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54)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54화(154/252)
제154화
제4편 눈을 뜨다(4)
“크, 윽…….”
아르헬은 머리를 쥐고 비틀거렸다.
“아르헬?”
놀란 루이드가 아르헬을 부축했다.
아무런 능력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데도, 아르헬의 눈이 오리할콘의 빛처럼 오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루, 루이…… 루이드. 기억이…….”
“응? 기억?”
아르헬은 작은 손으로 루이드의 옷깃을 꽉 쥐고는 그대로 까무러쳤다.
* * *
어둡고 축축한 곳.
몇 번이나 아르헬이 있었던 곳이었다.
‘몇 번이나?’
아르헬은 생각했다.
어둡고 좁고 외로운 작은 공간은 자신이 몇 번이나, 몇십 년이나 머무르던 곳이었다.
‘알……. 속이다.’
아르헬은 깨달았다.
지금 자신을 감싼 기억은 루이드를 만나기 직전에 있었던 알 속의 기억.
‘그래. 난 이 알에서 루이드를 만났었어. 그리고…….’
콘콘이 되었고, 아르헬이 되었었다.
‘그전에는?’
아르헬은 기억을 더듬었다.
알 속에 있기 전에는 어땠지?
아샤라에게 마법 수업 외에도 많은 것을 배운 아르헬이었다. 그러니까 알 이전에 생물이 어떤 형태인지는 당연히 아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르헬의 기억은 그 이전을 더듬었다.
마치 그보다 더 과거의 일이 존재한다는 듯이.
아르헬은 기억 속을 헤엄치듯 나아갔다.
어둡고 외로운 검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그리고 빛이 보였다.
익숙하고 친근한 오리할콘의 빛.
따뜻하고 오색으로 빛나는 반짝임.
화아악. 시야가 밝아졌다.
그리고 단숨에 높아졌다. 그러니까, 아르헬은 자신의 몸이 아주 크다는 걸 자각했다.
‘뭐야?’
주위로는 영롱하게 빛나는 오리할콘이 가득했다.
반짝이는 광물이 거친 표면으로 아르헬을 비췄다. 수백 개의 면이 아르헬의 모습을 반사해내고 있었다.
거대한 드래곤.
무척이나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이게 나인가?’
아르헬은 도무지 믿기지 않으면서도 무척이나 그립고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드래곤은 수명이 다한 것 같았다.
아르헬이 숨을 내쉴수록, 입김이 닿는 곳 모두에서 오리할콘이 빚어졌다. 맺혔다.
드래곤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수많은 오리할콘은 아르헬의 마지막 숨결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루이드에게 들었지. 오리할콘으로 가득한 동굴 속에 알이 하나 있었다고.’
거대한 드래곤이 마지막 힘을 짜내 몸을 웅크리자 그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알, 이 되는 건가…….’
아르헬은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지금 본 방식을 경험한 것이 한 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번 이렇게.’
아르헬은, 신비 드래곤은.
부모 개체가 자식 개체를 낳는 식으로 종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었다.
알에서 깨어나 자라, 수명이 다하면 다시 알로 돌아간다.
그러나 알이 되고 깨어나면 이전의 드래곤이 가졌던 기억은 잊고 새로운 드래곤이 되어 살아가는 것.
아르헬은 자신의 비밀에 관하여 깨우쳤다.
본래라면 알아채지 못할 비밀.
슈우우욱.
아르헬의 의식이 더욱 과거로 돌아갔다.
마치 비디오를 빨리 되감듯이.
세세한 사건을 알아채기에는 빠른 속도여서 아주 어렴풋하게 과거의 아르헬이 겪었던 감정과 기분, 생각 같은 것들이 느껴지는 정도였다.
아르헬은 고룡(古龍)의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
‘왜 이다지도?’
그런 의문이 더해질 때쯤, 아르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익숙한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의식 안으로 침잠하기 전, 루이드의 손에 들려 있던 것과 같은 보라색 마정석.
