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72)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72화(172/252)
제172화
제22편 음모(8)
“콜록! 콜록!”
루이드가 기침하자, 마주 보고 앉아있던 카이린이 손수건을 건넸다.
이곳은 이그라의 왕궁.
아름다운 꽃과 다양한 풀이 피어 있는 거대한 온실 정원. 특별한 손님만이 초대되는 카이린의 개인적인 공간이었다.
천장으로 열린 창에 바람이 불어왔고, 루이드의 검은 머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D가 아닌 루이드 포커드의 모습으로 돌아온 루이드였다.
“내 앞에서 그렇게 기침을 하는 것은 불경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안 될 일이 무엇인가? 이미 모든 백성이 그대의 업적을 알고 있다.”
“아뇨……. 아니, 그러니까. 너무 과하잖습니까.”
“뭐가 과하다는 거지? 그대는 국왕을 시해하려고 한 괴한의 무리를 소탕했다.”
“애초에 무리도 아니었고요.”
“그게 중요한가?”
“전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괴한을 완전히 제거하신 건 크레이브 공작님 아닙니까.”
루이드의 말에 카이린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도 합당한 보상을 내려 줄 거야. 물론 거절하겠지만.”
“어째서 거절합니까?”
“그대와 같은 이유지. 너무 과하다는 거야.”
“그렇다면 저도…….”
“으응, 그렇다면 내 입장이 뭐가 되겠어. 엄청난 공을 세운 영웅들에게 보상도 제대로 하사하지 않는 무능력한 국왕이 될 게 아닌가.”
카이린은 여유롭게 찻잔의 향기를 음미했다.
“그러니 두 사람 다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내 임무 아니겠어.”
그녀는 그저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후작위는 너무 과합니다. 정말로요. 저는 아직 그럴 그릇이 못 될뿐더러.”
루이드는 카이린의 얼굴을 살폈다.
‘그래서도 안 되는 것 아니었나.’
카이린을 위해서라도 루이드는 허울뿐인 백작이어야 했다.
그러니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일이 이렇게 흘러간 것이다.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알아. 하지만 이번에 그쪽도 꽤 피해가 있고, 또 사죄해야 할 것도 있고.”
단데리온 후작의 이야기였다.
크레이브 공작의 말대로 그가 의도한 것이든 이용당한 것이든, 이번에 괴한을 숨겨준 정황은 사실이었다.
실수였다고 할지라도 그 죄를 피할 수 없는 것.
실수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페르디날은 이미 죽었고, 사특한 주술에 걸린 피해자라는 말을 믿어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합당한 처벌을 받던지, 불복하고 전쟁을 일으키던지.
사실 프레이시안에서 일이 일단락된 후, 루이드가 그리슨빌에서 출발한 것처럼 꾸며 왕궁에 다다랐을 때 이미 단데리온 후작의 영지는 절반 넘게 왕국 소속으로 빼앗긴 상태였다.
페르디날이 단데리온 후작가에 녹아들기 위해 정신을 혼탁하게 하는 술법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었고, 그 덕에 단데리온 후작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의 아들들도 마찬가지.
그러니 이 상황에 영지를 몰수당하지 않기 위해 뻗댈 수 있는 중심인물들이 모두 병상에 앉은 처지가 된 것이다.
그나마 단데리온 후작을 추종하는 다른 영주들이 읍소했기에, 영지의 절반은 지킬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카이린 국왕이 그들을 가엽게 여기어 넓은 아량을 베풀어 준 덕분.
카이린은 피와 무자비보다 관용과 부드러움을 택했다.
정말로 그들이 이용당했다는 크레이브 공작의 말을 신뢰하기에 불필요한 살생을 피하고 평화로운 해결을 하기 위함도 있었다.
단데리온 후작과 그 가문 사람들 결백의 경우는 공작의 취조와 루이드의 기사 D의 혈계 능력으로 검증되었다.
하지만 카이린이 이를 이용하고자 했다면 단데리온 후작가는 멸문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
어쨌거나 단데리온 후작은 카이린을 견제하는 귀족파의 중심된 인물이었기에 그녀는 관용을 베풀면서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국왕파 귀족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다.
