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50)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50화(150/252)
제150화
제25편 메아리 계곡(6)
“아르헬이 없다고?”
식탁 앞에 앉은 루이드는 푸른 눈을 깜빡였다.
“어디 갔는데?”
식탁에 둘러앉은 수호단 모두 아르헬의 거취에 관하여 모르는 표정이었다.
“모르죠. 카라젝과 함께 사라졌어요.”
엠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뭣!”
루이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위험할까?”
“글쎄요. 그런 기미는 느끼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두 사람 모두 카라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직 카라젝에 관한 의심을 모두 거두어들인 것이 아니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마도 인형인 이상, 그리고 그 제작자의 의도가 불순한 이상.
자신을 속이기 위해 연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루이드였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마도 인형의 말을 믿고 싶으면서도, 완전히는 믿을 수 없었다.
아직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네……. 아무리 그래도 식사 시간에 오지 않을 리는 없는데.”
포커드 가문의 절대 법칙.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닌 이상에야 함께 식사한다.
‘그 법칙 때문에 성가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부모의 입장이 되니 요긴한 법칙이었단 말이지. 게다가 동료 간에 정도 돈독해지고.’
가문의 법칙이었지만, 루이드는 수호단에게도 이 법칙을 적용하고 있었다.
물론 아르헬에게만큼 엄격하진 않았다.
그래도 함께 있을수록 루이드의 스킬 덕을 볼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스킬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수호단들도 이를 싫어하지 않았다.
늘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식사에 늦는 건, 연구에 집중하느라 시간을 깜빡하는 아샤라나 하는 일인데.”
“뭐라고요?”
“이상해. 정말 이상해.”
“애들이니까, 뭐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녜요?”
루이드와 지낸 시간이 제일 짧은 헤랏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다른 이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루이드는 식기를 내려놓고 곧장 아르헬의 방으로 갔다.
사춘기가 올 법한 나이였지만, 다행히 아르헬은 방문을 잠가두진 않았다.
끼익.
천천히 들어가 주위를 살폈다. 방은 꽤 잘 정돈되어 있었다.
격투의 흔적이나, 수상한 점이 없었다.
‘만약 납치라고 해도, 카라젝과는 친밀하게 지냈으니. 반항 없이 데려갈 수 있었을지도.’
그때 루이드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설마…….”
지도였다.
그리고 그 지도에는 잉크로 크게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메아리 골짜기라고…….”
뒤늦게 쫓아온 아샤라가 루이드의 어깨 너머로 지도를 보았다.
“세상에. 설마 거기까지……. 아, 그러고 보니 요새 계속 드래곤 모습으로 비행했던 이야기를 했어요.”
쿵쿵. 루이드는 심장이 벌컥거리는 것을 느꼈다.
불안이 피어올랐다.
아샤라의 말대로 비행 때문에 나갔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없이 이렇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아빠의 직감이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루이드의 말에 아샤라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 * *
“루이드!!”
아르헬은 거의 비명을 지르듯 그 이름을 외쳤다.
시커멓게 우거진 나무 위로 보이는 암청색의 밤하늘에 떠올라 있는 그림자.
달빛을 등져, 그 어떤 존재보다 어둡게 보이는 인영이 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
목소리는 서리가 낀 듯이 차가웠다.
“뭐야? 저놈은…….”
드래곤 슬레이어 중 하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이 붙잡고 있던 수십의 사슬이 마구 요동쳤다.
그리고 그것이 요동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쇠사슬은 수백 개의 얇은 바늘로 변했다.
그리고 사슬을 쥐고 있는 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쉬이익! 푸콰악! 콱! 촤악!
“억.”
“윽.”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무슨…….”
“크륵.”
촤아악!! 그들을 꿰뚫고 지나간 자리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털썩, 털썩.
후두둑. 그들은 마치 단체 최면에 걸린 것처럼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찰나였다.
드래곤들 사이에 이름이 알려져 있을 정도인 드래곤 슬레이어 집단, 블러디 하운드 용병단이 절멸한 것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드래곤은 드래곤이다.
오래 산 드래곤들은 유희를 통해 인간의 모습으로도 소드 마스터가 되거나, 다양한 분야에서 최강자가 되기 일쑤였다.
굳이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본모습 그 자체가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진 것이 드래곤.
그런 드래곤을 몇 마리나 사냥했던 강자들의 집단이 쓰러진 것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마 길리언이 눈을 한 번 깜빡인 시간 동안이었을 터였다.