‘어!’
아르헬은 주변을 파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발견하기 위해.
하지만 너무 빨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르헬은 마정석이 있는 기억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급류에 휩쓸리는 것처럼 의식이 떠내려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과거로, 과거로. 아르헬은 계속 흘러갔다.
신비 드래곤만의 힘을 사용하는 기억들, 전생에서 역시 폭주했던 일. 모든 것들이 아르헬에게 쏟아졌다가 지나갔다.
어째서일까? 기억이 역으로 흐르는 동안 아르헬은 점점 더 서글퍼졌다.
세상 속에 혼자 있는 듯한.
정말이지 왜일까?
신비 드래곤은 만물에게 사랑받는 존재라고 알고 있었다.
멜리옌의 정령들에게도 들었고, 다른 종족들을 만났을 때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어느새 아르헬의 정신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위인지 아래인지 분간할 수 없고 그저 감정만이 남아있었다.
“아르헬!”
아르헬은 자신을 끌어안는 강한 힘을 느꼈다.
“아르헬, 괜찮아?”
루이드 포커드였다.
아르헬의 동료. 친구. 가족.
아르헬은 순간적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래, 오래도록 내가 원하고 바라던……. 그런 건…….’
그리고 루이드를 꼭 끌어안았다.
“아르헬? 역시 힘을 너무 많이 썼구나. 이런…….”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루이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르헬은 고개를 들었다.
“아르헬, 루이드. 고맙다. 너희가 아니었더라면 코니는…….”
코니의 상태를 확인하던 케인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너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구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너희가……. 너희가 가족이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케인은 목이 메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르헬의 맑은 눈이 케인의 얼굴을 살폈다.
루이드와도 자신과도 너무나 닮은 얼굴. 흰 피부에 검은 머리, 푸른 눈.
“아가씨. 정말 고맙습니다.”
에밀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침대맡에서 평온히 잠든 코니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만이 아니라, 고마움과 사랑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아.’
아르헬은 기억 속에서 읽었던 외로움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오랫동안 차가운 얼음물 밑에 잠겨있다가 구원받은 느낌.
‘내가 원하고 바랐던 따듯함.’ 비단 닮은 겉모습뿐만이 아니었다.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았어도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모습.
이들을 위해서라면, 아르헬은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지나 만난 따뜻한 가족. 동료.
아르헬은 눈을 부릅떴다.
“나. 완전히는 아니지만, 몇몇 기억들이 떠올랐거든!”
아르헬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침착했다.
“기억이라고?”
“응. 나, 이거 뭔지 알 것 같아.”
아르헬은 자신을 부축한 루이드의 다른 손에 들린 마정석을 보며 말했다.
찰나였고 놓쳤다고 생각했지만, 일부 기억의 파편들이 아르헬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조카인 코니를 괴롭히고 있던 핵심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거, 저주야.”
* * *
루이드는 아르헬의 입에서 나온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무슨 말인지는 알았지만,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코니는 5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그런 어린아이를 저주할 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아르헬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고대의 저주야. 게다가 굉장한 악질.”
“고대? 고대라면…….”
카라젝을 발굴한 유적을 만들었을 정도의 고대란 말인가. 그렇다면 더욱 이 사태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아르헬은 손을 뻗어 루이드가 쥔 마정석을 쥐었다.
“이건 적어도 500년은 된 마정석이야. 이런 보라색 빛을 내는 건.”
“500년 정도라면 고대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 아니야?”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헤랏산이 끼어들었다.
“사용된 마정석이 500년이 되었다는 거지. 이것을 사용한 주술은 더 오래된 거야.”
아르헬은 더욱 명료한 어투로 말했다.
루이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부분의 마정석은 몬스터의 몸에서 생성되었다.
강한 몬스터일수록,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 있을수록 더욱 등급이 높고 질이 좋은 마정석이 생성된다고.
루이드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마기와 마나의 집약체.
