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55)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55화(155/252)
제155화
제5편 눈을 뜨다(5)
아르헬은 루이드와 이야기하기 위해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대부분의 기억은 시간 속에 씻겨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아르헬에게 남아있는 것은 대부분 감정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루이드에게는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간혹 네가 알지 못하는 힘을 사용하고, 또 그래서 간혹 알 수 없을 것을 안다고 했던 거구나.”
루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일이 스쳐 지나갔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눈앞에 있는 아르헬의 존재가 어쩐지 조금 낯설었다.
아르헬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그래, 아르헬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 그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루이드가 공감해줄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동안, 아르헬만이 가지고 있었을 외로움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아르헬은 수명이 다하게 되면 또…….’
루이드는 약간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가 다시 미간에 힘을 주었다.
드래곤의 수명이 인간과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자신은 아르헬이 성체가 될 때까지 살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히 알 수 없다.
분명 아르헬이 자라는 속도가 다른 드래곤과 비교해도 무척이나 빠르긴 했지만.
‘그래도 수명 자체는 다른 드래곤보다 짧거나 하지 않다는 게 다행일까.’
루이드는 이야기를 마치고 얌전히 앉아있는 아르헬의 두 손을 꼭 맞잡았다.
작은 두 손을 보고 있자니, 아르헬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르헬을 처음 데리고 왔을 때부터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루이드는 아직도 그때 결심했던 것을 잊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아르헬이 혼자 남게 되더라도. 이 애가 잘 버틸 수 있도록,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강하게, 잘 키우겠다고 다짐했어.’
복잡할 필요 없다. 연연할 필요 없다. 그거면 될 터였다.
루이드의 마음이 전해진 것인지 아르헬은 미소 짓고 있었다.
“전생…… 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아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르헬의 말에 루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어쨌든 이것이 고대의 저주라는 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지. 네 덕분에 알 수 있었어.”
그리고 이 사건에 깔린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의.
“이제 알아내야 하는 것은 누가 왜 이런 짓을 벌였냐는 거야.”
“그건 그 펜던트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 그렇군. 역시 아르헬. 내 딸랑구야.”
“딸랑구가 대체 뭔데?”
아르헬의 갸웃거림에도 루이드는 벌떡 일어났다.
클리아베이든의 아티팩트에는 물건을 추적하는 기능이 있었다.
보라색 마정석이 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것을 조합하면 무엇이라도 단서를 찾을 수 있을 터.
그게 아니더라도 펜던트를 고쳐야 하기는 했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아르헬. 너는 포커드잖아.”
“……응!”
아르헬도 루이드를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너는 오늘 포커드로서 포커드를 보호했어. 네가 코니를 구한 거야. 정말 잘했다.”
루이드는 아르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언젠가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아르헬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변하지 않을 루이드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신했으므로.
두 사람은 방문을 열고 나갔다.
바깥에는 더 큰 방이 있었다.
작은 거실을 두고 방 여러 개가 붙은 구조로, 내성의 서쪽에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서쪽 탑과 가장 가깝기도 했다.
“많이 기다렸지.”
루이드는 거실로 나와, 모여있던 수호단에게 말했다.
“저희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엠마가 말하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과 에밀리, 그리고 코니는 아직 서쪽 탑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루이드가 아르헬과 이야기하기 위해서 방을 나왔을 때까지 코니가 의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운다인의 말에 따르면, 코니는 굉장히 안정적인 상태였다.
상처의 경우도 아샤라의 마법이 거의 완벽한 치유를 해냈기 때문에 흉터조차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클리아베이든. 이 펜던트. 고장 난 것 같아요.”
루이드는 품속에서 아티팩트를 꺼냈다.
“에엥? 뭐라고요? 그런 귀한 아티팩트를 고장 냈다고요?”
클리아베이든이 호들갑을 떨며 루이드에게 훅 다가왔다.
“고장을 낸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했는데 고장이 나 있었어요.”
“그럴 리가 있나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고장이라고요?! 지금 마황인 나의 실력을 우습게 보는 건가요?!”
클리아베이든은 자존심이 상한 듯 쏘아붙였다.
“간만에 정신이 들고도 꽤 팔팔해 보이네.”
아샤라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리며 툴툴댔다.
