뭔가 함정에…….”
어쩌면 이 전쟁을 손쉽게 정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루이드가 밝은 얼굴로 입을 여는 순간.
루이드는 보았다.
시델의 뒤로, 아직 붉은 빛이 남아있는 밤하늘로.
암흑보다 어두운 검은 구멍이 생겨나는 것을.
그리고 공간을 찢고, 밤의 장막을 두른 듯 어두운 로브를 둘러쓴 괴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깜짝 놀란 루이드가 순식간에 힘을 개방했으나, 마치 유령을 향해 손을 뻗은 듯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푸욱.
루이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시델의 등 뒤에서 나타난 괴한은 그대로 그의 몸을 꿰뚫어 심장을 도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