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58)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58화(158/252)
제158화
제8편 추적(3)
“으, 으응?!”
헤랏산은 무척이나 바보 같은 표정을 지어버리고 말았다. 루이드의 얼굴로.
아마 루이드가 봤다면, 경악할 만큼 얼빠진 얼굴이었다.
“……사전 연락 없이 찾아온 것은 맞습니다만. 아무래도 후작가에서 온 사람이라, 그냥 돌려보낼 수는…….”
헤이란은 난생처음 보는 루이드의 표정을 애써 모른척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무, 물론이지. 어……. 그러니까. 그렇지.”
이번에도 역시 헤랏산은 전혀 루이드답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헤이란은 루이드의 그런 태도에 요 며칠 사이 완벽히 적응한 상태였다.
‘조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힘을 많이 소모했다고 하셨지. 약간 얼이 빠져 보이거나, 다른 사람 같아 보일 수도 있고. 회복되기까지 좀 걸릴 거라고…….’
헤이란은 멜리옌이 말해준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자신의 조카를 위해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른 주군의 사랑에 감동한 참이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조카라 하더라도. 이렇게 스스로 바보가 되어가면서까지……. 주군께서는 늘 냉철하고 이익에 밝고 앞서시지만, 가족에게는 헌신하시는구나.’
눈가가 촉촉해지는 헤이란이었다.
“흠흠, 그럼 알현 준비를 할까요?”
“어, 으응. 그래야지.”
헤랏산은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멜리옌이 삐죽삐죽 옆으로 다가가 그녀에게 속삭였다.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 상태로 만나겠다고요?”
“……어? 음, 흐음. 내가 알아서 해!”
멜리옌의 눈총을 이기지 못한 헤랏산이 입을 삐죽거렸다.
“헤이란. 후작가 어디에서 찾아왔다고?”
“아아,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톰멀 후작가입니다.”
“톰멀?”
헤랏산이 토끼 눈을 떴다.
* * *
“드디어 이곳에 왔구나.”
레미르 톰멀이 그리슨빌의 성을 보며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이곳에 오기를 얼마나 소망했던가.”
쏟아지는 햇살에, 그녀의 백발 같은 밝은 금발이 모래처럼 반짝였다.
“누님.”
곁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로빈 톰멀이 등 뒤에서 그녀를 불러세웠다.
“으응?”
“정말 몸은 괜찮으신 거지요?”
“얘는, 넌 아직도 내게 그런 걸 묻는구나. 오라버니들은 이제 다시는 내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데 말이야. 후후후.”
“그거야 형님들이 약골이니까요.”
“어머!”
레미르는 몇 년 사이에 당돌해진 자신의 막냇동생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루이드 포커드 백작이 톰멀 후작령에 다녀간 후 벌써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백작과 그의 여동생, 아르헬 포커드 덕분에 톰멀 후작의 넷째이자, 장녀인 레미르 톰멀은 병상에서 일어나 건강과 삶을 되찾았다.
톰멀 후작령에서부터 이곳 그리슨빌까지는 그 거리만도 어마어마했다. 거의 이그라의 끝과 끝에 있는 곳.
그런 먼 곳까지 자신의 은인을 만나기 위해 그녀는 먼 여행길에 올랐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을지 무척이나 기대되는구나.”
레미르는 손에 들린 작은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이미 그분에 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계시지 않나요? 하하.”
로빈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어 보이자, 레미르의 흰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나, 나는 그저 백작님의 팬일 뿐이야.”
“사교계의 많은 영애께서도 그렇게 말하던데요. 흠, 혹시 누님. 후작가의 영애이기에 더욱 내숭을 떠시는 거라면…….”
“너 정말! 점점 더 짓궂어지는 것 같아. 이전에는 상냥한 동생이었는데…….”
레미르가 주먹을 쥐어 보이자, 로빈은 깜짝 놀라며 한발 물러섰다.
