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73)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73화(173/252)
제173화
제23편 선물(1)
“셜린 세반 공작.”
눈부시게 반짝이는, 카이린과 똑같은 은발에 노을이 내려앉은 것 같은 색.
그 아래로 선명한 붉은 눈이 마주친다.
“님.”
루이드는 힘들게 말을 끝맺었다.
갑자기 나타날 리 없는 사람의 등장은 항상 마음을 불편하게 하니까.
“내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군.”
“제가 공작님을 왜 보고 싶어 합니까?”
“하지만 그때 편지를 보냈잖나. 나를 만나길 학수고대하는 줄 알았는데.”
유적에 다녀온 뒤 루이드가 보낸 편지에 대한 말이었다.
“하여튼 놀랐어. 그대는 늘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군.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지.”
“제가 워낙 팔색조 같은 매력이 있긴 하지만요.”
“그곳에 놈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그의 붉은 눈이 돌연 싸늘하게 빛났다.
루이드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눈빛이 위협적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그건, 거의 본능적이었다. 차가운 뱀이 등 위로 지나간 것 같은 느낌.
“……제가 저의 정보력과 계획과 정치질의 모든 걸 다 공작님께 아뢰어야 하는 겁니까?”
날카롭게 받아치자 셜린의 굳어있던 입매가 쭉 올라갔다.
“그렇지. 내게 고할 필요 없지.”
그는 낮게 키득거렸다.
“하지만 난 그대에게 다 고할 생각이네.”
“……예?”
“레온 크레이브 공작을 거기로 보낸 게 나거든.”
의외의 발언에 루이드는 눈을 크게 떴다.
“내 이야기가 좀 재미있나 보지?”
“들어볼 정도는 되겠군요.”
세반 공작은 다시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공작이 말하지 않던가. 정보원이 있다고. 그게 내 쪽에 있던 사람이거든. 하지만 아무런 능력이 없는 내가 가는 것보다야 왕국에서 제일가는 검사를 보내는 것이 낫지.”
‘헛소리는.’
루이드는 그가 분명 어떤 힘을 숨기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처음 루이드의 능력을 단박에 눈치챘을 때도 그렇고, 유적의 일. 물론 이번에도 발휘한 대단한 정보통 덕분일 수도 있었지만.
‘아니야. 이전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통찰의 눈 스킬을 얻은 후 본 그의 모습은 생경했다.
처음에는 그저 자주 본 얼굴이 아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대화를 나누며 계속 관찰한 바로 루이드는 판단할 수 있었다.
‘물론 스킬을 쓴 게 아니어서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본인 입으로 저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다고.’
하지만 루이드는 일부러 그를 들쑤실 생각은 없었다.
그가 힘숨찐이던 뭐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아닌가.
‘게다가 왕국 곳곳에 정보원을 심어놓는 타입인가 보네. 그런 걸 보면 생각보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겠고.’
루이드는 번들거리는 공작의 눈을 잠깐 마주쳤다가 쓱 피해버렸다.
“게다가 내가 알아낸 것은 정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국왕 암살 시도자의 끄나풀 정도를 발견한 것이라 생각했거든. 뭐, 나도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까지는 세세하게 말하지 못하겠지만.”
세반 공작은 팔짱을 끼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검지로 자기 입술을 두드렸다.
“확신하긴 했지만, 정확하진 않았어……. 한데, 그대의 그 기사.”
D의 이야기가 나오니 루이드는 속으로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D와 수호단들의 이야기야 이미 어지간한 귀족들 사이에는 다 퍼졌을 터였다.
프레이시안 성에 정보원을 심어, 괴한의 추적까지 해낸 세반 공작이라면 D가 루이드 본인이라는 사실까지도 알아차렸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 기사는 확실하게 알아차렸다던데. 혈계 능력을 사용한다고 하더군. 신비로운 눈으로, 뭐든, 어디든 볼 수 있다고. 그래서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라서 이제껏 숨겨 놓은 건가?”
