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06)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06화(206/252)
제206화
제6편 준비(5)
루이드는 한달음에 리그말 족들의 숲에 도착했다.
숲 주위는 심하게 훼손되어 시커멓고 황량했다. 숲의 나무들이 모두 검었다.
마치 소폴레리온에서 차원의 문이 열렸을 때처럼.
나무들은 모든 색채를 잃고 까맣게 타버렸고, 또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불에 탄 것과는 사뭇 다른,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생기를 빨아 먹힌 것과도 같은 모습.
“이럴 수가. 숲이…….”
숲의 처참한 꼴을 본 아르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끔찍한 일을 벌인 게 내 딸을…….”
아르헬이 옆으로 멘 가방에 반쯤 걸쳐져 있는 클리아베이든이 이를 갈았다.
물론 그는 위습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치아는 없었지만.
루이드는 침착하게 리그말 족의 마을로 들어갔다.
아름답고 놀라웠던 문명을 가진 마을은 온데간데없었다.
바닥으로 검은 물이 흘렀다.
화마에 집어삼켜졌다가, 다시 수마에 잠겼던 것처럼 재가 흐르고 있었다.
“기사들의 말로는 사흘 내내 이곳에만 비가 내렸다고 했어요. 지금 보니, 아샤라의 마법이군요.”
클리아베이든이 가방 속에서 꾸물거리며 말했다.
“그녀의 마나가 남아있어요. 이곳 전체의 불을 끌 정도로 거대한 마법을 쓰고 전투 후에 텔레포트까지 쓰다니. 역시 내 딸이로군요.”
그는 은근히 고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샤라의 클래스는 벌써 6 클래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짧은 시간 내에 그렇게 많은 마법을 구사하는 것은 쉬운 게 아니었다.
마법사들은 강력하지만, 공격에 시간이 걸렸다.
마법의 연사라는 것이 말은 쉬워 보이지만, 높은 클래스의 마법사에게도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니었다.
마법이라는 것은 아주 섬세하기에 자칫 엇갈린다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루이드는 클리아베이든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의 말에 맞장구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리그말 족의 마을과 너무도 달라진 모습.
폐허 그 자체인 곳을 보며 말을 잃었다.
“아샤라의 마법 덕분에 불길이 번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이 정도의 형체도 남지 않았을 것 같군요.”
그 무엇도 살아있지 않은, 죽음이 내려앉은 광장에서 루이드는 자신의 얼굴과 마주했다.
리그말 족이 만들어주었던 동상.
몸체는 녹아내렸고, 얼굴 부분만이 겨우 남아있었다.
그 얼굴에는 누군가가 난도질한 것 같은 자국이 크게 나 있었다.
마치 발톱으로 긁은 것 같기도 하고, 물어뜯은 것 같기도 했다.
“살아있는 리그말 족이 하나도 없다고요?”
“맞아요. 아니, 이 마을에서 살아남은 자는 하나 있죠. 그리슨빌에 소식을 전한 자 말이에요. 그리고 리봉의 사육장에서 일하던 몇몇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들이…….”
그들이 전부 다.
루이드는 그 사실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대체 어떤 놈이…….’
루이드는 신전 쪽으로 향했다.
‘아브리키아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북이 신.
마을의 상황을 보니, 그를 다시 볼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잠들지 않았다면, 이곳을 지킬 수 있었을까? 리그말 족을…….’
거북이 신은 죽어가고 있었지만, 언제 그의 죽음이 다다를지 몰랐다.
어차피 이렇게 죽게 될 운명이었다면…….
루이드는 몰려드는 상념을 흩어버렸다.
그리고 신전으로 올라갔다.
모든 것이 불탔는데도 신전은 비교적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법은 완전히 사라졌군.”
수없이 올라가야 했던 계단도,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올랐던 층들도 모두 사라졌다.
두어 층을 올랐더니, 금방 끔찍한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틀림없군요. 아샤라의 마나 흔적이 남아있어요.”
