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00)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00화(200/252)
제200화
제25편 소메네아의 두 면모(6)
루이드는 두 눈을 깜빡였다.
[루이드.]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집중하니, 뿌연 시야로 인영이 비쳤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조금 전 잠들었으니 분명 꿈을 꾸는 것일 테지.
[루이드 D 포커드.]다시 한번 부르는 목소리에 루이드는 정신이 번뜩 뜨였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통찰의 눈을 사용할 때 갈 수 있는 의식 세계와도 비슷한.
‘하지만 이건…….’
루이드는 통찰의 눈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이건 그때와 비슷했다.
온통 흰 사내를 만났을 때의 느낌.
[그대가 숭고한 약속을 지키도록 하려고 우리가 왔다.]앞에 선 인영을 자세히 보니, 그 기운이 익숙했다. 분명 그때 그 사내였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사내의 곁에,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 보이는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
그쪽이 루이드가 먼저 만난 사내보다 조금 더 덩치가 컸다.
“내 약속을 위해 왔다고?”
[그래, 인간들의 신전에 가지 않겠다고 약조하지 않았는가.]아아.
루이드는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아르헬과의 약속을 말했다.
잠들기 전에 생각했었지. 그래도 신들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조사를 해봐야겠다고.
아주 거창한 약속은 아니었다.
글쎄. 만약 루이드가 그 약속을 어겼다는 걸 알면 아르헬은 속상해할까.
물론 속상하고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루이드의 눈앞에 나타날 만큼의 일일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 걸까. 다정한 걸까. 아무런 상관도 없는 루이드를 위해서 의식의 세계에 행차씩이나.
“결국 그건 당신들의 이야기가 맞았군, 모두.”
“피리를 보아서 이미 알지 않았는가.”
의식어처럼 주위를 울리던 사내의 목소리가 선명해지며 인간의 말처럼 들렸다.
“우리의 이야기가 궁금한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궁금한 이야기가 있어. 당신 존재들은 하늘이라는 곳에서 왔어? 이 땅에 내려오기 전의 세상에 관해 묻고 싶어.”
루이드의 질문에 사내는 머뭇거렸다.
루이드는 알고 싶었다.
그 신적인 존재들은 무엇이고, 땅에 떨어진 존재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브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사실, 이브의 도움을 받아 차원 문을 닫은 이후로 아무리 노력해도 이브와 다시 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야 이브의 일방적인 접촉이었지만, 차원 문을 닫았을 땐 분명 루이드가 원해서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왜 다시 불가능해진 걸까.
불가능이 아니라면, 이브가 못 들은 척하는 것일까.
어쨌든 루이드가 그 사실을 알아내려면 눈앞의 존재들에게 물어야 했다.
“루이드 포커드. 너무 많은 것을 알려 하지 마라.”
하지만 돌아온 것은 씁쓸한 대답이었다.
사내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딱 그 한마디만 들었을 뿐인데도 루이드는 자신이 궁금해하는 일에 관하여서 그가 절대로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건 경고인가.”
“아니, 그대를 걱정하는 것이다.”
사내는 이전에 들었던 것보다 훨씬 다정하게 말했다.
“하늘에 관해서는 우리가 그대에게 알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어.”
“그건 내가 신전을 가서 능력을 사용하더라도 마찬가지라는 건가. 그러니까 미리 이야기해 주기 위해서 왔다는 거야?”
“그대는 영리하군.”
사내의 옆에 선 존재가 말했다.
따뜻한 미성의 목소리는, 사내보다는 훨씬 여성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루이드는 그들을 보면서 소메네아의 쌍둥이들을 보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두 존재, 그러니까 정확히는 넷은 전혀 다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알려줄 수 없다, 라…….”
“단편적인 것들은 알려줄 수 있다. 하늘의 것들은, 인간들이 쉽게 생각하는 신적인 존재들이다. 세계에 관여할 수 있는 자들이지.”
다른 존재의 말에 흰 사내는 조금 놀란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추방당한 존재들. 그리고 그중 하나는, 그대가 해방했군.”
흰 여인은 루이드를 훑어보며 말했다.
