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33)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33화(133/252)
제133화
제8편 형제 전쟁(10)
“세반 공작님. 오랜만이로군요. 생각보다 궁에서 자주 뵙네요?”
루이드의 말에 세반 공작이 피식 웃었다.
“유머 감각은 여전하군.”
그는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며 루이드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다섯 개가 넘는 반지에 햇빛이 닿아 반짝였다.
“나라면 좀 더 좋은 것을 받아냈을 거야.”
“아아.”
사실 누가 듣기에도 허무맹랑한 보상이 아닌가.
아마 다른 귀족이었다면, 넓은 영지와 땅과 성과 가축과 술을 받았을 터였다.
물론 루이드에게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들이었다.
수백 개의 크리스탈이 달린 샹들리에와 금박을 입힌 접시와 왕국 제일의 장인이 만든 보검 같은 건 애초에 루이드에게 그리 값진 것이 아니었다.
‘흠, 좋은 말은 한 마리 받을 걸 그랬나. 우리 화이트의 짝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
국왕 카이린에게 대면 요청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루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뭔가 더 많아져도 곤란하거든요. 저는 이 나라의 ‘뭔가 부족한 백작’ 정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루이드의 말에 셜린 세반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번에 제가 공을 세운 것도, 별로 좋지 않게 보는 이들이 있겠지요.”
“귀족파 인사들 말이로군.”
“예. 저도 다 압니다. 게다가 이번 공으로 뭔갈 받았다간, 다음번엔 공작위까지 받을지 모르잖아요. 그럼 저를 예뻐라 하시는 전하께서는 그분들에게 어떤 압박을 받을지 모르고요.”
루이드는 우스갯소리를 하듯 가볍게 말했지만, 사실 셜린 세반을 시험해보고 싶어서 꺼낸 말이었다.
늘 궁금했다. 셜린 세반은 무슨 꿍꿍이인 걸까?
그의 저택에 초대받은 그 날부터, 루이드는 셜린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그는 소문대로 괴짜에, 향락가에, 정치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고, 한량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루이드는 놓치지 않았다.
한 번의 결투에서, 일부러 숨기고 있던 루이드의 능력을 단숨에 꿰뚫어 보았던 그.
‘그런 그가 웅크리고 있는 이유가 있을까.’
세반 공작은 웃으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공작위를 받을 정도의 공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가요. 칭찬에 박하시네요.”
“그래도 그대가 아데리오와의 전투에서 겪은 일들은 무척 인상적이었네.”
세반 공작의 붉은 눈이 번들거렸다.
“이번 일이 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가?”
루이드는 그 붉은 눈이 자신을 추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그에 관하여서는 저도 전혀 알아낸 바가 없다고…….”
“아니, 아니지. 세상에 그 어떤 흔적도 없는 자를. 그대는 벌써 두 번째 만난 것 아닌가.”
“……저 때문이라는 건가요?”
루이드의 말에 세반 공작의 눈은 마치 광기와도 비슷한 빛을 띠었다.
“만약 그렇다면 어쩔 셈인가?”
“공작께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군요. 저 때문이라 특정될만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는데요.”
“내가 촉이 좀 좋아서 그래.”
“뭐라고요?”
루이드는 그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언급한 듯이 셜린 세반은 괴짜에, 향락가에, 정치에는 도무지 관심 없는 한량에. 뭔가 이상한 사람이었으니까.
충분히 정신 나간 소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혹시나, 어쩌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는 모두 친구, 맞아. 스킬에 당할 때 이런 기분일까?’
어쩌면 루이드가 눈치챘듯이, 괴한 역시 눈치챘을 수도 있었다.
루이드의 능력.
금속을 조종하는 능력.
애초에 루이드를 대비했던 것 같은 그 물건들.
왜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루이드의 능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 물건들을 지닌 괴한은 어쩌면.
‘나를 기다렸던 걸지도 몰라.’
하지만 그 생각과 셜린의 말은 그 어떤 증거도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확신하는 눈빛으로 말해서 홀린 걸지도.’
셜린 세반 공작에게는 늘 그런 묘한 기운이 흘렀다.
“저를 의심하시는 건 아니죠?”
“아, 물론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네만……. 혹시 자네가 흑막인가?”
