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47)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47화(147/252)
제147화
제22편 메아리 계곡(3)
쿠아아아.
요란한 소리가 하늘을 갈랐다.
“에구머니나, 이게 무슨 소리야?”
“날이 이렇게 맑은데 천둥이 치는 건가?”
그리슨빌 성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의 영지민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었다.
소리의 정체는 그리슨빌 성주의 여동생, 아르헬 포커드의 소행이었으니까.
“아르헬! 정말 대단해!”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간 아르헬의 등 위에 올라탄 카라젝이 소리쳤다.
거센 바람 때문에 카라젝의 연두색 머리카락이 마구 나부꼈다.
“하하하! 정말 대단하지?! 그래! 나 대단해!”
신이 난 아르헬이 공중에서 회전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 요란한 상황을 아래에 있는 영지민들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르헬의 투명 마법 때문에 그들의 모습은 일반인들에게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
“와하하하! 신난다!”
아르헬은 바람을 마음껏 즐겼다.
사실, 지금껏 이렇게 자유롭게 비행한 적이 없었다.
평소에는 대체로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하고 있었고, 그 상태로는 날아다니기 어려웠다.
또 인간 형태로는 마법을 사용할 때도 드래곤일 때보다 신경 써야 하는 점이 많았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그건 식사 테이블에서 예절을 지키는 것 정도의 번거로움이라,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것을 고수했던 것.
이번 유적을 향한 여정에서 루이드를 따라잡기 위해 드래곤인 상태에서 마음껏 마법을 사용하고 비행한 것이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해방감이 생각보다 컸다.
어쩌면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은 마음에 메아리 골짜기로 향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카라젝은 핑계일지도 모른다고. 아르헬은 약간의 배덕감을 느끼며 생각했다.
‘나체로 뛰어노는 기분이지만 말이야!’
아르헬은 눈을 감고 찢어지는 창공을 느꼈다.
“아, 카라젝. 멀미하거나 하진 않고?”
불현듯 등 위에 매달린 카라젝을 떠올린 아르헬이 거친 비행을 누그러뜨리며 물었다.
“물론, 난 인간이 아니니까. 괜찮아.”
아르헬은 아차 싶었다.
괜히 물었다. 아니, 애초에 카라젝을 등에 태우고 이렇게 미친 듯한 비행을 해서는 안 됐다.
“미안…….”
“아르헬이 내게 미안해야 할 건 아무것도 없어.”
다행히도 카라젝은 상냥했다.
그러나 아르헬은 짐짓 의기소침해졌다.
스으으으. 천천히 하늘을 나는 것도 나름의 맛이 있었다.
움츠러들던 아르헬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얼굴로 외쳤다.
“봐! 벌써 다 왔어!”
아르헬의 날개 밑으로 펼쳐진 거대한 협곡.
“이곳이…… 메아리 계곡.”
카라젝의 노란색 눈이 깜빡였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다니. 정말 멋져.”
“그렇지?! 넌 지금껏 땅 밑에서 지냈으니까!”
아르헬은 또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날개를 퍼덕였다.
마차 두 대 넓이의 날개가 만든 그림자가 메아리 계곡에 일렁였다.
“저기 바위들이 있어서 착륙하기 쉬울 것 같네. 슬슬 내려가자!”
“좋아.”
카라젝이 삐죽한 비늘을 꽉 쥐자, 아르헬이 천천히 활강하기 시작했다.
퍼덕, 퍼덕!
울창하고 푸른 나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봐, 여기 식물들이 특이해!”
무사히 착지한 아르헬이 순식간에 폴리모프 한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 전에도 딱 한 번 혼자서 여행한 적이 있었거든.”
“혼자서?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 대단하다.”
카라젝이 웃으며 대답했다.
“으응. 그런데 사실 그때는 마부가 모는 마차를 탔었거든. 그런데 오늘은 너랑 나 단둘이서 온 거잖아! 완전 어른 같지!”
“어른……?”
카라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그러니까, 루이드나 아르헬 같은…….”
“육체적 성장이 끝난 개체를 어른이라고 하는 걸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어른이라는 건 음, 뭐라고 하면 좋을까?”
아르헬이 멋진 단어를 고르는 동안 카라젝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나는 어른일까? 아니면…….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는 걸까?”
카라젝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마도 인형이다.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며,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었고.
책에서 말하는, 인간에게 있다는 영혼도 가지고 있지 않을 터였다.
인간뿐만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것들. 잉태되어 태어난 것들에게는 모두 영혼, 이라는 것이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아샤라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은 금속과 복잡한 전기 신호와 고대의 알 수 없는 기술로 만들어진 인공의 물체라고.
그러니 자신에겐 영혼이 없을 터였다.
게다가 금속으로 이루어진 신체는 성장할 수도 없을 터였다.
