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61)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61화(161/252)
제161화
제11편 프레이시안(2)
스릉. 루이드가 꺼낸 칼을 보고 모여든 사람들이 헉! 하고 숨을 삼켰다.
꿈틀. 브레도의 미간이 뒤틀렸다.
“감…….”
그가 모욕감을 드러내기도 전에 루이드의 검이 횡을 그었다.
스각!
브레도가 움켜쥐고 있던 리아의 옷이 잘려 나가고, 떨어지는 리아를 받아내 뒤로 빠졌다.
순식간이었다.
구경꾼들의 눈에는 루이드의 동작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이런…… 씨!”
“죄송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아이가 죽을 것 같기에. 이 아이가 죽으면 곤란하거든요.”
이미 루이드와 브레도의 거리는 꽤 멀리 떨어진 상태였다.
“옷이 이렇게 된 건 미안하다.”
루이드는 품을 뒤져 은전 한 닢을 꺼내 리아의 손에 쥐여주었다.
사태 파악이 안 되어 어리둥절하고 겁을 먹은 상태인 리아의 눈이 둥그렇게 떠졌다.
사실 은전이라 해도 평민 아이에게 거저 주기에는 큰돈이었다.
“이대로 집으로 가거라. 당분간은 나오지 말고. 아마 저 병사는 멍청해서 네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거다. 아무래도 상관없어질지도 모르고.”
“용병님…….”
“은전은 네가 들려준 그라곤의 이야기 값이다.”
리아는 루이드와 은전을 번갈아 보더니 울먹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드는 방긋 웃고는 몰려든 많은 사람 사이로 리아의 등을 떠밀었다.
아이는 영특했다. 루이드가 원하는 대로 머뭇거리지 않고 재빨리 인파 속으로 몸을 감췄다.
“이 개자식이! 감히 뭘 하는 거냐! 감히!!”
쐐애애액!!
브레도의 거칠고 투박한 공격이 루이드에게 쇄도했다.
루이드는 공격을 받아치지도 않고 그저 가볍게 피하며 브레도의 뒤에 바짝 섰다.
“그쯤 하시지. 더 했다가는 창피를 당하고 말 텐데.”
전혀 다른 얼굴이 되었지만, 그 푸른빛만은 여전한 루이드의 눈이 냉기를 품고 있었다.
‘애들을 괴롭히는 놈은 못 참지.’
리아의 옷을 자를 게 아니라, 놈의 더러운 팔을 자르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후작령 안에서 큰 사건을 일으키는 건 싫었다.
‘이미 얼굴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아샤라가 얼마나 돌 씹은 표정을 하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벌써 일을 거들려고 하는 수호단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루이드는 뒤로 살짝 손을 흔들어 그녀들을 저지했다.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어. 하지만, 역시 이 녀석 멈추지 않겠지.’
브레도는 살기가 가득한 얼굴로 온몸으로 오러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분명 그럴 터였다.
‘내가 파악할 수도 없는 시시한 정도의 오러군.’
루이드가 미묘한 미소를 머금는 순간.
“멈춰라!”
광장을 울리는 목소리에 브레도가 몸을 굳혔다.
“무슨 일이냐.”
사람들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말을 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으잉? 레온 크레이브 공작?’
루이드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님이 거기서 왜 나와?’
레온 크레이브 공작.
이그라 왕국의 소드 마스터이자 국왕 카이린의 오른팔.
“크, 크레이브 공작님!”
다행히 브레도는 공작을 알아보고 자세를 잡아 경례했다.
‘그래, 워낙에 유명한 분이시니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
루이드는 아직 공작의 등장이 잘된 일인지 아닌지 가늠하고 있었다.
그들이 잠깐 한눈판 사이에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무슨 일인지 설명하라.”
크레이브 공작은 무겁고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그것이. 이 자가 성도 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바람에…….”
브레도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엥! 그건 아니지. 완전 거짓말쟁이네. 당신이 어린아이의 실수를 넘어가지 않고 갑질을 해대기에 내가 나선 것 아닙니까!”
