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60)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60화(160/252)
제160화
제10편 프레이시안(1)
“미쳤어요?”
멜리옌이 헤랏산을 다그쳤다.
“조용히 해. 누가 보면 어쩌려고.”
헤랏산은 여전히 루이드의 얼굴을 하고서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아니, 어쩌려고 그런 거예요?!”
“하아! 내 생각도 좀 해줘~! 매일 숨어서 찔끔찔끔 몸만 풀고, 요즘은 훈련도 전혀 못 했다고! 어떻게 다시 쓰게 된 내 혈계 능력인데.”
“아니,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짓을 저지른 게 이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멜리옌은 지금껏 헤랏산이 보아온 그 어떤 때보다 화를 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헤랏산은 속으로 움츠러들었으나,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어.”
“통제할 수 있다고요?! 그러니까, 이미 루이드 님과 대련해 본 사람과 다시 대련해서.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저 사람은 이그라 왕국에서도 알아주는 기사예요.”
“진정해!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전혀 새로운 검술을 만들어보고 있다고.”
“그가 밀라비아의 검술에 관해 알지도 모르죠.”
“그럼 나한테 배웠다고 하면 되지. 내가 이곳에 온 건 사실이잖아?”
“정말……!!”
멜리옌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아직 루이드가 떠난 지 일 년이 지났는가. 반년이 지났는가.
그 잠시를 참지 못해 이런 사고를 치다니.
이대로라면 헤랏산의 실수로 모든 계획이 무너질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을 믿다니.
이렇게 자신의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계획이 틀어질 일을 저지르다니.
그런 사람을 믿다니.
‘루이드 님이 실수하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헤랏산을 설득하는 것 외에 멜리옌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이라도 몸이 좋지 않아서 못 하겠다고 해요.”
“그러는 게 오히려 더 오해를 살걸.”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누가 뭐래도 넌 날 못 말려!”
멜리옌과 헤랏산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앗, 백작님과 정령사님이시다.”
하인들이 지나가며 꾸벅 인사를 해 오자, 두 사람은 서로 노려보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인들이 모두 지나가자 헤랏산은 멜리옌을 향해 혀를 쭉 내밀어 보였다.
멜리옌의 설득과 저지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결국 약속한 대련 시간이 다가오고 말았다.
그리슨빌의 대련장.
헤랏산은 설레는 얼굴을 하고 장내로 들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이게 얼마 만이야.”
멜리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헤랏산도 잘 알았다.
하지만 너무 움츠리고 있는 것 또한 의심을 살 게 분명하다고 헤랏산은 굳게 믿었다.
어차피 루이드 포커드는 혈계 능력자.
검술 실력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다. 그를 아는 자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혈계 능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면 헤랏산이 들킬 일은 전혀 없었다.
그게 헤랏산의 계산이었다.
“먼저 와 계셨군요.”
로빈과 레미르가 대련장으로 들어섰다.
레미르는 헤랏산을 향해 목례를 한 뒤, 대련장 옆으로 준비된 관람석에 자리 잡았다.
“새로운 검술을 시험해보기만 할 생각이니, 쉬엄쉬엄해 주게.”
헤랏산이 웃어 보이자, 로빈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였다.
“물론입니다. 건강도 편치 않으신데 조른 것은 저니까요.”
심판을 봐줄 헤이란까지 도착하자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자세를 잡았다.
“경례!”
처억! 척!
헤랏산과 로빈의 맞선 경례 후,
두 사람의 칼끝이 서로 부딪혔다.
챙!
그리고 거리를 벌린 두 사람.
시작 자세를 잡았을 뿐인데도 로빈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정말이군. 백작님께서 쓰시던 검술의 초식과 전혀 다르다. 호흡이며, 스텝이며.’
다행히 로빈은 아직 경험이 적은 젊은 기사.
밀라비아 왕족의 검술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직접 개발하신 겁니까?”
로빈이 묻자, 이글거리던 헤랏산의 눈이 잠깐 동요했다.
“아, 그건. ……밀라비아에서 사절이 왔다는 건 알고 있나?”
“아, 들었습니다. 백작님을 밀라비아로 초청하려고 온 사절이라고요?”
“알고 있었군. 그 밀라비아의 사절에게서 배운 검술이라네.”
“호오? 이것이 밀라비아의 검술이란 말입니까?”
챙! 챙!! 챙챙!
두어 번 더 두 사람의 검이 부딪혔다. 날이 선 공격은 아니었고, 서로의 실력을 가늠해보는 정도의 가벼운 공격이었다.
