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77)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77화(177/252)
제177화
제2편 마권사(3)
“마법은…….”
레미르가 천천히 입을 떼는 동안 루이드는 물론이고 구경하러 모였던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겨우 두 번째 마나 써클을 만들었을 뿐이에요.”
“하! 그건 절대 ‘겨우’가 아니에요!”
루이드는 마치 제 일인 양 기뻐하며 레미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앗……!”
“정말 대단하십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레미르 님.”
루이드의 눈이 빛나는 만큼 레미르의 눈도 반짝반짝해졌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저 그녀의 막힌 마나맥을 뚫었을 뿐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녀의 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르헬의 말로는 레미르는 얼마 살지 못할 운명이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고, 아무도 고칠 수 없는 병증 때문에.
그런 병을 운이 좋게 고쳐,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완전 주인공 같아!’
루이드는 사실 그 일을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할 수 있어서 했을 뿐, 의도한 것도 아니고 무엇인가를 베풀거나 누구를 구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루이드와 아르헬이 한 행동의 결과는 너무나 멋진 것이었다.
‘오러와 마나를 동시에 다루는 권투사라고. 어쩌면 불 주먹과 얼음 주먹을 휘두르고 발차기에 번개를 심을 수도 있지 않을까. 흠, 이건 너무 상상력이 부족한가.’
레미르의 능력은 소설 속에나 나올 듯한 독특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 힘에 대해 생각하며 루이드가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저, 저어…….”
“아.”
레미르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손을 빼려 힘을 주자, 루이드는 그제야 그녀의 손을 놓아 주었다.
“여하튼. 이건 정말 큰 사건입니다. 이렇게 단기간에 그리 강해지셨는데, 제대로 가문의 지원을 받아 훈련한다면 아마 이그라에서 손꼽히는 전사가 될 겁니다.”
이그라의 마권사.
강철을 으스러트리는 힘과 짐승보다 빠른 발놀림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마법의 이적을 행하는 백발의 여인.
과연 어떤 이명으로 불리게 될까. 무척이나 기대됐다.
“마법도 스승을 두셨습니까?”
“네. 톰멀에는 마법 선생이 있거든요. 비록 우리 집안에 마법을 하는 자는 없었지만 말이에요.”
“정말 멋집니다! 레미르 님이 익힌 권법과 마법을 응용해 새로운 타입의 무술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루이드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레미르는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아……. 하지만, 사실 이제 더는 스승님께 배울 수가 없어요.”
“예? 어째서입니까?”
“아버지께서 아셨거든요. 제게 권법을 알려준 스승은 실력이 출중하여 큰 벌은 피했지만, 이미 클레벤에서 떨어진 영지로 유배되었답니다.”
“물론 아버지께선 그를 다시 클레벤으로 불러들일 겁니다. 그는 권법뿐 아니라, 실력이 뛰어난 기사거든요.”
로빈이 다급하게 덧붙였다.
“레미르 님의 실력을 아시는데도, 톰멀 후작께서는 계속 반대하신단 말입니까?”
“……네에. 그간 저는 계속 아픈 손가락이었으니까요. 갑자기 건강해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으신지도 몰라요. 어렸을 때도, 무척 건강하던 제가 어느 날 갑자기 몸져눕게 됐으니까요.”
레미르는 착잡한 얼굴로, 마치 자신을 설득하듯 고개를 계속 끄덕였다.
“그래도 마법을 배우는 것까지는 말리지 않으시고…….”
루이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글쎄. 과연 무엇 때문일까. 귀한 가문의 여식이니, 결혼 문제도 있을 터. 게다가 허약했던 전적이 있으니 갑자기 무예를 쌓는 걸 밀어주기 아무래도 껄끄럽겠지.’
안타까웠다.
대련하는 동안, 루이드는 그녀가 몸을 쓰는 것과 권법을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또 얼마나 잘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곳은 가부장제와 권위주의가 팽배한 곳.
레미르가 아버지인 톰멀 후작의 뜻을 거스르기란 너무 어려운 일일 터였다.