“감히 누님께 거역할 생각은 없습니다! 주먹은 그만 거둬주시죠. 게다가 저는 누님의 그런 마음을 열렬히 응원하는 바고요!”
“응원이라니, 참나. 그런 게 아니래도!”
레미르는 꽉 쥔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로빈을 위협했다.
“하지만 선물까지 직접 준비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레미르는 작은 가방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이건 그냥 답례야. 난 그분께 인생을 빚졌으니까.”
“포커드에게 빚진 것은 누님뿐이 아닙니다. 톰멀 가문 전체가 빚을 졌지요. 그리고 우리는 늘 빚을 갚고요. 그러니까 응원하는 겁니다.”
로빈은 반짝이는 눈을 빛내며 마치 비밀을 말하듯 속삭였다.
“저도 포커드 백작님처럼 훌륭한 매형을 얻는다면 그만한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후후후. 좋을 대로 하렴.”
레미르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여유로운 표정으로 정원을 가로질렀다.
* * *
‘아름답다. 정말로 아름다워!’
헤랏산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알현실에 앉아있었다. 물론 루이드의 얼굴로.
레미르 톰멀. 그녀가 알현실로 들어오는 순간, 바로 그 순간부터 온몸이 딱딱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카바라온 설산에 사는 아름다운 요정의 전설을 들은 적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워, 산을 오르는 이들의 마음을 빼앗고. 목숨까지도 위협한다던.
분명 그 설산의 요정이 내려온 것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저런 미모는 설명이 안 됐다.
‘대체 이런 미녀가 왜 루이드 님을 찾아온 거냐고~! 설마하니, 정혼자라거나……. 루이드 님은 대단한 남자니까! 후작 가문에서 탐낼 만하지. 하지만 백작님께 정혼자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톰멀 후작가에서 있었던 일을 알 길이 없는 헤랏산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레미르를 훑어보았다.
“다시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포커드 백작님.”
레미르의 부드러운 음성이 퍼지자 헤랏산은 어깨를 떨었다.
‘목소리까지 완벽하잖아!’
그리고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다시 만나다니. 그럼 구면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대응하기가 더 어려워지는데.’
멜리옌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헤랏산의 곁으로 좀 더 바짝 붙어섰다.
“나도 다시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영애.”
헤랏산이 말하자, 레미르는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활짝 미소 지었다.
‘허억, 진짜 예뻐!’
헤랏산은 하마터면 심장이 있는 가슴을 부여잡을 뻔했다.
레미르의 곁에 있던 로빈도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백작님 덕분에 저희 톰멀 후작령은 한층 밝아졌답니다.”
루이드와 만나지 못하던 사이에 한층 남자답게 성장한 로빈이었지만, 지금 성주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헤랏산이었기에 그 차이를 알 수 없었다.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말씀드리자면, 카멜 형님과의 관계도 완전히 회복되었답니다. 형님께선 새로운 검법을 개발해 단련하고 계십니다. 원래는 정말 실력이 뛰어난 검사셨으니까요.”
로빈은 들뜬 목소리로 마구 늘어놓았다. 헤랏산은 그저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 하하하. 그렇군, 정말 잘 되었어. 형제끼리는 원래 사이좋게 지내야지. 암.”
헤랏산은 모든 이야기를 이해하는 척하느라 바빴다.
그래도 다행히 그녀에겐 톰멀 후작 가문에 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었다.
아무리 우물 안 개구리로 지냈어도 그녀는 밀라비아의 왕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곳까지 온 것은 그럼…….”
한참 이야기를 듣던 헤랏산이 조심스레 물었다.
정혼자가 아니더라도, 정혼을 위해 이곳에 왔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런 이유였다면, 그리슨빌 성에 아무런 언질 없이 나타나지는 않았겠지만.
‘하긴 후작 영애가 움직인 것 치고는 큰 행렬도 아니었고.’
헤이란에게 보고받은 대로라면, 레미르는 남동생 로빈 톰멀과 몇 명의 시종만 거느리고 이곳까지 왔다.