‘이렇게까지 D의 능력을 자세히 알고 있는 걸 보면 크레이브 공작에게서 직접 들은 것일 수도 있겠군.’
카이린에게라면 몰라도 세반 공작에게까지 크레이브 공작이 보고할 필요는 없으니까.
‘생각보다 두 사람이 친한가? 앙숙처럼 보였는데 말이야. 아니면 이번 괴한의 추적 건으로 힘을 합쳤거나.’
아니면 카이린에게 보고하는 것을 어떤 수로 엿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통찰의 눈이 그런 능력이긴 하지만, 프레이시안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거기까지 힘이 각성하지도 않았었고. 숨기려고 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세반 공작에게 친절히 알려줄 이유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세반 공작.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뭐냔 말이야.’
정적이 흐르자 입술을 두드리던 공작의 손가락 움직임은 어느새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아무렇게나 입술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보였다.
입술의 얇게 일어난 껍데기가 뜯겨 피가 날 것 같았다.
“나도 그를 만나보고 싶은데 말이야. 소문으로는, 그의 주군이 그 기사를 아주 완벽하게 싸고돈다고 들어서.”
“싸고돌다뇨. 그저 그는 바쁠 뿐입니다. 제가 참 신임하거든요.”
D를 만나고 싶다. 단지 그뿐일까?
하기야, 아무리 정보원을 동원하고 따로 만나려고 해 봤자였을 것이다.
아마 이미 그리슨빌에 사람을 보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찾을 수 없었을 테지.
루이드가 변하지 않으면 D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니.
그래서 몸이 달아 자신에게 직접, 게다가 이렇게 여유 없는 모습이라니.
셜린 세반 공작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가 여유가 없을 이유는 무엇일까.
“제 사람이니 탐내지 마시고요. 크레이브 공작께서도 남의 사람에게 관심이 많더군요.”
“그가 가진 능력이 흔하지 않으니 말이지.”
세반 공작은 루이드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 전에 우린 풀어야 할 문제가 있잖습니까?”
루이드는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응?”
“그 고대 유적.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야……. 내게 정보원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었습니까? 알고도 나를 보낸 것이고요?”
“하지만 백작. 그곳이 그대가 아니면 그 누가 살아 돌아올 수 있단 말인가.”
세반 공작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나를 죽이려고 보낸 것은 아니고요?”
찬 기운이 뚝뚝 흐르는 루이드의 냉랭한 목소리에도 그의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내가 그대를 죽이고 싶을 리가 있나. 그대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데.”
“예?”
루이드는 미간을 팍 구겼다.
‘아무리 그래도 소중한 사람은 좀 그렇지.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셜린 세반 공작은 곧장 입꼬리를 올렸다. 일부러 짓는 부자연스러운 미소.
그는 그걸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유적의 밑에,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것도. 무엇인지 알았습니까?”
땅에 떨어진 신, 카인의 이야기.
루이드는 세반 공작이 거기까지는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깊은 곳에 유배되어 있던 것 말인가.”
활짝 벌어진 공작의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가 보였다.
분명 해가 선명한 낯이었는데도, 그 광경이 어쩐지 서늘해서 저녁이 한참 지난 것만 같았다.
‘알고 있잖아? 완전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물어야 할까? 무엇부터 물어야 할까? 물어볼 것이 너무 많았다.
루이드의 표정은 본 세반 공작은 먼저 선수를 쳤다.
“지금은 다 알려줄 수가 없네.”
“뭐라고요?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습니까? 전 공작님 때문에 죽을뻔했는데요?”
“하하하, 죽기는. 과장이 심하군.”
마치 가벼운 농담을 하는 것처럼 세반 공작은 루이드의 말을 흘려버렸다.
‘하, 어이없네? 뭐 하는 놈이야?’