“그럴 리가 있나요.”
“하하하. 물론 그래야겠지. 그러니, 그대가 힘들게 찾지 않아도 그쪽에서 먼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큰일이군요. 그럼 이번에는 아데리오보다 훨씬 강력한 적을 만들어서 올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루이드는 심각하지 않은 투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니 그대는 준비를 잔뜩 해야 할 거야.”
“준비라면 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루이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세반 공작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뭘 어쩌라는 말이지. 라는 얼굴로.
“무슨 말을 하고 싶냐고 묻고 싶은 얼굴이로군.”
“……정확하시네요.”
“선물이 있네.”
셜린 세반 공작은 품에서 무엇인가 뒤적거리더니 루이드에게 건넸다.
손 위로 떨어진 건 작은 종잇조각이었다.
“무슨…….”
“이번 일과 그리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재미있을 거야.”
“예? 아뇨, 전 일이 많아서……. 되도록 이번 일과 관련 있는 걸로 받고 싶…….”
“그럼 응원하지.”
모든 용건이 끝난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세반 공작은 복도의 반대편으로 가 버렸다.
“뭐야, 진짜. 하여튼, 진짜 이상한 놈이라니까. 결국, 별로 영양가 있는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괜히 불쾌해지기만 했을 뿐이었다. 이 모든 사건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그런 꺼림칙한 기분.
“인간이라는 건 참 복잡하네. 그건 그거고……. 또 이게 궁금하네. 못 참지. 이런 건.”
루이드는 공작이 남기고 간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씨, 안 그래도 일 많은데…….”
루이드는 안내키는 듯 반듯하게 접힌 종이를 펼쳤다.
거기에는 몇 가지 단어와 숫자가 쓰여 있었다.
“……? 이게 뭐지?”
종이를 들여다보는 동안 멀찍이 떨어져 있던 아샤라가 투덜대며 다가왔다.
“뭔가요? 저 사람 기분 나빠요.”
“응? 그래? 세반 공작 얼굴, 아샤라 네 취향 아니었어?”
“엥?! 아, 아, 아니거든요.”
“이상한데, 저번이랑 말이 다르잖아.”
“뭐가요! 참나!”
아샤라의 가방에서 튀어나온 클리아베이든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응? 이건……! 마법 좌표로군.”
“마법 좌표?”
루이드의 물음에 클리아베이든은 이글거리는 위습의 불길에서 촉수 같은 것을 쭈욱 뽑아냈다.
엄밀히 말하자면 손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었는데, 남들 눈에는 그저 길쭉한 불길처럼 보였다.
“음, 그래요. 마법 좌표! 이 세계의 지도가 형편없다는 건 잘 알고 있죠?”
클리아베이든의 말대로, 이곳의 지도는 형편없었다.
간단한 기구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귀족이 사는 성을 만드는 것까지.
기술이라는 것은 굉장히 희소한 자원이었고, 정확한 측정으로 된 모든 정보는 보물보다 귀한 것들이었다.
물론 귀족들에게는 그리 생각되지 않았지만.
여하튼 중요한 건 이곳에서는 정확한 비율과 좌표가 기록된 지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마법 좌표는, 이 세계에 흐르고 있는 거대한 마나의 기운을 읽어 마법사들이 기록한 아주 거룩한 보물이거든요.”
클리아베이든은 불꽃을 으쓱거리며 마법 좌표에 관하여 설명했다.
모든 사물에는 일정한 마력이 흐르고 있다. 그것은 아주 원초적인 마력이라,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력과 완전히 같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거친 것이었다.
클리아베이든은 그 마력을 형용할 수 없는 신비의 힘이라 일컬으며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에테르’라고 불렀고, 마법사들이 찾는 진리의 근원 역시 이 에테르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에테르는 세계의 비밀, 숨겨진 힘, 원초적인 야생의 힘이었다. 그 무엇보다 어둡고, 그 무엇보다 밝은.
“나와 내 전대 마황들, 그리고 드래곤들과 이전의 현자들과 예언자들이 조사한 결과. 텔도라그 대륙에서 강력한 에테르를 관측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지.”
클리아베이든은 신이 난 듯 이글거렸다.
