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49)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49화(149/252)
제149화
제24편 메아리 계곡(5)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줄까? 끌려가기 전에 궁금증은 풀어야 할 것 아니야.”
자신을 드래곤 슬레이어라고 말하는 남자의 말에 아르헬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 이 자식들이!!”
분노한 아르헬이 이를 드러내자 남자는 장난스러운 얼굴과 몸짓으로 대놓고 조롱했다.
“어쭈, 꼬맹이가 그런 말도 쓸 줄 알고? 무섭네? 하긴. 드래곤들이 폴리모프한 모습은 진짜 나이랑 상관없으니까. 그래도 굉장히 어수룩한 걸 봐서는 겉모습처럼 어린놈인 것 같은데.”
남자는 재밌다는 듯이 자신의 이마를 문질렀다.
“내 이름을 들어본 적 있으려나. 드래곤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높을지도 몰라.”
“네 이름 같은 건 궁금하지 않아!”
“길리언이야.”
아르헬의 고함에도 남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할 말만 했다.
“너를 발견한 건 정말 운이 좋았지. 우린 한동안 드래곤을 전혀 찾을 수 없었거든. 뭐, 이래 봬도 우린 진짜 드래곤 슬레이어라.”
길리언이 끄덕거리자, 나무 위에 올라선 그의 동료들이 키득거렸다.
울창한 숲에 가려져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카라젝은 그들의 수와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안타깝게도 탈출할 좋은 방법은 쉽게 떠오르진 않았지만.
‘대체 이 녀석들이 나를 어떻게 발견했다는 거지?’
아르헬의 머릿속 역시 복잡했다.
일전에 드래곤의 모습을 한 채로 장시간 비행을 해서일까?
아니면. 이제껏 왕국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동안, 모르는 사이에 꼬리를 잡힌 걸까.
드래곤 슬레이어에 대해서는 루이드가 모은 책을 통해 읽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놀라운 마법과 싸움 기술을 이용해서, 용과 대적하고 그들을 잡는 수준 높은 사냥꾼들이었다.
인간 중 일부는 드래곤을 경외하며 섬기고, 또 두려워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드래곤 역시 평범한 몬스터 중 하나였다.
그저 다른 놈들보다 훨씬 강하고 잡기 힘든 몬스터일 뿐이었다.
“드래곤이라는 게 참 대단한 종족들이야. 한 마리를 잡으면 얼마나 쓰이는 데가 많은지. 걔들 뼈나 가죽으로 만든 물건은 없어서 못 구하거든. 귀족 나리들이 환장해.”
그의 말투는 한없이 가볍고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다.
“드래곤 고기를 먹는 걸 즐기는 귀족들도 있고. 심장도. 꽤 좋은 보양식이라고.”
순간 길리언의 눈에 스친 살기와 마주친 아르헬은 온몸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용을 잡은 뒤 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용을 잡으면 어떤 부위가 가장 높은 가격을 쳐준다고 했더라.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복잡하게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그들이 무슨 마법을 사용해서 드래곤을 무력하게 만든다고 했지.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마법뿐 아니라 육체적인 강함에서도 최상위 종족인 드래곤을 사로잡는다고 했지.
쓸모 있을 만한 내용은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아르헬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는데, 자신을 노리고 사냥하기 위해 온 사냥꾼들이라니.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공포가 아르헬의 생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이전에 폭주했을 때도, 최근 유적에서 생매장당할 뻔했을 때도 이런 공포를 느낀 적은 없었다.
“너, 너 같은 놈이 드래곤을 사냥할 수 있다니. 그걸 믿으라고?”
아르헬의 외침을 들은 길리언은 잠깐 멍하니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굉장히 떨고 있는 것 같은데. 아가씨. 아, 그래. 암컷은 맞나? 드래곤 놈들은 취향이 독특해서 가끔 수컷이 암컷 행세를 하고 다니기도 하더라고. 징그러운 것들.”
아르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오우, 어떡하나. 우리 용 아가씨가 잔뜩 겁을 먹었네. 보고 있기 안쓰러울 정도로 질린 표정이야. 미안해지려고 하는데?”
“길리안! 운이 좋은데. 이렇게 어리숙한 드래곤을 만나다니.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되겠어.”