“아버지는, 여러 차례 설득했어요. 그래서 오라버니들과의 대련도 치렀죠. 다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서였어요.”
“레미르님이 톰멀의 자랑스러운 기사들을 쓰러트린 걸 보고도 뜻을 굽힐 생각이 없으신 거군요.”
레미르를 가르친 권법 스승을 징벌했다는 점에서 이미 톰멀 후작의 의중은 의심할 수 없이 확실했다.
그는 레미르가 검술을 배우고, 싸움의 길을 걷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그녀의 재능이 묻히게 둘 수는 없었다.
모처럼 삶을 되찾고, 모처럼 뛰어난 재능을 발견한 것 아닌가.
그냥 검사도 아니고, 마법을 사용하고 오러를 다룰 줄 아는 특이 체질이었다.
본인이 원하는 것도 뚜렷했다.
‘원래 이런 캐릭터들은 조력자의 도움으로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거거든.’
루이드는 누가 들을세라 레미르에게 바짝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곳에 온 것, 톰멀 후작님께서 아십니까?”
“아…… 실은…….”
레미르는 어색한 얼굴로 웃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그녀와 로빈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니까…… 가출을 했단 말이죠?”
루이드는 머리가 징징 울리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대책 없는 자들이 많은 걸까?
하지만 자신 역시 별종에 속하니, 주위에 그런 자들이 가득한 것을 다른 누구에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네에……. 아, 물론! 백작님께 피해줄 생각은 전혀 없어요! 아버지께선 제가 이곳에 있는 걸 모르시니까요!”
레미르는 다급하게 수습하려 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레미르 톰멀은 톰멀 후작쯤 되는 사람이 싸고도느라 이성적이지 않은 선택까지 하는 자식이다.
그런 딸이 사라졌는데 추격대를 보내지 않았을 리 없었다.
게다가 이미 하루 이틀이 아니다.
레미르가 이곳에 머무른 지 벌써 한 계절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후작쯤 되는 사람은 정보통도 보통이 아닐 터. 분명 이곳에도 그의 눈과 귀가 되는 자가 있을 거야. 나야 정치엔 관심이 없으니, 굳이 그러지 않는다만. 셜린 세반 공작의 때도 그렇고.’
루이드는 로빈을 흘긋 보았다.
‘정말로 추격대가 없는지, 아니면 로빈이 레미르에게 붙은 후작의 눈인지’에 관해 묻는 눈빛이었다.
로빈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순전히 누나인 레미르를 위해 동행했을 뿐, 아버지인 톰멀 후작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모든 것이 다 까발려진 마당에 로빈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지.’
루이드가 아는 로빈은 그럴 성정의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후작이 레미르 아가씨가 여기에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다는 거다. 일탈을 반쯤 허락했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후작이 모순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게나 과보호하는 딸을 몇 개월이나 가출하도록 내버려 두는 이유.
‘나를 신뢰하기 때문이라는 낙천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까.’
어쩌면 자기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모험과 성장을 이뤄내길 바라는 것일까?
물론 이 경우는 루이드의 첫 생각보다 훨씬 낙천적인 케이스였지만.
‘애초에 가족인 데다, 실력이 출중한 로빈이 곁에 붙어 있으니까. 그나마 봐주는 것도 있겠고.’
후작의 생각이 이해가 잘되지 않았지만, 레미르에게는 확실히 좋은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흠. 좋습니다. 그럼. 이곳에 머물면서 검술을 배워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예? 그, 그래도 되나요?”
루이드의 제안에 레미르의 얼굴은 꽃이 피어나듯 밝아졌지만, 금방 어두워졌다.
“혹 권법을 더욱 깊게 배우고 싶으신 거라면……. 어떻게 유배 간 권법 스승을 데려올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건 아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로빈이 고개를 저었다.
유배당했다고 하더라도 톰멀 후작의 영지에 기거하고 있고, 또 아직 그의 사람이니 그를 빼돌리는 것은 후작의 심기를 크게 거스를 수 있었다.
