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84)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84화(184/252)
제184화
제9편 쉬는 일(3)
파아앗!
밝은 빛이 작은 바람의 정령에게서 터져 나왔다.
“헉!”
루이드의 곁에 서 있던 멜리옌의 주변에서 엄청난 정령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루이드가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힘이었다.
‘이전에도 정령들이 성장할 때 이런 느낌이었구나!’
루이드는 멜리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정령의 힘이 실프에게 가 닿는 것을 보았다.
통찰의 눈 스킬 덕분이었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마법이나 오러같은 힘을 볼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낯설지만, 거부감이 들지 않는 감각이 느껴졌다.
스스스. 멜리옌에게서 뿜어져 나온 빛이 실프에게 온전히 전해졌다.
실프는 어느새 푸른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태풍으로 만든 구 같은 것의 안에서, 실프의 웃음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에헤헤! 후헤헤헤!」
파아앗!
바람의 구가 일순간 흩어지며 안에 있던 실프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쉬이이익! 빠르게 다시 아래로 곤두박질친 실프가 저공비행 곡예를 부리듯 땅을 훑으며 텃밭을 한 바퀴 빙 둘렀다.
“실프! 이제 그만!”
멜리옌의 목소리에 그제야 다시 실프가 돌아왔다.
루이드는 그제야 실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작은 정령의 모습은 조금 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인간을 닮은 얼굴 뒤로 깃털의 모양으로 풍성한 머릿결이 있었다.
실프가 가지고 있던 새의 날개 같은 팔은 그 크기가 더욱 커져, 매의 것처럼 보였다.
그 넓이가 2미터는 족히 될 것처럼 컸다.
온몸이 깃털로 뒤덮여 있었는데, 날개의 깃과는 달리 몸통 쪽의 깃털은 훨씬 부드럽고 촘촘했다.
그 색이 알록달록하고 아름다운 무늬가 있어, 이국의 옷을 걸친 것처럼 보였다.
또 인간의 것이 있을 하반신의 두 다리에는 거대한 독수리의 것처럼 보이는 강인한 조류의 발이 달려 있었다.
“대단해.”
「안녕, 루이드.」
정령은 마치 오늘 루이드를 처음 만난 것처럼 인사했다.
「실라페야.」
“안녕.”
「대단해.」
실라페는 변화한 자기 모습이 믿기지 않는 듯 훑어보았다.
「루이드 덕분에 다른 녀석들이 변화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도 그럴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루이드의 물음에 실라페가 개구쟁이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그야 샐러맨더 녀석을 봐.」
루이드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루이드가 원하는 거! 이제 더 많이 만들어줄 수 있어! 지금 당장 다섯 배 만들어줄게!」
정령들은 한 단계 변화할수록 의젓해지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 바람의 정령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천방지축으로 뛰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안돼. 실라페. 조금 참아.”
「우우, 어째서!」
루이드는 뒤를 돌아보며 멜리옌을 살폈다.
정령력을 소모해 순식간에 안색이 핼쑥해져 있었다.
“멜리옌, 가서 좀 쉬자고.”
“괘, 괜찮아요. 루이드 님.”
“어허. 무리할 필요 없어. 이미 성과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진심이야. 나는 이 일이 일 년, 아니 수년이 걸리리라 생각했어. 기대하지 않은 게 아니야. 이건 정말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거든.”
“…….”
멜리옌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다.
‘역시 계속 그 말을 신경 쓰고 있었군.’
헤랏산의 정체를 로빈에게 들켰기에 책임이 있다는 말.
그래서 멜리옌은 이번 비료를 개발하는 일에 혼신을 다했던 것이다.
루이드는 멜리옌의 어깨를 토닥였다.
“잘했어. 수고했어. 쉬어도 돼. 그대가 나를 위해 해준 일을 정말 고맙게 생각해. 기뻐.”
“네에…….”
멜리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에서는 실라페가 날개를 파닥거렸다.
[상대가 당신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습니다!]기분 좋은 알람이 루이드의 눈앞에 떠올랐다.
상당한 경험치를 얻었지만, 일반 레벨이나 스킬 레벨은 꿈적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성장이 더뎌질 때도 됐군.’
