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51)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51화(151/252)
제151화
제1편 눈을 뜨다(1)
“정말 쉽게 사람을 죽이는군.”
음침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그동안은 꽤 인두겁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고개를 돌려 시신들을 살폈다.
“…….”
자박, 자박. 그가 걸음을 떼어 길리언의 시체 앞으로 다가갔다.
“바보 같은 놈.”
그는 길리언의 갑옷을 쥐고 잡아 뜯었다.
촤아악!!
내부에 굵은 가시 송곳이 자라난 갑옷이 뜯기며, 길리언의 붉은 피가 튀었다.
아직 미지근한 피였다.
두건을 쓴 자는 변형된 갑옷 내부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휙, 던져버렸다.
“강한 놈이라고 하길래 쓸모 있는 걸 빌려줬더니.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그리고 팔을 뻗어 구멍이 숭숭 뚫린 길리언의 몸에 손을 집어넣었다.
으직, 으지직.
살을 가르고 헤집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어둡고, 차갑고, 정적이 흐르는 숲속에 끔찍하고 질척이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다행히 깨지진 않았군.”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주먹보다 조금 작은 돌이었다.
마정석.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는 돌은 분명 마정석이었다.
불길한 빛으로 반짝이는 돌은, 길리언의 피를 서서히 흡수하는 듯.
점점 맑고 깨끗한 빛을 냈다.
“어찌할까. 허튼 곳에 신력을 소비해 버려, 루이드 포커드와 정면으로 붙기는 벅차고.”
그는 보랏빛의 마정석을 마저 닦아 주머니에 넣었다.
깊게 눌러쓴 두건 아래로 그의 하관이 달빛에 비쳤다.
“곤란하군, 곤란해. 루이드 포커드. 그자가 계속 날뛰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내 형제자매들의 원성이 아주 자자하겠어.”
하지만 그의 입매는 호를 그리고 있었다.
“내 형제자매들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그를 처리하려면, 좀 더 좋은 무대와 이야기가 필요할 터인데……. 정말 곤란해.”
웃고 있었다.
내뱉는 말들과는 달리 전혀 곤란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궁지에 몰린 것처럼 반응했던 다른 목소리들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말이야. 페리. 그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사실 궁금하거든. 네가 죽여버리고 싶어 했던 힘을 가진 사내잖아.”
두건을 눌러쓰고, 로브로 몸을 칭칭 감은 차가운 목소리의 괴한이 중얼거렸다.
마치 누군가에게 속삭이는 것처럼.
“나는 과연 그가 운명을 어떻게 벗어나려고 할지, 사실 궁금해. 물론 형제자매들이야 그런 것보다는 우리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만이 관심사겠지만.”
큭큭큭. 그가 어깨를 떨었다.
“페리, 너야 도망쳐버렸지만. 그는 다를지도 몰라. 그는 인간들을 저버릴 수도 있겠지. 이 세계를 손아래에 두고자 할 수도 있겠어. 하하하. 그렇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물론 우리에겐 그가 걸림돌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지만…….”
그는 한참을 중얼거리다가, 문득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모두 잠들어서 들을 수 있는 자들이 없다니 아쉽군.”
그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어두운 숲속을 울렸다.
그리고 바람이 불었다가 멈추었을 때, 피 냄새를 맡고 나타난 짐승들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 * *
“다시는 혼자 안 나갈래.”
붕대와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이고 침대에 반쯤 누운 아르헬이 한껏 의기소침한 얼굴로 말했다.
방안에는 아르헬과 루이드 단 둘뿐이었다.
메아리 계곡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아르헬은 극도의 안정이 필요했다.
벌써 일주일 동안 아르헬은 아무와도 만나지 않고, 방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
루이드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런 아르헬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르헬이 얼마나 놀랐을지, 얼마나 무서웠을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아르헬. 진정될 때까지는 마음대로 해도 좋아.”
“……이제 루이드 곁에만 붙어있을 거야.”
“영원히?”
“영원히!”
루이드는 곤란한 얼굴을 했다.
“으응.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뭐어! 루이드! 내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
“물론 충분히 자랄 때까지는 나와 동행하거나 허락을 받거나, 최소한 말은 하고 움직이는 게 좋겠지.”
아르헬은 그렇게 말하는 루이드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이전까지는 아르헬이 혼자 행동하도록 두지 않은 루이드였다.
워낙에 바빴기에 루이드가 직접 돌볼 수 없는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항상 보호자를 옆에 두었었다.
이번에 큰 사고까지 겪어서, 자신의 선언을 듣고 오히려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러나 루이드의 반응은 아르헬의 예상 밖이었다.