고대 유적, 카인의 이야기였다.
그들에게만 보이는 어떤 흔적이 루이드에게 남은 것이 분명했다.
“당신들도 죽은 건가? 100년 전에, 소폴레리온의 영주가 죽인 건가?”
루이드의 물음에 여인은 잠시 놀란 얼굴을 하다가 푸흐흐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건 조금 다르다. 음……. 애초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녀는 말을 고르는 듯 조금 고민했다.
“우리에게 육신의 껍데기는 감옥.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내내 미소를 머금은 입꼬리가 부드러운 호를 그렸다.
“그이를 해방한 건, 조금 다른 방법을 이용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대가 다른 신에게 한 것과 다르지 않은 방법이었지.”
“그에게는 루이드, 그대와 같은 힘이 없었거든. 해서 머리를 썼지. 사실 내가 그를 속인 것이나 다름없었어. 그 땅이 그렇게 될 거라고 그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사내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 후에도 계속 나를 도와주었어. 인간들의 신전을 파괴하고, 나와 리무안을 자유롭게 해 주었지. 사실 그 저주는 하늘의 것들이 내린 것이 아니야. 땅 아래의 오래된 것들이, 차원 문을 비집고 나와 흘린 사악한 기운이었지. 그 저주를 무마시킨 건 아마, 하늘의 것들이 체면을 차리기 위한 걸일 테고.”
사내는 슬퍼 보였다. 미안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루이드 역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아했다.
100년 전 그는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일까.
결국 자신과 자기 사람들이 저주받게 되었는데도.
데리안 타메리오가 지껄인 저주는 가벼운 것도 아니었다.
소폴레리온을 다스리는 성주의 아이는 반드시 하나가 죽는다는.
‘그 저주가 차원 문 때문이라니.’
루이드는 흰 사내와 여인이 말하는 해방에 관하여 곱씹었다.
카인 역시 비슷하게 말했다는 사실을 떠올랐다.
“그렇다면 왜 내겐…….”
시스템에 뜨는 신을 죽인 자라는 타이틀.
루이드는 그것이 걸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흰 여인은 루이드의 생각을 읽은 듯, 곧장 대답하려 했다.
“그건 이브가…….”
파치칙!!
순간 스파크가 튀었고 셋은 깜짝 놀라 서로에게서 살짝 물러났다.
“이런, 그녀가 허락하지 않는군.”
온통 흰 여인이 난감한 듯 중얼거렸다.
[이 세계는 그녀의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여인의 것으로 들리는 의식어가 루이드의 머리를 울리는 순간, 또다시 파지직! 크게 스파크가 튀었다.
어찌나 컸는지, 코끝으로 탄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온통 흰 두 존재는 극심한 고통을 느낀 것처럼 비틀거렸다.
심지어는 형체가 일그러지기까지 했다.
“알겠지. 우리가 왜 이야기를 할 수 없는지.”
“이……. 그러니까, 그녀의 간섭이 있다는 거군요.”
사내와 여인이 대답 없이 그저 웃었다.
‘그렇다면 내가 대체 어떻게 모든 일을 알아낸단 말인가? 분명 이브는 내게 자신을 찾으라고 했는데. 왜 이들이 말하는 건 허락하지 않는 걸까.’
이 세계는 그녀의 것이나 다름없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
본디 그녀의 것이 아니지만, 이제는 그녀의 것이게 되었다는 것일까.
이 세계의 신이라는 것일까.
이 땅으로 추방당하고 육신이라는 껍질에 갇히는 형벌을 받을 정도로 하늘 위에 온갖 신들이 있다는데.
그렇다면 이브는 어떤 신인 것일까.
하늘의 것 중 하나라는 걸까.
어쩌면 땅 아래에서 올라온 오래된 것 중 하나라는 것일까.
“머릿속이 복잡해 보이는군.”
사내가 말했다.
“그대들이 제대로 말해주지 않으니 복잡할 수밖에.”
“그래도 한 가지 알려주자면, 우리는 그대의 여동생이 해 준 이야기가 마음에 드네.”
“허?”