조금 아쉬웠지만, 모든 것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으니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멜리옌과 실라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뿐.
탑으로 돌아가려던 멜리옌이 미간을 찌푸리곤 상체를 숙여 무릎을 짚었다.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으……. 못 걷겠어요.”
너무 많이 소모한 정령력 때문이었다.
“내가 도와주지. 실라페, 너는 그만 돌아가도록 해. 아무리 멜리옌이라도 지금 막 진화한 너를 이렇게 오래 부를 순 없어.”
루이드는 멜리옌을 부축해 탑으로 향했다.
“아이참! 너희!”
가까운 곳에서 아르헬의 음성이 울렸다.
루이드가 돌아보니 아르헬과 카라젝, 데모니어스가 함께 상담소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세 사람은 다툼이 있고 난 뒤 빠르게 사이가 좋아져, 루이드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래도 둘은 당분간 좀 어색할 줄 알았는데. 진짜 애들 같아서 다행이야.’
특히나 카라젝과 데모니어스는 루이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친해졌다.
그리고 루이드와 아샤라가 함께 한 가운데 데모니어스의 새 능력을 카라젝에게 사용해 보았지만, 처음처럼 카라젝의 가동이 완전히 멈추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의 때처럼 데모니어스가 완전히 무의식을 개방하지도 못했다.
의식의 존재만 희미하게 느낄 뿐.
‘데모니어스의 능력 때문에 카라젝에게 완전히 변화한 무엇인가가 생긴 걸까. 아니면 그 목소리의 영향일까.’
어찌 됐든 연구는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루이드는 주탑으로 들어섰다.
“루이드 님!”
“…….”
엠마와 솔라였다.
“앗, 멜리옌 씨는 왜 그래요?”
“실프가 진화하는 바람에 정령력을 너무 소모해서 말이야. 쉬게 해주려고.”
“와! 정말 대단해요! 멜리옌 씨는 정말 대단하군요!”
엠마는 자랑스럽다는 듯 멜리옌에게 웃어 보였다.
“뭘요…….”
멜리옌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이런 정령사가 대륙 어디에 있겠어요.”
엠마는 인상을 쓰며 멜리옌의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지 강조했다.
“엠마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
루이드 역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멜리옌의 얼굴은 점점 더 새빨개졌다.
“두 사람은 어디로 가는 길?”
“아샤라 님께 가는 중이에요. 연구와 훈련 때문에요.”
“좋아, 두 사람도 늘 고생이 많아.”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솔라가 입을 삐죽거리더니, 겨우 말을 꺼냈다.
“……새 영지에 가는 거.”
“응?”
“거기……. 누, 누구누구를……. 데려가는 건지…….”
표정이 적은 그녀였지만, 지금만큼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어두웠다.
“걱정하지 말라고. 이 몸이 움직이는데, 나의 수호단을 데려가지 않을까.”
원하던 대답을 얻은 솔라의 민트색 눈이 순식간에 초롱초롱해졌다.
“특히나 그곳은 단데리온 후작령이었던만큼, 내게 우호적이지 않을 거야. 이미 거주하고 있는 귀족들로부터 평민들까지. 내 평판이 어떤지도 모르고. 그러니 나를 보호할 사람들이 꼭 필요하지.”
“저희, 더 열심히 강해질게요!”
엠마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 없을 만큼 루이드가 강하다는 걸, 엠마는 모르지 않았다.
“……나도.”
“완전 든든한걸.”
루이드는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려 주곤 탑으로 갔다.
멜리옌의 방으로 가, 그녀가 쉬도록 침대에 눕히고 일어서는데 옷깃을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응?”
“루이드 님. 이번에……. 저는 못 가는 거겠죠?”
“으응? 멜리옌이 왜?”
“……하지만, 전 계속 연구해야 하지 않나요?”
“당연히…….”
이미 비료를 만드는 일은 성공했다.
가장 하급인 실프가 해낸 일이니, 하급 정령사들을 고용해도 충분히 해낼 일이었다.
‘물론 아직 안정기에 도달한 게 아니라서 멜리옌이 이곳에 있는 게 낫긴 하겠지만.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루이드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막 새로운 연구와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아무래도 안정적인 것이 나았다.