클리아베이든이 가방에서 쑥 튀어나와 바닥을 훑었다.
피. 많은 양의 피가 한쪽을 향해 쏟아진 듯한 모양이 그대로 굳어있었다.
‘이곳에서 공격당했다.’
그리고 아샤라가 보았을 정면에는 거대한 거북의 등딱지가 있었다.
루이드는 다가가 죽은 신의 흔적을 살폈다.
‘없어, 등껍질 외에는 남지 않았다.’
루이드의 눈에서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앗, 루이드! 벌써 그 힘을 사용하려고? 아직 회복이 완전하지 않잖아.”
아르헬이 말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루이드는 힘을 최대한 끌어냈다.
* * *
루이드는 거북이 신의 기억을 훑고 있었다.
그를 죽이고, 리그말 족의 마을을 불태우고, 아샤라를 공격한 자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
통찰의 눈으로 좇기 위해서.
루이드가 힘을 사용한 시점에서 되감기로 하듯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먼 과거인 듯한 기억이 루이드의 시야에 가득 차오르고, 강력하게 보였다.
어두운 밤이었고 반짝이는 별 무리가 어둠을 가르고 우수수 떨어졌다.
“아버지. 저 별들은 어찌합니까?”
“응?”
아이의 물음에 커다란 거북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북과 아이는 둥그렇고 넓은 지붕 위에서 밤바람을 쐬는 중이었다.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바람이 불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몸이 붕 떠오를 것 같은, 기분 좋은 여름밤이었다.
하늘에서는 아직도 유성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저렇게 하늘에서 떨어지면 아플 것 같아서요. 나는 그냥 넘어지기만 해도 아픈데요.”
아이는 까져 딱지가 앉은 자기 무릎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래서 어떤 마음이 드느냐.”
“슬픕니다. 아버지, 저는 이 세상에서 아픈 자가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참 상냥하구나.”
거북이 신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쑥스러운 듯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슬퍼하지 마라, 페르디. 행복한 일도, 슬픈 일도. 각자의 몫이 있으니.”
“몫이 있다고요?”
“그래. 이 세상에는 모두 자신의 몫이 있단다.”
“이해가 잘 안 돼요. 그건…….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말처럼 들려요.”
“…….”
거북은 대답하지 않았다.
신적인 존재가 된, 현명한 지혜의 상징 아브리키아스마저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아버지?”
“오늘은 피곤하구나. 너도 키가 자라려면 잠을 많이 자야 한단다.”
“네, 아버지.”
아이는 머리를 몇 번 더 만지작거리다가 아래로 난 문으로 사라졌다.
거북은 아이가 내려간 뒤에도 한참을 지붕 위에 있었다.
유성우가 그친지도 한참이 지났다.
“아브리키아스.”
거북의 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브리키아스는 천천히 돌아보았다.
“죽어야 할 인간을 살렸다지.”
“……그렇소.”
아브리키아스가 돌아본 자리에는 별처럼 빛나는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마치 금이나 크리스털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인간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으나 전혀 생명체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 주위만 대낮인 것처럼 밝았다.
“아무리 땅에서 난 신이라 하더라도, 세계의 법칙을 깨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소.”
아브리키아스의 말에 너무 밝아서 잘 보이지 않던 그녀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사정!”
호통치자, 그녀로부터 뻗어 나온 빛이 지붕을 넘고 숲을 넘어 먼 곳까지 순식간에 번쩍였다.
벼락이 내려치는 것 같았지만, 그저 빛뿐이었다.
“당신의 본체가 강림한 것이 아니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아니면 기껏 가꾸어 놓은 모든 것이 다 사라졌을 테지.”
아브리키아스는 조금 숙이는 말투로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당신이 그러면, 이브가 눈치챌 거야.”
“……흥.”
이브라는 말에 여인의 분노가 조금 사그라드는 듯했다.
“그 어린 것이 감히 하늘을 기만하다니…….”