“그래, 이 녀석 쉽게 길들지도 모르겠는걸.”
길리안은 아르헬을 보며 지저분하게 수염이 난 턱을 만지작거렸다.
“마법 외에는 전혀 능력이 없는걸 보면 아주 어린 놈이야. 왜 오래 산 것들은 검술 같은 걸 배워서 귀찮잖아.”
“흥! 난 싫어, 길리안! 금화면 됐어. 드래곤 같은 거랑 같이 지내는 건 싫다고. 징그러워서.”
“에이, 살아있는 드래곤을 길들여서 노예로 부릴 수 있다면 성을 사고도 남을 돈을 받을 수 있을걸.”
“성? 그 정도밖에 못 받는단 말이야? 이놈을 찾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줄 알아? 잡기는 어려워졌는데, 가격은 떨어지고 있고!”
“에이, 그 정도면 잘 쳐주는 거야. 요즘 귀족들이 얼마나 쪼잔한데.”
길리언과 그의 일행들이 끊임없이 수군거렸다.
이들은 아르헬을 철저하게 짐승 취급하고 있었다.
“무례해, 당신들.”
결국 참지 못한 카라젝이 말하자, 길리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넌 보디가드야? 실력은 별로던데. 용 아가씨, 왜 이런 걸 데리고 다녀. 그러니까 지금도 꼼짝없이 우리한테 잡히는 거야.”
길리언은 마치 귀중한 조언이라도 해주는 양 말했다.
후욱!
나무 위에 있던 길리언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
카라젝은 재빨리 아르헬을 등 뒤에 숨겼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텐데. 우리가 계속 지켜봤거든. 너희가 이 협곡에 도착한 후부터 쭉. 뭐 물론 그 전부터 추적하고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길리안을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쪽 용 아가씨는 마법 외에는 전혀 쓸 수 있는 게 없고. 꼬맹이 검사 너는 실력이 영 별로고.”
스릉. 길리언이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카라젝과 아르헬에게 다가왔다.
“미리 말해 두자면, 난 어린애라고 해서 봐주는 거 없거든? 어지간하면 좋게 해결하자고. 힘 빼지 말고.”
그는 마치 정식 대련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휘이익~! 멋지다, 길리언!”
“뭐가 멋져. 저런 꼬맹이들 상대로.”
“에이, 오랜만에 수월하게 사냥하는데 좀 즐겨도 좋지. 길리언 신난 것 안 보이냐?”
“이제 한동안은 놀고먹고 잔뜩 낭비할 수 있겠어!”
“정말 성을 하나 살까 봐. 매번 노는 데 탕진하고 나니까. 나도 노후를 준비해야지.”
“벌써 노후를? 웃긴 녀석이군.”
“제인, 그러니까 네가 안 된다는 거야. 나도 이제 슬슬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벤, 네가 잘도 그렇게 할 수 있겠다. 너 같은 쓰레기가!”
나무 위에선 나머지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킬킬거렸다.
눈을 굴리며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길리언이 카라젝에게 물었다.
“독에 전혀 영향을 안 받는 건 봤어. 너한테서 그나마 봐줄 만한 능력이던데. 혈계 능력자야?”
“…….”
카라젝은 대답 없이 그를 맹렬하게 노려보았다.
“대답할 마음 없어?”
휘익! 길리언의 검이 순식간에 카라젝의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카앙!!
하지만 카라젝은 그의 검을 막아내는 수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길리언을 공격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아르헬과 떨어진다면, 나무 위에 있는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그녀를 덮칠지도 몰랐다.
게다가 애초에 길리언의 말이 맞기도 했다.
카앙! 캉!!
그의 검을 몇 번 받아내니, 도저히 자신은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아직 실력이 형편없지만, 혈계 능력자면 괜찮아. 우리랑 함께한다고 하면 널 받아줄게. 우리 팀에.”
길리언은 여전히 장난스러운 말투로, 표정으로. 장난스럽게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에엑! 저 꼬맹이를 받아준다고?! 길리언 제정신이야?!”
