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46)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46화(146/252)
제146화
제21편 메아리 계곡(2)
“흐음, 그게요.”
“응?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카라젝은 고대, 그것도 이미 완전히 멸망했던 이전 문명의 산물이었다.
지금 이 세계의 기술과 지식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고등의 기술로 만들어진 존재.
하여 아샤라에게 카라젝을 심도 있게 연구하도록 명했다.
“문제는 전혀 없어요. 카라젝에 관한 연구도 착실하게 진행되는 중이고요. 다만…….”
“왜, 편하게 말해. 평소대로. 아샤라답지 않아.”
루이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아샤라는 옅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하하. 저답다, 라……. 좀, 개인적인 문제라서요.”
아샤라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루이드 님은 카라젝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응? 어떻게 생각하냐니.”
“전 마법사예요. 카라젝처럼 고기능의 마도 인형은 만들 수 없지만, 그 비슷한 인공 생명체…… 를 많이 봐 왔어요. 골렘 같은 거요.”
루이드는 아샤라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았다.
이미 루이드가 고민해왔던 문제다.
저렇게 ‘인간다운’ 인조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것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이야 쉽게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카라젝이 움직이는 기능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카라젝이 인간이 아니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형이라는 사실이 납득이 안 갈 터였다.
확실히 카라젝의 정체를 알고도 마법이나 고대의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멜리옌이나 솔라, 헤랏산의 경우에는 카라젝을 훨씬 잘 받아들였다.
그냥 인간이라고 생각하니까.
“사실 그런 것들은 생명체라고 할 수 없죠. 자아가 없고, 술사의 명령만을 듣는 거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시체를 조종하는 네크로맨서라고 할까.”
아샤라는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음……. 시체는 그래도 생전엔 살아 있었으니까 또 다른 의미겠지만……. 어쨌든, 카라젝은 골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인간 같아서……. 하지만 그건 분명 그렇게 행동하도록 설계된 거겠죠?”
“아샤라. 네 고민은 너무 당연한 거야.”
루이드는 아샤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살짝 토닥였다.
“그런가요? 모든 게 명확하면서도 너무 혼란스러워요.”
“당연하지, 그건 내 전ㅅ……. 아니 그러니까. 하여튼 어려운 문제잖아. ‘어떤 것이 인간인가.’라는 본질적인 고민이 들게 만들고 말이야.”
루이드 전생에서, 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고민하던 화두였다.
인간의 신체 역시 무수히 많은 전기 신호로 이루어졌니, 뭐니 하는 현대의 과학적 이야기를 듣는다면 아샤라는 분명 더욱 혼란스러워질 터.
‘아샤라는 지금 몇 세기에 걸쳐 인류가 발달하며 겪을 고민을 갑작스레 마주치게 된 거니까.’
학문적이고, 영리한 아샤라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고민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전생이 있었던 루이드지만, 그 역시 쉽게 결론 내릴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넌 마법사니까 남들은 생각지도 못한 고민을 하게 된 거야. 더 어렵겠지. 많은 걸 이해하니까.”
지금 역시, 루이드는 아샤라에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 역시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루이드는 입을 열었다.
“네가 그 애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누구도 너를 비난할 수 없어. 넌 학자니까.”
“…….”
루이드는 학자가 아니었고, 대충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친구로서 말할 수는 있었다.
“그렇다고 그 애한테 굳이 가혹하게 대할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내가 아는 아샤라는 무섭긴 하지만 상냥한 사람이고.”
루이드의 말에 아샤라의 표정은 한층 부드러워졌다.
“……그래도 루이드 님이 절 이해해 주셔서 다행이에요. 늘 루이드 님은 제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이해해 주시네요.”
“음……. 그게.”
루이드는 멋쩍게 뺨을 긁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실 카라젝에 관해서는 너만큼 이해 못 할걸. 엄청 복잡하고 정교하잖아.”
그간 생활하면서, 루이드가 생각하기에도 카라젝의 대화 능력이나 공감 감각은 인간과 구분할 수 없었다.
“충분히 이해하고 계신걸요.”
“어쨌든, 네 이야기 상대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뾰족한 수는 안 나도, 좀 덜 답답하겠지.”
“네, 고마워요. 루이드 님.”
아샤라는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익~! 둘이 뭐 하는 거예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헤랏산이 주먹을 붕붕 흔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카라젝 말인데요.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 * *
“아르헬.”
카라젝이 꾸벅거리며 조는 아르헬에게 속삭였다.
“우웅? 웅?”
아르헬이 고개를 들자 조그만 입술에서 맑은 침이 주륵 흘렀다.
“핫! 씁…….”
아르헬은 민망한 듯 얼른 소매로 침을 닦았다.
“여기서는 귀족 영애라면서.”
카라젝이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다, 당연하지. 다들 날 부르는 것 못 봤니? 에헴. 헴. 아가씨라고 부른다고?”
“네가 가르쳐 준 귀족 영애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공부 시간에 졸고, 또…….”
카라젝이 촉촉한 아르헬의 입가를 가리켰다.
“뭐, 뭐?! 그건…….”
“네. 알겠어요. 아르헬 아가씨.”
카라젝의 말에 아르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이제 굳이 날 위해 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돼. 대륙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익혔으니까.”
그간 아르헬이 도맡아 카라젝에게 이곳 문명에 관하여 알려주었다.
그건 아르헬이 자원한 일이었다.
