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85)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85화(185/252)
제185화
제10편 소폴레리온(1)
“루이드~!”
앞서 나가던 아르헬이 말머리를 꺾어 돌아왔다.
“아르헬, 천천히. 말에서 떨어지겠어.”
드래곤이 낙마가 무섭겠는가. 떨어진다고 해도 하나도 다치지 않을 텐데도 루이드는 그렇게 말했다.
아르헬은 가지런한 치아를 활짝 드러내며 손가락으로 계곡 너머를 가리켰다.
“저기 보여!”
손가락 끝에는 신록 사이로 하늘보다 짙은 푸른색이 작게 비쳤다.
일행은 설레는 발걸음으로 푸른 점을 따라 이동했다.
계곡 아래로 마치 바다처럼 보이는 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강에 닿기 전에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내는 도시가 있었다.
소폴레리온.
험하고 울창한 계곡과 강을 가진 도시.
루이드와 그가 이끄는 군대가 성에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 성문이 열렸다.
“루이드 포커드 백작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루이드가 인수인계를 받기까지 성을 관리하고 있던 왕국 파견 성주 아이작 그란트였다.
그는 그란트 가문의 사남으로 왕궁에서는 행정직으로 있던 자였다.
“드디어 와 주셨군요.”
그는 밝은 얼굴이었지만, 굉장히 지쳐 보였다.
“고생이 많았어요.”
“아닙니다, 제가 뭐 고생이랄 것까지 있나요.”
그는 루이드의 눈치를 살짝 보다가 말을 보탰다.
“사실은, 그간 신경 쓸 만한 일이 있기는 했습니다.”
“응? 그래요?”
“……말은 편하게 해주시죠.”
“아아.”
아이작은 루이드를 안쪽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사실 이 소폴레리온은 큰 고민거리를 안고 있습니다.”
“해적 문제 아닌가?”
“아! 잘 알고 계셨군요!”
아이작은 한시름 놨다는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전부터 강을 타고 오르는 도적 떼들 때문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단데리온 후작의 영지였을 때도요. 그러니…….”
“응, 그대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지.”
아이작 그란트는 임시 성주였고, 이 영지를 관리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았으니.
“게다가 주변 숲과 산속에는 사나운 몬스터가 많아서…….”
“잘 알고 있소.”
루이드의 담백한 대답에 아이작의 얼굴은 더욱 밝아졌다.
“외성 밖에 토벌한 몬스터 사체를 쌓아두고 왔으니 처리해주면 좋겠는데. 아, 이제 내가 해야 하던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백작님께 일을 넘겨드릴 동안은 제가……. 아니, 그런데 오시는 길에 몬스터 토벌을 하셨단 말입니까?”
“그냥 오는 길에 거슬리길래.”
루이드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사나운 몬스터라고는 해도 루이드와 수호단에게는 간식거리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해치운 몬스터에서 나온 쓸만한 부속물은 가져온 마차로는 수습이 안 되어 루이드가 직접 숲속에서 마차를 만들어 실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루이드가 새로 만든 마차가 열 대는 되었다.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열 대에서 몬스터 사체 수거를 포기했다.
‘물론 엄청나게 많이 나오기는 하더란 말이지. 왕국에서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각보다 더 발전되지 못한 이유가 아마 그 때문이겠지.’
비정상적이라고 느껴질 정도.
아이작은 눈썹을 축 늘어트리며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정말 감사합니다. 아무리 용병들을 파견해도 몬스터 피해가 줄어들지 않아서 여간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작은 비밀을 속삭이듯 작게 중얼거렸다.
“사실 자료를 훑어보니, 단데리온 후작께서 몬스터 토벌을 소홀히 하셨더라고요. 토벌에 드는 비용에 비해, 비교적 흔한 몬스터들이어서 수익이 적다는 게 그 이유였답니다.”
물론 그 역시 루이드와 단데리온 후작의 사이를 대충 알고, 또 루이드가 이 영지를 하사받은 것에 관하여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을 테니 하는 말일 터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꽤 솔직한 보고였다.
그는 멈추지 않고 소폴레리온의 상황과 특히 신경 써야 할 점을 설명했다.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꼭 덧붙였다.
루이드는 그런 아이작을 보며 흥미를 느꼈다.
솔직히 파견 성주는 몇 개월 동안 성주 노릇을 하는 척만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제대로 굴러가는 영지는 몇 없었고, 이 세상은 몬스터 따위로 예상치 못한 타격을 입는 경우도 많았다.
