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31)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31화(131/252)
제131화
제6편 형제 전쟁(8)
“공간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 얼마나 많은 힘을 소모하는 건지 다들 몰라서 이러는 거야?”
화가 난 목소리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생각해낸 계획이야? 쓸데없이 힘을 낭비했어. 이런 와중에 재미라느니, 극적이라느니. 그딴 걸 찾은 놈이 누구야!”
“극적인 걸 좋아하는 건 우리 모두 그랬지. 다들 동의했었잖아!”
“하! 역시 네놈 탓이로군. 항상 네 그 아둔한 머리가 일을 그르쳐.”
“웃기고 있네. 제안에 제일 혹했던 건 너라고. 그리고 아둔? 자극만 쫓는 건 너라는 걸 잊지 마.”
“당분간은 쓸모있는 행동을 못 할 거야.”
“하아, 그놈의 루이드 포커드를 작살 내야 하는 일은 어쩌고!”
“이봐! 내가 이러고 싶어서 그래?! 방금 한 말은 뭐로 알아들은 거야? 멍청한 놈들!”
“이렇게 신력을 소모할 거였으면, 차라리 그 힘과 기회로 루이드 포커드의 심장을 뽑았어야 했어.”
“그만둬! 우리끼리 싸워선 될 일도 그르치겠어.”
“항상 그런 식이지.”
목소리들은 한데 뒤엉켜, 가지고 있던 특색을 잃고 하나처럼 들렸다.
“정말이지, 이해되질 않는군. 우리가 이 정도까지 했는데 어떻게 전쟁을 파훼시키느냔 말이야.”
“그놈은 이제까지의 다른 놈들과 완전히 달라.”
“그리고 우리와 비슷해.”
“기분 나쁘군.”
“놈을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겠어.”
“제기랄.”
“일단은 잠자코 있어야 해.”
차가운 목소리의 말에 시끄러웠던 목소리가 일순간 잦아들었다.
“알고 있어.”
“지금 당장은 움직이기조차 어려울 테지.”
“우리에게 마법을 다루는 힘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지금 욕심부린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야.”
“그래서 마황의 힘이 필요했던 건데.”
“또 그놈의 루이드 포커드 때문이다!”
목소리들은 미친 사람처럼 주절거리며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수많은 목소리 중 그 어떤 하나라도 정상적으로 들리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곤란하고, 강박적으로 반응하고, 수세에 몰린 듯 흔들리고 있었다.
“모두 잠시 잠들도록 하지.”
가장 침착한 차가운 목소리가 말했다.
“내키지 않아.”
“그랬다간 그 자식이 깨어날 거야.”
가벼운 말투를 쓰는 목소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평소에 잠들던 때랑은 달라. 우린 지금 약해져 있잖아. 위험하지 않겠어?”
“걱정하지 마. 이런 때가 한 번도 없었던 것도 아니야. 그리고 지금까지 우린 잘 이겨내 왔어. 우린 자신을 믿으니까.”
차가운 목소리의 말에 동조를 뜻하는 침묵이 흘렀다.
“그것참, 영웅적으로 들리는데.”
목소리들이 키득거렸다. 그리고는 곧 졸음이 쏟아진다는 듯, 목소리들은 웅얼거렸다.
“조용히 움직여.”
“아무도 모르게.”
“그림자처럼.”
“루이드 포커드의 주변을 맴돌아.”
“우리가 다시 깨어날 수 있을 때까지.”
“힘을 아껴.”
“때가 오면.”
“죽여.”
“깨어나.”
“루이드 포커드를.”
“적을 없애.”
목소리들은 동시에 말을 쏟아내고 조용해졌다.
장마에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주변은 소란스러웠다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후후후. 결국 이렇게 되었군.”
고요한 방에서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눈을 빛냈다.
“루이드 포커드. 네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을까?”
* * *
“포커드 백작님은 정말 대단하셔.”
성의 탑. 반짝이는 눈으로 창문 밖을 바라보던 헤랏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고, 인정의 한숨이었다.