“그러니까, 오해하지는 말고. 난 아르헬 네가 이 사건을 통해서 껍질 안에 숨은 달팽이처럼 살기를 원하지 않아.”
루이드의 말에 아르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르헬은 강하잖아.”
푸르고 커다란 아르헬의 눈에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였다.
지금 당장은 너무나 무서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그런 취급을 당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무력하게 짓밟힐 거라고.
아르헬은 두 눈을 꽉 감아버렸다.
다시는 드래곤의 힘을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았다.
다시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전과 같이 충분한 마나가 느껴졌지만, 또 순식간에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모든 자신감이 사라져버렸다.
손이 떨리고, 차가운 얼음물에 내동댕이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르헬.”
루이드가 두 팔을 벌렸다.
아르헬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꼬물꼬물 루이드의 품에 안겼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지겠지?”
“물론이지. 내 말이니까, 믿어.”
“응…….”
“아르헬, 물론 넌 미성년자니까, 내게 말을 하고 갔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을 당한 거 절대로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네 탓도 아니고.”
“…….”
“그놈들이 나쁜 거야. 넌 운이 안 좋았을 뿐이지. 절대로 자신에게 가혹하지 마. 그리고 괜찮아져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할 필요도 없고. 네가 이 일을 이겨내길 바라고 극복하길 바라고, 네가 강하길 바라는 건. 네가 너무 오래 아프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니까. 내가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 거, 알지?”
루이드는 아르헬의 등을 토닥였다.
“우웅……. 루이드가 그렇게 말해줘서……. 많이 힘이 돼.”
아르헬이 루이드를 더 꼭 끌어안았다.
루이드는 안타까운 얼굴로 아르헬의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조차 가까스로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이 작고 섬세한 존재는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놈들을 그렇게 단숨에 죽여버린 일이 후회되었다.
좀 더 끔찍하게. 좀 더 고통스럽게. 제발 죽여달라고 빌도록 만들어야 했다.
아르헬이 고통을 당한 만큼, 공포를 느낀 만큼. 놈들도 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놈들은 죽었고, 세상에 없었다.
그러니 이런 감정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자신의 품속에 있는 아르헬의 회복을 위해 집중해야 했다.
“……흐음, 오랜만에 조카를 좀 보러 갈까?”
“조카?”
“그래. 기억나? 코니.”
“……코니!”
아르헬은 기억을 조금 더듬더니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동생!”
“응, 센티미온 성에서 태어난 네 조카 말이야. 지금쯤 몇 살이 되었을까. 다섯 살쯤인가.”
포커드 가문의 맞이. 케인과 그의 부인 에밀리 사이의 아이였다.
아르헬은 코니를 좋아했었다.
처음으로 축복을 사용했던 것도 코니에게였다.
그런 코니가 성장한 모습을 본다면, 아르헬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터였다.
“귀엽겠다!”
루이드의 예상대로 아르헬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 그때 아르헬이 코니를 평생 지켜줄 거라고 했었잖아.”
“맞아……. 그랬었어.”
아르헬은 루이드의 가슴에 통통한 볼을 푹 기댔다. 그리고 한참 고민했다.
“……코니가 보고 싶어.”
“너무 무서우면, 천천히 가도 돼.”
“하지만 5살이면 엄청 귀여울 텐데.”
아르헬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간절한 얼굴로 루이드를 올려다보았다.
“물론 한창 귀여울 때지. 하지만 네가 무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루이드는 아르헬이 쉽게 회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판타지 같은 세상이지만, 아르헬은 아직 너무 어렸다.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어린 건 어린 것이니까.
“……우우.”
아르헬은 힘겨운 듯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었지만,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코니. 보러 갈래.”
루이드는 깜짝 놀라 아르헬을 보았다.
“정말? 정말로? 괜찮겠어? 더 쉬어도 돼. 정말이야, 아르헬.”
“내가 코니 지켜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렇게 의기소침하게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
아르헬의 푸른 눈이 비장하게 반짝거렸다.
“코니는 절대로 그런 일을 겪게 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아르헬이 강해질 거야. 더 많이! 더 빨리! 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르헬의 작은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루이드는 아르헬이 얼마나 큰 결심을 했는지 충분히 알았다.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전혀 괜찮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힘을 냈다는 점이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자랑스러웠다.
루이드가 말했듯, 아르헬은 정말 강했다. 어리지만, 아직 서툴지만.
그녀는 정말로 강했다.
그녀는 포커드의 막내딸.
루이드의 딸이자 여동생.
띠링. 시스템 알람이 울렸다.