영지 관리가 엉망진창이었다고 해도 그 누구도 파견 성주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특히 왕궁 권한의 영지라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영지를 맡을 귀족이 정확히 정해져 있다면 더욱.
그러니 이렇듯 꼼꼼하게 영지 관리를 하고, 부족한 힘으로도 영지의 구멍을 메꾸려고 노력한 것은 그가 아주 성실하다는 뜻이었다.
아직 어리고 혈기가 왕성하여 그렇다기에는 아이작은 둘째 형인 엘빈 또래로 보였다.
“앞으로 항목마다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지만, 우선은 간략하게 정리된 것을 알고 계심이…….”
그는 직접 만든 서류를 펼쳐 보였다.
루이드가 대충 훑어보아도, 아이작의 서류는 훌륭했다.
영지의 상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가독성이 좋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일머리가 좋다고 해야 할까.
확실히 센스가 좋음이 눈에 띄는 작업물이었다.
사실 그의 서류정리 실력은 이미 소폴레리온에 도착하기 전에 눈치채고 있던 상황이었다.
루이드의 행정 스킬로 말이었다.
행정 스킬은 시스템이 알아서 서류를 정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작성된 서류를 저장해 보여주는 컴퓨터나 인터넷 같은 원리였기에 문서마다 작성자의 기량이 느껴졌다.
‘이렇게 일을 잘하는 행정관을 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점점 탐이 나는군.’
루이드는 아이작이 건넨 서류를 정성 들여 읽은 뒤,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내가 없는 사이에 소폴레리온을 아주 잘 관리해 주었군.”
“하하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파견 성주가 이렇게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해내기란 어려운 일인데, 혹시 소폴레리온에 특별한 애착이 있다거나 한 건가?”
“예? 그런 것은……. 오히려 지긋…….”
그는 중얼거리다가 입을 합 닫았다.
아무리 그래도 앞으로 소폴레리온을 다스릴 영주의 앞에서 이곳이 지긋지긋하다는 말실수는 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작 그란트는 최대한 선량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도 백작님 심기에 거스르지 않을 정도는 한 것 같아 기쁩니다. 이곳에서의 추억은 왕궁으로 돌아가서도 잊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최대한 예의 바르게, 하지만 깔끔하게 선을 그었다.
* * *
아이작 그란트는 이곳에서 한시라도 더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 어떤 왕실 행정관도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곳.
악명이 자자한 단데리온 후작의 영지.
‘그곳에 가면 목숨이 달아날 거다.’
‘단데리온 후작도 손을 놓은 곳이지. 그가 멍청한 것이 아니라, 현명한 거야!’
‘하루에도 몬스터와 해적 때문에 죽는 사람이 열댓 명은 된다더라.’
‘몬스터나 해적이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 땅은 저주받은 거야!’
모두가 기피하는 곳에 아이작이 오게 된 것은, 그가 착해서도 멍청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왕궁에서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파견이 될 만한 라인에서 그란트 가문은 가장 약소한 귀족 가문이었고, 그중에서도 사남인 아이작 그란트는 말대꾸할 정도의 권력도 없었다.
폭탄 돌리기의, 폭탄이 터질 타이밍의 자리에 아이작 그란트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이작 그란트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그 작은 가문, 그란트에서조차 아이작은 늘 그렇게 살아왔다.
가난한 귀족의 사남의 삶이란 뻔했다.
그나마 아이작이 노력하여 왕궁 행정관이 된 것 아닌가.
물론 엄청나게 말단이기는 했지만.
‘소폴레리온에 파견 성주로 다녀온다면, 네 암담한 승진 계획에 도움이 좀 되지 않겠느냐.’
아이작에게 파견 성주 서류를 건네던 상급 행정관이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아이작이 소폴레리온처럼 기피 지역에서 파견 성주를 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공을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소폴레리온은 단데리온 후작의 요청으로 몇 번이나 파견 성주가 맡은 바 있는 땅이었다.
가문의 영지를 탐탁지 않아 하는 왕실에 맡길 정도면, 그 땅이 얼마나 기이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지리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하나도 활용하지 못하는 곳.
과거에는 단데리온 가문에서도 몬스터와 해적 토벌에 힘을 쏟았다.
그래도 역부족일 정도로 몬스터가 많았다.
해적의 경우도 강 하류로 있는 캉스데론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유입되는 것인데, 캉스데론 측에서는 자신들도 해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나 국력이 약해 손을 쓰지 못한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단데리온 후작이 가주가 되었을 무렵에는 거의 방치당하는 영지나 다름없었다.