“글쎄요. 모든 것에는 정해진 운명이 있고, 모든 것들은 응당 따라야 할 길이 있다고. 그 자리에, 그 순간에. 오래된 것은 낡아지고 새로운 것이 높이 오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빛나는 여인은 괘씸하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으나 그녀 자체에서 발산되는 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당신들께서 그리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리 저를 탓하러 오신 것 아닙니까? ‘법칙’을 어겼다고요.”
“……그대도 무척이나 기고만장해졌군. 하늘이 닿지 않는 동안 우리와 비슷해졌다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건가.”
그녀는 대놓고 거북이 신을 비웃었다.
파직, 파지직.
빛나는 그녀의 몸에 작은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이런, 이브가 눈치챘군요.”
“쳇…….”
그녀는 스파크가 튀는 자기 손을 둘러보다가 검지를 세워 아브리키아스를 가리켰다.
“너는 법칙을 어긴 죗값을 치르게 될 거다. 저 어린 이레귤러가 네 목숨을 위험하게 할 거야.”
저주처럼 들리는 말에도 아브리키아스는 침묵했다.
“네가 한 일이 저 작은 인간을 살렸다고 생각하겠지? 틀렸다. 너는 저 인간을 절망 속에 비틀어 넣은 거야.”
그녀의 빛나는 몸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네게는 보이지 않나? 저 어린 것의 영혼이 벌써 몇 갈래로 찢어졌는지. 본디 죽어야 할 것의 영혼을 묶어놓은 탓이야.”
이제는 아브리키아스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것처럼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절대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크크큭, 신도 아닌 네깟 놈이 뭘 안다고.”
파직, 파지직!
여인의 형체는 계속해서 흩어졌다. 마치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오류처럼, 고장 난 컴퓨터 화면처럼 일그러졌다.
어느새 검지 하나만 남은 그녀가 말했다.
“이건 저주가 아니야. 나는 미래를 보는 자, 너의 운명은 점친 거다. 내 너를 아끼는 마음으로 네 끝날에 다시 점괘를 내려주마. 그때 피하지 못하면 너는 영원히 잠들지도 못하고 끌려다니는 종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훅.
촛불이 꺼지듯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지붕 위에는 어둠과 적막이 내려앉았다.
“참나, 나를 걱정해주시는 꼴이라니. 스승님도 참…….”
아브리키아스는 그녀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신에 필적하는 존재가 되어서 지키고 싶은 자들을 거둘 수 있었을까.
늘 독설을 퍼붓기는 해도, 아브리키아스에게는 소중한 스승이었다.
그녀는 이 땅의 존재들과 너무나도 다른 하늘의 존재였지만, 그래도 그녀에게도 자신이 어떤 작은 의미라도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이렇게 내려와 친히 조언해준 것이 아닐까.
아브리키아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거북이 신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잠들어있는 작은 아이에게로 갔다.
쌔액, 쌕…….
아이의 숨소리는 고르고, 무척이나 작았다.
이 작고 가여운 것을 살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부모를 잃고 눈앞에서 죽어가는 어린 소년을.
아브리키아스는 자신에게 하늘의 것과는 다른 나약함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점이 싫지 않았다.
하늘의 것들은 너무나 냉정하다. 땅의 것들을 그저 도구로, 장난감으로, 여흥으로 생각하니까.
힘을 지녔다는 이유로, 하늘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들은 언제나 옳지 않다.
이브의 존재가 그를 증명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아브리키아스 자신도 이브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아브리키아스는 거대하고 뭉툭한 앞발로 소년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페르디, 사랑스러운 아이야. 무럭무럭 자라거라. 나는 그저 네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란다.”
그 모든 것을 바라보던 루이드는 깨달았다.
아브리키아스가 쓰다듬고 있는 페르디, 리그말 족의 마을에 처음 방문했던 루이드가 이곳에서 발견했던 페르디날이라는 이름.
그리고 단데리온 후작의 성에서 만난 페르디날.
그들이 모두 같은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이곳에 온 거였어.”