자신의 앞에 있는 드래곤 소녀는 절반은 금속, 절반은 유기체였다.
그 정도만 되었어도 좋았을 텐데.
상냥한 아르헬에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그녀의 모든 친절과 상냥함에 대한 고마움보다 그녀의 생명에 관한 질투가 더 심했으니까.
카라젝도 갖고 싶었다.
영혼을 가지고 싶었다.
그런 욕망을 품고 있었다.
가당키나 한 것일까?
금속 덩어리가 욕망을 가진다는 것이.
그래서 카라젝은 혼란스러웠다.
정말로 전쟁만을 위한 금속 인형이라면, 꼭두각시라면.
자신은 왜 이렇게도 혼란스럽고, 슬프고, 애타고, 기대고 싶고, 외로울까?
그리슨빌 성주의 마법사인 아샤라의 말대로라면 자신에게 그런 감정은 없어야 했다.
이것 역시 아르헬에게서 자신에게 흘러들어온 힘 때문일까?
단지 기계인형일 뿐인 자신은, 아르헬의 기억과 감정을 흉내 내고 있는 것뿐일까?
“앗……. 그건…….”
아르헬이 곤란한 표정을 짓자 카라젝은 슬픈 얼굴로 미소 지었다.
“곤란하게 해서 미안해.”
“곤란하지 않아! 그냥……. 내가 아직 잘 몰라서…….”
“아르헬 네가 아직 모르는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런 점을 보면, 너와 내가 조금이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 점은 카라젝에게 무척 위로되는 일이었다.
아르헬의 절반이 자신과 같은 금속이라는 사실이.
그녀 또한 아직 이 세계와 인간에 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이.
“나, 난 우리가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해. 카라젝!”
아르헬이 카라젝의 손을 꼭 잡았다.
“늦어지기 전에 얼른 이곳을 둘러보자! 여기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대.”
침울해진 카라젝을 위로하기 위해 아르헬이 계곡의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심해!”
유기체는 다치기 쉬우니까. 라고 덧붙이려던 카라젝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눈치 없는 자꾸 말을 내뱉으려고 하다니.’
카라젝은 자신의 행동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아르헬을 비롯한 다른 모든 인간은 자신을 불편해한다.
유기체 흉내를 내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그걸 너무 잘해서.
카라젝이 인형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때는 상냥해졌다가, 그것을 상기시키게 하면 불편해한다.
가령, 조금 전 뱉으려던 말 따위를 한다면…….
처음에는 잘 몰라서였다.
그리고 그 사실에 익숙해졌을 때쯤부터는 영혼을 가진 이들에 대한 질투 때문.
질투와 외로움, 슬픔, 공허와 혼란을 해소할 짓궂은 방법이었다.
‘나도 참 못됐어. 금속 인형인 주제에.’
그리고 인간의 감정과도 비슷한 것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들을 자극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더는 하지 않았다.
물론 그건 아르헬에게 만은 예외였다.
카라젝은 허둥대며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아르헬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동그란 뒤통수가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사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아르헬이 난처해하는 표정이 보기 좋았다.
그녀는 난처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랑을 담아 배려하고 있었다.
서툰 그녀만의 방법으로.
그걸 확인하는 게 좋았다.
카라젝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나는 대체 뭘까.’
고민하고 있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작고 사랑스러운 뒤통수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앗, 잠깐만! 기다려, 아르헬! 같이 가!”
* * *
데모니어스와 상담 일정을 모두 끝낸 루이드가 그리슨빌 성으로 돌아왔다.
성의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일로 여념이 없었다.
‘참 많이도 바꿔 놓았군.’
루이드는 성안의 풍경을 보며 미소 지었다.
‘암, 이래야지. 열심히 일해야 강산을 바꾸는 거야.’
계단을 올라가 집무실에 들어선 루이드는 펜던트를 꺼냈다.
괴한의 위치를 추적하는 펜던트.
두 개의 화살표가 떠올랐었던 펜던트는 이제 한 개의 화살표만 존재했다.
유적이 무너져내린 후 화살표가 사라진 것이었다.
“음?”
“왜요, 루이드 님?”
헤랏산이 얼굴을 쑥 들이댔다.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멜리옌과 솔라, 엠마의 이목도 모두 쏠렸다.
“화살표가 이상한데.”
루이드가 펜던트를 들어 올리자, 모두에게 화살표가 보였다.
“어라, 정말.”
아샤라가 심각한 얼굴로 펜던트를 들여다보았다.
원래라면 화살표는 괴한이 있을 위치를 가리키고 있어야 했다.
“뱅글뱅글 돌고 있잖아요?”
“이게 이럴 수가 있나?”
“유적에서 고장 난 걸까요?”
그들이 다녀온 유적은 보통 유적이 아니었다.
고대의 신이 갇혀 있던 감옥.
그리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수많은 마도 병기를 만들고, 보관한 곳.