하지만 루이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세반 공작이 순순히 털어놓을 것 같지는 않았다.
“방금까진 다 고하신다고 해 놓고.”
“그거랑 이건 다른 주제니까.”
“그럼 저도 뭐, 공작님께 더는 협조하기 어렵겠습니다.”
“……흐음. 이상하군. 분명 거기에서 그대가 원하는 것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건 그냥 미끼 아녔습니까? 당신은 그 안에서 내가 다른 일을 하기를 바랐던 거고요. 이를테면……. 신을 죽이는 것 같은 거요.”
“…….”
공작은 루이드에게서 한발 물러서더니 발끝으로 바닥을 긁었다.
“백작께서 기분이 상했나 보군. 그럼 화가 풀릴 때까지 내가 기다려야지. 별수 없지.”
루이드는 계속해서 의뭉스럽게만 말하는 그가 답답했다.
결국 공작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할 뿐.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더는 엮이고 싶지 않군. 아니, 그런데 이렇게 불길한 사람이 궁에 있어도 되는 건가. 전하를 위험에 빠트리게 하는 거 아냐?’
세반 공작은 루이드의 심기를 더는 거스르고 싶지 않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런. 대화 좀 해보려다가 오히려 그대에게 미움만 샀군. 하지만 이번에도 정말 고맙다고 말하려던 거야. 그대가, 아니 그대의 기사가 시선을 끄는 데 정말 도움이 됐거든.”
그 말을 듣자, 루이드는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레온 크레이브 공작도 그런 말을 했었지. 시선을 끌어야 한다고. 그 역시 세반 공작에게 이용당한 거군!’
루이드가 다시 뭐라고 말하려던 순간 세반 공작이 쪽지를 내밀었다.
“이 선물이 마음에 든다면, 부디 화를 풀었으면 좋겠군. 그리고 마음이 풀린다면. 그 기사와의 만남도 허락해 주면 좋겠고.”
“제가 그걸 받을 것 같습…….”
루이드는 받지 않으려고 했다.
공작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고대 유적의 좌표를 받았을 때와 똑같을 테니까.
그냥 이제 그에게 뭔가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얻는 건 고생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공작은 제멋대로 루이드의 겉옷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쪽지를 남기고 돌아서서 가버렸다.
“아니, 뭐 저런 황당한…….”
루이드는 신경질적으로 품에서 쪽지를 꺼냈다.
“역시…….”
거기에는 마법 좌표와 같은 형식의 숫자와 표기가 쓰여 있었다.
“아니 진짜 저 새끼 진짜!”
루이드는 심한 말을 씹어 삼키며 쪽지를 구겼다.
그리고 그걸 화단에 던져버리려고 하다가 멈췄다.
“하……. 진짜 짜증 나네……. 사람 궁금하게 진짜…….”
대체 뭘까. 셜린 세반 공작이 꾸미고 있는 꿍꿍이는.
그리고 신과 고대의 유적과 고대의 마법들.
요즘 자꾸 주변으로 그런 것들을 접하게 되었다.
귀찮은 것도 사실이었다.
위험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마치 영화관에 갇힌 것 같군.’
루이드는 영화관에 가면, 영화가 어지간히 재미없어도 끝까지 보고 나오는 편이었다.
‘시작을 안 해야 했는데, 일단 시작하면……. 왠지 끝까지 하고 싶잖아!! 으아아!’
루이드는 내적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며. 결국 쪽지를 안쪽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번에는 내가 갈 줄 아냐?! 내가 호구인 줄 아냐?! 어?! 절대로 안 갈 거다! 혹시 모르니까 챙기는 거지. 셜린 세반. 너 내가 딱 두고 본다.’
루이드는 셜린 세반이 사라진 방향으로 주먹을 쥐어 들고 가운뎃손가락만 꼿꼿하게 세웠다.
들켜도 상관없었다.
여기 이 세상에선 그게 욕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