카라젝은 이그라 왕국이나 밀라비아 등 주변 왕국과 크라우스 제국에 관하여서도 아는 것이 없었다.
아르헬 역시 루이드가 알려주었기 때문에 카라젝이 고대에 만들어진 병기이고, 오래도록 가동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엄청나게 똑똑한데. 오래도록 잠들어 있어서 아무것도 몰라.’
아르헬은 카라젝에게 현재를 직접 보여주고, 책으로 익히게 했다.
벌써 한 달이 넘도록 말이다.
‘대륙어를 하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헤랏산님이 다그쳤을 땐, 정말 무서웠지.’
헤랏산은 카라젝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멸망한 이전의 인류가 남긴 마도 병기라면서, 지금까지 잠들어 있었다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이전 문명이 있는지도 모르는 새로운 문명이 가진 언어를 어떻게 알겠냐며.
일리가 있는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하지만 아르헬만이 알 수 있었다.
아르헬을 통해서 빠져나간 힘.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카라젝을 깨운 힘.
그 힘과 함께 아르헬의 기억이 일부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을.
오직 아르헬만이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축복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아르헬은 알 수 있었다.
이를 설명하자 헤랏산의 경계심도 조금은 수그러들었지만, 애초에 모두 카라젝의 존재를 곤란해했다.
아르헬은 카라젝을 가만히 보았다.
카라젝은 책상 위에 널려 있는 많은 책을 천천히 정리하고 있었다.
하얗고 길고 부드러운 손가락.
책을 정리해서 옮길 때마다 조금은 눈에 띄는 연두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예쁘다.’
자신이 깨운 인형.
‘생명’을 불어넣은 인형.
루이드와 아샤라는 카라젝을 ‘생명체’가 아니라고 했다.
카라젝의 몸은 대부분 아다만트와 오리할콘이 섞인 금속체.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나도 평범한 드래곤은 아니지.’
오리할콘에서 부화해, 오리할콘을 먹고 사는.
육체의 대부분이 오리할콘으로 이루어져 있는.
그렇다면 자신도 생명체가 아닌 걸까?
아르헬은 자신과 카라젝사이에서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의식이 없었던 카라젝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이 건드리자, 일순간 힘이 빠져나가면서, 그 금색 눈동자에 빛이 튀었었다.
강렬했던 기억.
‘루이드가 날 처음 발견했을 때도 비슷했다고 했어. 루이드가 거대한 알 모양의 오리할콘을 건드렸고, 그 안에서 내가 나왔다고 했어.’
아르헬은 카라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르헬 역시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 자신을 깨웠다는 느낌을 받았다.
루이드의 손에서, 아샤라의 도움을 받으며.
배우고 성장해서 지금의 아르헬이 되었다.
그래서 아르헬은 카라젝을 도와주고 싶었다.
‘나도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들과 인간처럼 살고 있으니까. 카라젝도 함께 살 수 있어.’
포커드의 일원이 된 자신처럼.
‘카라젝도 나랑 다르지 않아.’
아르헬은 눈에 힘을 주었다.
할 수 있다.
자신도 루이드처럼!
“너무 졸리면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할까?”
카라젝이 책 정리를 끝내고 부드럽게 물어왔다.
‘역시, 살아있어. 카라젝은…….’
아르헬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왕에 나가는 거 좀 멀리 가 볼까?”
“멀리? 얼마나?”
“물론 우리가 아주 먼 데에서부터 그리슨빌까지 오긴 했지만, 이 영지를 샅샅이 구경하지는 않았잖아.”
카라젝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포션 공장은 3일 전에 보았고, 유리 공장이랑 고무라는 걸 만들 원료를 채취하는 곳도 봤었지.”
“그게 다가 아니야! 여긴 정말 멋진 게 많거든. 다 루이드가 만든 거야.”
“응, 그래. 네 말대로 루이드 님은 대단한 사람이야. 그리고 그분 덕분에 내가 지금 너랑 여기에 있을 수 있고.”
아르헬은 너무 고분고분한 카라젝의 태도가 불편했다.
모든 점에서 그를 인간과 구별하기 힘들었는데, 어쩐지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마도 병기라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좀 더 멀리 가 보자! 이 영지의 끝에 나도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 있어.”
“아르헬이 가 보지 못한 곳이라고? 너는 뭐든 경험해보지 않은 게 없는 줄 알았어.”
카라젝은 조금 들뜬 얼굴로 말했다.
촤악. 아르헬은 지도를 펼쳐 깃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메아리의 계곡.
몬스터가 많아 인적이 드문 곳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아르헬에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에겐 강력한 마법과 발톱과 날개가 있었다.
보호자 없이, 친구끼리 떠나는 소풍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뛰었다.
“좋아. 조금 멀긴 하지만, 내가 본 모습으로 변해서 날아가면 금방 돌아올 수 있어.”
아르헬은 카라젝의 손을 잡아끌었다.
“네 본 모습이라면, 용이 되는 거야?”
“물론이지. 넌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지? 원래는 본래 모습으로 잘 안 변하거든.”
카라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날개는 구름을 찢고 소리마저 쫓아오지 못할 만큼 빨라.”
아르헬은 잔뜩 허세를 부리며 달렸다.
도시락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금방 그리슨빌의 영지 저 끝까지 닿아,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절경을 감상하고.
저녁 식사 전에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카라젝과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추억이 생기는 거라고.
새로운 유대가 생길 거라고.
그게 카라젝을 이곳과 사람들에게 더욱 적응하기 쉽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