브레도는 루이드가 공작의 앞에서 자신에게 말대꾸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가, 감히 누구 앞인 줄 알고……. 조, 조용히 하지 못하겠나! 단데리온 후작님께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는 황당해하는 얼굴로 어버버거렸다.
크레이브 공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자들의 표정, 시선, 숙덕이는 소리.
“흠, 그렇군.”
그것만으로도 공작은 상황이 파악된 낌새였다.
“그럼 이렇게 하지.”
공작은 너그러운 얼굴로 말했다.
“내가 심판을 봐줄 테니, 두 사람이 명예를 걸고 결투를 벌여 자신의 말을 증명하라.”
“호오.”
루이드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크레이브 공작을 보았다.
‘오랜만이군, 명예 결투는. 한데 크레이브 공작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좋은 선택이기는 했다.
명예 결투를 하게 되면, 심지어 크레이브 공작이 심판을 본다면.
이 일은 단데리온 후작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게 된다.
이곳이 단데리온 후작의 영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루이드에겐 결투에서 목숨만 잃지 않는다면 후환이 없을 좋은 선택지가 주어진 것.
‘단데리온 후작이 귀족의 명예를 안다면 말이지만.’
조금 놀랐던 건 루이드는 크레이브 공작이 귀찮은 건 질색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도 그저 모른 척하고 지나간다면 수월할 일이었다.
‘항상 표정도 안 좋고 심드렁하고 투덜거리고……. 응? 역시 그냥 날 싫어하는 거였나?’
잠시 골몰하는 사이, 공작은 루이드와 브레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제안이 아니다. 명령이지.”
땀을 흘리기 시작하는 브레도와는 달리, 루이드는 방긋 웃으며 밝게 대답했다.
“아무렴요!”
* * *
“왜 백작님 흉내를 내는 겁니까?”
로빈의 목소리는 낮았다.
헤랏산을 루이드라고 알고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온도의 목소리였다.
“…….”
헤랏산은 말을 골랐다.
이미 엎어져 버린 물이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수습할 수 있을까.
한데 의문이 들었다.
이 남자는 왜 그 자리에서 곧장 자신을 추궁하지 않았을까?
헤랏산이 루이드의 행세를 하고 있다는 걸 누가 알고 누가 모르는지 모르면서. 아니 모르기 때문이었을까?
헤랏산은 자신보다 훨씬 현명한 로빈의 선택에 불뚝 화가 솟았다.
멍청한 선택을 하는 건 늘 자신뿐인 것 같아서.
“왜 아까 대놓고 말하지 않았죠?”
그러면서도 또 바보같이 그냥 묻고 말았다.
로빈의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조금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이 상황에 굳이 그걸 묻는다는 점에서 놀란 것일까.
“그야. 포커드 백작님께서 벌인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
헤랏산은 정말로 놀랐다.
“좀 특이한 분 아닙니까? 항상 기묘…… 기발한 일을 하시니까요.”
루이드의 이야기를 하며 로빈의 얼굴은 조금 풀어졌지만, 헤랏산을 경계하는 기색은 여전했다.
“그래서, 말해주시죠. 백작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당신은 왜 이러고 있는 건지.”
“백작님이 내게 당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나 보군요.”
“물론이죠.”
로빈은 무척이나 담백하게 말했다.
“당신 실력을 봤잖아요.”
헤랏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물론 루이드의 얼굴인 상태로.
“흠, 색다르네요. 백작님의 이런 표정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로빈은 흥미롭다는 듯 헤랏산을 관찰했다.
헤랏산은 화가 치솟았지만, 더는 화낼 수 없었다.
그놈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지금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마법이겠죠?”
“마법이에요. 아샤라가 건.”
“역시! 그렇군요. 아샤라 님도 대단하시죠. 마법의 경지를 많이 넓히셨다던데. 이번에 저희 누님께서 아샤라 님께…….”
“그 마법사는 루이드 님을 따라갔으니까요.”
“응? 여기 안 계시는 겁니까? 그럼 아까 그것도 마법인가 보군요. 흠…….”
