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197)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197화(197/252)
제197화
제22편 소메네아의 두 면모(3)
“당신 뭐예요?!”
피리를 연주하던 사람이 놀라 소리쳤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피리를 뒤로 확 감추었다.
“이그라 왕국, 소폴레리온의 영주, 루이드 D 포커드 백작이다.”
“뭣…….”
소녀는 뒷걸음질 쳤다.
척척척. 루이드는 단숨에 소녀에게 다가가 팔을 잡았다.
“꺄악!”
“쉿, 너무 놀라지 말고. 피리를 좀 보고 싶은데.”
“하렐! 하렐!!”
소녀는 다급하게 외쳤다.
“응? 미안한데, 이미 너희 해적단은 다 제압됐거든.”
“윽……! 그, 그럴 리가!”
“어?”
루이드는 당황하는 소녀의 얼굴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소녀의 눈동자는 루이드를 보지도, 선장실 바깥을 보지도 않고 있었다.
푸른 눈은 초점이 없었다.
안개가 낀 것처럼 약간 탁해 보이기도 했다.
“너, 눈이 안 보여?”
“그렇다면 어쩔 테야!”
소녀는 팔에 힘을 주며 소리를 악 질렀지만, 루이드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루이드는 손을 뻗어 소녀가 쥔 피리를 빼앗았다.
“앗! 돌려줘!”
“글쎄. 돌려줄지 아닐지, 한 번 보고.”
선장실 바깥과 소녀의 악 지르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 가운데 루이드의 눈이 번쩍거리며 빛나기 시작했다.
통찰의 눈.
빛 사이로 피리의 정보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루이드에게는 익숙한 기운이 흐르고 있는 피리.
하지만 그 기운은 무척이나 흐려져 있었다.
변질하거나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래되어 닳은 상태.
[추락한 신의 사제의 조각]문지기의 다리뼈로 만든 피리.
루이드의 눈이 크게 떠졌다.
‘역시 몬스터 비석과 관련된 물건이군. 이게 진짜로 존재하는 거였잖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냥 비유가 아니었어. 정말로 존재하는 거였어. 그렇다면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옷도 존재하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보았던 온통 하얀 남자는 뭐란 말인가.
정말로 뼈와 가죽을 빼앗겼다면, 어떻게 자신에게 의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일까.
게다가 이 뼈로 만든 피리가 소폴레리온이 아닌, 한낱 해적의 손에 들어간 것일까.
“너, 이 피리를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지?”
루이드가 묻자, 소녀가 팔에 힘을 꽉 주었다.
“내 거야! 그 피리는 원래부터 내 물건이라고!”
소녀는 좀 전과는 달리 루이드를 겁내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루이드를 할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흠, 그렇단 말이지.”
루이드는 능력을 끌어올렸다.
소녀와 피리에 얽힌 비밀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 * *
그리고 다시 돌아와, 소메네아 성.
루이드는 여유롭고 부드러운 미소로 일관하고 있었다.
“거래라고?”
루이드의 말에 소메네아 왕국의 국왕, 일라이 타메리오가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예, 거래요.”
일라이의 바로 곁에 서 있던 데리안 타메리오 공작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소메네아의 국무대신인 데리안 타메리오 공작이다. 지금 그대가 하는 말은 무역협정을 하자는 말인가? 그대는 이그라 왕궁의 이름으로 온 것이 아니던데?”
타메리오 공작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거만한 투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일라이는 안심한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루이드는 그 얼굴을 보며 눈을 빛냈다.
데리안 타메리오.
소메네아의 공작.
어린 국왕인 일라이 타메리오 대신 소메네아의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그러니까 섭정왕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국왕인 일라이는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
다른 왕족은 전무.
전 국왕의 동생인 데리안 타메리오가 섭정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그라 왕국과 작년까지 많은 거래를 했지. 대륙 전체에 든 가뭄 때문에 우리도 곡식이 아주 필요했거든. 하나, 그대는 이그라 왕국의 사자가 아닌 소폴레리온의 영주로써 온 것 아닌가.”
일라이와 빼닮은 옅은 녹색의 눈이 루이드를 훑었다.
“소폴레리온과는 거래할만한 것이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대가 그 영지를 얻은 지 얼마 안 되었겠지? 소폴레리온에 관하여서는 잘 알고 있는데, 내가 기억하는 이름이 아니야.”
“그렇습니다. 저는 소폴레리온의 새로운 주인입니다.”
“그래서 그대가 뭘 잘 모르나 본데.”
데리안 타메리오의 목소리는 차갑고 오만했다.
“소폴레리온에는 딱히 우리와 교역할 물건이 없는 걸로 아는데.”
소폴레리온을 잔뜩 무시하는 그 목소리에, 루이드는 씩 웃었다.
‘역시 이런 반응일 줄 알았지.’
확실히 지금까지는 그랬다.
소폴레리온은 큰 땅이었고 밀 등의 곡식을 생산하기는 했지만, 7년간의 깊은 가뭄으로 밀 생산량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단데리온 후작의 영지는 루이드의 기술을 빨리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다른 영지들에 비해서도 발전이 뒤처졌다.
그러니 많은 돈을 들여 다른 영지의 곡식을 수입하는 처지였다.
그나마 몬스터를 사냥해 얻는 부산물을 팔았는데, 이곳에서 발생하는 몬스터들은 사납고 억센 것에 비해 희귀한 몬스터들이 아니어서 팔아보았자 값이 좋지 않았다.
하여 몬스터 사냥을 업으로 삼는 용병들도 즐겨 찾는 곳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좋지 않았던 것.