“독특하군요. 이그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나라인데도, 이렇게까지 색다른 움직임이라니.”
로빈의 표정이 밝아지며 그의 검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채앵! 카아앙!
조금씩 더 격렬해지는 검합.
‘재밌다! 재밌어!’
헤랏산 역시 로빈과 겨루는 대련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한데, 밀라비아의 사절을 붙들어만 두고 있으시다죠?”
“응?”
“잘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영애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하거든요.”
“여, 영애들 사이에?”
채앵!
헤랏산은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예. 밀라비아에서 워낙 백작님의 위상이 드높다고 들었습니다. 결혼 적령기의 귀족 영애들 입장에서는 혹여 밀라비아가 공주들을 앞세워 백작님을 홀릴까 걱정되겠지요.”
“……!”
채애앵!!
힘이 잔뜩 들어간 헤랏산의 검을 로빈이 흘려보내며 그녀의 품 깊숙이로 쑥 들어갔다.
“하기야, 밀라비아 여자들에 비하면 이그라 숙녀분들의 미모가 훨씬 낫죠. 안 그렇습니…….”
농담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헤랏산의 검 끝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화르륵!!
“헛!”
로빈은 바로 옆에서 타오르는 검을 쳐 내고 재빠르게 밑으로 몸을 굴러 헤랏산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 그건…….”
“밀라비아 여성들을 모욕한 말은 사과하시지.”
“백작님?”
화르륵!
검뿐만이 아니었다. 검에서부터 솟아오른 불은 헤랏산을 삼킬 듯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로빈의 눈에는 화염에 휩싸인 존재가 루이드 포커드로 보였겠지만.
“이런…….”
대련장 멀리서 지켜보던 멜리옌은 결국 머리를 짚었다.
휘익!
헤랏산은 놀라 머뭇거리는 로빈과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화르륵! 휘익! 채애앵!!
“핫!!”
로빈은 재빨리 온몸의 오러를 끌어냈다.
후와아악!!
겉으로 발출되는 오러의 기운에 헤랏산의 화염이 마구 용솟음쳤다.
“이럴 수가.”
레미르 역시 말을 잃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챙챙챙!
헤랏산의 검은 매서웠다.
“하앗!!”
하지만 오러를 담은 검으로 상대하기 시작하는 로빈을 완벽하게 압도할 수는 없었다.
로빈은 이그라에서 손에 꼽히는 검사.
“이익!”
카아앙!! 화르륵!
엉겨 붙는 불길도 로빈의 오러가 밀어내는 힘에 갈라지기 일쑤였다.
그녀의 불꽃은 로빈은 같은 편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는데도 그에게 의미 있는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치잇!”
콰아앙! 쾅!
과격한 공격이 몇 번 더 들어갔다.
로빈은 이제 당황했던 표정을 지우고 진지하게 헤랏산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오러가 아니다. 마법도 아니야. 이건 분명 혈계 능력의 힘. 하지만 이건……. 독특하군. 약간의 오러가…….’
그는 정확하게 헤랏산의 능력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당신. 백작님이 아니시군요.”
“……!!”
헤랏산의 검이 멈췄다.
걸음도 멈췄다.
그리고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꽃도 사그라들었다.
대련장 안에 적막이 감돌았다.
“그…….”
쉬이익!! 채앵! 챙!!
이번에는 로빈의 공세였다.
로빈의 강하지만 부드러운 검이 헤랏산을 압도했다.
죽이고자 하는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충분히 힘이 실린 공격.
“큿!”
헤랏산은 그의 검을 몇 번 막아냈지만, 역부족이었다.
카아앙!! 휘리릭!
두 검이 강하게 부딪히고 헤랏산의 검이 공중을 날랐다.
쉭.
순식간에 로빈의 검이 헤랏산의 목에 가 닿았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헤랏산을 노려보았다.
정체가 뭐냐고 자신을 추궁하리라 생각했던 헤랏산은 떨리는 눈으로 로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톰멀 경의 승리십니다!”
헤이란이 외쳤다.
그는 로빈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이런, 로빈! 백작님께선 건강도 좋지 않으시다고 했는데…….”
대련이 끝나자 레미르가 관람석에서 나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녀 역시 헤랏산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한 듯 걱정스러운 얼굴로 두 사람을 살피고 있었다.
“…….”
로빈은 검을 거두고 검집에 채워 넣었다.
헤랏산은 어색하고 불안한 눈으로 로빈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멜리옌의 굳은 얼굴을 보면서, 자신이 완전히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난……. 그저 어린애일 뿐일까. 일을 망치기만 하는…….’