굉장히 먼 거리에, 귀족 영애의 행차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느껴질 만 한 일이었다.
헤랏산이 의아한 얼굴을 하자 레미르가 앞으로 조금 더 나서며 작은 가방을 내밀었다.
“저의 은인이신 포커드 백작님께 이것을 드리고 싶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헤랏산의 얼굴은 조금 밝아졌다.
‘은인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 백작님은 영웅이니까. 나도 그렇고, 도움을 받은 사람이 많겠지. 헉, 아니……. 그렇지만, 도움을 받는 바람에 후작 영애가 반해버린 건……!! 안돼!!’
헤랏산의 마음에 불길이 확 일었다.
‘이그라의 후작 영애보다 강한 영향력을 가져야 백작님을 차지할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 그렇다면…….’
영문을 모르는 레미르와 로빈은 대답 없는 헤랏산, 그러니까 그들이 보기에는 루이드인 자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헤랏산은 결론을 내렸다.
‘내가 밀라비아의 국왕이 되어야 해!’
쿵! 헤랏산이 저도 모르게 의자의 팔걸이를 내리쳤다.
“……?!”
레미르와 로빈 뿐 아니라, 멜리옌도 놀라 헤랏산을 보았다.
“아, 아아……. 그러니까. 감동해서요!”
헤랏산은 다급하게 덧붙였다.
“하하하. 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해주시다니. 게다가 직접 전해주시기 위해서 이런 외진 곳까지 오시느라 너무나 고생하셨습니다.”
헤랏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레미르와 로빈 쪽으로 다가갔다.
“이럴 게 아니라, 고단하실 텐데 얼른 여독을 푸셔야지요.”
“앗, 그게……!”
로빈이 기다렸다는 듯 헤랏산의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오랜만에 백작님과 대련을 해 보고 싶은데요!”
“대, 대련이라고?”
“예! 그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정말 열심히 훈련에 임했으니까요!”
로빈이 눈을 빛냈지만, 헤랏산은 도무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대련이라니.
그런 걸 했다가는 자신이 루이드 포커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킬 수밖에 없었다.
“아, 음.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 왜냐하면…….”
“왜냐하면 루이드 님께서는 얼마 전 조카의 병을 고치시느라, 힘을 많이 소진하셨거든요.”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멜리옌이 거들었다.
“아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로빈이 깜짝 놀라며 아쉬운 얼굴을 했다.
“세상에. 역시 백작님이세요. 저를 치료해주셨듯, 또 능력을 사용하신 모양이군요.”
레미르는 감격한 얼굴로 내밀었던 상자를 꼭 쥐었다.
“네, 뭐,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가볍게는 괜찮을지도요.”
헤랏산의 말에 멜리옌이 경악하며 고개를 확 돌렸다.
대체 무슨 말을 한 거냐고 추궁하는 얼굴이었다.
“……엇! 정말입니까?!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혈기 왕성한 로빈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헤랏산도 그랬다.
루이드의 행세를 하느라 훈련도 제대로 못 하고 있던 처지.
“제가 새로운 검법으로 수련하고 있거든요.”
헤랏산의 얼굴은 저질러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며 묘한 흥분감에 들떠 보였다.
결과적으로는 루이드의 얼굴이었지만.
“새로운 검법이라고요! 역시 대단하시네요, 백작님!”
로빈의 눈은 더욱 반짝반짝 빛났고, 멜리옌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 * *
루이드와 일행은 펜던트의 화살표를 따라 한참을 이동하고 있었다.
“이 방향이라면…….”
루이드는 잠시 멈춰 서, 지도를 살펴보았다.
“단데리온 후작령이로군요?”
아샤라가 루이드의 어깨 너머로 지도를 빼꼼 들여다보았다.
“응, 맞아. 단데리온 후작령이라…….”
루이드가 어쩐지 불편한 얼굴로 후작령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