“무, 무슨…….”
길리언이 충격을 받아 떨리는 목소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아직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듯했다.
“그럴 리가……. 우리 용병대가……. 이렇게 한 방에……? 우, 우린. 우린 드래곤 슬레이어라고?”
후욱. 사슬에서 해방된 카라젝의 무릎이 꺾였다.
“큭.”
카라젝은 바닥에 쓰러졌다.
아르헬을 위해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일어설 수 없었다.
‘관절이 고장 난 걸까? 어디가 또……. 아니면 아주 망가져 버린 건가, 난…….’
지치지 않는 마도 인형인 주제에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선은 집요하게 아르헬을 쫓았다.
아르헬은 무사했다.
엉망진창이긴 했지만, 그녀는 무사했다.
카라젝은 힘겹게 조금씩, 바닥을 기어서 아르헬에게 다가갔다.
‘미안해, 아르헬. 내가 괜히 나가자고 했어. 내가 먼저 그랬어……. 그리고 네가 마법을 못 쓰게 됐다고 했을 때도 그저 웃었어……. 미안해. 미안해.’
카라젝은 의식이 가물거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스스스. 어두운 밤하늘에서 그 무엇보다 어두운 남자가 천천히 내려왔다.
형형한 살기를, 얼음장 같은 살기를 내뿜으면서.
“설명할 놈이 필요해서. 하나는 살려 뒀는데.”
“이, 이 자식……!!”
길리언의 검에 강력한 오러가 휘몰아쳤다.
그는 상당히 강한 오러 사용자였다. 아무리 마법을 잃게 하더라도 드래곤을 상대해야 하는 드래곤 슬레이어.
“네놈 내 동료들을……!!”
“어. 그래. 내가 다 죽였다. 그런데? 어쩌라고?”
바닥에 쓰러진 카라젝은 루이드 포커드의 그런 목소리를 처음 들어보았다.
겨우 한 달 정도밖에 같이 지내지 않았지만, 그래도 카라젝에게 루이드 포커드는 저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이 아닌, 마도 인형인 자신에게 차갑게 대할 때조차 저런 목소리는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공포심을 끌어내는 목소리.
마도 인형인 자신에게 소름 같은 게 돋을 리 없지만, 소름이 끼칠 만큼 차가운 목소리였다.
“아, 됐다. 듣긴 뭘 들어. 들어봤자 열만 더 받을 텐데.”
루이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도 그냥 죽어.”
“뭣?! 건방진……!!”
길리언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는 선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큭……. 끄륵…….”
그의 입에서 피거품이 일었다.
“으윽……. 쿨럭! 쿨럭!”
그는 요란하게 기침하며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끄윽, 끄윽하며 폐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묘한 갑옷을 입었던데? 그래도 중간에는 강철을 덧댔더라고.”
루이드가 싸늘하게 웃었다.
“그게 지금 수십 개의 송곳으로 변해서 말이야. 네 온몸을 꿰뚫었거든. 한 마디로 네가 걸쳤던 갑옷이. 지금은 아이언 메이든이 된 거지. 그러니까 그게 고문 기구…….”
루이드는 천천히 길리언에게 다가갔다.
“쿨럭……. 컥…….”
“뭔 말인지 모르겠지?”
“컥……. 크억…….”
루이드는 쓰러지려는 길리언의 멱살을 쥐었다.
“몰라도 돼, 인마. 곧 죽을 거니까.”
루이드는 참기 힘든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듯,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하……. 솔직히 널 그냥 죽여버리는 건 좀 아깝거든? 이제 쓸데없는 말도 못 하게 됐고. 마음 같아서는 스스로 죽고 싶어질 만큼 괴롭게 해주고 싶어. 그리고 난 그럴 방법도 잘 알고.”
“콜록……. 끅…….”
길리언은 뭐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지만, 계속 치밀어 오르는 피거품 때문에 말을 하는 건 도저히 무리였다.
루이드의 푸른 눈이 분노로 일렁거렸다.
“하……. 그래도 애들 교육에 안 좋으니까 내가 참는다.”
푸른 눈이 천천히 감기자, 퍽!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루이드가 손에서 힘을 풀었고, 길리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후…….”
잠시 서 있던 루이드의 푸른 눈이 다급하게 아르헬을 찾았다.
“아르헬!”
“우……. 루이드!”
