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05)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05화(205/252)
제205화
제5편 준비(4)
노귀족은 눈앞에 있는 자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조차 못 하는 것들이 제국을 이끄는 위치에 있다니.
한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어찌 된 연유에서인지 어린, 아니 이제는 어리지 않은 황제가 성에 틀어박혀 꿈쩍을 하지 않는 상황.
이미 선대에 대륙을 제패했으니,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힘을 불렸고, 충성을 바치던 선대 황제가 사라진 큰 귀족들의 눈치가 점점 이상해져만 갔다.
7년간의 기근에도 그저 ‘알아서 제국의 긍지를 지켜라.’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제국 내 영주들끼리의 전쟁이 잦아졌고, 기둥을 담당하던 몇 가문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가뭄이 끝났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과열된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북쪽의 르멘 산맥을 정벌하고, 야만족들과 드래곤이라도 토벌한다면 이 열기가 잠잠해질 듯한데.’
고위 귀족이란 자들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황제 탓만 하며 툴툴대기나 하고 있고 말이다.
“그래서 타겔 후작님께서는 어떤 수형을 선호하시는 편이십니까. 중심 가지를 자르고, 아담하고 넓은 수형을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중심 가지를 오래 두고 잔가지를 쳐, 키를 훌쩍 키우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물어온 것은 이 자리에 있던 귀족이 아니었다.
복도의 끝에서 걸어오는 한 남자.
비교적 젊은 얼굴이었지만, 머리는 노인처럼 잿빛이었다.
“에오넬 공작.”
타겔 후작은 걸어오는 그를 보며 반가운 표정으로 웃었다.
그나마 이 제국에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글쎄요. 원래 취향은 후자입니다만, 정원에서 키우는 나무라면야…….”
에오넬 공작이 주름이 가득한 눈을 휘어지게 미소 지었다.
* * *
루이드가 정신을 되찾았을 때, 그는 소폴레리온에 있는 자기 방에 누워있었다.
천장이 익숙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그는 벌떡 일어났다.
아샤라는!
아르헬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발을 디디려는데 순식간에 시야가 기울었다.
쿵!
‘어라?’
그대로 얼굴이 처박혔다. 삽시간에 고통이 온몸으로 번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제야 몸의 고통이 인지되는 것이었다.
‘몸에…… 힘이 안 들어가네.’
루이드가 바닥에서 꾸물대는 동안 문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거칠게 문이 열렸다.
“루이드 님!”
엠마가 한달음에 뛰어와 루이드를 부축했다.
“이런! 침대에 가만히 계시지 않고…….”
“아샤라, 아샤라는 어떻게 됐어.”
엠마의 얼굴은 조금 굳어졌다.
때문에 루이드는 속으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의식을 찾지는 못했어요.”
“살아는 있는 거지?”
“그렇긴 한데…….”
엠마의 얼굴이 여전히 어두웠다.
“왜, 왜 그런 얼굴인데?”
“일단은요. 이 소폴레리온에서 아샤라의 상태를 제대로 볼 수 있을 의술사가 없는 상태예요.”
“아.”
“숨은 붙어 있고, 안정적이긴 하지만…….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거죠.”
“그렇군…….”
엠마는 루이드를 부축해 침대 위로 끄집어 올렸다.
“하지만 아르헬 님과 루이드 님께서 혈계 능력으로 치료하셨으니, 분명 무사하시겠죠?”
엠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녀 또한 그렇게 심하게 다친 동료를 본 적은 없었기 때문.
“글쎄…….”
루이드 역시 약간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루이드 님은 괜찮으신 거예요?”
“아? 아아……. 나야…….”
루이드는 침대에 누인 채로 팔다리를 움직여보았다.
“응, 잘 안 움직이네.”
“뭐라고요?!”
“힘이 잘 안 들어가. 왜지?”
루이드는 골몰히 생각하며 초상 능력의 힘을 몸 내부로 순환시켰다.
능력의 힘은 거의 완전히 바닥나 있었다.
“에게.”
“예?”
“음……. 힘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 것 같은데. 혹시 내가 구역질도 했어?”
“……네.”
엠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잃으신 상태에서…….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해야 한다면서 크레이브 공작께서 루이드 님을 둘러업고…….”
“아! 그만, 그만.”
루이드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바람에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보는 사람이 제일 많은 곳에서 볼썽사납게…….”
게다가 크레이브 공작의 도움을 받다니.
의외였다. 루이드라면 치를 떨며 싫어하는 양반 아닌가.
D의 영향일까.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고 생각하니,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그럼,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죠? 덧나신다거나…….”
엠마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루이드를 살펴보았다.
“흠, 글쎄.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힘을 짜내본 게 몇 번 있긴 한데. 토한 적은 처음이라.”
루이드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쪽팔리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괜찮은 게 맞나 보네요. 다행이에요.”
엠마는 보조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전하께서는? 아니, 그보다. 혹시 며칠이나 지나버렸다던가 그렇지는 않지?”
“네, 루이드 님이 쓰러지신 후 겨우 1시간쯤 지났어요.”
“그렇군.”
“전하께선 응접실에서 쉬고 계세요. 이런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놀라셨거든요.”
“공작들은?”
“크레이브 공작께선 전하 곁을 지키고 계시고, 세반 공작께서는 둘째 공자님과 함께 다과실에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흠. 그래…….”
루이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몇 마디 나눈 것뿐인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온몸이 쿡쿡 쑤셨고, 바닥에 들이박은 얼굴도 한참 부어올라 쓰라렸다.
“물수건을 좀 가져올게요.”
엠마가 천천히 일어났다.
“응, 고마워…….”
문이 닫히고 루이드는 아차 싶었다.
아르헬은 괜찮을까?
자신조차 기절할 만큼 순식간에 엄청난 힘을 쏟았다.