루이드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펜던트를 열었다.
우우웅.
펜던트가 작동되고, 이전처럼 화살표가 떠오르더니 한 자리를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참나. 에벨리의 마법사들이 들었으면 경을 칠…….”
클리아베이든은 조잘대며 그 모습을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고칠 수 있는 건가요? 왜 고장 났는지 알 수 있을까요? 대체…….”
“아아, 이건.”
클리아베이든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건 그냥 배터리가 다 된 건데요.”
“예?”
황당함에 턱이 벌어진 건 루이드 뿐이 아니었다.
방에 모인 모두가 황망한 얼굴로 클리아베이든을 보았다.
“아아, 사실 이게……. 몇십 년에 한 번씩만 충전해 주면 되는데…….”
클리아베이든은 약간 민망한지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왜 충전이 안 됐지? 분명 넣어뒀을 때 자동 충전이……. 흠흠, 아아. 그런가. 유적에서 고대 마법과 충돌해서 방전됐을 수도…….”
“그러니까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거죠?”
“으응……. 그냥 에너지를 충전해달라는 표시였어요.”
“…….”
“…….”
적막이 흘렀다.
“휴. 뭐, 다행이네요.”
루이드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큰 고장이 아니라면 오히려 잘된 일 아닌가.
“흠흠, 그렇죠.”
“충전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충전이 필요한 거라면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요.”
아샤라가 꿍얼댔다.
“뭐어, 에너지 없이 영원히 돌아가는 물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 아닌가? 이 정도는 알아차렸어야지. 흠흠.”
클리아베이든은 헛기침을 하며 보라색 마정석을 들어 올렸다.
“이걸 쓰면 될 것 같은데요.”
루이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오염된 마정석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오염되긴 했지만, 그 힘 자체는 무시할 것이 못 됩니다. 이렇게 오래되고 사악한 물건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엄청나거든요.”
클리아베이든은 마치 악당처럼 음습하게 쿡쿡댔다.
“흐음. 하지만 전 이 보라색 마정석의 주인을 추적할 셈이었어요.”
“추적이라고요?”
“네. 이건 흔한 물건이 아니잖아요? 코니에게 그런 짓을 한 자를 찾아내야죠.”
루이드의 푸른 눈이 서늘한 빛을 띠었다.
“흐음……. 물론이에요. 당연히 그래야죠. 포커드의 가훈이 가족을 지킨다는 거였던가요?”
클리아베이든은 이글거리며 보라색 마정석을 보았다가 펜던트를 보았다.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렵지 않다, 라?”
“백작이 원하는 대로 두 가지 모두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마정석을 추적하는 일과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요.”
클리아베이든의 불꽃이 마치 웃는 듯이 화르륵 타오르며 이글거렸다.
“대신 제 마력을 좀 넣어야 해서 기절할 것 같지만!”
“뭐, 뭐라고요? 정신을 차린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아샤라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다가왔지만 클리아베이든은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대꾸했다.
“어차피 흘러들어온 에너지 덕분에 정신을 차렸던 거란다. 완전히 회복하려면 한참 남았지. 힘을 저장해 둘까 하다가 네 얼굴이 보고 싶어서. 후후후.”
“……!”
“어쨌든, 눈을 뜬 덕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말을 마친 클리아베이든은 아샤라가 뭐라고 덧붙이기 전에 불꽃을 더욱 키웠다.
화르르륵! 푸르륵! 일렁이는 불꽃이 마정석을 집어삼켰다.
불꽃 안에서 마정석은 새하얗게 바래기 시작했다.
화살표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펜던트는 달칵, 소리를 내며 내부가 열렸다.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어둡고 넓은 펜던트의 깊은 내부로 클리아베이든의 불꽃과 하얗게 바랜 마정석이 빨려들어 갔다.
“클베!”
아샤라가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펜던트는 마정석을 완전히 삼킨 다음에 입구를 닫았고, 클리아베이든의 불꽃은 완전히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쉬이우우우우!
펜던트에 그려진 수많은 별자리 모양이 회전했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아가기만 하던 화살표가 우뚝 멈췄다.
츠츠츳. 후우웅. 새로운 화살표가 하나 더 떴다.