“전투에 못 끼게 했을 땐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헤랏산 님은 밀라비아의 왕족이시잖아요. 물론 정식 사절은 아니지만, 사절의 대리인으로 이 자리에 오시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전쟁에 끼어들면 곤란하죠.”
조곤조곤히 말을 꺼낸 것은 멜리옌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그녀의 푸른 물빛 머리가 너울댔다.
“흥, 아무래도 좋아. 누가 나에게 법을 들이대겠어.”
헤랏산의 말에 멜리옌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함께 지내보아도, 참으로 천방지축인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멜리옌 역시 마음이 불편했다.
‘나조차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셨지. 물론 생명을 죽이는 걸 돕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멜리옌은 헤랏산의 옆으로 서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델 자작의 병사들과 아데리오의 병사들이 함께 성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패자의 모습을 하지 않았다.
아데리오 사령관의 외침으로 전쟁은 중단됐고, 덧없이 스러질 많은 목숨이 죽음을 면했다.
어리둥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전쟁은 종결을 향하고 있었다.
‘대단한 분이야. 이렇게 큰 전쟁을, 땅과 물이 모두 피에 적셔질 불길한 싸움을, 이렇게 순순히 잠재우다니.’
멜리옌의 옆에서 정령이 떠올랐다.
「대단해.」
노에스였다.
대지의 정령에게서는 따뜻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땅의 정령들이 기뻐하고 있어.」
“그게 정말이야?”
헤랏산이 눈을 빛내자 노에스는 너그럽게 미소 지었다.
「전쟁이 시작된 후로 정령들이 무척 걱정하고 있었어. 떨고 울부짖고 분노하고 아우성이었어.」
“다행이구나.”
멜리옌이 마주 보며 미소 짓자 노에스가 사슴뿔이 돋아난 머리를 들이밀어 뺨을 비볐다.
「이 땅의 모든 정령이 루이드의 이름을 외치고 있어.」
“그건 아마 좋은 일이겠지?”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왕이 아마 그 이름을 듣게 되겠지.」
“왕?”
멜리옌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헤랏산이 신난 듯 둘 사이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 대단한 정령쟁이도 모르는 게 있어?”
노에스는 마치 갓난아이를 보듯 헤랏산을 갸륵하게 바라보더니 멜리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응, 정령들의 왕. 그분이 루이드의 이름을 들을 거야. 아마 시간 문제겠지.」
두근. 멜리옌은 심장이 크게 고동쳤다.
이 세상의 모든 정령은 미약하게나마 정령들의 왕과 연결된 존재.
그리고 정령 술사는 정령과 연결된 존재.
노에스가 정령의 왕을 떠올릴 때의 감정이 멜리옌을 엄습했다.
「인간이 정령왕을 만날 수 있는 것 자체가 다시 없을 엄청난 행운일 거야.」
“그, 그, 말은 포커드 백작님이 정령계에 초대받을 거란 말이야?!”
헤랏산이 소리를 질렀다.
「글쎄. 확실하진 않겠지만, 모르는 일이지.」
“정령계와 인간계는 이어지기 아주 어렵다고 하지 않았어?”
헤랏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멜리옌 역시 흥분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이지. 하지만 멜리옌. 너는 넷이나 되는 정령과 소통하는 인간이잖아. 그리고 내가 너무 루이드의 이름만 말했구나. 만약 정령들의 왕께서 그를 부른다면, 그건 네 덕분일 거야.」
노에스의 말에 멜리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번에 루이드 포커드가 정령들을 기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령들이 사랑하고 축복하는 존재는 너니까.」
멜리옌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건……. 사실 난 루이드 님의 도움을 무척 많이 받았는걸.”
「그래. 그걸 알기에, 정령들이 루이드에게 호의적인 거야.」
노에스는 아이처럼 키득거렸다.
「그를 만난 건 정말 운이 좋았어. 너에게도, 아마 루이드 포커드에게도.」
정말 그럴까. 멜리옌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존재가, 루이드 포커드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러고 싶다고 생각하며.