‘아무리 단데리온 후작과 아들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는 해도, 이번에 전쟁이 벌어지면 양쪽 다 출혈이 클 것이다. 그녀의 방식은 아주 현명해. 자비롭고.’
루이드는 뚱한 얼굴을 했다.
‘물론……. 힘을 얻게 된 게 내가 아니라면 아주 좋았겠지만 말이야. 에휴.’
그의 얼굴을 보고 카이린이 이번에는 그를 살살 달랬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그……. 뭐라더라. D?”
“쿨럭.”
“그자는 이런 일에 가담해 놓고 국왕께 직접 아뢰지도 않고 말이야. 아무리 포커드 백작 그대의 기사라도 그건 꽤 화가 나는 일이라고.”
“큼, 큼큼.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믿고 신뢰하는 기사라……. 둘 중 하나는 그리슨빌에 있어야 하기에.”
루이드가 둘러댄 D가 자신과 함께 국왕을 알현할 수 없는 이유였다.
“다른 자들이었다면, 그런 건 말도 안 되는 일로 치부될 일이지. 경을 칠 일이야. 그렇지?”
카이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루이드를 흘긋 쳐다보았다.
“그대이기에 내가 참아주는 거고. 그대를 아끼니까. 뭐든, 마음대로 하게 해 주고 싶다는 말이야.”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루이드는 얕게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맞는 말이었다.
그런 이상한 이유로 왕을 보러오지 않는다니, 아마 소문을 좋아하는 귀족들이 알게 된다면 입이 마르고 닳도록 떠들어댈 이야기다.
카이린은 항상 루이드의 편의를 봐주었다.
언제나.
그걸 루이드가 모를 리 없었다.
“그대는 그 장소에 없었다고 빼고, 그대의 기사는 주군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빼고. 게다가 내 얼굴을 보러 오지도 않고. 그러면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응? 국왕의 권위가 땅바닥에 내려앉았어. 뭐, 원래도 그렇게 높은 입장은 아니었지만.”
카이린이 테이블 위로 몸을 쭉 빼서 루이드에게 다가왔다.
“듣기로는 그대의 기사도 참으로 미남자라고 하던데. 응? 금발이 아주 찬란하다고 말이야.”
카이린은 미지에 싸인 루이드의 기사 D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레온 크레이브 공작은 카이린에게 모든 것을 소상히 고했고, 그렇다면 카이린 역시 프레이시안에서 D의 활약이 얼마나 막중했는지 잘 알 터였다.
통찰의 눈이 없었다면 과연 크레이브 공작의 임무는 성공할 수 있었을까?
페르디날의 함정에서 용병이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루이드가 통찰의 눈을 사용해 주술을 진행 중이라는 걸 깨달았고, 크레이브 공작과 페르디날을 습격했기 때문에 용병단 중 단 한 사람이 살아남아 도망칠 수 있었다.
성벽에서 아르헬이 마주친 사내.
그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저주의 소용돌이 가운데에서 잠깐의 틈을 봤다고 했다.
힘이 잠깐 멈추었을 때, 미리 지정해 둔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한 것.
4 클래스 마법사에, 미리 돌아올 곳을 정해 주술을 걸어 놓는 식으로 텔레포트를 안정화해 두었기에 가능하기도 했지만.
“공작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물론. 내가 미남을 좋아한다는 걸 잘 알거든. 그자. 그래서 조금만 괜찮은 얼굴을 봐도 내게 곧장 보고하지.”
카이린은 빙글빙글 웃으며 루이드 앞에 놓인 구움 과자를 툭 건드렸다.
“하아, 그거 곤란하네요. 앞으로 D는 영원히 전하를 뵙지 못 하게 해야겠어요.”
“응? 뭐야. 질투하는 건가 지금?”
“옙.”
루이드는 일부러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오해를 해 주면 고맙지.’
카이린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활짝 웃었다.
“그래서, 상을 받을 마음의 준비는 끝났나?”
“하지만 역시 너무 과합니다. 제겐 후작의 자리에 걸맞은 병사도 땅도 그리 많지 않고요. 그냥……. 그럴듯한 영지 하나 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영지를 하나만 받고 싶은 건 여러 개면 그만큼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하기 때문.
