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01)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01화(201/252)
제201화
제1편 소메네아의 두 면모(7)
소메네아의 국왕이자 타메리오의 마지막 남은 혈통. 일라이 타메리오는 생각했다.
자신은 잘못된 아이라고.
저주받은 아이라고.
자신이 태어난 이후로 타메리오의 씨가 말랐다.
자신은 타메리오라면, 왕좌를 이을 자라면 당연히 가지고 태어났어야 할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부모를 죽게 하고 쌍둥이 여동생의 목숨도 앗아간, 죽음을 먹고 크는 왕자.
그런 소문이 돌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 때부터,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하지만 그뿐이라며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데리안 타메리오 덕분이었다.
그의 숙부는 부모를 잃고, 여동생을 잃고, 이 세상에 혼자 남은 일라이를 정성껏 돌봐주었다.
괜찮아. 타메리오의 능력이 발현되지 않더라도, 잘 살아갈 수 있어.
이 숙부를 보아라. 그런 능력이 없더라도 잘 해낼 수 있지 않으냐.
네 아버지인 전대 국왕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잃었다.
네 어머니도 지키지 못했어.
물의 힘을 다룰 수 있다고 하면서, 물에 빠져 죽었단 말이다.
대신들과 신관들이 칭송하는 그 대단한 타메리오 왕가를 생각해보아라.
그들 모두 죽었단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왔다.
신에게 내려받은 능력이 없더라도, 사람의 힘으로 나라를 이끌 때가.
너는 이 숙부의 말대로만 행동하면 된다.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것, 너를 위협하는 것, 모두 이 숙부가 막아줄 수 있다.
데리안 타메리오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매일매일 그렇게 말했다.
일라이의 뒤에서 왕의 자질을 욕하며 수군거리는 이들에 관한 정보도, 데리안이 늘 알려주었다.
일라이가 모르는 것이 없도록 소상하게.
그렇듯 데리안은 솔직하고 일라이를 위하는 숙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어른이라면. 진상을 전부 아는 사람이었다면, 데리안이 있지도 않은 소문들을 어린 왕자에게 주입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자극적이고 겁먹을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하는 그를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라이는 데리안 타메리오가 자신을 진심으로 아낀다고, 이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한 행동들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눈으로 직접 본 기억도 없는 타메리오의 능력보다 숙부의 말을 믿는 편이 쉬웠다.
하지만 일라이 타메리오는 꿈에서, 상상 속에서,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항상 타메리오 왕가의 힘을 생각했다.
그 힘을 가졌다면, 어떤 감각으로 살 수 있었을까를 상상했다.
능력이 없는 일라이가 ‘일반적인’ 일라이 타메리오의 상태가 되어버렸으니까.
일라이 본인은 자신의 무엇인가가 비틀렸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기억은 거기서부터 시작됐으니까.
원래 그런 줄 알았다.
무엇인가가 빠져나간 일라이의 일부를 채운 것은 불안이었다.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늘 일라이를 엄습했다.
마치 내장을 배 밖으로 꺼내고 다니는 사람처럼. 언제든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완벽한 타메리오가 아니니까, 바다뱀 신의 가호를 받지 못해 천벌을 받아 객사할지도 모른다.
왕가의 힘을 잇지 못한 자신을 왕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반란이 일어나고 자기 목이, 그 아름다운 소메네아 거리에 걸릴지도 모른다.
순결한 흰빛의 벽돌로 쌓아 올린 광장에 자신의 더러운 붉은 피가 흩뿌려져 흘러내릴 것이라고.
이젠 타메리오의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두렵고 무서워서 그냥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살 거라면, 왕좌에 남아있는 것이 무엇이 중하단 말인가.
일라이의 나이가 고작 10살인데도 그는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처럼 어린아이가 이만큼의 허무를 알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상상하지도 못한 어느 햇살이 청량한 날에.
일라이는 그날이 그렇게 해가 좋은 날인지 알지도 못한 날에.
소메네아 알현실의 문이 열리고, 일라이의 잃어버린 심장이 걸어 들어왔다.
하얀 대리석 바닥 위로 깔린 붉은 융단을 밟으며.
어떤 흙바닥을 굴러다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때가 묻어 갸륵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일라이는 알 수 있었다.
단숨에 알아차렸다.
내 동생.
나의 일부.
실리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감정이 생겨날 수 있을까.
어떻게 텅 빈 소년이 한순간에 완전히 채워질 수 있을까.
일라이가 실리아의 손을 잡는 순간, 그의 내부에 있던 무너진 왕궁이 재건축되었다.
처음 느끼는 듯하지만, 무척이나 그리운 힘이 온몸을 휘감았다.
끊어졌던 핏줄이 모두 연결되어 차갑게 식었던 일라이의 심장이 손을 맞잡은 쌍둥이 여동생과 함께 펄떡였다.
일라이가 기억하는 첫 번째 능력의 발현이었다.
“오빠, 보고 싶었어. 보고 싶어.”
상처투성이로 돌아온 심장에 일라이는 자신의 한쪽 눈을 주었다.
그보다 더한 것도 주고 싶었으나, 일라이는 알 수 있었다.
그의 쌍둥이 여동생 역시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것 외에는 달리 바라는 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상처투성이였지만, 실리아는 일라이보다 훨씬 강인하게 자라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이어졌으니까.
서로를 공유하니까.
이제 다시 세상을 바라볼 때, 일라이는 지금껏 본 것과 전혀 다른 것들을 보았다.