“핫!”
헤랏산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흐응……. 어쨌든, 루이드 님이 의도하신 게 맞는군요. 다행입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로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심문했다. 헤랏산은 머뭇거리며 루이드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당신은 입조심을 할 필요가 있겠어요.”
“뭐, 뭐요?! 기껏 협조했더니?!”
헤랏산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이게 협조한 겁니까? 당신은 당신의 주군……. 아, 밀라비아의 사절이시니 주군은 아니겠지요. 어쨌든 당신을 믿고 맡긴 백작님의 비밀 계획을 오늘 처음 만난 제게 다 불어버렸잖습니까.”
“하, 하지만……. 그건……. 당신이……!”
“네,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였겠죠. 제가 백작님 편이어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어땠겠습니까?”
로빈의 단호한 목소리에 헤랏산은 질린 얼굴이 되었다.
‘이래서는……. 이래서는 밀라비아의 왕좌를 노리는 일 같은 건…….’
눈물이 핑 돌 만큼, 정말로 자신이 한 일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헤랏산은 촉촉해진 눈으로 고개를 축 늘어트렸다.
“흠흠, 백작님의 모습으로 그런 건 좀 자제해 주시죠.”
로빈은 목을 가다듬은 뒤, 헤랏산을 위로했다.
“여기 있는 동안은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으응? 뭘……?”
“좀이 쑤셔 죽겠다면서요? 제가 대련 상대가 되어드릴게요.”
“으, 으어엉?!”
“그러니까, 백작님 모습으로 그런 반응은 좀 자제해 달라니까요.”
로빈이 그러거나 말거나 헤랏산은 울먹거리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자신의 실수를 덮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힘이 되어 준다니.
‘좋은 사람이잖아……!’
로빈이 헤랏산을 돕기로 마음먹은 건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너무 빈틈이 많았다.
루이드 포커드 백작이 왜 이런 사람을 믿고 자신의 대역을 시켰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이 아닌가.
로빈이 알기로도 루이드는 적이 많았다.
그녀 혼자서 루이드 행세를 한다면, 머지않아 들키고 말리라.
‘이번에 백작님께 점수도 좀 딸 겸.’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헤랏산의 검술 실력 때문이었다.
분명 아직 고수라고 할 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검 끝에 실린 힘, 검이 움직이는 모양, 발의 놀림.
처음 보는 검식에 관심이 가기도 했다.
“백작님이 돌아오시기 전까지 놀고만 있기는 아깝지 않습니까.”
로빈의 말에 헤랏산의 표정은 더욱 밝아졌다.
* * *
웅성웅성.
프레이시안의 광장에는 어느새 더욱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거의 축제라도 벌어진 듯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브레도는 성도 내에서 이미 악명이 높은 스콰이어였다.
상인들을 못살게 굴거나, 길에서 시비가 붙으면 사람을 패 죽이기 일쑤였다.
이곳 단데리온 후작령에서는 그것이 가능한 일이었다.
영주의 사병이기 때문에.
게다가 브레도가 단데리온 후작의 먼 친척이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과의 명예 결투가 벌어진 것은 성도 내의 사람들에겐 아주 큰 볼거리였다.
브레도가 이긴다면, 그의 기세는 더욱 강해지겠지만. 혹시나 하는 희망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었다.
외지인에게 큰코다쳐서 기를 못 쓰게 되거나, 어디 한 군데라도 부러지기를 원하는.
루이드는 등 뒤로 그런 열망들을 느꼈다.
아무도 선뜻 루이드를 응원하지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자, 두 사람은 검을 뽑아 마주 서라.”
레온 크레이브 공작이 중앙에 서서 지시했다.
브레도와 루이드는 그의 명령에 따랐다.
‘오러를 쓰는 스콰이어다. 나는 내 능력을 쓸 수 없고. 과연…….’
루이드는 씩 웃었다.
그를 보자 브레도는 이마에 핏줄이 하나 더 불거졌다.
“경례! 시작!”
명예 결투의 선언이 끝나고, 결투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