거의 반 토막 난 사람을 회복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쉬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엠마가 특별한 말이 없었으니,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아마 자신처럼 자기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리라.
루이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엠마가 물수건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 * *
탁탁탁탁.
카라젝은 있는 힘껏 달렸다.
자신의 인공 다리와 내부의 기계장치가 모두 부서질 정도로 최선을 다해 달렸다.
“저기로.”
품 안에서 힘겨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르헬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성 바로 뒤편에 있는 숲을 가리켰다.
그리 큰 숲은 아니었다.
몬스터는 살지 않고 다람쥐나 토끼, 사슴 따위가 살만한 작은 숲이었다.
휘욱! 숲의 가장 깊은 곳에 닿는 건 순식간이었다.
팟! 아르헬이 카라젝을 밀쳤다.
카라젝은 그녀가 바닥으로 떨어지리라 생각했지만,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푸화악!
폴리모프가 풀어진 아르헬이 드래곤의 모습을 드러냈다.
“으으으…….”
“아르헬, 괜찮아.”
카라젝에게는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지하 유적에서 나와 말을 구할 적당한 마을을 찾을 때까지 카라젝 역시 그녀의 등을 타고 왔으니까.
다른 점이라면, 그때보다도 아르헬의 덩치가 훨씬 커졌다는 거였다.
숲의 나무가 조금만 더 키가 작았더라면, 아르헬의 갈기가 달린 등이 숲 밖에서도 훤히 보일지도 몰랐다.
그녀의 몸길이는 이미 마차 다섯 대를 늘어놓은 것보다 길었고, 몸통의 둘레 또한 황소를 세 마리쯤 꿀꺽 삼켜도 무리가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푸르릉. 아르헬이 커다란 콧구멍으로 김을 뿜어냈다.
“죽을 것 같아.”
“죽으면 안 돼!”
카라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르헬의 얼굴에 들러붙었다.
“진짜 죽는단 말은 아니었어. 그만큼 힘들다는 거지.”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죽을 만큼 많은 힘을 소모한 거야?”
“……응.”
아르헬은 졸린 듯 커다란 눈을 끔뻑거렸다.
“네 비늘이 다 상했어.”
카라젝이 아르헬의 반짝이는 비늘을 손으로 쓸었다.
“아야.”
후두둑. 카라젝이 건드리는 대로 비늘이 떨어져 내렸다.
“헉! 아르헬, 미안해.”
“아니야. 이미 죽은 비늘이야.”
“죽었다고?”
카라젝은 죽음이라는 단어에 무척이나 과민반응 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거랑 비슷한 거야.”
“…….”
“걱정하지 마. 조금 쉬면 다시 새 비늘이 돋을 거니까.”
카라젝은 아르헬의 두꺼운 목을 끌어안았다.
우수수. 비늘이 떨어져 내렸지만, 이번엔 카라젝은 떨지 않았다.
“이제 성으로 돌아가서 내가 무사하다는 걸 알려줘.”
“하지만 이렇게 힘이 다 빠졌는데, 위험하잖아. 지켜줄 사람이 없는걸.”
“난 괜찮아. 이래 봬도 드래곤인 걸. 토끼한테 공격당하진 않겠지.”
아르헬이 키득거렸다.
드래곤의 성대다 보니 평소와는 달리 깊게 그르렁대는 소리가 났다.
“아르헬, 네가 살아있는 존재라서 너무 다행이야.”
“그거 좀 이상하게 들리는데.”
“성에 다녀올게.”
카라젝은 일어나 성을 향해 달려갔다.
* * *
루이드가 겨우 일어설 만큼 회복하는 데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카라젝이 소식을 전한 덕분에 루이드는 아르헬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아르헬이 힘을 회복하고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올 때까지 다행히 위험한 일은 없었다.
카이린은 루이드가 기력을 회복한 모습을 본 뒤에야 왕도로 돌아갔다.
셜린 세반 역시 별다른 말 없이 돌아갔는데, 루이드는 어쩐지 그와 금방 다시 만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그리슨빌에 들러야 했다.
아샤라는, 루이드가 텔레포트 게이트를 타고 넘어가 그리슨빌에 도착할 때까지 깨어나지 못했다.
“루이드.D.포커드.백작!”
텔레포트 게이트를 넘자마자 루이드와 아르헬을 반긴 건 클리아베이든이었다.
그는 아샤라가 이곳에 임무 차 왔을 때, 그녀 혼자서만 출입하도록 허락한 리그말 족과의 약속 때문에 그리슨빌 성에 남겨져 있었다.
“내 딸이!! 의식불명 상태라고요?!”
클리아베이든은 위습의 불꽃을 화르르 불태우며 소리를 질러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저도 잘 모릅니다. 리그말 족의 마을에 가서 조사해볼 참입니다.”
“당장 그 애를 봐야겠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클베. 나와 루이드가 최선을 다해 치료했으니까요. 그녀는 그저……. 회복이 필요한 것뿐이에요.”
아르헬이 클리아베이든을 다독였다.
그녀가 내뱉은 말에는 한점의 거짓도 없었다.
힘을 회복한 루이드와 아르헬이 힘을 사용해 다시 아샤라의 상태를 진단했다.
지금은 자연적인 회복을 기다려야 할 때.
클리아베이든은 씩씩거렸지만, 체통을 지킬 줄 아는 마황이었다.
“숲에서 아샤라가 몰던 말과 리그말 족 한 명이 돌아왔었어요.”
클리아베이든은 분노를 짓씹듯이 말했다.
“그가 도움을 요청했고, 헤이란이 보낸 기사들이 숲으로 갔죠. 하지만 그땐 이미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루이드는 단번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숲 내부, 리그말 족 마을에 있던 자들은 모두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