게다가 스승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건 상관없어요. 사실 스승님께서는 제게 더는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하셨거든요.”
레미르의 말에 루이드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이미 한가지 기술에 통달하신 것 아닙니까.”
“아, 아뇨. 그런 것은 아니고요. 선생님 집안에서 명맥이 이어지고 있기는 했지만, 텔도라그 대륙으로 이주한 지 오래되어 스승님조차도 아주 깊은 수준까지는 익히지 못하셨거든요.”
“흐음, 그건 꽤 아쉬운 일이네요.”
레미르는 이미 출중한 권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런 권법의 비기까지 터득하여, ‘마스터’가 된다면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백작님께서 검술을 알려주신다면, 열심히 배워서 제 권법과 함께 단련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레미르는 의욕이 넘쳐흘렀다.
“흠. 사실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포커드의 검술은 그리 훌륭한 것이 아니라서요.”
루이드의 말에 로빈과 레미르는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문의 검술을 배운 자들은 자신이 물려받은 기술에 관하여 자부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야지. 물론 우리 가문의 검술로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
루이드의 아버지도, 첫째 형도 훌륭한 기사였다.
하지만 레미르처럼 싸움에 재능이 뛰어난 자에게 가르칠 최선의 검술은 아니란 뜻이었다.
“그럼…….”
“밀라비아의 검술을 배워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응?!”
멀찍이 떨어져 있던 헤랏산이 깜짝 놀라 난간을 움켜쥐었다.
“레미르 님이 검술을 배우는 건, 후작님께서 허락하신 일이 아닙니다. 한데 이그라의 귀족이, 그것도 후작님보다 낮은 자가 레미르 님께 검술을 가르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버님을 거스르는 일이 되겠죠.”
레미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후작께선, 레미르 님이 이그라를 활개 치며 다니시는 것을 말리지 않으시는 겁니다.”
“……! 그렇……군요.”
“레온 크레이브 공작쯤 되는 이가 레미르 님을 가르친다고 해도, 톰멀 가문을 적으로 돌리는 걸 어려워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
레미르의 눈썹이 팔자로 축 처졌다.
“그러니 외국인 밀라비아의 사절과 우연히 이곳에서 만나, 우연히 친구가 됐고, 우연히 뜻이 맞아 레미르 님께 검술을 가르쳐 준 겁니다.”
루이드는 헤랏산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그럼 후작께서도 어쩔 수 없겠죠. 밀라비아의 사절께선 사절 임무가 처음이라 이그라의 정치적인 문제들에 관해서는 잘 몰랐고요.”
“그, 그런…….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레미르는 기대감이 서린 눈빛으로 헤랏산을 보았다.
“이미 오랜 기간 함께 훈련했으니, 당장 수업을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요.”
루이드는 잔뜩 울상이 된 헤랏산을 향해 밝게 웃어 보였다.
물론 협박이 아니라, 부탁의 의미를 담은 미소였다.
하지만 헤랏산은 그것을 무언의 압박으로 느꼈다.
“잘 부탁합니다. 헤랏산 님.”
완벽한 무언은 아니었지만.
“흐에엥…….”
“헤랏산 님께 계속 신세를 질 순 없으니, 밀라비아 검술의 초식을 다 익힐 때쯤엔 새로운 검술 선생을 찾아 밀라비아로 가는 것도 좋겠군요.”
루이드의 말에 울상이던 헤랏산의 눈이 똘망똘망해졌다.
“저도 언젠간 밀라비아에 방문해야 하니, 그 시기가 겹치면 함께 밀라비아를 여행할 수도 있겠고요.”
푸른 눈이 휘어지게 웃자, 헤랏산이 의욕 넘치게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나, 나! 열심히 가르칠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헤랏산 님!”
레미르는 헤랏산에게 달려가 두 손을 꼭 맞잡았다.
* * *
한편 아르헬은 데모니어스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루이드가 심리 상담소라고 이름 붙인 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