휘릭, 휘리릭. 두 개의 화살표는 자신이 가리켜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해 조금 흔들리다가, 정확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며 멈췄다.
“어라.”
클리아베이든이 놀란 듯 읊조렸다.
즈즈즈.
그리고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두 개의 화살은 서로 겹쳐, 녹아내리듯 하나가 되었다.
서로 달랐던 화살표의 색이 뒤섞여 마블링을 만들어냈다.
“……? 이게 무슨 의미죠?”
루이드가 묻자 클리아베이든은 불꽃을 부들거렸다.
“이건, 우리가 찾는 물건이 같은 곳에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죠.”
“그건, 코니에게 저주를 내린 놈이 괴한이라는 겁니까?”
루이드의 목소리는 차갑고 또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말 할 수 있겠네요.”
“다른 상황을 가정한다면, 괴한이 처음의 새로운 물체와 이 마정석을 다른 이에게 함께 주었다면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게 괴한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정확해요. 그 가능성을 빼놓을 수 없죠.”
“하지만 사실 후자의 가능성이 더 희박하겠죠.”
“……그건 알 수 없죠. 어찌 되었든. 두 물체를 함께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사실이에요.”
클리아베이든과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샤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루이드에게 다가왔다.
“루이드 님……. 이제 어떡하실 생각이에요?”
“……어떡하다니.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
루이드의 눈은 명료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의 신체 그 어떤 것도 떨림이 없었다.
깊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새벽처럼 차가웠다.
“놈을 죽이러 간다.”
“……!! 하지만 얼마나 먼지, 또 놈들의 규모에 대해서도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요.”
루이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하지만 참는 건 너무 많이 했어.”
“하지만…….”
“게다가 놈의 표적이 완전히 나라는 걸 알게 됐고. 감히 포커드를, 내 가족을 건드리다니. 나는 절대로 놈을 용서할 생각이 없어.”
“무모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좀 더 괜찮은 방법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샤라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두렵기에 괴한과 마주치는 상황을 되도록 늦추고 싶었지만,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걸 그녀도 잘 알았다.
“글쎄. 놈이 나를 얼마나, 어떻게 지켜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고. 대신 좀 은밀하게 움직여야겠지.”
“은밀하게요?”
“응, 전에 나 변신시켜줬던 거 기억나?”
“엑. 그걸 또 하게요?”
“안 돼?”
“……안 될 건 없지만.”
“나도 갈래!”
아르헬이 둘 사이에 파고들었다.
“응? 아, 아르헬도?”
루이드는 조금 당황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아르헬. 아직 회복이…….”
근래에 아르헬에게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었기에, 또 큰일을 겪게 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아냐! 루이드를 돕고 싶어! 나도 포커드야. 우리 가족을 건드린 놈을 용서하지 않겠어!”
아르헬은 부리부리한 눈을 빛냈다. 분노와 투지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부녀가, 아니 남매가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이번에는 조금 공격적인 정찰로 하는 게 어때요?”
아샤라가 한 번 더 루이드를 다독였다.
“흐음. 그래.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이었어. 바보는 아니니까. 모습을 바꾼 뒤, 아주 은밀히 놈에게 접근할 거다. 최대한 가까이 말이야.”
펜던트가 있으니, 위치를 찾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정확한 거리는 알 수 없지만, 방향은 그야말로 정확한 것이다.
“하긴, 우리가 힘을 비축하는 것도 놈들의 규모를 모르면 벽보고 수련하는 것이나 다름없죠.”
아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다고는 해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오히려 늦어졌다고 볼 수 있지. 그랬기에 이런 일을 당한 거다. 그러니 내가 바로잡겠어.”
루이드는 수호단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 다 함께 움직일 거니까.”
루이드의 말에 수호단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헤랏산 님은 제욉니다.”
“에엑! 난 안 되는 건가요?!”
“따로 맡기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이에요.”
루이드의 눈이 음흉하게 빛났다. 그럴수록 헤랏산의 얼굴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날 믿죠?”
“네? 무, 물론…….”
“나도 헤랏산 님을 믿어요. 엄청. 그러니까 이런 막중한 임무를 맡기는 겁니다. 내 심장을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죠.”
루이드가 헤랏산의 손을 꼭 잡으며 씩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