모두 루이드가 봉인한 비석 때문에 비롯된 일이었다.
일방적으로 소메네아를 통해 수입 해오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당당하게 무역협정을 요구하는 루이드의 말을 비웃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직 저에 대해서 잘 모르시나 봅니다.”
루이드의 말에 타메리오 공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외국이니까요. 가져와라.”
루이드의 손짓에 소폴레리온의 병사들이 커다란 상자를 끌고 왔다.
처억, 척!
열리는 상자마다 물건이 그득하게 담겨 있었다.
첫 번째 상자는 구리로 만든 각종 조리기구와 식기들이었다.
두 번째 상자는 잘 제련된 강철 무기.
세 번째 상자에는 마법 포션.
네 번째 상자에는 유리로 만든 공예품들이 있었다.
차례로 열리는 상자를 보면서 데리안 타메리오 공작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소폴레리온에서 이런 물건들을 생산해 낼 수 있었던가?”
“없죠.”
루이드는 당연하다는 듯 방긋 웃었다.
“물론 아직 영지에 관한 조사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서,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
타메리오 공작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하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물건을 공급할 수 있다는 확신을 드려야겠죠.”
루이드는 당당한 얼굴로 조곤조곤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소폴레리온에는 새로운 영주와 함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답니다. 그중에서 가장 놀라운 변화는 텔레포트 게이트죠.”
“텔레포트 게이트?”
소메네아 알현실이 술렁였다.
그건 국왕인 일라이나, 데리안 타메리오 공작뿐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대신을 놀라게 했다.
텔레포트 게이트란 것이 원래 그랬다.
에벨리의 허가가 있어야만 설치될 수 있는 구조물이었다.
그리고 소메네아 왕국에는 하나도 없는 것이기도 했다.
“이그라에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는 그리슨빌에 있다고 알고 있는데.”
“물론 그리슨빌도 제가 관리하는 영지죠.”
“아……!”
국왕 일라이가 감탄한 듯 탄성을 내뱉었다.
“에벨리가 그대에게 또 텔레포트 게이트를 선물했다고?”
타메리오 공작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음, 생각보다 소메네아 왕국은 소식에 어둡구나.’
이미 어지간한 이웃 나라에는 소문이 파다할 이야기였다.
게다가 루이드에 관해서도 전혀 모르는 눈치.
‘소국에, 능력도 별로인 이곳에 그렇게까지 발목 잡혀 있었다니.’
루이드 역시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무해하게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그렇다면 그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서 그리슨빌에서 생산해내는 저 물건들을 조달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이그라의 포커드 백작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나도, 나돕니다. 그 대단한 천재 말이지요? 이그라의 국력을 몇십 배나 끌어올린 위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세상에. 그런 자가 우리 소메네아 왕궁까지 왔는데 우리는 몰랐단 말입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
소메네아의 대신들이 저들끼리 숙덕거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일반인의 신체 능력이 아닌 루이드에게는 모두 선명하게 들렸다.
‘아주 바보들은 아닌가 보군. 그럼, 중요한 섭정 씨는 슬슬 내가 누군지 눈치챘으려나.’
루이드가 타메리오 공작을 살펴보았다.
그 역시 이제 루이드의 이름을 기억해 내는 것 같았다.
하기야 아예 모를 수가 없었다.
루이드가 7년 동안 해낸 일들이 얼마인가.
초반에는 이그라 내에서만 유명했다지만, 이후로 대륙 곳곳에 소문이 퍼져나갈 정도로 대단하지 않았는가.
물론 루이드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었다.
“게다가 제가 타고 온 배를 보셨습니까?”
루이드의 말에 타메리오 공작이 눈을 찌푸렸다.
“……그 무식하리만치 거대한 배 말인가.”
명백한 적개심.
‘흐응, 내 이름을 기억해 냈을 텐데도 이런 반응이라? 별로 똑똑한 편은 아닌가 보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까.
루이드는 궁금해하며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무식하진 않은데요. 보시면 아마 놀라실 겁니다.”
루이드는 천천히 배의 스펙을 읊기 시작했다.
“이 배는 적재 능력이 150톤이 넘습니다. 길이는 23미터에, 너비만 7.5미터죠. 돛대는 3개나 됩니다.”
또 한 번 대신들이 술렁거렸다.
“직접 보셔야 알겠지만, 지금껏 소메네아에서 운행되는 그 어떤 배보다도 크고 튼튼합니다. 게다가 빠르고요.”
이미 루이드는 소메네아의 배에 관하여 조사를 끝낸 상태였다.
소메네아와 소폴레리온을 오가는 상인들을 통해 배 설계도를 얻었다.
소메네아의 배들은 아직 대륙 이동에는 큰 위험이 따르는 안정성이 떨어지는 배들이었다.
루이드와 조선장은 이 설계도를 이용해 그보다 더욱 강하고, 빠르고, 더 많은 물건을 실을 수 있는 지금의 배를 만들어낸 것이다.
배의 이름은 사탄마리오 호.
애초에 루이드는 대륙 간의 본격적인 교역을 위해 만든 배였다.
그러니까, 애초에 소메네아와의 무역협정은…….
“그렇다면 그 배도 포커드 백작 그대가 제조한 것이겠군?”
루이드는 대답 대신 씩 웃어 보였다.
데리안 타메리오는 무척이나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그런 배를 만드는 것은 소폴레리온과 소메네아 왕국 간의 조약에 어긋나는 행위다.”
공작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순식간에 알현실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