루이드가 보니, 사내와 여인 모두 진심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맞기도 하고.”
지금 상황에서 그것이 중요한가? 루이드는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가 미소로 답했다.
‘그래도 덕분에 알게 된 사실도 있고. 아르헬과의 약속도 지킬 수 있었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와 주어서 고맙습니다.”
루이드의 말에 두 존재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인간들은 신기하군. 정말 다양해. 그렇게 잔인하면서도, 이렇게 다정할 수 있다니.”
마치 노래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들과 함께 두 존재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루이드는 눈을 떴다.
고요한 새벽이었다.
주변은 무척이나 어둡고, 창밖으로 들어오는 달빛은 전등처럼 밝았다.
일어나려고 보니, 어느새 옆에 누워있는 아르헬이 보였다.
‘같이 잠들었던가?’
루이드는 아르헬의 머리를 가만히 쓸어주다가 비스듬하게 다시 누워 창밖을 보았다.
어떤 일에 휘말리게 되더라도, 이 아이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르헬과의 그 작은 약속을 지켰듯이.
* * *
“좋은 아침입니다!”
루이드가 소메네아의 국왕 일라이 타메리오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대신들에게 밝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십니까.”
그들은 루이드의 인사를 받아주었지만,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뭐, 어제 그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으니까. 그럴 수 있지.’
섭정이 한순간에 왕좌에서 끌어내려졌다.
잃어버렸던 왕족이 되돌아왔고, 타메리오의 끊어질 뻔한 영광이 회복되었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이 외국에서 나타난 어떤 한 귀족 때문에 벌어진 일.
왕은 제자리를 찾았지만, 해치워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자면 대신들의 머릿속도 복잡할 게 분명했다.
“얼굴이 어두우십니다?”
루이드는 철면피처럼 물었다. 그러자 한 대신이 얼굴을 구겼다.
“간밤에 신전의 신물들이 소실…….”
“쉿.”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을 옆에 선 다른 대신이 틀어막았다.
“헛.”
“못 들은 걸로 해 주십시오. 내부사정이니.”
그들은 후다닥 흩어졌다.
“신물들이 소실되었다니. 그럼 그 피리가 사라져버렸다는 건가?”
대신들이 멀어지자, 아르헬이 속닥거렸다.
“그런 모양인데.”
“왜 갑자기? 우리 때문인가?”
루이드는 어젯밤 자신에게 찾아왔던 두 존재를 떠올렸다.
‘힘을 다한 건가.’
자신과 접촉한 대가로 이브의 간섭이 있었던 것일까.
아름다운 흰색 복도를 걸으며 루이드는 생각에 잠겼지만. 마지막으로 헤어지던 그들의 얼굴이 밝았던 것을 떠올리며 안심했다.
그그그.
소메네아 알현실의 커다란 문이 열리고 왕좌에 앉은 두 사람이 보였다.
일라이 타메리오와 실리아 타메리오였다.
두 사람은 마치 한 쌍으로 만들어진 인형 같았다.
루이드가 일라이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나쁜 의미의 인형이 아니라, 정말 도자기를 깎아 만든 아름다운 인형 같다는 찬사였다.
“그대를 다시 보니 참으로 좋군.”
일라이가 말했다.
“나도요.”
옆에서 실리아가 조그맣게 덧붙였다.
“간밤에 신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건 그대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니, 소메네아의 모두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실리아와 내가 만났으니까.”
루이드는 분위기가 달라진 일라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이곳에 온 이유. 어제 나도 함께 들어 알고 있다.”
“예, 저는 소메네아와 동등한 위치에서 무역 협정을 맺기를 바랍니다. 대신 소메네아에 저희 기술로 만든 배를 두 척 선물하겠습니다.”
“좋다.”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알현실을 울렸다.
대신들은 그 기세에 놀란 듯했지만, 그 누구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소폴레리온과 루이드 D 포커드 백작은 우리 소메네아의 은인이자 영웅이다.”
일라이와 실리아가 두 손을 꼭 붙잡았다.
“소메네아는 소폴레리온에게 무한 동맹을 약속하며, 루이드 D 포커드 백작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