나무 위에서 날이 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벨리 프로그의 독에 전혀 당하지 않은 것 봤잖아. 혈계 능력자는 구하기 쉽지 않으니까. 독 계열 드래곤을 만나면 놈을 잘 써먹을 수 있을걸.”
벤이라고 불린 남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들은 지금의 사냥 행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저 주말에 체스를 두는 듯이.
너무나 여유롭게 말했다.
“내 동료들 이야기 들었지?”
길리언이 매서운 공격을 쏟아내며 미소 지었다.
“너희들……, 말이 너무 많아.”
카라젝은 겨우 그의 검을 막아내며 대답했다.
“말이 너무 많아서 다행 아니야? 아니면 너흰 벌써 끝났을 텐데.”
길리언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맞는 말이다. 이 녀석이 이렇게 널널하게 공격하지 않았다면, 난 진즉에 당했을 거야. 제기랄! 내 실력이 조금 더 좋았더라면.’
카라젝은 아르헬을 만난 후 처음으로 자신이 완벽한 마도 병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저주스러웠다.
인간을 닮는 일 따위, 영혼을 얻는 법 따위.
지금 상황에서는 하등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깨워 준 아르헬을 위해 카라젝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영혼도 없고, 어설프게 인간을 흉내만 낼 뿐인, 쓸모없는 가짜 인간.’
차라리 끔찍한 살인 기계이길.
간절히 바랐다.
“난 아직 오러를 개방조차 하지 않았다고.”
휘익! 일순간 길리언의 검에서 빛이 일었다.
그리고 뻐어어어억!! 엄청난 소리와 함께 카라젝이 날아가 버렸다.
“카라젝!!”
아르헬이 외쳤지만, 카라젝이 처박힌 방향으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윽! 놔!!”
길리언의 손에 붙들려버린 것.
“정말 아무것도 못 하네. 아하하하!”
길리언은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 한 손으로 달랑 아르헬을 들어 올리고는 재밌다는 듯 얼굴을 들이밀었다.
“슬슬 말해 줄까. 어떤 방식으로 네 마법을 먹통으로 만들었는지.”
두껍고 걸걸한 목소리가 아르헬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아르헬은 발버둥 쳤지만, 억센 그의 손아귀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사실 아무리 드래곤 슬레이어라고 하더라도, 드래곤이 마법을 사용 못 하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거든. 6 클래스 마법사가 와도 그런 짓 하기 어려울걸. 드래곤 슬레이어에 관해서 부풀려진 이야기가 많아.”
그는 아주 비밀스러운 것을 말하듯이 속삭였다.
“대부분은 레어를 발견한 후에 잡다한 마법 장치를 하고, 아주 공을 들이지. 그렇게 해도 성공 확률은 낮아. 군대가 가도 그렇지. 조금 살았다 싶은 드래곤들은 정말 다루기 까다롭거든.”
길리언은 말하는 내내 키득거렸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가 겪은 것처럼, 난 진짜야. 효과가 확실했지? 그래서 말한 거야. 드래곤들 사이에서 악명 높을 거라고.”
키득거리는 목소리가, 기만하는 목소리가 너무나 불쾌해서 아르헬은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난 혈계 능력자야. 그런데 이게 좀 묘해서, 내 반경 100미터 내에서는 마법을 쓸 수가 없거든? 웃기지? 그래서 마법사들은 내게 꼼짝을 못해.”
아르헬을 쥔 길리언의 손아귀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더 웃긴 건, 마나를 사용하는 몬스터들에게는 더 잘 먹혀. 내 힘이. 딱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기 위해 태어난 운명이지 뭐야.”
“으윽! 아파!”
“뭘 이 정도 갖고 그래. 용 아가씨. 앞으로는 더욱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울걸. 아마 죽고 싶어질 거야. 아, 이까지 말했으니 눈치챘지? 나 너를 죽이지 않기로 정했어. 드래곤 노예라니. 멋지지 않아?”
“시끄러워! 역시 네놈 말이 많군!!”
아르헬이 확 뒤를 돌아보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카라젝이었다.
“으아아!”
카라젝은 벼락같이 달려와 검으로 길리언을 후려쳤다.
“어이쿠.”
카아아앙!!!
길리언은 뒤로 아르헬을 집어 던져버리고 검으로 카라젝의 공격을 막아냈다.