“미친 영감이야. 이럴 거면 그냥 왕궁에 반환하던가.”
하지만 단데리온 가문에게 이 땅은 계륵 같은 존재였다.
남을 주자니, 땅의 이점이 아깝고. 그렇다고 잘 관리하자니 손이 너무 많이 가는 것.
그렇다고 해도 아이작의 생각으로는 단데리온 후작이 멍청하다고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루이드 포커드 백작은 성품이 온화하고, 가신들을 잘 보살핀다고 들었다. 그러니 내가 이곳에서 조금만 열심히 해도 좋게 봐줄 거다.”
아이작 그란트가 따로 기대하는 바도 있었다.
루이드 포커드 백작이 카이린 세반 국왕 전하와 무척이나 친하다는 사실!
물론 요즘에는 갖가지 소문이 돌았다.
국왕을 시해하려 했던 괴한을 무찌른 영웅인데, 왜 소폴레리온 정도의 땅만을 하사하느냐는.
그 둘의 사이가 틀어진 것이 아니냐는.
하지만 아이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루이드 포커드 백작이 왕궁에 들러, 카이린 국왕 전하와 담소를 나눈 뒤에 돌아가는 길을 보았다.
길을 잃은 탓이었다. 원래는 아이작이 들어갈 수 없는 곳.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전하께서 거하시는 내궁에서 빠져나와 바로 그 앞에 있는 팬지가 가득 핀 정원을 가로지르는 루이드 포커드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무심결에 올려다본 발코니에 국왕 카이린이 있었다.
‘전하께서 포커드 백작을 무척이나 아끼시는 것 같았어.’
카이린은 멀어지는 루이드 포커드 백작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한없이 아쉬워하며.
그러니 세간의 소문에 둘의 사이가 소원해졌다느니, 사실은 귀족파를 견제하기 위해 친분이 있는 척하는 것이니 하는 말은 모두 허튼 것이다.
아이작 그란트는 확신했다.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 같지만, 또 오히려 이런 땅을 맡기신 걸 보면 무척이나 신뢰하시는 거다.’
어찌 됐거나 깊은 내용은 아이작과 상관이 없었다.
그저 열심히 일하고, 루이드 포커드 백작의 마음에 들어서 혹 한마디라도 칭찬이 왕궁에 들어가는 것.
그것이 목적이었다.
물론, 하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열심히 영지 업무를 보기는 했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영지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인 서류정리부터, 가신들의 직무 분배, 운영.
사람이라면 이 꼴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으리라. 아이작은 그렇게 생각했다.
최선을 다했다.
대충하는 건 성정에 안 맞는 일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무척 겁내던 막중한 임무였지만, 꾹 참다 보니 의외로 적성에 맞았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영지가 아니라 중간쯤 되는 영지의 성주가 되는 것은 괜찮을지도. 라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어쨌거나 소폴레리온에서의 경험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이 아이작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온화하고 너그러운 성정의 루이드 포커드 백작은 자신의 부족한 점에 관하여 절대로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작이 수습해 둔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며 감탄하고, 칭찬했다. 그는 아이작에게 혹시 더 머물 생각이 없느냐는 말까지 했다.
‘좋았어. 이대로라면, 어쩌면 정말 왕궁에 기별을 넣어주실지도 모르겠어.’
루이드 포커드는 까다로운 귀족이 아니었다. 신기할 정도로, 오히려 아이작에게 맞춰주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편한 상대였다.
아이작은 신이 났다.
이제 곧 모든 인수인계가 끝나고 왕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간의 고생도 모두 끝이다.
그동안 골칫거리던 가신들이 사고를 쳐도, 아이작은 더이상 인상을 찡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떠나는 날 아침.
아이작은 마지막으로 루이드 포커드 백작과 대면하고 있었다.
“그대 앞으로 왕궁에서 서신이 왔네.”
기쁜 마음으로 포커드 백작이 건네는 서신을 받았다.
무슨 내용일까?
왕궁에서의 보직에 가산점이 들어간 걸까? 벌써 승진?
하기야, 소폴레리온에서의 파견 성주 업무를 마쳤는데 그 정도는 당연할지도 몰랐다.
“어…….”
아이작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졌다.
“음? 제, 제가……. 이곳에……. 소폴레리온의 서기관으로 임명…….”
믿기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드니, 루이드 포커드 백작이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순간 아이작은 깨달았다.
루이드 포커드 백작. 이 사람은 악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