하늘도, 성벽도, 공기의 흐름도.
다 달랐다.
완전히 달라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일라이도 몰랐다.
하지만 심장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사람은 이렇게 변하는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 있는 한 남자.
일라이의 일부를 찾아준 남자.
사실 눈이 먼 쪽은 실리아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려준 남자.
이국의 귀족.
루이드 D 포커드는 그에게 빛이었다.
소메네아의 백성도 아니면서, 자신에게 충성을 바친 기사도 아니면서.
자신에게 과분할 정도의 은혜를 베풀어 준 남자.
과연 신이 내려준 사람이 아닌가.
그가 원한다면 지금 앉은 왕좌라도 내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건 훌륭한 왕이 가지기에는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었지만, 일라이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값어치가 있는 것이라곤 고작 이 황금 왕좌뿐이었으니까.
* * *
“그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줄 것이다.”
일라이의 말에 대신들은 허리를 숙인 채 숨을 들이켰다.
‘와우, 화끈한데.’
솔직히 말해서 이전의 조약을 전혀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은 어린 왕에게 힘에 부치는 일일 수도 있었다.
소메네아에서도 여러 가지 입장이 있을 테니까.
“조약을 파기하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하지만 그대는 소메네아의 왕족을 구했다.”
일라이는 거기까지 말했지만, 눈빛에는 여러 가지 말이 담겨 있었다.
그 말들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으나.
“소메네아와 소폴레리온의 건강한 교류의 시작을 위해 그렇게 해 주십시오.”
루이드의 말에 대신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이 조용히 새어 나왔다.
그들도 루이드가 타메리오 왕가의 은인이라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다.
아무리 데리안이 감옥에 갇혔다고 하더라도 섭정왕의 세력으로 붙은 이가 많을 터.
그러니 루이드에게 너무 많은 이점을 내준다면 귀족들의 빈축을 살 수 있었고, 왕권 장악력이 약한 일라이는 위험해지고 만다.
“그대는 정말이지 청렴한 자다.”
일라이는 감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라이는 루이드와 함께 새로운 협약서를 작성했다.
소메네아와는 그리슨빌에서 생산하는 많은 물품을 거래하기로 했다.
일라이는 그 값을 후하게 쳐주기로 약속했다.
루이드는 배를 모는 기술을 가르쳐 줄 베테랑 선원들을 소개받고자 했고, 일라이 역시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었다.
“그대에게는 통행세를 받고 싶지 않군.”
소메네아는 인근 바다와 강을 지나는 모든 배에서 통행세를 받고 있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저도 전하의 마음을 넙죽 받고 싶으나, 왕권을 다지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할 겁니다.”
“그런 것까지 생각해준단 말인가.”
일라이는 이번에도 무척이나 감동한 얼굴로 루이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루이드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소메네아와 소폴레리온 간의 이상한 조약들은 루이드와 상관없는 일들이었다.
게다가 하늘의 것이니, 땅의 것이니 하는 것들의 일도 얽혀 복잡했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작은 왕에게 동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헬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왕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사실 이 어린 왕이 자리를 잘 보전하고 지키는 것이 루이드 쪽에도 훨씬 이득이었다.
일라이도, 실리아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루이드를 보았다.
딱 조카 코니가 자신을 올려다볼 때의 눈빛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잘 키워두는 편이 좋겠지.’
그렇다면 지금 당장 왕좌를 위협하는 선택보다는 멀리 내다보는 것이 이득.
“지금은 적정한 요금으로 통행세를 받으시지요. 다만, 소폴레리온의 배가 넓은 바다로 나가는 것을 막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이전까지는 배가 너무 작아서 나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부과되는 통행세도 소폴레리온만 예외적으로 살인적인 가격이었다.
“그렇게 하겠다. 내가 소메네아의 왕권을 안정시키고, 부끄럽지 않은 왕이 된 것을 증명하고 나면……. 그때는 그대에게 훨씬 더 좋은 것들을 주고 싶다.”
루이드는 일라이의 진실한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왕실 기사 단장인 우르돈이 충직한 국왕의 편이라는 것이 안심된다만, 그래도 확실히 외부에도 힘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해두는 것이 좋겠지.’
루이드는 일부러 대신들 모두가 잘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했다.
“혹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소폴레리온의 영주, 저 루이드 D 포커드는 바다뱀 신의 가호를 입은 소메네아의 국왕께 헌신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루이드가 예를 갖춰 인사하자, 대신들이 술렁였다.
몇은 감동하는 것이었고, 몇은 놀라 다음을 다잡는 것이었다.
알현실에서 루이드가 직접 능력을 쓰는 모습을 보았으니, 지금 루이드의 발언이 미치는 힘이 적지 않았다.
‘이로써 조금은 도움이 됐겠지.’
* * *
루이드가 배를 타고 떠나는 날.
배에는 항해 기술자들과 국왕의 애정이 듬뿍 담긴 보물 상자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산호로 만든 조각품, 해변 동굴에서 채취한 갖가지 보물, 조개껍데기를 가공한 장신구.
“멋진 왕이 되어서, 그대에게 반드시 이 은혜를 갚겠네.”
일라이는 직접 소메네아의 부둣가까지 나와 그를 배웅했다.
연두색의 맑은 눈이 빛나고 있었다.
배는 소메네아에서 점점 멀어졌다.
다시 소폴레리온으로 돌아가, 이제는 소메네아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준비하기 위해.
“정말 이걸로 된 거예요?”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아샤라가 슬쩍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