함정과 기계 장치의 퍼즐, 고대의 마법과 신의 주술이 가득했던 곳.
“아니야. 그 뒤로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이런 적은 없었어.”
“큰일이네요.”
“아샤라, 뭔가 짚이는 건 없어?”
루이드의 물음에 아샤라는 곤란한 얼굴을 했다.
“네에. 이건 클리아…… 클베만의 아티팩트니까요. 이런 건 지식의 보고에 가도 사용법이 나와 있지 않을걸요.”
아샤라의 표정이 어두운 건, 펜던트의 상태를 알 수 없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적을 빠져나오고, 클리아베이든이 잠들어 버린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클리아베이든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
그때부터 지금까지, 클리아베이든은 아샤라의 가방에 담긴 채 조용했다.
아샤라는 무의식적으로 메고 있던 가방에 손을 올렸다.
“……흐음, 이걸 이대로. 그냥 둘 수밖에 없는 건가.”
이곳에서 클리아베이튼의 아티팩트를 제어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갖춘 자가 없었다.
“흠…….”
루이드는 펜던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척척 걸어가 집무실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감지력으로 뭔가 느껴봐야겠어.’
유적에 들어갔을 때 루이드는 많은 것을 보았다.
마도 공학으로 이루어진 마도 인형, 복잡한 기계 장치. 마법 기구들…….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도, 뭔가 느낄 수 있을지도 몰라.’
스으으.
루이드는 집중했다. 자신이 가진 힘, 초상 능력의 힘.
감지력이 손안의 펜던트에 흘러 들어갔다.
평범한, 아무것도 아닌 금속을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동이었다.
심지어 이것은 마법 기술의 집합체.
루이드는 미지의 어둠 속을 헤엄치는 것처럼 아티팩트를 더듬어 나갔다.
그러면 그럴수록 복잡한 마법의 기술이 조금씩 눈에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계 회로를 따라가듯이, 루이드는 천천히 마법의 회로를 걸었다.
완전히 느낄 수는 없었지만, 언뜻 볼 수는 있었다.
‘내가 마나에 재능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그리고 순간 무엇인가가 루이드의 힘을 거칠게 밀쳐냈다.
“헉!”
휘익! 쿵!!
루이드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루이드 님! 괜찮아요?!”
루이드를 지켜보고 있던 아샤라와 헤랏산이 다급하게 그를 부축했다.
“아야야……. 뭐야, 방금?”
“뭐냐뇨. 제가 물어볼 말이에요.”
아샤라가 걱정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내 힘으로 이걸 읽어보려고 했는데…….”
“그런 게 가능하다고요? 루이드 님은 마나를 다루지 못……. 그 금속 제어 능력 만으로요?”
아샤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루이드를 바라보다가, 심각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드 님이라면 해낼지도 모르죠.”
“뭐, 방금 이렇게 날아가 버렸지만.”
“당연한 일이에요. 클베가 자신의 아티팩트에 그런 장치도 안 해뒀을까 봐요?”
“장치?”
“당연히 함부로 해부하거나 다루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거죠. 모조품을 만들 수도 있고요. 마법사들은 그런 거 싫어하거든요.”
“허어…….”
“그래도 아예 작정하고 저랑 같이 연구해보면 성과가 있을지도 몰라요. 클베의 마법 장치들을 제가 하나씩 풀어보면서요.”
아샤라의 말에 곁에서 같이 루이드를 부축하던 헤랏산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루이드는 아샤라에게 대답하며 얼얼한 뒤통수를 문질렀다.
“아,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네. 그러고 보니 아르헬은 어디 있지?”
* * *
“아르헬, 해가 지고 있어.”
카라젝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울창하고 거친 협곡에 드리운 노을빛이 점점 차가운 밤의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응. 아쉽지만, 또 오면 되니까. 봐, 카라젝! 약초를 이만큼이나 캤어.”
“루이드 님에게 드릴 거야?”
“응! 루이드는 약초에도 관심이 많거든! 모르는 게 없지. 후후. 루이드가 처음 보는 약초면 좋겠는데.”
아르헬은 약초가 가득 담긴 가방을 카라젝에게 넘겨주었다.
“곧 어두워질 거야. 몬스터가 많이 나온다고 했었지?”
카라젝은 불안한 얼굴로 아르헬을 재촉했다.
“헤헤. 맞아. 사실 우리가 아직도 몬스터랑 마주치지 않은 게 기적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 여기까지 오는 데에도 얼마 걸리지 않았잖아? 폴리모프해서 날아가면…… 어라?”
아르헬은 가만히 서서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르헬?”
“어, 어……?”
그녀는 손을 휘저어 보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괜히 발을 굴러 보기도 했다.
“뭐…… 하는 거야?”
“그, 그게……. 어…….”
아르헬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파리해진 안색으로 말했다.
“폴리모프가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