기기기긱.
오러가 흐르는 길리언의 검을 카라젝이 버텨내고 있었다.
“호오, 죽었을 줄 알았는데. 너 꽤 강하네. 역시 너도 데려가야 할까.”
휙! 카라젝이 밀려나면서 공중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그리고 바닥을 곧장 차고 길리언의 안쪽 깊이 들어왔다.
쉭, 쉬익!!
두 개의 단검이 엄청난 속도로 길리언의 복부를 베어냈다.
“됐다!”
바닥을 뒹굴던 아르헬이 기뻐하며 외쳤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금방 일그러졌다.
“되긴 뭐가 돼.”
길리언의 팔꿈치가 카라젝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퍼어어억!!
엄청난 소리가 났다.
평범한 타격이 아니었다. 오러가 담긴 공격.
카라젝의 상반신이 바닥에 처박혔다.
“드래곤 슬레이어라니까? 내가 입은 갑옷은 드래곤의 뼈와 가죽으로 된 거라고.”
하지만 카라젝 역시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곧장 일어나 다시 길리언을 공격하는 카라젝.
쉭, 쉬익! 퍼억! 콰악!!
카라젝이 쉴 틈 없이 공격을 쏟아부었다.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타격은 더욱더 맹렬해졌다.
길리언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오러를 담아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죽을 정도의 공격을 받고도 카라젝은 쓰러지지 않았다.
“어라, 이 녀석. 인간이 아닌가?”
길리언의 말과 함께 나무 위에 있던 인기척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이 녀석, 생포해봐. 자세히 뜯어봐야겠어.”
사삭, 사사삭.
“드래곤이랑 같이 다니는 걸 보니, 뭔가 특별한 게 있었나 보네.”
츠와아앗!!
사방에서 수많은 쇠갈고리가 쏘아져 나왔다. 갈고리에 달린 쇠사슬이 순식간에 카라젝의 몸을 칭칭 감았다.
차르르륵!!
“으윽!”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져 카라젝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제기랄!!”
카라젝이 분한 듯 외쳤다.
“이놈은 어떻게 사로잡는다?”
“드래곤 재우는 그거 똑같이 쓰면 안 돼?”
“흠, 이 녀석 독에도 안 당하고. 뭔가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런가? 역시 그냥 죽이는 수밖에 없나? 좀 아까운데?”
“흐음…….”
길리언과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마치 경매장에서 돼지를 낙찰받는 장사꾼들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카, 카라젝…….”
“흠, 일단 용 아가씨는 거기 가만히 누워 있어. 네 친구 먼저 손봐줄 테니까.”
길리언의 말에 아르헬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런, 어쩌나. 울어도 소용없는데. 하하하.”
“윽, 으윽……. 흐으윽……. 도와줘…….”
“응?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설마, 나?”
길리언은 배꼽이 빠지겠다는 것처럼 요란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나 이렇게 찌질한 드래곤은 처음 상대해 보는데! 그 빌어먹을 자존심조차 없는 용이라니! 아하하하! 그래! 그래도 이런 점 때문에 노예로 써먹기 좋겠단 말이야!”
“흐윽……. 도와줘. 루이드…….”
딸랑. 딸랑.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아르헬의 손에 쥐어진 작은 종.
“응? 그건 뭐야? 그걸로 뭔가 하는 거야?”
길리언이 가만히 아르헬을 바라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는 혀를 차며 차가운 눈으로 아르헬을 내려다보았다.
딸랑, 딸…… 랑. 아르헬의 종소리는 필사적이었지만, 떨림 때문에 제대로 울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루이드…….’
아르헬의 작은 종은 일전에 루이드가 주었던 물건이었다.
위험이 닥치면 울리라던.
아르헬은 질끈 눈을 감았다.
흐느끼는 아르헬을 보며 카라젝은 자신도 눈물을 흘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차르륵.
“어?”
그때, 나머지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카라젝을 사로잡은 사슬이 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건 사로잡힌 카라젝이 버둥거려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마치 사슬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어이, 다들 동작 그만.”
그리고 이미 짙게 어두워진 하늘 위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나도 간절히 원하던, 익숙한, 그리운 목소리에 아르헬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