하지만 소폴레리온으로 떠나지 않을 수도 없는 입장.
이미 그곳은 단데리온 후작의 소유에서 벗어난 땅이었다.
지금 당장은 왕실에서 보낸 성주가 업무를 대신하고 있었지만, 그건 루이드가 도착하기 전까지일 뿐.
하루라도 빨리 소폴레리온으로 가 영지를 인수해야 했다.
‘텔레포트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루이드는 무릎을 탁! 쳤다.
‘마침 클리아베이든이 깨어났잖아! 그에게 부탁해서 소폴레리온에도 텔레포트 게이트를 설치하면 되겠어. 게이트 자체를 가동하는데 마법사 인력이 많이 들겠지만.’
멜리옌과 자신이 그리슨빌과 소폴레리온을 빠르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시간이 금이라고 했다. 괜히 땅바닥에 돈을 버리느니, 마법사들 임금도 주고 얼마나 좋아.’
그런 생각을 알 리 없는 멜리옌은 불안한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아 루이드를 올려다보았다.
“걱정하지 마. 멜리옌. 내가 다 생각이 있으니까. 정말로 수호단 모두 소폴레리온에 갈 테니, 걱정하지 마. 새 영지를 가꾸는 일에는 정말 손이 많이 필요할 테니까.”
결과적으로는 멜리옌의 일정이 더욱 바빠진 것이었지만, 아직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멜리옌은 그저 해맑게 웃으며 진심으로 안도했다.
멜리옌의 방을 나온 루이드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그리슨빌의 전경을 훑었다.
‘별생각 없었는데, 주위에서 자꾸 이야기하니까. 괜히 기대되네. 소풍 가는 것도 아닌데.’
한 달이나 마음껏 쉬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쉬고 노는 게 천성인 것 같다가도 이쯤 되면 또 좀이 쑤셨다.
‘한국인이라서 그런 건가. 그냥 천성이 그런 건가.’
루이드는 새로운 도시를 상상하며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켰다.
* * *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커다란 성.
거인의 다리처럼 굳센,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기둥 사이로 뾰족한 인영이 비쳤다.
달빛에 비쳐 어렴풋하게 보이는 광경이었지만, 이곳이 폐허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엉망으로 자란 정원과 깨진 계단, 천정에는 거미줄이 몇 겹이나 두텁게 쳐져 마치 벨벳 커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인영 중 하나가 입을 열어 온기 있는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다면, 이곳은 그야말로 귀신이 사는 곳 같았을 터였다.
“공작님.”
“…….”
루이드 포커드를 닮은 푸른 눈이 달빛에 반짝였다.
“인제 그만 돌아가야 합니다.”
엘빈 포커드가 재촉하는 상대는 셜린 세반 공작이었다.
그는 엘빈의 초조함을 무시하고 뒤돌아 거대한 문에 기댔다.
새카만 문에는 복잡한 그림과 문양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대의 동생이 언제 이곳에 와 줄까.”
엘빈이 대답하지 않자, 셜린 세반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동생이 나를 돕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저는 공작님께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까지 맹세했었군.”
그의 목소리는 텅 빈 것처럼 들렸다.
“그래, 그렇지. 그럼 그대가 동생을 만나보면 좋겠군.”
“예?”
셜린 세반 공작은 기댔던 문에서 풀쩍 몸을 떼어 어느새 엘빈에게 바짝 다가왔다.
분명 꽤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도, 공작이 다가온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여서 엘빈은 뒷걸음질조차 치지 못했다.
“그 특별한 눈을 가진, 그대의 동생이 부리는 기사. 그자를 만나. 내게 데려와. 그러면 굳이 자네 동생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으니까.”
엘빈의 침이 꿀꺽 넘어갔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루이드 포커드의 기사.
그가 있다면, 그가 셜린 세반 공작이 염원을 이루도록 돕는다면 루이드 포커드는 위험한 일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닫힌 고대의 유적들을 깨우고 그 안에 잠든 신들을 죽일 필요가 없다.
달빛을 받아 셜린 세반 공작의 눈알이 반짝였다. 사람의 것 같지 않은,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엘빈 포커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그 애에게 가겠습니다.”
그의 말에 창백하던 얼굴이 비로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