자신을 믿는다던 루이드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신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
멜리옌이 몇 번이나 말렸는데도. 분명 자신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눈앞이 깜깜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헤랏산은 어느새 푹 수그러진 자신의 머리통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대련 중 밀라비아 여성들을 비하한 것. 사과드립니다. 제 경솔한 발언이 백작님의 심기를 건드린 게 당연합니다.”
헤랏산은 어리둥절했지만, 단번에 사태를 파악했다.
로빈은 자신의 정체를 이곳에서 까발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
“사과의 의미로 제가 직접 차를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로빈은 예를 갖춘 인사를 했다.
“응? 갑자기?”
“누님, 죄송하지만. 제가 백작님께 긴히 상의할 내용이 있어서요. 누님을 조금 따돌려도 될까요?”
로빈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레미르는 무척이나 아쉬운 얼굴을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헤랏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멜리옌에게 뭐라고 말을 붙이기도 전에 로빈을 따라나섰다.
* * *
“아, 저기. 병사님.”
루이드는 병사를 불러세웠다. 그의 손아귀에 잡힌 리아는 대롱대롱 매달려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2미터 50센티는 될 것 같은 커다란 키의 병사는 뭐든지 다 컸다. 실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얼굴은 덤이었다.
“죄송합니다. 그 아이는 제 시동인데, 서두르다 보니 실수를 저지르게 됐군요.”
최대한 예의 바르고 격식 있는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병사는 전혀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았다.
“뭐라고?! 넌 누군데 끼어드는 거냐?! 네가 뭐라든 나는 이 평민 꼬맹이를 죽여놔야겠다!”
그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다른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 일이 점점 더 커지네. 후작령쯤 되는 곳이기 때문일까. 기사 정도도 아니고, 영지 병사인데도 자존심이 어마어마한 것 같은데.’
루이드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기사의 시동을 함부로 죽이는 것은 좀 그렇죠?”
그의 말에 병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딱 봐도 그냥 용병이나 떠돌이 기사 같은데. 어느 가문의 인정을 받았지?”
병사는 루이드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은 형형해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음, 그래. 후작령의 병사쯤 되니 완전히 바보는 아니고. 일반 병사는 아니고, 스콰이어쯤 되려나?’
주변은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저는 포커드 남작령의 기삽니다.”
루이드의 말에 병사는 아주 작게 흠칫 놀랐다.
‘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나의 기사가 아니라, 아버지 밑의 기사인 척하는 것도 좋겠어.’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팔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었지만, 포커드라는 이름 정도만이라면 괜찮았다.
자신 말고도 포커드의 이름으로 인정받은 방랑 기사들쯤이야 이미 여럿 될 터였으니.
“하! 포커드라고! 그 남작령을 말하는 것인가!”
기사는 그 기사 개인의 명성도 중요하지만, 특별히 이름을 날린 기사가 아닌 경우에는 그를 인정하여 기사로 만든 가문의 이름이 중요했다.
‘그러니까 후작령의 스콰이어쯤 되는 이 녀석은 남작령의 기사를 우습게 보는 거군. 그래봤자 스콰이어 주제에.’
스콰이어는 정식 기사와 비교해서 실력이나 교양 등 모든 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났다.
그건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정도의 차이였지만, 그래도 스콰이어인 본인은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래. 뭐, 허접한 가문에서 기사 임명을 받은 놈 중에는 평범한 용병 노릇도 제대로 못 하는 자들도 있고. 나도 그런 부류라고 생각한 거였겠지.’
그가 자신을 무시하는 일은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일이었다.
“윽, 으윽……!”
아직도 병사의 손에 붙들린 리아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아이는 놔 주시고 저와 해결을 보시죠. 그러다가 죽겠습니다.”
“네가 뭘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거야? 그리고 난 이 녀석을 죽일 셈이다.”
술렁.
“저, 저 녀석. 브레도지?”
“그래. 저 녀석한테 걸리는 사람은 정말 다 죽어 나가는데……. 그게 애라도 말이야.”
“큰일이다. 저 애는 죽고 말 거야.”
“후작의 먼 친척이라며. 실력이 형편없어서 아직도…….”
“쉿! 그러다 불똥 튀겠어!”
몰려든 인파 속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참나, 아직 후작령의 조사는 시작도 못 했는데. 아샤라의 마나만 소비하게 됐군.’
루이드는 한숨을 내쉬며 칼을 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