‘그냥 수준이 괜찮은 도시 하나 받으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단데리온 후작은 귀족파의 중심이었던 것만큼, 괜찮은 도시를 많이 가지고 있었지. 뭐가 좋을까.’
이전 같았으면 귀족들에 관해서도 전혀 몰랐겠지만, 어쩌다 보니 그들과 많이 얽히게 됐다.
특히 백작위를 얻은 다음부터는 귀족들의 파벌이나 주요 사항 등을 공부해 두었다.
‘단데리온이라……. 그쪽에 바다로 이어지는 큰 강과 인접한 영지가 있지 않았던가?’
이그라 왕국에서도 아주 외진 곳이었다.
“소폴레리온 정도라면?”
“생각보다 소소한데?”
“소소하긴요. 바다와 이어져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긴 하지만…….”
카이린의 표정이 시원스럽지는 않았다.
강 덕분에 발달한 큰 도시였지만, 꽤 신경 써야 하는 문제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귀찮은 곳이라. 그대가 원하지 않을 줄로만 알았지.”
“뭐……. 그렇긴 한데. 그래도 기왕에 투자할 재미가 있는 곳이 좋죠.”
크고 쓸모 있는 대신에 그에 걸맞은 골칫거리를 안고 있는 도시.
지금 상황에서 루이드가 맡아 처리하기에 적당한 곳처럼 느껴졌다.
너무 사치스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후지지도 않은 곳.
소폴레리온을 떠올리자,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루이드였다.
소문과 책의 내용으로만 겪은 곳이었다.
루이드는 이곳에서 전생한 뒤로는 바다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바다가 아니라 큰 강이기는 하지만.’
거의 바다처럼 보이는 넓은 강과 물길을 이용해 움직이는 상인들까지.
‘어쩌면……. 배를 만들 수 있겠지.’
그건 꽤 심장이 뛰는 일이었다.
“후작위 같은 분수에도 안 맞는 과한 자리보다는 말이 되는 자리기도 하고요.”
“사실 과한 건 맞아.”
카이린은 양손을 깍지 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그걸 알면서도 밀어붙이신 겁니까?”
“하지만 이쯤 말해야 그대가 뭐라도 받을 것 같아서. 무리인 것부터 말해 봤지. 소폴레리온이라면 적당할 것 같아. 그곳을 노리고 있는 영주들이 꽤 많지.”
반짝거리는 그녀의 입술이 호를 그렸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듯, 고개를 까딱거리기를 반복하더니 크게 끄덕여 보였다.
“그래, 좋아. 여러모로 그대에게 돌아가는 것이 좋겠군.”
“그럼 이제 끝난 겁니까?”
“흐응, 아쉬운걸. 그대는 전혀 아쉬워 보이지 않는구나.”
카이린은 마음이 상했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분히 장난기가 섞인 얼굴이었다.
“피차 바쁘잖습니까?”
“난 국왕이니까.”
“저도 제 영지에선 우두머리라서요.”
루이드가 씩 웃자 카이린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간의 재밌는 이야기는 대충 들었으니, 그만 그대를 보내주기로 하지.”
그리고 그녀는 새하얀 손을 테이블 위로 건넸다.
“그대는 이그라의 영웅이야. 좀 더 으스대도록 해. 나의 목숨을 구했고, 내 원수에게 복수했어. 그리고 그대의 수족들조차 내게, 또한 이그라에 충성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어.”
라벤더처럼 아름다운 두 눈이 루이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국왕으로서, 그리고 그대의 친구로서. 그대에게 감사하고, 또 그대를 존경해.”
“그런 감동적인 말씀을.”
루이드는 그녀의 새하얀 손을 맞잡고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대의 아름다운 기사에게도 언제 한번 보자고 명령해주고.”
그렇게 말하곤 카이린은 소녀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 * *
카이린의 온실 정원을 빠져나온 루이드는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정신없이 굴러갔지.’
이제 그리슨빌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돌아가서, 못다 한 일들과 또 더 해두면 좋은 일들을 하면 된다.
영지를 하사받을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테니…….
“그곳에 그대의 기사가 있을 줄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이 보였다.
“셜린 세반 공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