“그 몇 군데를 기점으로 만들어진 게 이 마법 좌표라는 거고요?”
“맞아, 맞아. 오직 마법사들만 읽을 수 있는 좌표죠.”
“헤에…….”
어느새 종잇조각을 집어 든 아샤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걸 셜린 세반 공작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요?”
“글쎄. 그가 마법사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샤라와 루이드가 인상을 찌푸리는 사이, 클리아베이든은 좌표를 다시 살펴보며 빙글빙글 돌았다.
“평범한 마법사라도 이 마법 좌표를 사용하는 일은 드물죠. 흠, 이 좌표, 내가 그때 줬던 아티팩트로 추적이 가능하니까 한 번 사용해 보는 건 어때요.”
루이드의 눈이 크게 떠졌다.
“괴한을 추적하는 그 아티팩트?”
“맞아요. 자, 한 번 꺼내 봐요.”
클리아베이든의 재촉에 루이드는 조금 외진 곳을 찾았다.
그가 닦달하는 바람에 으슥한 곳에서 아티팩트를 꺼냈지만, 루이드는 썩 내키지 않았다.
마법 좌표. 물론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루이드는 괴한의 정체를 찾는 게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이나 이그라를 공격했다.
게다가 셜린 세반 공작의 말처럼 이번 공격이 자신을 겨냥한 거라면?
첫 번째 공격에서 루이드의 존재를 눈치챈 괴한의 무리가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루이드를 압박한 거라면?
확실히 처음 이그라가 공격당했던 건, 밀라비아를 협박하기 위해서였다. 소모품처럼 사용당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외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하지만 이번 아데리오와의 전쟁을 부추긴 것은 그때와 명백하게 달랐다.
그리고 세반 공작의 말대로, 루이드는 그의 모습을 다시 한번 직접 보았다.
마치 자신을 놀리는 듯 미소 짓던 괴한의 입을, 루이드는 선명하게 기억했다.
하지만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답답하네. 확 그냥 쳐들어가 버려? 어차피 놈이 어디 있는지 아티팩트를 사용하면 알 수 있으니까. 그곳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간에 찾아내면…….’
루이드는 자신과 수호단의 힘을 가늠해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답답하기로서니, 스스로 불에 뛰어드는 부나방 같은 짓을 해선 안 됐다.
단순히 즐기는 스포츠에서도, 게임에서도. 공격할 때와 방어할 때가 있다. 내가 공격당하는 중이라도 견디며 기회를 엿봐야 하는 때가 있다.
고급 시계 같은 화물 운송 게임이라고 생각해 보자, 운송을 저지하려는 적을 잡아 죽이는 데만 집중한다면?
적진까지 너무 깊이 들어간 딜러는 쉽게 잘리고, 팀원 중 누구도 화물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다.
‘놈들에게 접근할 좋은 방법을, 계속 구상해 보자. 정말로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일단은 눈앞의 사건부터…….’
루이드는 팬던트를 조작하려는 클리아베이든에게서 손을 쑥 빼며 말했다.
“이건 이미 괴한을 찾도록 조정되어 있잖아요.”
그의 안 미더운 얼굴에 클리아베이든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위습의 불꽃을 흔들었다.
“쯧, 이건 신성한 아티팩트라고요.”
불꽃이 손바닥 위에 있는 아티팩트를 톡, 하고 건드리자 별자리 모양의 팬던트가 키리릭하는 소리는 내며 회전했다.
“목표 지점을 세 개까지 등록해 둘 수 있죠.”
우우웅. 키이이잉.
또다시 팬던트 안의 우주가 열리고, 클리아베이든이 종잇조각을 그 안으로 던져넣었다.
스으으으, 츠압! 집어삼켜지는 소리와 함께 이전의 화살표와 다른 모양의 화살표가 만들어졌다.
“오.”
아샤라도 루이드도 놀란 얼굴로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괴한이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쪽과는 방향이 전혀 다르네.”
“그러게요. 보자……. 이 방향이라면…….”
“어차피 놈들은 추적하려면 우리에게도 힘이 있어야겠죠. 그냥 달려드는 건 멍청한 짓이니까.”
클리아베이든은 신난 얼굴로 타올랐다.
“조금 위험하기는 하겠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게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