[스킬 길들이는 자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당신의 격려로 대상이 성장했습니다.] [당신은 경험치를 받습니다.] [당신은 이득 상태가 됩니다.] [이득 적용 범위:정신력]‘오잉?’
루이드의 파란 눈이 깜빡였다.
루이드는 아르헬을 다시 한번 따뜻하게 안아 다독거려 주면서 그녀의 등 너머로 시스템 창을 보았다.
‘이득 적용 범위가 정신력이라. 아르헬의 정신적인 성장 덕분일까? 짜식.’
이제껏 길들이는 자 스킬은 육체적이나 능력의 상승 정도만 카운트해 주었었다.
‘내 스킬 덕분에 혈계 능력이나 마법 실력 같은 부분의 발현이나 성취를 이룰 때만 보너스를 받았었는데.’
한편으로는 한시름이 놓이기도 했다.
어린 아르헬에게 너무나 가혹했던 사건이었지만, 결국에는 아르헬이 이겨내고 있다는 증명이니까.
‘앞으로 더욱 기대할 만하겠는데.’
루이드는 미소를 지었다.
* * *
그렇게 겨울인 와중에도 루이드는 센티미온으로 향했다.
물론 수호단과 헤랏산까지 모두를 데리고.
“루이드!!”
센티미온의 외성을 넘어 내성에 닿았을 때, 이곳 영지를 맡아 관리하는 포커드 가문의 첫째.
케인 포커드가 달려 나와 루이드를 맞이했다.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고생은요. 잘 지내셨습니까, 형님?”
“아하하! 어때 보이느냐!”
루이드는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첫째 형의 얼굴을 보았다.
“폭삭 늙으셨네요.”
“으하하하! 이 녀석이?”
루이드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사실 반은 진담이었다.
몇 년 사이에 케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 있었다.
“센티미온에서 처음 성주의 일을 할 때, 어찌나 힘들었던지. 하지만 이제는 좀 익숙해졌단다.”
케인이 루이드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네가 이곳보다 훨씬 멀고 넓고, 까다로운 그리슨빌도 묵묵히 가꾸어 나가는데, 내가 징징거려서야 되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너는 아주 좋아 보이는구나?”
케인이 루이드를 물끄러미 보더니, 다른 손으로 볼을 잡아 쭉 늘였다.
“피부도 아직 아기 같구나. 전혀 늙지 않았어!”
“으악! 형님~! 아기는 무슨!”
루이드가 버둥거렸지만, 케인에게는 아직 어린 동생일 뿐이었다.
금속 로봇으로 전쟁을 단숨에 승리로 이끄는 모습보다 킬베리움 영주 성에서 뺀질거리던 모습이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것.
“아 참, 그래. 수호단이라고? 너를 보좌하는 자들이 그렇게 뛰어나다지? 네 주위에는 어떻게 그렇게 실력 좋은 능력자들이 득실거리는 거냐?! 부러워서 질투가 날 지경이야! 으하하!”
“켈록, 그래도 편지는 다 읽어보시는군요.”
“물론이지. 나도 아버지도 네가 보내주는 편지를 받아 읽는 재미로 산단다. 게다가 영지 운영에도 무척이나 도움이 되고 말이야.”
케인은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눈으로 루이드의 볼을 마구 주물렀다.
“큰 오라버니!”
“아르헬! 내 귀여운 막냇동생!”
아르헬의 외침에 케인은 루이드를 놓아주었다.
‘켁켁, 아르헬 덕분에 살았네.’
루이드는 얼얼한 볼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케인은 아르헬을 안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렇구나. 네가 루이드 대신 쑥쑥 자랐나 보다. 아주 어엿한 숙녀가 다 되었어.”
“에헴. 사교계 데뷔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요.”
아르헬을 으쓱거리며 턱을 들어 보였다.
“뭐라고?! 사교계 데뷔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왜 안 돼요?!”
“루이드! 너 동생 교육을……!”
“아차차, 아르헬. 네가 그새 잊었나 보구나. 우리 포커드 가문은 막내를 싸고돌기로 아주 유명하지.”
“에에엑!”
아르헬이 케인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럴수록 케인은 더욱 짓궂은 얼굴을 하면서 놓아주지 않으려고 힘을 주었다.
티격태격하는 아르헬과 케인의 모습을 보면서, 루이드는 센티미온에 오기로 한 것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아르헬의 얼굴이 훨씬 밝아졌기 때문.
“어라, 그나저나. 형수님이 안 보이십니다?”
루이드의 말에 케인의 웃음소리가 뚝 끊어졌다.
“그것이…….”
순식간에 더욱 핼쑥하게 변한 케인의 얼굴.
루이드는 순간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고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