멜리옌뿐만이 아니었다. 헤랏산도 같은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녀들이 기다리는 한 얼굴을 보기 위해, 바람이 불면 부드럽게 흔들리는 검은 머리와 그 아래로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푸른 눈을 가진 남자를 맞이하기 위해.
* * *
“아데리오 군에게 곡식을 풀어 배불리 먹여라! 형제간의 오해를 풀고 평화가 돌아왔다!”
성으로 들어선 델 자작이 외쳤다.
“자작님! 자작님께서 돌아오셨다!”
“전쟁이 끝났다!”
할리우피스의 영지민들이 기뻐하며 출정했던 병사들을 맞이했다.
“루이드 포커드 백작님이시다!”
“포커드 백작께서 전쟁을 평화로 이끄셨다!”
“백작께서 아데리오군 사령관을 설득해, 전쟁을 멈추셨대!”
“귀한 장정들의 목숨을 구하신 영웅이시다!”
“마법사님! 포커드의 마법사님이 우리를 구하셨다!”
“만세! 만세!”
금속 거인을 정리하고 말에 올라탄 루이드와 아샤라를 보며, 할리우피스의 주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평판이 증가합니다.] [평판이 증가합니다.] [평판이 증가합니다.]‘후우, 장난 아니군.’
루이드는 시야가 어지러울 정도로 쏟아지는 알람을 보았다.
[이웃 영지에서의 당신의 평판이 일정 수치를 넘어섰습니다. 평판 수치의 변동이 없는 이상, 델 자작의 영지-할리우피스에서 당신의 능력은 보정 받습니다.]‘전쟁을 막아낸 건 아주 큰 성과구나. 소설 속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인걸.’
이미 마음과 머리로는 아는 사실이지만, 시스템과 수치로도 인정받은 것이다.
시스템 창이 띄운 알람 주위로 기뻐하는 영지민들의 표정이 보였다.
그들의 미소를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성이 불타지 않아서, 눈물과 피로 땅을 적시지 않아도 되어서.
긴 행렬은 델 자작이 거하는 주성까지 쭉 이어졌다.
“아데리오 군에게 아낌없이 음식을 베풀어주십시오. 할리우피스에서 부족한 식량은 그리슨빌에서 원조할 겁니다.”
루이드의 말에 델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우리 델 가문은 이제부터 포커드 백작님의 말이라면, 뭐든 들을 겁니다.”
델 자작의 눈에서 충성심이 어른거렸다.
델 자작뿐이 아니었다. 델 자작의 충실한 가신들과 기사들의 눈에서도 루이드를 향한 호의가 비쳤다.
자작의 성으로 들어서며, 마레오는 복잡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괜찮습니까?”
루이드가 그를 돌아보았다.
“…좀처럼 믿기지 않아서요.”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이고 무너트릴 적진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셈이었다.
날을 세웠던 검을 검집에 넣은 채로.
“형님께서도 살아서 이곳에 함께 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고요.”
“…….”
루이드는 마레오를 보며 안쓰러운 감정을 느꼈다. 자신에게도 피를 나눈 형제가 있었다.
‘만약 형님들이나, 아버지께서 목숨을 잃으셨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끔찍한 전쟁을 막았다고 하더라도 가슴이 찢어질 고통이었다.
“시델 전 사령관의 시신에 마법을 걸 생각입니다.”
루이드의 말에 마레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요.”
그것이 루이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마레오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델 자작의 성에서는 병사들을 기리는 축제가 열렸다.
성의 식량 창고는 아데리오 군과 자작의 병사들을 배불리 먹였다.
아샤라가 보존 마법을 건 시델 아르델의 시신은 대부분의 아데리오 군과 함께 자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루이드와 마레오는 함께 이그라의 수도, 이그라온으로 향했다.
* * *
“사악한 자들의 술수에 당해, 형제의 나라를 향하여 칼을 들이대고, 형제들의 피를 흘리게 함을 사죄드립니다.”
눈이 부시도록 햇살이 쏟아지는 이그라온 왕궁의 알현실.
붉은 융단이 깔린 중앙 통로에서 마레오는 무릎을 꿇었다.
높은 단상의 옥좌 위에 앉은 국왕 카이린 세반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