루이드는 달려가 바닥에 쓰러진 아르헬을 살폈다.
“괜찮아? 다친 데는……. 너무 많네.”
어느새 분노가 가신 맑은 푸른 눈은 슬픈 듯 아르헬을 구석구석 훑어보았다.
“윽……. 으윽……. 흑……. 무서웠어.”
아르헬이 팔을 뻗어 안기려 하자, 루이드는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걱정마. 아르헬. 이제 내가 왔잖아.”
“흑, 흐윽……. 루이드……. 흑흑. 미안, 내가 잘못했어. 루이드한테 말도 안 하고…….”
“아니야. 됐어. 괜찮아…….”
루이드는 아르헬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를 안은 채로 등을 토닥거렸다.
그렇게 아르헬은 한참을 울었다.
길리언이 죽자, 마력이 돌아오고 드래곤의 재생력도 돌아왔다.
고통이 줄어들고 모든 것이 회복되고 있었다.
조금 진정된 아르헬이 여전히 루이드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물었다.
“내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우린 연결 되어 있잖아.”
“응?”
“네가 먼저 말했으면서 그새 잊었어? 우린 축복으로 이어져 있잖아.”
아르헬이 울먹이며 고개를 확 들었다.
얼굴이 눈물과 콧물, 땅을 구르며 묻은 흙으로 꼬질꼬질했다.
“……솔직히 말해서 네 방에 있는 지도를 봤지만.”
“우아앙, 루이드!! 고마워어어어! 엉엉! 나 죽는 줄 알았어어어! 으어엉!!”
아르헬은 루이드의 목을 더 세게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에휴. 그래, 그래. 안 무서워질 때까지 울어. 아르헬.”
아르헬과 루이드의 모습을 보면서 카라젝은 안도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쩐지 쉬고 싶은 기분이었다.
루이드는 아르헬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코도 닦아 주었다.
깨끗한 손수건으로 통통한 볼살이 깨끗해질 때까지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
“슬슬 돌아가자. 아르헬. 포커드의 법칙을 잊은 거야?”
“우웅?”
“저녁 식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먹기.”
루이드의 말에 아르헬은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좋아……. 배고파……. 밥 먹을래…….”
“암, 한국인……. 아니, 하여튼. 사람은 밥심이지.”
루이드는 바닥에 쓰러진 카라젝을 흘긋 보았다.
“저 녀석도 잘 챙겨야겠군.”
* * *
온몸을 꿰뚫는 격통.
길리언은 자신이 어떻게 당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아이언 메이든이라고…….”
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말이 머리를 웅웅 울렸지만,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억울했다.
왜 이런 상황이 된 것인지.
‘그때, 괜히 그 자식의 말을 듣는 바람에……. 제기랄, 그 새끼. 그 빌어먹을 새끼 때문에…….’
길리언은 몇 주 전 여관에서 만난 이상한 사람을 떠올렸다.
단번에 그들이 블러디 하운드 용병단이라는 것을 알아챈 사람.
검은 두건을 깊게 눌러 쓰고 뱀이 기어가는 듯한 축축한 목소리로 드래곤의 위치를 알려준 사람.
물론 길리언과 용병단은 냉큼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건을 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원하는 것은 별로 없었으므로.
오히려 이득이었다.
용이 언제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면 될지 그의 지시만 기다리면 됐으니까.
그륵. 그르륵……. 피거품을 토해내며 길리언은 생각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마지막으로 떠나면서 했던 말.
‘용이 흉내 내고 있는 모습과 비슷한 외양의 남자를 조심하시오. 그는 금속을 다루는 혈계 능력자니까.’
그리고 용병단을 위한 축복처럼, 기회가 왔었다.
그랬는데…….
길리언은 말하려고 했다.
서슬이 퍼런 푸른 눈을 바라보면서.
‘너……. 이 자식. 그 새끼랑…… 무슨 관계야.’
하지만 아무리 말을 하려고 해도, 목구멍에 가득 찬 피 때문에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퍽! 하고 의식이 끊어졌다.
솨아아…….
루이드와 아르헬, 카라젝이 떠난 협곡.
울창한 나무와 우거진 수풀 사이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몰살당한 용병단 블러디 하운드들의 시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자박, 자박.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인영.
“흐응……. 그렇단 말이지.”
두건을 깊게 눌러 쓴 어두운 그림자가 처참한 현장의 가운데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