그리하여 마법사들은 이를 이용해 마법이 어린 물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다양한 분야에서 마법사들의 연구에 사용되고 있다고.
마정석에 관하여 루이드가 아는 사실이었다.
500년 이상 된 마정석이라면 얼마나 강한 몬스터에게서 만들어졌다는 말일까.
애초에 500년이나 사는 몬스터는 드물었다.
“그녀의 말이 모두 맞아요.”
느긋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 목소리에 루이드는 물론이고 수호단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귀신을 본 것 같은 얼굴들이네요. 하하하.”
클리아베이든이었다.
“꺄악! 저, 저건…….”
“귀신?!”
안정된 코니의 곁에 붙어있던 에밀리도 케인도 놀라 소리쳤다.
“귀신이라뇨. 저는 클베. 위습이랍니다! 구성 물질은 살짝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요. 하하하, 농담이에요~!”
오래간만에 듣는 클리아베이든의 목소리는 경쾌하고 능청스러웠다.
“아버……! 아니, 클베! 어떻게!”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아샤라는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외쳤다.
“자아, 자아. 감격의 상봉은 잠시 미뤄두고. 골치 아픈 고대 저주에 관해서 이야기해야죠. 사실 시간이 별로 없어요. 저 다시 기절할 거거든요.”
클리아베이든의 말대로 그의 몸은 희끗희끗했고 일반적인 상황일 때보다 훨씬 투명했다.
“그 축복인지 뭔지 하는 힘을 받아서 지금 약간 충전된 거라고요.”
“축복의 힘이요?”
루이드가 아르헬을 보았다.
“으응, 살짝 흘러넘친 힘이 내게 영향을 끼쳤어요. 아샤라가 날 가방에 잘 넣고 다닌 덕분에.”
클리아베이든은 아샤라를 향해 찡긋 윙크하고는 아르헬이 쥔 마정석 가까이 날아갔다.
“이런 보라색은 불길한 색이죠.”
“오래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루이드의 말에 클리아베이든은 불꽃을 끄덕였다.
“물론 그렇기도 하죠. 보통 보라색은 그래요. 그런데 여길 한 번 보시죠.”
마정석의 보랏빛 내부에는 검고 어두운 빛이 일렁였다.
초감각, 통찰의 눈 상태가 해제되었지만, 루이드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분명 불길한 기운을 느꼈겠죠. 그래서 저 아이의 몸에서 이걸 곧장 뽑아냈을 거고요.”
루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 신기한 사람이란 말이죠. 포커드 백작은. 어떻게 이렇게 뭐든지……. 뭐 그게 지금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클리아베이든의 불꽃이 쭈욱 늘어나 보랏빛 마정석을 쥐었다.
“아르헬이 말했듯이 이건 고대의 저주를 발동시키기 위해 사용된 겁니다. 저주 때문에 그 색이 탁해졌죠.”
일반적으로 탁한 마정석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질이 나쁜 것이 아니라 오염된 것.
“게다가 저도 잠깐 연결되면서 보았는데, 현존하는 그 어떤 저주와도 같은 형태가 아닙니다. 세계의 모든 마법에 통달한 마황인 내가 보증할 수 있죠.”
“새로 만들어 낸 식이라면요?”
루이드의 물음에 클리아베이든이 아르헬을 흘긋 보았다.
“그렇다면 굳이 아르헬이 고대의 저주라는 말을 꺼냈을 리가 없지 않을까요?”
클리아베이든은 아르헬의 존재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비 드래곤이, 오리할콘에서 태어나 오리할콘을 먹으며 자라는 드래곤이 어떤 식으로 태어나고 자라는지. 또 죽는지를 아는 눈치였다.
아르헬은 클리아베이든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루이드. 내 말을 믿어.”
“아르헬. 어떤 상황에서든 난 널 믿어. 그런데…….”
“말해 줄게. 내가 기억해낸 것들이 무엇인지.”
아르헬의 푸른 눈이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